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는 연필이다 : 영원을 꿈꾸는 연필의 재발견
박지현
퓨처미디어 2017년 03월 13일
글자를 공부할 때 연필을 써 보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거다. 처음부터 연필이 아닌 다른 걸로 글씨 쓰는 사람이 아주 없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연필이 세상에 나오고는 거의 쓰지 않았을까. 나도 초등학교에 다니기 전과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연필을 썼다. 볼펜이 아닌 연필로 글씨를 쓰게 하는 건 글씨를 잘 쓰게 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선생님은 연필을 잘못 쥔 아이를 혼냈던 것 같다. 젓가락도 그렇고 연필도 잘 쥐어야 한다니. 글씨 쓸 때는 바르게 쥐어야 해도 그림은 좀 다르겠지. 난 연필 하면 떠오르는 일은 없다. 이 책을 읽다보니 하나 생각났다. 난 각진(육각형) 연필보다 동그란 연필을 썼다. 내가 산 건지 누가 사준 건지 잘 모르겠는데, 각진 연필이 쓰고 싶었던 기억이 있는 걸로 봐서 동그란 연필은 내가 산 게 아닌 것 같다. 연필을 깎으면 나무냄새가 난다고 하는데 그것도 별로 못 맡은 것 같다. 내가 쓴 연필은 삼나무로 만든 게 아니었나 보다. 나무냄새가 나는 것도 써 봤는데 내가 잊어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난 초등학교에 다닐 때 사프펜슬을 쓴 것 같다. 연필도 쓰고 그것도 썼겠지. 중학교에 들어가고는 연필을 거의 쓰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 나한테 연필이 있다. 얼마전까지는 연필보다 샤프펜슬로 거의 썼는데 가끔 연필로도 쓴다. 그 연필도 나무냄새는 나지 않는다. 내가 샤프펜슬이나 연필로 쓰는 건 편지다. 펜으로 편지지에 쓰기 전에 쓰는 걸 말한다. 그렇게 해도 편지지에 쓸 때 틀리게 쓰거나 한줄 빼놓고 쓸 때가 있다. 그때는 앞뒤 말이 어떻게 하면 이어질까 잠시 생각한다.
컴퓨터, 휴대전화기 때문에 손으로 글씨 쓰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고 해도 아직 펜뿐 아니라 연필이 나온다. 이 책은 다큐멘터리로 만든 것을 글로도 쓴 거다. 박지현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으로 2001년에 우연히 헨리 페트리카가 쓴 《연필》을 보고 연필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겠다 생각했다. 그때 생각하고 바로 만들지 못하고 열세해 만에 꿈을 이뤘다. 연필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자신이 꿈을 이룬 이야기기도 하다. 《연필》을 쓴 헨리 페트리카도 대단한 듯하다. 그때는 연필이 어떤지 쓴 사람이 없었을 테니 말이다. 연필은 정말 많은 사람과 함께 할까. 어릴 때만 쓰고 자라고는 거의 쓰지 않을 것 같기도 한데. 그림 그리거나 건축하는 사람은 여전히 연필을 쓰겠지만. 난 그림을 그리지 않는데도 연필이 있구나. 사실 내가 가진 연필은 누가 주거나 길에서 주운 거다. 주운 게 많은 건 아니고 두세개쯤 된다. 다 쓰지도 않은 연필이 길에 떨어져있어서 주웠다. 잘 쓰지도 않으면서 그걸 줍다니 그런 나도 좀 웃긴다. 지금 쓰는 샤프펜슬도 예전에 책방에서 책 사고 받은 거다. 학교 다닐 때 쓰던 건 오래돼서. 그것도 버리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몽당연필도 있다. 어렸을 때 몽당연필은 볼펜 깍지에 끼어서 썼다. 쓰지 않아도 버리지 못하다니. 그건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몇해 전에는 《연필 깎기의 정석》이라는 책이 나왔다. 그 책은 말만 듣고 아직 만나지 못했다. 박지현이 만난 사람에는 그 책을 쓴 데이비드 리스도 있다. 연필은 누구나 깎을 수 있는데, 연필 깎기 전문가라니 재미있기도 하다. 그걸 심각하게 여기기보다 재미있게 생각하는 게 낫겠지. 데이비드 리스는 전문가처럼 보이려고 한다. 연필을 깎기 전에는 체조를 하고 깎은 나무도 비닐봉투에 넣어서 다시 보낸다. 그런 것도 재미있게 보였다. 난 어렸을 때 내가 연필을 깎았다. 아니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나 1학년 때는 엄마가 깍아줬던 것 같다. 언제부터 내가 연필을 깎았을까. 그런 것이 생각나면 좋을 텐데. 연필심으로 조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 달튼 게티는 목수로 연필심 조각은 그냥 하는 거다. 조각한 것을 팔지 않고 전시하고 싶다 하면 빌려주고 기증한다고 한다. 연필심으로 조각을 한다니. 언젠가 텔레비전 방송에서 돌려서 여는 알루미늄 병뚜껑으로 작품을 만드는 사람을 보았다. 지금도 그거 할까. 작은 것이나 버리는 것도 잘 보면 다른 것으로 만들 수 있겠지. 작다고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다. 작은 것에서 큰 것을 찾아내면 더 멋지다.
요새 연필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보이기도 하던데, 이 책이 알맞은 때 나온 게 아닌가 싶다. 황성진은 <맑은 연필>이라는 잡지를 만드는데 글을 연필로 쓰고 책도 손수 묶었다. 그건 많이 만들지 못하겠다. 그것을 보고 그런 식으로 편지나 글을 써서 친구한테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내가 연필로 편지 쓰지 않는 건 번지기도 해서다. 번지지 않는 연필심도 있을 텐데. 잉크로 쓴 글보다 연필로 쓴 글이 더 오래간다는 말도 있다. 흑연은 16세기에 양치기가 발견했다. 영국 브로우델 광산은 연필 고향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아버지는 연필 공장을 했고 소로도 그 일을 도왔다. 소로가 만든 연필 질이 좋았다고 한다. 그때는 흑연이 사각형이었다. 연필은 참 단순하지만 그것으로 만들어진 건 아주 많을 거다. 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니. 연필 껍질로 그림을 나타낸 사람도 있다. 스페인에서 영국 런던으로 간 일러스트레이터 마르타 알테스다. 그건 손으로 연필을 깎은 게 아니고 연필깎이로 깎은 거다. 그것 또한 새로운 것을 찾아낸 것과 같다.
그림 잘 못 그리지만 이 책을 보니 연필로 그림 그려보고 싶기도 했다. 연습하면 그림 조금이라도 잘 그릴까. 예전에는 만화영화 그림(동화 : 움직이는 그림)을 연필로 그렸는데 지금은 거의 컴퓨터로 한다. 연필로 그리는 곳이 한국에 있다니. 연필은 빨리보다 천천히 하게 만든다. 연필로 생각할 수 있는 게 많을 것 같다. 박지현이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이 책을 쓴 것도 그래서겠다. 흔하고 작은 사물을 깊이 바라보고 자신을 바라보면 무언가 깨달을지도. 내가 그것을 다 안 건 아니지만 앞으로는 생각해야겠다. 흔하고 작은 것에도 나름대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