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 - 2015 제15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외 지음 / 문예중앙 / 2015년 11월
평점 :
품절


 

 

 눈 한 송이가 녹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 아주 짧을 수도 있고 반대로 아주 길 수도 있을 것 같아. 순간과 영원은 같다고 한 것 같기도 한데, 어디에서 그런 말을 들었는지 나도 생각나지 않아. 아니 어디서 들은 건 아니고, 그냥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어. 순간은 아주 짧지만 그때는 자기 마음속에 오래 남아 있기도 하지. 좋은 순간뿐 아니라 나쁜 순간도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잖아. 어떤 때를 되풀이해서 생각하는 일이 여기에 나오던가. 맞아, 비슷한 말 이 소설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에 나와. 희곡을 어떻게 써야 할지 k가 자꾸 생각하고, 열일곱해 전에 알게 된 k가 다니는 직장 선배 경주 언니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자꾸 생각한다고 해. 어떤 이야긴지 정리해야 할 텐데. k가 예전에 다닌 회사는 여자는 결혼하면 일을 그만둬야 했어. k가 그 회사에 들어가기 전에 한 사람이 그러지 않으려고 시위를 하지만 잘 안 돼. k가 쓰는 희곡과 예전 일은 상관없지 않겠지만 그걸 어떻게 이어서 말하면 좋을지. 생각나는 건 k가 자신은 ‘아픔 밖에 있다’고 한 말이야. 이건 다 그럴지도 모르겠어.

 

 지금까지 회사가 하는 남녀차별 때문에 싸운 사람 많겠지. 남녀차별은 회사에서만 하는 건 아니지만 남녀차별을 크게 말하지 않고 잠깐 생각하게 해. 소설 속에서 남녀차별이 일어난 때는 오래 전이야.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 그래도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군. 자신이 힘들지라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건 쉬운 일이 아니야. 그래도 나중에 아쉬워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게 더 낫다고 봐. 이런 이야기가 아닌가. 죽은 사람을 잠시라도 생각하자일까. 처음에는 그쪽으로 생각했는데 쓰다보니 생각이 좀 바뀌었어. 아쉬워하는 건 황정은이 쓴 <웃는 남자>일지도 모르겠어. 버스 사고가 났을 때 도도는 디디가 아닌 자기 가방을 잡은 자신을 탓해. 디디는 죽었어. 도도가 그렇게 생각할 만하지. 디디 아버지는 함께 일하던 사람이 사고가 나고 병원에 실려갈 때, 그 사람이 무슨 말인가 하려고 하자 아무말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해. 이 말은 세월호 때문에 한 말일까. 도도가 생각하는 게 하나 더 있군. 도도는 기다리던 버스가 와서 그걸 타는데, 그때 어떤 사람이 쓰러져. 도도는 버스가 왔으니 버스를 탄다고 생각해. 버스는 또 올 텐데 하는 생각이 들지만 도도처럼 하는 사람이 더 많을 거야. 그런 일을 마주하면 그냥 지나치지 않아야 할 텐데, 그런 일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는 나도 있군.

 

 이 책을 보고 소설가는 왜 소설을 쓸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어. 쓰고 싶어서, 무언가를 잊지 않으려고. 이것밖에 생각나지 않아. 어떤 일이 일어나면 그것을 소설로 쓰려고 할까, 누군가의 삶을 말하고 싶기도 하겠지.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 김경숙 소설 <맹지>에서 ‘나’는 소심한 사람인데 화를 내기도 하더군. 실제 그런 사람 있을 거야. <이모>(권여선)와 <임시교사>(손보미)에 나오는 이모와 P부인은 어쩐지 비슷해. 비슷한 건 결혼하지 않고 식구를 위해 돈을 버는 거야. 이모는 시간이 흐른 뒤에 식구와 연락을 끊고 잠시 혼자 살지만 암으로 죽어. P부인은 임시교사로 지내다 그것을 할 수 없게 되고는 보모를 해. 그때 P부인은 잠깐 기대를 했던가봐. 아이 엄마가 아이를 맡기면서 P부인한테 ‘내 집처럼 생각하세요’ 하는 말을 했거든. 정말 P부인이 그렇게 하니까 아이 엄마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 처음부터 마음에도 없는 말은 하지 않는 게 낫겠지. 그런 말을 들었을 때는 그냥 하는 말이다 생각하는 게 좋겠어. 이모와 P부인은 좀 다르기도 하네. 이모는 식구를 떠나 살고 싶었지만, P부인은 식구 안에 들어가고 싶어했어.

 

 황순원문학상이 있다는 건 이 책이 나왔을 때 안 것 같아. 어느새 열다섯번째인데, 그동안 모르고 살았다니. 한강 소설이 상을 받아서 더 알려진 건 아닐까 싶기도 해. 작가 이름으로 주는 상에 어떤 특성은 있을까. 어떤 기간(거의 한해) 동안 나온 단편소설에서 고르는 거겠지. 김솔이 쓴 <피카딜리 서커스 근처>에는 한국 사람이 나오지 않아. 전에 만난 것도 그랬는데, 김솔은 늘 이렇게 쓰는 걸까. 겨우 두편 보고 어떻다 생각하면 안 되겠지. 한국 사람이 쓰는 소설이라고 해서 한국 사람만 나오라는 법은 없군.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이기호)에 나오는 ‘우리는 왜 애꿎은 사람한테 화를 내는가’ 하는 말을 보니,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한다’는 속담이 생각났어. 권순찬은 어머니가 진 사채빚 칠백만원을 갚았는데, 어머니가 칠백만원을 갚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걸 알게 돼. 권순찬이 어머니한테 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면 좋았을 텐데. 권순찬은 어머니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겠지. 돈을 받으러 간 곳에는 사채업자는 없고 가난한 사채업자 어머니만 있었어. 권순찬은 사채없자가 오기를 기다렸어. 그걸 안타깝게 여긴 아파트 사람은 사채업자 어머니를 돕는다면서 돈을 모아서 권순찬한테 주지만 권순찬은 받지 않아. 그건 나도 그럴 것 같아. 권순찬이 돈을 받지 않고 여전히 아파트 앞에 있자 누군가 경찰에 신고를 해. 얼마 뒤 권순찬은 남자들한테 끌려가고 더는 오지 않아. 제목에 나오는 착한 사람들은 정말 착한 걸까. 그저 착하게 보이려는 것뿐인 것 같아. 자신이 그런 일을 겪으면 다를 텐데.

 

 김애란 소설 <입동>에서 부부는 자기 집을 마련하고 아이를 사고로 잃어. 어렵게 가진 아이였는데 그렇게 되다니. 둘레 사람은 부부 마음을 모를 거야. 부부가 슬픔에 빠진 모습을 보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 하지 않았을까. 보상금 받은 것도 안 좋게 본 것 같아. 세상에는 아이를 사고로 잃고 사는 사람이 많겠지. 2014년 4월 16일에는 더했지. <어제의 일기>(정소현)는 사고로 머리를 다치고 기억을 잘 못하게 된 상현이 중학교 친구 율희를 만나고 그때 일을 생각하는 거야. 잊고 있던 일을 시간이 흐른 뒤에 생각하는군. 율희는 죄책감 때문에 상현한테 이런저런 물건을 준 건 아닐지. 상현은 중, 고등학생 때 아이들한테 괴롭힘을 당했어. 고등학교 3학년 때는 그것을 참기보다 목숨을 끊으면 더는 그런 일이 없겠다 생각하고 아파트 5층에서 뛰어내려. 상현은 죽지 않고 장애인이 돼. 상현은 나름 잘 살고 있었는데, 율희나 다른 동창은 상현을 불쌍하게 여겨. 아니 상현이 그렇게 된 건 자신들 탓이 아니다 생각하려 한 거군. 자신이 본 일이 아닌 일은 그대로 믿지 않는 게 좋을 듯해. 중학생 때는 그렇게 하기 어려울까.

 

 조해진 소설에 나온 서 군은 서경식 님 형일까 했는데 맞더군. 고모는 서 군이 간첩으로 잡혀간 걸 자신 탓으로 여겼어. 고모는 서 군이 맡긴 원고를 서 군이 다니는 대학에 가서 서 군을 아는 사람한테 맡겼어. 그 뒤 서 군은 간첩으로 잡혀가. 아니 어쩌면 그전이었을지도. 두 사람이 만난 시간이 짧다 해도 한 사람은 상대를 좋아할 수도 있겠지. 둘 다 같은 마음이었다면 좋았을 테지만. 어지러운 때가 아니었다면 고모는 서 군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았을 거야.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어. 고모가 서 군을 좋아해서 그동안 혼자 산 건 아니겠지만. 죄를 갚는 마음으로 그런 건 아닐지. 고모는 알츠하이머병을 앓게 되고도 서 군만은 잊지 않았어. 고모와 서 군이 만나기는 하는데 제대로 만났다고 말하기는 어려워. 그래도 고모 마음은 좀 편안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 이제야 할 말을 했으니까, 아니 말보다 오래전에 건네지 못한 것을 건넸다고 여겨설지도. 대체 무슨 말이야 할지도 모르겠어. 이렇게 쓴 나도 그래. 소설 제목을 ‘사물과 작별하기’라고 했다면 더 나았을 텐데 싶어. 사물이라고 했지만, 이건 어떤 때나 기억일지도 모르겠어.

 

 

 

희선

 

 

 

 

☆―

 

 “모든 게 화무십일홍인 거라. 후회하고 원망하고 애끓이면 뭐해. 좋은 날도 더러운 날도 다 지나가. 어차피 관 뚜껑 닫고 들어가면 다 똑같아. 그게 얼마나 다행이냐.”

 

 (……) 이해할 수 없이 복잡했던 날들을 생각했다. 차마 다 기억할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그것들은 명백히 지나가버렸고, 기세등등한 위력을 잃은 지 오래다. 살아 있어 다행이다. 다행이다 말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어제의 일들>에서, 356~3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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