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창비시선 406
정호승 지음 / 창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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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시를 보기 시작했을 때 정호승 시인 이름을 알았을 것 같은데 시집은 한권도 만나지 못한 것 같아요. 지금까지 제가 만난 책을 다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이름을 알고 시인이라는 걸 아는 걸 보면 시집 한권쯤 만났을 것 같은데. 어른을 위한 동화나 산문을 만난 기억은 있는데, 시집을 만난 기억은 없다니 이상합니다. 예전에 제가 만난 시집에 그림이 있어서 그것을 시집이라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시를 모아둔 시집은 만나지 못했을지 몰라도 시는 여러 편 만났어요. 다른 책에 실린 건지 정호승이 쓴 책에 실린 건지. <슬픔이 기쁨에게> <수선화에게>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새벽편지> <우리가 어느 별에서>……. 더 봤을 텐데 생각나지 않습니다. 정호승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서 저도 아는 걸 거예요. 안다고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눈부처라는 말이 담긴 시도 있군요. 시 제목이 ‘눈부처’였던가요. 정호승은 사랑을 많이 노래한 것 같기도 합니다. 사람한테 중요한 것일지 몰라도 저는 어색합니다. 아니 예전에는 좀 달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살다보니 지금처럼 된 거겠지요.

 

 오랫동안 어떤 것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하기보다 하다보니 시간이 흐를 때가 많겠지요. 아니 꼭 그렇지 않기도 하겠습니다. 멋지게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는 사람은 많아도 늘 시인이거나 소설가인 사람은 적을 거예요. 시인은 늘 시를 쓰는 사람이고 소설가는 늘 소설을 쓰는 사람이죠. 정호승은 시인이 되고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마흔해가 넘었어요. 시에서 멀어지거나 시를 쓰지 않아서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정호승은 다시 시를 썼습니다. 시를 쓰지 않고 살 수 없어서 그랬겠지요. 시인은 시를 쓰고 자기 마음뿐 아니라 다른 사람 마음도 위로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인이 경험한 일을 시로 써도 그것은 시인만 겪는 일이 아니지요. 시뿐 아니라 소설도 그렇군요. 정호승 하면 ‘수선화’가 생각나기도 하는데 여기에도 수선화가 여러 번 나와요. 정호승은 수선화를 많이 좋아하는가 봅니다. 봄이 오면 어떤 꽃보다 수선화를 보고 이번에는 어떤 시를 쓸까 생각할지도.

 

 

 

부디 너만이라도 비굴해지지 말기를

강한 바닷바람과 햇볕에 온몸을 맡긴 채

꾸덕꾸덕 말라가는 청춘을 견디기 힘들지라도

오직 너만은 굽실굽실 비굴의 자세를 지니지 않기를

무엇보다도 별을 바라보면서

비굴한 눈빛으로 바라보지 말기를

돈과 권력 앞에 비굴해지는 인생은 굴비가 아니다

내 너를 굳이 천일염에 정성껏 절인 까닭을 알겠느냐

 

-<굴비에게>, 29쪽

 

 

 

 제목은 ‘굴비에게’인데 비굴해지지 마라 말하다니.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재미있네요. 정호승은 굴비한테만 돈이나 힘에 굽실거리지 마라 하는 건 아닐 겁니다. 모두한테 하는 말이겠지요. 정호승 시에는 ‘~에게’라는 제목이 많습니다. 여기에도 그런 시가 여러 편 실렸어요. ‘벌레 자작나무 거울 내 작은 어깨 구경꾼 여행자 벗’에게. 시인은 나이 드신 부모님 생각을 자주 하는 것 같습니다(시인만 나이 드신 부모님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군요). 정호승도 부모님을 그리는 시를 썼어요. 그런 시가 이 시집에만 실린 건 아니겠지요.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내려놓기’ 같은, 용서와 사랑도. 종교스런 시도 담겼습니다.

 

 

 

나는 절망이 없는 희망을 거절한다

희망은 절망이 있기 때문에 희망이다

희망만 있는 희망은 희망이 없다

희망은 희망의 손을 먼저 잡는 것보다

절망의 손을 먼저 잡는 것이 중요하다

 

희망에는 절망이 있다

나는 희망의 절망을 먼저 원한다

희망의 절망이 절망이 될 때보다

희망의 절망이 희망이 될 때

당신을 사랑한다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에서, 45쪽)

 

 

 

 몇달 전에 시집 제목을 보고 왜 희망을 거절할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집 제목과 같은 시를 보고 중간에 빠진 말을 알았습니다. 정호승은 절망속에서도 희망을 찾으라는 거겠지요. 어둠이 있는 건 빛이 있기 때문이잖아요. 궂은 날을 모르면 맑은 날이 눈부시다는 거 모를 거예요. 절망을 알아야 희망도 알겠습니다. 살아갈 일이 막막하고 앞이 캄캄해질 때도 있겠지요. 그런 일은 삶에 몇번이고 찾아옵니다. 그때를 잘 견디고 버티면 희미할지라도 작은 빛이 보일 거예요. 제가 이런 말을 하다니. 자주 우울함에 빠져도 다시 괜찮아집니다. 늘 가라앉기만 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시를 만나도 기분이 괜찮아집니다. 시를 자주 만나고 싶기도 한데, 가끔이라도 만나려고 애써야겠어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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