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보경심 세트 - 전3권
동화 지음, 전정은 옮김 / 파란썸(파란미디어)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사나이 울린 보보경심(步步驚心)


출근 길이다. 아직 이르다. 아무도 개화하지 않았다. 다음주면 만개할 것을 기대하며 거리를 지나쳤다. 한참을 달리다 한 그루가 유난히 뽀얀 얼굴을 내밀었다. 벌서 만개한 것이다. 아~~~ 나도 모르게 한숨같은 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리고 급한 마음에 폰을 꺼내 그녀의 향긋한 미소를 담았다. '찰칵' 


똑같은 나무, 똑같은 장소, 똑같은 날씨지만 모든 벚꽃이 함께 피지는 않는다. 나는 이번에 신비로운 사실을 눈으로 확인했다. 엄연히 다른 것이다. 그녀에게 뜨거운 열기를 느꼈다. 아직 겨울이라 몸을 움추리고 있지만, 그녀만은 봄이라고 자신의 화사함을 마음껏 뽐냈다. 그녀의 열기가 뜨겁다. 그립고 사랑스럽다. 아무도 못할 일은 그녀는 당당하게 해낸 것이다. 내년 봄에도 그녀는 그렇게 하리라. 아직 이르다고 누군가의 잔소리에도 당당하게 자신의 자태를 먼저 드러낼 것이다. 그리고 봄의 흔적을 남긴다. 



보보경심(步步驚心), 한자의 뜻이 절묘하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설 수록 마음은 더 놀란다. 이 무슨 뜻인가? 나에게도 세가지의 놀람 즉 경심(步步驚心)이  있었다. 책을 받아보고 적지 않게 놀랐다. 한 책당 오백쪽이 넘어가고 있었다. 바쁜 현대인에게 무거운 책이었다. 이것이 첫번째 놀람이다. 두번재는 놀람은 읽어 가는 중에 스며오는 사랑과 운명 속에서 갈등하는 약희에게 놀랬다. 이미 역사를 안다. 아니 결말을 안다. 그녀는 후에 옹정제가 될 사황자를 택한다. 그러나 십황자와의 에피소드도, 형부인 팔황자와의 갈등은 계속하여 그녀를 괴롭힌다. 


역사는 객관적으로 볼 수 없다. 이것이 두번재 놀람이다. 세번째 놀람은 결말이다. 결국 사황자를 택하고 황제가 된 그를 가까이 모시게 되지만, 다시 헤어지고 십사황자의 측복진이 된다. 그리고 쓰린 마음으로 옹정제를 그리워하다 죽음을 맞이한다. 놀랬다. 어쩔.. 이럴 수가. 마지막 결말이 나를 울렸다.



초기에 약희는 역사에 초연하리라 생각한다. 착각이었다. 황자들의 관심을 뿌리치지 못하고 말려들다 다시 정신을 차리기를 수십번... 그러다 결국 운명보다 강한 사랑에 빠져든다. 그녀는 피할 수 없었다. 거대한 운명에 저항하기에 마이태 약희는 너무 약했다. 그리고 감정도 마음이 생각하는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역사의 흐름을 알고 있어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 자신의 운명은 다른 사람 손에 달려 있으니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다시 말한다.


"세상에, 어쩜 이렇게 이성적이고 멀쩡한 거지? 나 자신의 일조차 이렇게 분석하다니 벌써 약희가 다 된 줄 알았는데 역시 넌 아직도 장효였어"


역사의 수레바퀴가 돌아가자 약희는 그곳에서 맞물려 빠져 나가질 못한 것이다. 초연할 수 없었다. 다시 깨어나 초연해지려 하지만 다시 역사와 애정이 늪으로 깊어 빠져 들어갔다. 사랑은 운명보다 강열한 탓이다.




1편은 장효가 사고가 나 깨어나 강희제 43년의 마이태 약희로 살아가는 장면이다. 섬씽은 자신의 형부였던 팔황자과의 밀고 당기는 이야기로 풀어간다. 마지막 장면은 팔황자에게 결별을 선언하고 눈 속에 얼굴을 파묻히는 장면과 사황자의 만남으로 끝이 난다. 2편은 강희제의 변순례와 약희와 민민공주와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곁들여진다. 약희는 풍전등화와 같고 마지막 잎새와 같다. 아무런 힘도 없다. 형제간의 죽이고 가두는 비극을 눈 앞에서 바라 본다. 울고 절망하고 슬퍼한다. 3편은 4황자의 등극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끝이 난다. 슬프다. 번외편을 읽으면서도 마음이 울컬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책을 덮고 나서 내내 우울했다. 사랑하지만 사랑할 수 없는 약희의 운명이 불쌍했고, 사랑하면서도 지켜줄 수 없었던 옹정제의 마음이 느껴져 더 우울했다. 정말 우울하게 만든건 약희가 죽기전.. 아니 죽고 나서 장효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는가이다. 만약 돌아왔던라면, 사랑이 과거의 추억으로 끝이 났더라면 한결 마음이 가벼웠을 것이다. 그러나 끝내 약희는 옹정제와 만남을 이루지 못하고 외롭게 죽는다.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이 마음 아프게 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약희와 사황자만의 몪은 아니었다. 민민공주와 심삽황자의 사랑도 애절하지만 초원의 바람처럼 외롭고 지독한 사랑이었다. 이상하다. 마음껏 사랑하고 욕망을 불태우면 허무함이 깃들이는데, 마음으로 애태우며 그리움으로 닳아가면 아름다워지니 말이다. 사랑은 운명에 함몰되어 사라진 듯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어서 더욱 애절해지니 이 또한 무슨 조화란 말인가.


약희를 보면서 때이른 벚꽃 같다는 생각을 저버릴 수 없다. 사랑은 늘 이른 것이다. 아무도 말하지 않을 때 말하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을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때론 야생마처럼, 때론 들꽃처럼... 당돌하고, 초연하고, 담대해 보였던 약희도 운명 앞에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운명이 사랑을 막지는 못했다. 때이른 벚꽃처럼 차가운 냉기가 맴도는 자금성에서 뜨거운 사랑을 피웠다. 사랑은 운명보다 강열하다는 것을 증명해낸 셈이다.


참, 오랫만이다. 그동안 자기계발서적에만 빠져 정보와 지식을 추구한 덕에 마음이 심히 피폐해쳤다. 이 책 읽고 참.. 오랫만에 남자지만 실컷 울었다. 아내는 무슨 책이냐며 남자가 주책떨지 말라 한다. 가슴을 뜨겁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 










읽다가 건져 올린 문장들


"가슴은 미칠 만큼 답답한데 시간은 잘도 흘렀다."


"내게는 기하학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생긴 버릇이 있다. 고민해 봐도 모르겠으면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다. 그러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히 알게 되는 수도 있다. 그러니 이번처럼 최고난이도의 문제는 그냥 포기하는 것이 낫다. 시간이 답을 알려 줄 테니까"


"내가 결혼하고픈 사람은, 온 마음을 다 바쳐서 날 사랑해 주는 사람이야."


"어째서 서로의 곁을 지켜주지 못하는 거지?"


"약희, 그만 내려놓고 네 행복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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