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흉상의 딜레마 

오늘(5월 21일) 노무현 재단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흉상을 만들어  봉하마을에서 개막실을 했다. 제작은 전 노대통령의 묘역의 박석을 담당했던 임옥상화백이 맡았다. 흉상의 제목은 '대지의 아들 노무현'이다. 서민들과 함께하고 땅에서 살다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신을 보려주려는 의도이다. 일반 동상이 사람보다 크게 만들어 올려다 보도록 만든 반면에 노 대통령의 흉상은 사람의 키높이 맞춘 '키높이 흉상'이다. 모든 사람의 높이?에 맞추려 했던 노 전대토령의 마음을 담은 것이다.
기사와 사진출처 

 

 

 

 

 



 
 
그러나 이 흉상의 딜레마는 존재한다. 
첫번째, 흉상은 노무현 대통령의 마음이 아니다. 이것은 마치 법정 스님이 자신의 책을 모두 불태워 버리라고 했지만 후손?들이 유언을 받들지 않고 더 많은 책을 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왜 그들은 기념해야 할까? 이것이 진보사상이 가진 딜레마이다. 기념은 역사의 전통을 이으려는 보수주의자들이 쓰는 방법이다. 세종로의 드높이 올라간 이순신장군상을 보라. 진보사상가들은 전통이 아니라 혁명을 따라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를 말하지 않는다. 오직 현재와 미래만을 말해야 한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그들의 사상을 이끌 구심점이 되어줄 존재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불가피하게 자신들의 세력을 모아줄 정신적인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노무현 전 태통령의 형상의 가지는 딜레마이다.  진보사상가들의 딜레마는 이것 뿐만이 아니다. 진보사상은 모든 것을 무위로 돌리려는 혁명적 사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반정치적이고, 친공동체적이다. 그럼에도 노무현은 대통령을 했고, 많은 비리들을 저질렀다. 대통령을 한다는 것은 보수적이란 뜻이고 혁명을 거부한다는 뜻이기도 한다. 그러니 노무현 전 대통령의 흉상제작은 딜레마 중의 딜레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계가 무소유를 외치면서 엄청난 돈을 끌어모아 하나의 부패한 세력을 형성시키고, 기독교가 사랑을 외치면서 첨예한 대립과 권력다툼을 하는 것은 소유하지 말아야할 것을 포기하지 못한 체 소유하려하고 갖지 말아야 할 것을 갖으려 하기 때문이다. 날마다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자신를 부정하지도 않고, 십자가를 지지도 않으면서 커다란 십자가를 만들어 자신이 예수의 제자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산마다 수십미터 높이의 황금불상들을 보라. 저것이 무슨 불교란 말인가 신도를 끌어모으고 수많은 돈을 모으려는 부패하고 타락한 종교의 모습이다. 기독교는 어떤가. 많은 프로그램, 멋진 건물, 탁월한 설교자, 높은 학벌을 자랑하는 교회는 무엇일까? 그러한 것은 교회의 형태이지 교회의 본질은 아니다. 예수와 형태적 교회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교회의 본질은 말씀이지 외형이 아니다.

자신을 죽이지 못하는 모든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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