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하지 말고 여행 하라.

 

여행은 관광과 다르다. 관광은 채우는 것이고 여행은 비우는 것이다. 관광을 돈으로 하는 것이고 여행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관광은 마치고 나면 더욱 탐욕스러워 지지만 여행은 더욱 성숙해지고 자아를 찾아 간다. 여행의 의미는 나를 버리고 나를 찾는 것이다. 버리지 않으면 찾을 수 없고, 잊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다. 이것이 여행의 의미다.

 

언제부턴가 여행에세이를 사 모으기 시작했다. 여행에세이는 여행지의 정보를 가르쳐 주기 위한 책이 아니다. 여행을 통해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무료한 일상을 벗어 던지고 나라는 존재의미, 삶의 의미를 찾는 여정이다. 이병률의 책이 마음에 와 닿는다.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또한 여행의 진정성을 가르쳐 준다. 신영복의 <나무야나무야>는 여행을 넘어 시공간을 넘나드는 하나의 예술이다.

 

 















낯선 공간으로 이동은 모든 것을 신경쓰지 않으면 애를 먹게 한다. 일상의 범주 안에 들어있는 삶의 영역은 반복을 통해 익숙하기에 크게 지장이 없는 것들은 간과(看過)한다. 그러나 낯선 여행지는 그럴 수 없다. 무엇인 중요한지 아닌지를 분간할 수 없다. 그럴만한 경험의 축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여행에세이집인 <하루키의 여행법>에서 속도 방지턱인 토페를 불평한다.

 

“범죄보다 더 현실적으로 우리를 괴롭힌 것은 토페였다. 차의 속도를 줄이기 위해 도로에 뭉툭하게 만들어 놓은 융기물로서 말하자면 고속 방지턱이다. 거기서 속도를 낮추지 않으면 덜컥하는 불쾌한 진동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원래의 도로가 너절하기 때문에 어디가 토페이고 아닌지 언뜻 봐서는 잘 모르는 곳이 많다. 토페인 것 같아서 속도를 줄이면 토페가 아니고, 토페가 아닐 거라고 생각하며 그냥 달려가다 보면 그것이 토페인 경우가 있다.”(75쪽)

 

낯선 환경은 일상에 익숙해진 생각을 무너뜨리고 몸의 근육을 다르게 사용하도록 요구한다. 여행을 대비해 적절한 운동과 주의력을 길러 놓지 않으면 낭패가 보기가 십상이다. 모든 것이 중요하고 모든 것이 새롭고 모든 것이 혼돈스럽다. 여행은 지금까지 잊혀진 것을 끄집어 내고 익숙해진 것을 무효화 시키고, 불필요한 것들을 긴요하게 만든다. 다르게 살도록 요구한다. 여행은 나를 재정비하는 과정인 셈이다.

 

그러나 관광은 그렇지 않다. 변하지 않아도 된다. 생각을 바꾸지 않아도 된다. 약간의 어색함을 참아내면 된다. 돈으로 모든 것을 자신이 익숙한 환경과 비슷하게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태국에서도 예루살렘에서도 맥도날드를 찾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뉴욕에서 한인식당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여행이 아닌 관광을 즐기고 있다. 그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탐욕과 자만심을 키워 갈 것이다.

 

관광을 하지 말고 여행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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