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 25회 

내 심장이 뛴다 <그리스인 조르바>

 

작년 그러니까 201310<그리스인 조르바>를 샀다. 워낙 유명하니까.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가. 얼마 전에 읽은 <여행 작가 한 번 해볼까?>에서도 언급하고, <알파레이디 북토크>에서도, 출처가 선명하지 않지만 다른 책에서도 그리스인 조르바는 귀가 따답게 읽으라고 잔소리 한다. 결국 작년 가을에 큰 맘 먹고 구입했다. 초반부는 ''라는 사람이 그리스인 조르바를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한 마디로 지겨웠다. 무슨 설명이 그리 많은지. 이 따위 책은 읽으라고 권한단 말인가. 집어 치우라지. 고작 15쪽 읽고 보이지 않는 책장 한 쪽에 밀어 넣었다. 시간은 흘러 벚꽃이 만개한 사월의 어느 날 운명처럼 조르바를 발견했다.

 

순전히 하얀 표지 때문이다. 착시현상이 일어 날 것 같지 않는가. 벚꽃이 아닌가하는. 순전히 개인적인 기억의 데자뷰일 뿐이다. 나는 늘 하얀색을 벚꽃이라 우긴다. 아내는 분홍색도 아닌 분홍톤이란다. 색에 유난히 민감한 아내는 조금이라도 다르면 억지로라도 시켜서 교정해 준다. 가로수 아래 시에서 심어 놓은 꽃이 좋아. "와 온톤 빨간색이다" 아내가 떫은 표정으로 염장을 지른다. "분홍색!" "분홍색이나 빨간색이나. 거기서 거기지" "아니에요. 달라요!" 늘 이런 식이다. 단세포 생물인 나에게 분홍이고 뭐고 복잡할게 뭐람. 그냥 빨강이면 빨강이지. 하여튼 이런 식의 대화가 자주 오간다. 오늘도 어김 없이.

 

새하얀 옷을 입은 벚꽃 같은 책을 꺼내 지난 번에 표시해둔 뒷 부분부터 읽기 시작했다. 검게 그려진 밑줄을 보니 기억이 되살아 났다. 6개월은 순식간이다. 밑줄친 덕분에 기억하는 것도 순식간이다. 또렷한 의식으로 읽어 나갔다. 기억은 하나도 다르지 않는데 느낌이 너무 다르다. 물컹물컹 씹혀지는 문장들이 마시멜로를 먹는 듯하다. 아니면 초장에 생선회를 찍어 먹는 느낌이기도 하고. 후각과 청각이 요동친다. 예를 들어 보자.

 

카페 안은 발효시킨 샐비어 술과 사람 냄새가 진동한다.”

 

코끝이 화끈거리지 않는가. 비오는 카페 안이라. 창문은 대부분 닫혀있어 숨이 턱턱 막힌다. 이런 곳에서 발효시킨 술 냄새라. 생각만 해도 역겹다. 시선 처리는 어떻고. 문장이 아닌 영화를 보는 듯한 절묘한 서술이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을 잊게 한다.

 

북 아프리카에서 불어오는 시로코 바람이, 유리문을 닫았는데도 파도의 포말을 조그만 카페 안으로 날렸다.”

 

이것이야말로 문학의 대가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보여주는 문장이 아니고 무엇인가.

 

시선이 만나자 그 낯선 사람은 힘차게 팔을 뻗어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아주 빠른 걸음으로 탁자 사이를 지나 내 앞에 우뚝 섰다.”





만남! 그리고 묻는다.

 

여행하시오?”

 

그는 여행 중이었다. 그 와중에 조르바를 만났다. 기적은 언제나 운명이다. 그 항구에서 예전에 떠나보낸 친구를 회상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지

 

인간의 영혼은 육체라는 뻘 속에 갇혀 있어서 무디고 둔한 것이다. .. 미래라는 게 예견될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 이별은 얼마나 다른 것일 수 있었을까.”

 

조르바에게서 자유를 발견한다. 줄기 세포와 같고, 태곳적 때 묻지 않는 대지와 같은 남자였다. 그를 만난 주인공은 관찰자의 입장에서 그와 동행을 시작한다. 아직 시작도 못했으니 더 이상 풀 수가 없다. 다만 뭔가 신선한 바람이 따스하게 불어오는 것만은 분명하다. 나도 열심히 조르바를 따라 크레타로 들어갈 참이다. 그럼 나중에 다시 뵙시다.

 

조르바는 앞서 가고 있었다.”

 

나는 그를 뒷따라 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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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책을 더 찾아 보았다. 그러고 보니 집에 한 권 있다. 어딘가 낯익더라니. 최후의 유혹은 예전에 영화로 제작된 적이 있는 책이다. 조야하긴 했지만. 인간에 대한 깊은 고뇌와 통찰이 담겨 있다.















<수난>도 역시 인간의 고뇌다. 예수의 사후 인간들이 짊어진 고뇌의 의미를 찾아간다. 카잔차키스의 빼어남은 역시 기행문이다. 어느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깊이가 담겨있다. 따지고 보면 <그리스인 조르바>도 기행 소설이다. 카잔차키스는 여행을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이 분명하다. 이번참에 이 책들을 몽땅 읽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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