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백치

2018. 10. 3. - 7.

2018-2019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

출연
뮈시킨 이필모, 나스타샤 황선화, 로고진 김수현, 아글라야 손성윤 외 다수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극으로 만들어진 백치를 처음 본 것은 2010년 날이 쌀쌀하던 가을. 지금은 대학로 예술극장으로 아름을 바꾼 원더스페이스의 동그라미극장이었다. 매우 작은 소극장에서 20명 가량의 배우가 등장했던 <백치, 백지>라는 이름으로.
모두 검은 옷을 입고 나왔고,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웠던 분위기. 나스타샤의 절망과 뮈시킨의 슬픔. 그리고 악에 바쳤던 로고진의 모습이 뇌리에 남았다.
그 다음 해,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가수 리아가 나오는 비슷하지만 좀 더 가벼워진 <백치, 백지>의 공연 이후 몇 년만에 국립극장의 <백치>가 무대화되었다.

공연 <백치, 백지>를 볼 때마다 도스도예프스키의 책 <백치>를 읽을 때마다 더 이상 밝음이 없는 어두움의 무게 때문에 절망에 휩싸였었다. 난 참을 수 없고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던 무거움이 좋았다.

2018년, 국립극단의 <백치>는 훨씬 더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흩날리는 돈과 공기 때문에 공연을 보기에는 더 편안해졌지만, 극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지루했고 가벼웠다. 전체적인 배우의 앙상블이 어우러지지 못 한다는 느낌도 받았다.

공연을 보고 여전히 기억에 남았던 것은 뮈시킨이 나스타샤에게 했던 대사이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잖아요. 왜 그렇게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거죠?"

백치의 나스타샤는 여전히 그리고 언제나 상처를 입은 채 살아갔고 자신의 상처를 치료받기를 원하면서 치료받고 싶어하지 않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스타샤는 외로웠고 자신의 상처를 알아봐준 뮈시킨을 (아마도) 사랑했지만, 뮈시킨이 자신에게 주는 감정이 '사랑'이 아니라 '동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셰익스피어는 십이야에서 "동정도 사랑의 시작이다."라고 하지만, 서투르고 어설픈 동정은 상처만을 남기다는 것을 나스타샤는 알았을 것이다.
뮈시킨은 참 착하고 좋은 사람이지만, 그가 결국에 백치라고 불리는 것은 서투르고 어설픈 동정으로 자신의 삶과 다른 사람의 삶 모두를 파멸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공연을 보면서 불편했던 점은 <백치>에 주요하게 등장한 여성 캐릭터 두 명(나스타샤, 아글라야)가 창녀/성녀의 모습으로 등장한 것, 뮈시킨이 '여성'을 구원하려는 모습, 나스타샤와 아글라야의 대화의 주제는 '뮈시킨'으로만 설정된다는 것, '백치'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벡델 테스트(1. 영화에 이름을 가진 여성이 두 명 이상 등장한다. 2. 여성들이 서로 대화를 나눈다. 3. 여성들의 이야기가 남자와 관련 없는 것이다.)를 아무데서나 써먹고 싶지 않고, 아무래도 원작에서의 내용을 크게 바꿀 수 없다는 점에서 연출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원작을 쓴 표토르 도스도예프스키가 1821년에 태어나 1881년에 죽은 것을 생각하고 극을 보고 책을 읽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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