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의 옹알이

작은 미미

 

 

우리의 노래를 하자, 고 막상 생각하자 아차차, 미미는 입을 연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장기하와 얼굴들 시절에 코러스를 하기는 했지만 본격적으로 노래를 하거나 단 한마디의 멘트도 날린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그 당시 우리에게는 우리의 목소리가 없었던 거다.

미미의 의사는 그동안 전적으로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 극대화되었다. 어떠한 화려한 언변보다 단 한 번의 고갯짓이 더 강력했고, 어떠한 구구절절한 논리보다 단 한 번의 손짓이 더 설득력 있었다. 그래서 막상 우리의 노래를 하려고 했을 때, 무서웠다. 그래, 인정하기 부끄럽지만 무서웠던 게 맞다. 우리의 목소리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이, 우리의 생각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노래라는 게 제 목소리 없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남몰래 보컬레슨만 받은 지 꼬박 2년차. 우리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입을 열자. 비록 엄청난 가창력도, 엄청난 작사 작곡 실력도 없지만, 우리의 목소리로 우리의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세상에 너무 많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미미의 이미지가 없었다면 앨범 녹음의 기회는 평생 오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반칙 플레이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부채의식을 가지고 우리는 최대한 들을 만한음반을 만들기 위해 바짝 긴장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미미 1. 직접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제목부터 끝내준다.

미안하지만이건 전설이 될 거야(프로듀서님의 강력한 의지로 통과된 제목임) 역시 직접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진정 전설로 점철되어 있는 앨범이다. 오랜 술친구이자 한국 올드팝의 척척박사 양평이형이 흔쾌히 프로듀서를 맡아준 일, 신중현 선생님을 만나 우주여행리메이크를 허락받았던 일. 바니걸즈 선배님들이 1971년에 녹음하신 우주여행원곡은 이렇게 시작한다. ‘너와나아나아나아나아 우주선 타고오고오고오고오우리는 나아나아나아와 고오고오고오고오부분의 수동 립딜레이를 꼭 재현하고 싶었는데 막상 신중현 선생님께서는 이제 기술이 발전했으니까 그 딜레이 부분은 기계로 하면 되겠네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곡을 신중현 선생님의 둘째 아들인 신윤철 오빠가 이끌고 있었던 '서울전자음악단' 분들과 양평이형이 무려 16분이 넘는 대작으로 만들어버린 일(진정 당신을 우주로 보내버릴 곡), 김창완 선생님에게 다이너마이트 소녀리메이크를 허락받은 것은 물론, 선생님께서 직접 피처링까지 해주신 일, ‘로다운30’의 윤병주 선배님이 타이틀 곡인 대답해주오의 곡을 써주신 일, 미미의 하드 트레이너이자 젊은 시절의 워너비 밴드였던 크라잉넛선배님들이 미미라는 곡을 만들어주신 일, 영화음악 송준석 감독님께서 단순한 포크송이었던 미미의 자작곡 내껀데를 강렬한 뽕 메들리로 변신시켜주신 일, 이 모든 것들이 미미에겐 전설이었다.

앨범이 나올 때 즈음해서 미미는 단독공연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당시 소속사였던 붕가붕가레코드의 브레인들과 스타일리스트 실비아를 괴롭히며 한창 준비를 하던 중, 갑자기 양평이형이 질문을 던진다.

근데 너네 멘트는 어떻게 할 거야?”

…네? 멘트요?”

우리는 노래를 한 것만으로 거의 나체를 보여주는 수준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프로듀서는 달랐다. 멘트를 안 하면 안 되냐는 우리의 반문에 코웃음을 친다. 어떻게 멘트를 하느냐가 문제지, 멘트를 안 하는 건 공연을 보러온 관객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맞는 말이었다. 우리는 더이상 장기하 옆에서 코러스 하고 춤을 추던 미미가 아니었다. 100퍼센트 우리가 채워야 하는 무대였다.

우리가 한국말을 모르는 외국 밴드도 아니고 더구나 1시간 30분 동안 멘트 없이 공연을 진행하는 건 무리였다. 근데 갑자기 우리가 생목소리로 , 안녕하세요~ 저희는 미미시스터즈인데요~”라고 말하면 관객들도 우리도 당황스럽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드는 거다.

오랜 고민 끝에 결국 단독공연 멘트는 아이디어의 귀재인 양평이형의 의견을 따르게 되었다. 우리가 까딱하며 눈빛을 보내면 양평이형이 한국말로 통역을 해주었다. 물론 한국말을 아주 잘하지만 일본 사람인 양평이형이 한국인 미미의 눈빛 통역을 해주다니. 지금 생각하면 나름 괜찮은 퍼포먼스인듯 하지만 그때의 미미로서는 절박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6년이 지났다. 미미는 공연중 멘트는 기본이요, 라디오에 나가질 않나 심지어 요즘에는 둘이서 매주 두 시간씩 생방송 라디오를 진행하기까지 한다. 서로 말하겠다고 나서다가 타이밍 못 맞춰서 버벅거리던 것도 이제는 옛날 일이다. 공연 때는 관객들과 아주 농담 따먹기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장족의 발전이다.

가끔 입을 앙다물고 그 어떤 돌발 상황에도 반응하지 않았던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난다. 나는 장기하의 멘트가 너무 웃겨서 매번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가끔 참을 수 없어 피식 웃음이 튀어나와버릴 때도 있었다. 사람들이 , 미미가 웃었어하며 신기해하면 그날은 큰미미에게 혼나는 날이다. “웃지 마! 미미의 체통을 지켜야지!” 그랬던 큰미미가… 그랬던 큰미미가… 폭소에 개그에 드립에 신세한탄에 울먹거림에!!! 그렇게 미미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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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비 2017-07-02 0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걸음 떼는게 어렵듯이 옹알이의 시작도 쉽지 않으셨을텐데 도전해주셔서 감사해요!!! 처음 옹알이를하던 때의 모습은 잘 모르지만 지금 매주 두시간동안 라디오방송으로 유창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은 너무 보기 좋아요. 달걀후라이같은 소소한 이야기에서 음악과 익명성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하시는 내용들이 기대되네요 :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