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내가 연습장을 썼는지 모르겠다. 연습장은 줄이 없는 종이를 묶은 거다. 예전에는 그게 그렇게 비싸지 않았다. 이런 말 하니 옛날 사람 같구나. 생각해보니 공책도 천원이 되지 않았다. 지금은 거의 천원부터 있지 않던가(작고 얇은 건 천원 밑이구나). 난 얇은 공책은 사지 않고 조금 두꺼운 걸로 산다. 이것도 예전에는 두꺼웠는데 지금은 얇다. 두꺼운 게 아주 없지 않지만 그건 비싸다. 무엇이든 값이 내리지 않고 오르기만 하는구나.
여전히 난 종이 볼펜(펜) 그리고 연필을 쓴다. 연필은 얼마전부터 다시 쓴다. 있는 거 그냥 두면 뭐 하나 해서. 어렸을 때부터 난 편지 쓸 때 먼저 다른 종이에 쓴 다음에 편지지에 옮겨 썼다. 편지지에 바로 쓰면 글자 잘못 쓸 수도 있어서 그랬는데, 그건 지금도 그런다. 편지지에 바로 쓰는 사람도 있던데 대단하다. 할 말이 있으면 그럴 수 있을까. 꼭 그런 건 아니겠지.
편지에 쓸 걸 연습장에 쓴 적은 없다. 연습장에는 영어 낱말을 쓰고 수학 문제를 풀고 공부하는 걸 썼다.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지는 않았지만. 편지지에 쓰기 전에 편지를 먼저 쓴 건 달력 뒷면이다. 달력을 뜯어서 거기에 바로 쓰지 않고, 커다란 달력을 쓰기에 좋게 잘라서 풀로 붙였다. 어떤 때는 광고 전단지 뒷면에 썼다. 그건 반들반들한 게 아니고 보통 종이였다.
이제는 다른 공부는 별로 안 하지만, 아직도 달력으로 연습장 만든다. 그렇게 잘 써두고 다시 보는 일 거의 없지만 책 읽으면서 적는 거 하나, 책 읽은 다음에 쓰는 거 하나, 이런 글 쓰는 거 하나 세 묶음을 쓴다. 편지는 풀로 붙이지 않고 낱장에 쓴다. 그 해 보는 달력으로 한달이 지나면 그걸 뜯어서 잘라둔다.
난 어쩌다가 달력 뒷면을 쓰게 됐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편지를 어디에 먼저 쓸까 하다가 본 게 달력이었을지도. 십이월에는 달력을 받으러 가는데, 지난 십이월에는 내가 좋아하는 달력은 받지 못했다. 그렇게 늦게 간 것도 아닌데 다 나갔다고 했다. 거기에서는 못 받았지만 다른 데서는 받았다. 꿩 대신 닭이라고 할까. 연습장으로 쓸 달력이 있다는 게 어딘가 싶다.
그림 그리기 좋아하는 사람은 흰 종이를 보면 그림 그리고 싶겠지. 난 흰 종이를 보면 거기에 뭔가 쓰고 싶다. 예전부터 새해가 오면 글을 써야지 하고 연습장을 만들었지만 거기에는 거의 못 썼다. 쓰지 않아서 다른 걸 썼는데 이제는 글을 쓰는 연습장을 다 쓰고, 다시 만들어야 한다. 앞으로도 연습장을 글로 채울 수 있다면 좋겠다. 그걸 공책에 옮겨 써야 하지만 글을 쓰면 그것도 즐겁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