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하는 여자
김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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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에는 모두 집에서 옷을 지어 입었습니다. 옷 하나 만드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바느질 품을 파는 사람도 있었지요. 그게 일이었던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바느질이 사라졌느냐 하면 그렇지 않아요. 기계 때문에 사라지리라 생각한 것에서 아직도 남은 게 많을 겁니다. 얼마 없어서 그것을 별나게 생각하는 것이겠지요. 손으로 하면 더 멋지게 보일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바느질 그렇게 좋아하지 않지만. 저는 보통인 것 같아요. 아주 못하지도 아주 잘하지도 않는. 지금 생각하니 옛날에 태어났다면 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여자가 할 일이 얼마 없었잖아요. 바느질도 거의 여자만 했습니다. 수놓기도 그렇군요. 다른 나라도 옛날에는 바느질과 수놓기를 했습니다. 한국에서 하는 것과는 조금 달랐겠습니다. 입는 옷이 다르니 그랬겠네요. 지금은 퀼트를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바느질은 단순한 일을 되풀이하는 것으로 수행과도 닮았어요.

 

 같은 일 하나를 되풀이하는 건 좀 지루하고 오랫동안 같은 자세로 있으면 병이 생기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그런 거 생각하지 않고 일을 했겠습니다. 지금도 아주 다른 건 아니지만. 자기도 모르게 한가지 일을 몇시간 동안 하겠지요. 책을 읽을 때는 한시간에 한번은 잠깐 쉬어야 합니다. 저도 그걸 알지만 그러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오랫동안 집중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책 읽으면서 잠깐 다른 생각도 합니다. 책을 오래 읽어서 안 좋아지는 건 눈 하나일까요. 오래 책을 보다 고개를 들면 다른 게 잘 보이지 않더군요. 책읽기는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군요. 이건 일이라 말할 수도 없는 거네요. 바느질하는 걸 보니 책읽기가 생각났어요. 책읽기뿐 아니라 소설(글)쓰기도 떠올랐습니다. 누비 바느질 한땀 한땀이 소설 한자 한자 같았어요. “천년을 해도, 만년을 해도 늘지 않는 게 바느질이지. 바느질에는 뾰족한 수라는 게 없어.  (511쪽)” 하는 말은 글쓰기와 닮았지요. 여기 나오는 사람에서 한사람 금택은 바느질 한땀 뜨는 게 무척 힘들다고 했어요. 글을 쓰다 알맞는 말을 찾으려고 밤을 새우는 사람도 있다지요. 얼마나 거기에 빠지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무엇인가 하나에 빠져서 하는 것도 멋지다고 봅니다. 바느질은 좀 힘들겠지만, 이걸 할 때는 중간중간 쉬고 가볍게 운동도 해야 해요. 이 말은 금택과 화순 어머니 수덕한테 하고 싶습니다.

 

 한가지 일을 집중해서 하는 사람을 보면 귀기까지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 사람은 처음부터 그랬을까요. 금택은 어머니가 처음부터 누비 바느질을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가 바느질을 잘 못한 건 아니지만 처음부터 잘한 건 아니었어요. 어머니한테도 바늘에 찔리고 누비 바느질을 잘 못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머니 수덕은 그 일을 금택이나 화순한테 한마디도 하지 않아요. 금택은 어머니한테서 누비 바느질을 배우고 싶어했는데 배우지 못하고, 화순은 어머니와 금택을 떠나려고 대학을 먼 곳으로 가지만 바느질을 해요. 어머니는 몸이 안 좋아 많은 걸 금택한테 의지하면서도 바늘땀만은 자신이 떴습니다. 어머니는 금택과 화순이 자신처럼 바느질하고 살지 않기를 바란 건지 스스로 배우길 바란 건지. 어머니는 말이 많이 모자랐습니다. 화순은 대학에 다니고 이론을 배워서 혼자 했어요. 금택이라고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몰래 누비저고리를 지었어요. 바느질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어머니 수덕이 한 건 누비 바느질로 주로 누비저고리를 지었습니다. 제가 아는 누빔질은 간격이 넓었는데 인터넷에서 누비저고리를 찾아보니 누빔질 사이가 좁더군요. 그냥 저고리를 짓는 것보다 시간이 더 많이 걸릴 겁니다. 그걸 수덕은 서른해 동안 했네요.

 

 여기에는 수덕 금택 화순 세사람뿐 아니라 한복 짓는 사람과 바느질 품을 파는 사람 수의 짓는 사람 수놓는 사람도 나옵니다. 책 제목처럼 바느질하는 사람이 많이 나오는군요. 시대는 60년대부터예요. 한국에 재봉틀이 들어온 건 언제인지. 그게 들어오고 많은 딸이 봉제공장에서 일했습니다. 70년대에는 공기도 좋지 않은 곳에서 종일 일해서 결핵으로 죽는 사람이 많았지요. 재봉틀 때문에 바느질은 뒤로 밀려났습니다. 그래도 수덕은 바느질로 쌀을 사고 딸 둘을 키웠어요. 시간이 흐르고 어떤 사람은 한복을 짓다 명장이 됐습니다. 장인이나 명장 이름은 좋지만 그렇게 되려면 같은 일을 아주 오래 해야 합니다. 수덕은 어떤 마음으로 바느질을 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봉제공장에 다니다 재봉틀에 손을 다치고 바느질을 배웠습니다. 재봉틀 바늘은 무섭지만 바늘은 무섭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수덕은 누비 바늘을 받고는 그 바늘이 자신을 삼킬 것 같다고 느낍니다. 그것은 수덕이 누비 바늘에 사로잡힌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홀로 두 아이를 키우려고 누비 바느질을 했지만 그것을 좋아한 것이겠지요. 딸인 금택과 화순은 그런 어머니를 보고 자라서 다르면서도 비슷한 길을 갔습니다.

 

 금택과 화순은 성이 다릅니다. 둘은 어머니한테 버림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살아요. 한번 버림 받아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군요. 수덕이 금택과 화순이 그렇게 생각하는 걸 알았는지, 아니 몰랐겠습니다. 알았다면 자기 일만 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말했겠지요. 예전에는 거의 다 그렇게 살았고 지금도 그렇게 다르지 않군요. 수덕이 말을 좀더 했다면 좋았을 텐데 싶습니다. 금택은 자신이 어머니 딸이 아니다 여겼거든요. 금택과 화순은 어머니를 닮았습니다. 바느질하는 것이라 해야 할까. 금택은 어머니처럼 되고 싶어하더군요. 저는 그걸 보면서 사람은 다른 사람이 될 수 없다 생각했습니다. 가끔 어떤 재능을 가진 사람을 보면 그것을 훔치고 싶다고도 하잖아요. 이상하게 저는 그렇게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괜찮은 건 아니고, 제가 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군요. 금택을 보고 자신을 좋아해야 한다는 생각을 잠깐 하고, 다른 사람이 되기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걸 꾸준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바느질은 소설쓰기와 닮았습니다. 김숨이 바느질하는 사람 이야기를 썼지만 소설쓰기도 말한 것 같아요. 김숨은 바늘땀을 뜨듯 소설을 쓰겠습니다. 이것을 보고 지금까지 잘 몰랐던 것을 알기도 했어요. 바느질이라는 깊은 세계. 무엇이든 깊이 파고들면 다른 걸 볼 수 있겠군요. 하나를 평생해도 잘 모르고 별로 늘지 않는 것도 있을 겁니다. 그래도 자신을 자로잡는 게 하나라도 있다면 사는 게 좀 낫겠지요.

 

 

 

*더하는 말

 

 아무리 세상이 빨리 돌아간다 해도 모두가 그 속도대로 살지 않아도 괜찮겠지요. 바느질은 천천히 하는 거군요. 글쓰기도 그렇습니다. 인공지능이 글을 쓸지도 모른다고 말하지만 정말 그렇게 될까요. 앞으로 없어지는 것이 많겠지만 살아남는 것도 있으리라고 봅니다. 글쓰기도 남지 않을까요. 글은 머리로만 쓰는 게 아닙니다. 몸으로도 써요. 제가 이런 말을 하다니. 자신이 겪은 일을 바탕으로 쓰는 게 몸으로 쓰는 거겠지요.

 

 

 

희선

 

 

 

 

☆―

 

 “누비 바느질이나 배워보든가.”
 .
 .
 .

 

 “얼마나 배워야 하는데요?”

 

 “못해도 10년은 배워야 그냥저냥 지을 수 있지. 남보다 잘 지으려면 어디 10년으로 되나. 평생을 해도 끝이 나지 않지.”  (5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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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6 02: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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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7 01: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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