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완서를 그리워하며

사람은 절로 크지 않는다.


필자가 언제부터 고 박완서 작가의 글을 읽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이었다. 그러다 그분께 푹~ 빠지고 말았다. 거의 중독 수준에 이르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며칠 전에는 고 박완서 선생님의 신간인 <세상에 예쁜 것>을 구입했다.


이 산문집은 그녀가 써 놓기만하고 출간하지 않았던 것을 가족들이 모아 출간한 것이라고 한다. 유고집이라 다소 억지스러운면은 없을까하는 괜한 걱정을 했다. 몇 장을 읽어가면서 정말 그것은 괜한 걱정이었다. 


세월이 연마한 고통에는 광채가 따르는 법이다.


책을 펴자 보이는 첫 문장이었다. 가슴을 져며오는 글이다. 이번 글에는 유독 선생님의 과거의 추억과 분단과 가족의 애환이 많이 나온 것 같다. 전쟁 후 일어난 우익과 좌익의 충돌 속에서 죽어간 오빠들... 그리고 다른 가족들의 이야기가 뭉클하게 다가온다. 잃어버린 20살의 추억도 읽고 있으려니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박경리 작가 추모 행사로 열린 문학강좌 대담록이다. 마지막 부분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창작 시간에 선생님이 진저리치며 싫어하는 것이, 우리 또래들이 경험의 무게가 실리지 않은 허황하고 감상적인 미사여구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너희 경험에서 나온 것을 써라, 그리고 쓸 게 생겼다고 금세 쓰지 말고 속에서 삭혀라. ... 포도주가 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아! 오오! 따위 감탄사를 함부로 쓰는 것을 싫어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무엇에 감동을 해서 쓰고 싶은 것이 생기면 삭혀서 그것이 발효가 되면 쓰지 않을 수 없는 시기가 온다. 폭발이 일어난다."


폭발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폭발할 때가 온다는 것이다. 그곳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은 미숙한 작가의 몫이다.  


몇달 전에 구입하여 읽은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는 노녀의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에서 찾아낸 비범한 글들이다. 박완서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 왠지모를 뭉클함이 일어난다. 그 울림이 얼마나 큰지 책을 덮고 한 참이 지나도 가끔씩 멍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바로 옆에 앉아 소곤소곤 말씀하시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 여자네 집>... 짝사랑에 대한 추억에 몰입되어 헤어나오지 못했던 추억을 선물해 주었다. 곱단이와 만득이라는 촌스러운 이름이지만 그들은 모두에게 어울리는 한쌍이었다. 그러나 운명은 그렇게 쉽게 살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는다. 사랑했지만 결혼까지는 아니었던 것이다. 사랑이란 늘 그런 것이다. 사랑해서 결혼해서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식상한 드라마는 여운이 없다. 너무 유명한 그 남자과 결혼은 평범한 여인의 마음을 어떨까? 시기와 질투를 하며 평생 고통 속에 살아갈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 여자네는 어쩌면 펴엄하기 그지 없는 사람의 시각으로 평범하기 그지 없는 한 여인의 시린가슴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픈만큼 성숙하는 법이다. 아프지 않으면 성숙하지 않는다. 사람은 절로 크지 않는다. 아파야 크고, 그면서 아픈 법이다. 아픔이 있기에 슬픈 노래를 부를 수 있고, 타인의 가슴을 저미도록 아프게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실향인으로서 타향에서 살아가야 하는 아픔은 타향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희망이다. 그래서 작가는 죽음으로 죽음에서 구하고, 아픔으로 아픔에서 구하고, 고통당함으로 고통에서 구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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