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잊어 주세요. 제발!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아십니까? 다음 블로그의 다음 주소로 가면 그를 만날 수 있습니다. 정말! 정말입니다.  

 

그는 이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많이 유명한 사람입니다. 지난 주에 그의 사체가 발견되었다는 뉴스보도가 있었습니다. 아내를 살해한 후 그는 도주하여 거의 2달 만에 사체로 발견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살아있습니다. 그가 평소에 남겼던 글이 아직도 인터넷 상에 떠돌기 때문입니다. 이미 죽은 사람의 글을 그대로 두는 것이 이상하지만 유가족이 삭제 요청을 하지 않는 이상 그의 글은 영원히?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망각하고 싶지만 망각되지 않는 존재가 되고 만 것이죠. 그의 블로그에 가면 수많은 악성댓글들이 달려 있습니다. 입에 담지 못할 부끄러운 만들이 온라인 상에서 아무렇게나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황덕하라는 분을 무조건 비판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살인과 자살에는 우리가 모르는 사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와 별단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한 사람을 두고 결과만보고 비판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문제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하루빨리 이 블로그가 폐쇄되기를 기대하지만 그건 전적으로 유가족들의 책임이니 별도리가 없습니다. 그분을 잊어주는 것이 우리의 도리이며 우리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사이자 시인이었던 김춘수님은 이렇게 노래했죠.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눚짓이 되고 싶다.' 분명 아름다운 싯구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인식되며 아름다운 존재로 기억되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구이니까요. 그러나 그렇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의 개인적인 과거를 보더라도 아무도 모르게 좋겠다는 기억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알고 있으면 아무래도 기분이 좋지 않을 것입니다. 그 부분을 지우고 싶은 것이죠. 황덕하씨는 자신의 전생애를 지우고 싶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추한 자신의 삶을 공개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처럼 인터넷상에 유령처럼 떠도는 그의 글은 아무래도 그가 편히 잠들지 못하게는 것입니다. 

잊혀진 권리가 고인들에게는 있는 것이죠. 아니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연예인들은 사사건건 대중들의 조명을 받고 관심의 대상이죠. 평범하게 살고 싶은 것이 그들의 꿈입니다. 그들에게 잊혀진다는 것은 악몽이요 옌예인으로서의 생명을 다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들은 대중들에게 기억되기 위하여 몸부림을 칩니다. 어떻게 해서든 잊혀지지 않는 존재로 살아가고 싶은 것이죠. 그러나 이것은 악몽이기도 합니다. 기억은 모든 이들에게 힘겨운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원제는 삭제: 디지털 시대의 망각의 미덕입니다. 미국에서는 300달러는 내면 죽은 사람이 인터넷에 남긴 흔적들을 모두 지워주는 디지털 장의사가 등장했다고 합니다. 재미있죠. 꼭 필요한 장의사가 아닌듯 싶습니다. 저도 죽고 난나면 제가 남긴 글들을 삭제해주는 그런 곳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망각은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말합니다. 그래서 망각을 이겨내기 위하여 인간은 최고의 멋진 기술을 하나 만들어 냈습니다. 그것이 바로 '문자'랍니다. 

문자는 망각을 막아내고 기억을 돕는 최고의 수단이죠. 기록된 것은 일단 남게 됩니다. 초기의 기억보존은 노래와 춤 그리고 절기 행사등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종교절은 이러한 기억장치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의미를 상실하기 시작하자 좀더 체계적인 장치가 필요하게 된 것이죠. 문자를 바로 이러한 요구의 확실한 답이었습니다.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에서는 기록이 '증언'이라고 표현하고 있더군요. 말은 언제나 변형이 가능하지만 기록된 문자는 그렇지 않는 것이죠. 그래서 지금도 법정에서는 문서가 얼마나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모릅니다. 왜곡과 변형을 막는 최고의 수단이 문자이기 때문입니다. 

 

 

 

 

중세까지만 해도 기록한다는 것은 돈을 번다는 것이었습니다. 11세기 수도원에서 일했던 필경사들은 하루 10시간 이상을 필경하는데 바치고 22년이나 공들였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60권 남짓의 책밖에 필경하지 못했습니다. 기록에 남긴다는 것이 이만큼 힘이들고 돈이 드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러나 종이가 발견되고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기록은 넘치기 시작했고, 가치가 적은 것들은 시중에 떠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클릭한방이면 수천페이지의 글도 아무곳에 도배할 수 있게 된 것이죠.  

 

 

 

 

 

 

 

 

기억은 이제 '가치'가 아닌  스트레스가 되었습니다. 날마다 들어오는 스팸이메일과 문자들, 수많은 팜플렛과 정보지들은 좋은 소식이 아니라 버리고 선별해야하는 고통은 안겨주고 있습니다. 정보의 홍수는 정보의 쓰레기장을 만들고 있는 것이죠. 기억할만한 가치가 전혀없는 것들이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기억술사]라는 책에는 기억의 천재인 한 청년의 이야기를 다루죠. 그러나 그안에서 기억이란 자신의 정체성을 넘어 고통을 주기도 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찾고 싶어서 떠났던 여행이지만 결국 실망하고 돌아온 [귀향]은 기억이 결코 진실만을 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자신이 기억하고 상상했던 아버지가 전혀 다른 존재로 현실 속에서 나타날 때 충격이란....

 

 

기억은 날조된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압니다. 그럼에도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산다는 것도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날아오는 문자들은 모두가 나를 이용하고자 것들이죠. 상업적이고 정치적인 수단으로 개인을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빠져나가 아무도 날 찾지 않는 곳으로 떠나고 싶은 욕구가 오늘도 불일듯 합니다. 

 

이젠 나를 잊어 주세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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