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증명 증명 시리즈 3부작
모리무라 세이치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2년 10월
품절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인간의 증명>

‘그 남자가 탔을 때 아무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인간의 증명, 첫 문장이다. 그리고 이 문장은 끝 문장에 이르도록 끊임없이 독자를 괴롭힌다. “나는 이 작품에 이십여 년 동안 마음 깊숙한 곳에 묵혀두었던 것을 쏟아 부었다. 《인간의 증명》이 한 권의 책이 되어 내 손에 들어왔을 때, 나는 그 묵직함을 내 마음의 무게라고 생각했다.” 저자는 그렇게 이 책에 대한 의도를 담담하게 그러나 진지하게 고백(?)했다. 인간에 대한 물음.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어떻게 인간으로서 살아야하는가를 도심 한 복판에서 타자의 죽음을 통해 질문한다.

사건을 맡은 도쿄 경시부의 무네스에는 인간을 믿지 않는다. 아니 인간을 혐오하고, 증오하고, 복수의 대상으로서 인식하며 살아간다. 그에게 흑인청년의 죽음은 직업이기에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하는 돈벌이다. 오야마다 다케오, 절세의 미인인 후미에에게 빌붙어 살아가는 기생충이다. 어느 날 아내는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버림받았다는 배신감, 그리고 자격지심으로 인해 일어나는 복수심이 그녀의 뒤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니이미, 대기업의 부장이나 사랑 없는 차가운 결혼생활이 그의 전부였다. 그러다 진심으로 마음과 육체를 공유할 치명적인 유혹에 빠져든다. 돈과 명예를 위해 자녀들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는 요헤이 부부. 인간의 증명에 나오는 인간이란 존재들이다. 그들의 밀고 당기는 팽팽한 존재물음은 흑인청년의 아이러니한 죽음이란 사건 앞에서 서서히 파고 들어간다. 도무지 만날 수 없을 것 같던 두 죽음의 사건은 끝자락에서 손을 잡는다. 그리고 인간이고 싶었던 이방인의 죽음 앞에 무릎을 꿇는다.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 최신간인 줄 알았다. 저자인 모리무라 세이치가 누구인지 금시초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내표지에서 이 책이 1976년에 발행되었고, 일본에서 무려 770만부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판매고를 올렸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단 한 권의 책이 770만부가 팔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책은 그렇게 팔렸다. 초반부와 중반부는 흐름이 긴박하지 않다. 차라리 슬로우 비디오 내지 느린 마차로 풍경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조밀하게 파고드는 인간에 대한 차가운 시선은 인간에 대한 존재물음을 끈질기게 물어 온다. 저자는 은밀하게 인간이 누군가를 단아한 문장으로 폭로 한다. ‘이 곳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건 선택된 자들뿐이다. 그들이 한 끼 식사에 쓰는 돈으로 백 명의 굶주린 사람들을 먹일 수가 있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 식사가 호화로울수록 식사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게 된다.’(9) 바로 그 자리에서 청년은 피를 흘리며 죽음을 맞이한다. 그 청년의 삶의 터전이었던 뉴욕은 ‘상층과 하층은 너무나도 격차가 벌어져서 그 모순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다.’(137) 저자는 시종일관(始終一貫) ‘인간은 없다’고 선언한다. 인간을 부정하고 페르소나에 갇혀 존재를 상실해 버린 야스기 교코에게 인간을 믿지 않는 형사 무네스에는 마지막 답을 그녀의 ‘인간성’에 기댄다. 아이러니다. 아니면 저자의 실수 던지.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은 ‘그럼에도 아직 인간에게는 희망이 있다.’고 결론 내린다. 판도라의 마지막 단어처럼 말이다. 야스기 교코, 모든 죄를 자백하고 그녀가 가진 부와 명예를 잃는다. ‘그녀 곁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505) 그러나 한 가지는 남아 있다는 것을 증명해 냈다. ‘아직 인간의 마음이 남아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그렇다, 모든 것을 잃어도 인간의 마음만 있다면······.

일본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으리라. 스토리의 기저(基底)에 일본을 억압하고 착취한 미국에 대한 깊은 반감이 자리 잡고 있다. 화려한 뉴욕의 할렘에서 살아가는 흑인 청년을 통해 일본을 괴롭힌 미국인들의 추악함을 고발하면서 저주한다. 일본인 엄마의 살인은 복수다. 형사인 무네스에가 인간을 부정하게 된 이유도 미국 때문이다. ‘도와줘요! 누가 좀 도와줘요!’의 외침은 패자인 일본의 과거이자 현재이다. 책 내용과는 다르게 흘러가지만, 한국인 독자로서 미국을 저주하는 저자의 교묘한 장치들이 불편하게 한다. ‘그럼 너희(일본)는 왜 우리(조선)에게 사과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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