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시 만나고 있다 - 창비시선 400번 기념시선집 창비시선 400
박성우.신용목 엮음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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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과 같은 시집을 처음 만든 사람은 얼마전에 세상을 떠난 민음사 박맹호 회장이라고 한다. 박맹호 회장이 시집을 만든 다음 여러 출판사에서 비슷한 크기 시집을 내놓았다. 어디에서나 100, 200, 300이 되면 기념시선집을 내는지. 다른 때도 냈을지 모르겠는데 문학과지성사에서는 300번째에 기념시선집을 냈다. 문학동네에서는 50번째에 기념 자선시집을 냈다. 문학동네는 50번째에서 내다니 할지도 모르겠는데, 예전에 나온 것과 달라진 뒤 50번째다. 창비시선 400 기념시선집을 보고 이런 말을 하다니. 책을 볼 때 출판사를 아주 안 보는 건 아니지만 그것 때문에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아는 작가는 작가 이름으로 모르는 작가는 책 제목을 먼저 본다. 출판사는 그다음이다. 출판사가 아주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이런 저런 책을 보다보면 출판사를 기억하고 이름 아는 작가 책이 나오면 저 출판사에서 나왔구나 하기도 한다.

 

 창비에서 나온 시집이 나한테 아주 없지 않지만 많지도 않다. 시를 잘 알아서 본 건 아니지만, 예전에 시를 보다가 안 본 시간이 길었다. 그렇다고 시를 아주 만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시집이 아닌 시 한편을 가끔 만났다. 그런 건 인터넷을 떠돌다보면 쉽게 볼 수 있다. 인터넷을 하면서 시를 올려두는 카페에 들어가서 시를 봤는데, 그것도 그렇게 오래 하지 못했다. 이 말은 예전에도 했는데, 책을 보고 꾸준히 쓰면서 시집과 한국소설은 피했다. 무엇이든 쉽게 받아들이고 잘 이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그런 것과 멀다. 시를 싫어하게 된 건 아니고 그것을 보고 쓸 말이 없을 것 같아서였다. 지금도 책을 읽으면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강박증은 오래도 가는구나. 언제쯤이면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내가 읽는 건 여전히 소설이 많다. 과학 철학 역사 그밖에 인문은 거의 만나지 못한다. 좋아하는 거 읽기에도 삶이 짧기는 하지만, 어렵거나 잘 모르는 것에도 조금 관심을 가지는 게 좋겠지. 요새 내 마음이 참 좁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책을 넓게 못 봐서 그런 건가 싶기도 하다. 자기 마음을 넓어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책을 읽고 쓰면서 다시 시를 봐야겠다 생각만 하는 시간을 보내다 다시 시를 만난 지 이제 한해가 조금 넘었다. 소설은 내용에서 벗어난 것을 쓰기 어렵기도 한데, 시집을 보고는 조금 마음대로 쓴다. 늘 좋은생각이 떠오르는 건 아니지만. 별거 아닌 생각이면 어떤가 싶기도 하다. 그것도 잘 쓰면 괜찮은 게 될지도 모른다. 어쩐지 변명 같다. 시는 사람마다 다르게 보아도 괜찮지 않을까. 시만 그런 건 아니구나.

 

 

 

아직 발굽도 여물지 않은 어린것들이

소란스레 함석지붕에서 놀다가

마당까지 내려와 잘박잘박 논다

징도 박을 수 없는 무른 발들이

물거품을 만들었다가

톡톡 터뜨리다 히히히힝 웃다가

아주까리 이파리에 매달려

또록또록 눈알을 굴리며 논다

마당 그득 동그라미 그리며 논다

놀다가

빼꼼히 지붕을 타고 내려가

방바닥에 받쳐둔 양동이 속으로도 들어가 논다

비스듬히 기운 집 안

신발도 신지 않은 무른 발들이

찰방찰방 뛰며 논다

기우뚱 집 한채

파문에 일렁일렁 논다

 

-<빗방울은 구두를 신었을까*> 송진권 창비시선 331 《자라는 돌》 (66쪽)

*힐데가르트 볼게무트(Hildegard Wohlgemuth) 동화 제목

 

 

 

이른 봄에 핀

한송이 꽃은

하나의 물음표다

당신도 이렇게

피어 있느냐고

묻는

 

-<한송이 꽃> 도종환 창비시선 333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70쪽)

 

 

 

내 집은 왜 종점에 있나

 

 

안간힘으로

바퀴를 굴려야 겨우 가닿는 꼭대기

 

그러니 모두

내게서 서둘러 하차하고 만 게 아닌가

 

-<주소> 박소란 창비시선 386 《심장에 가까운 말》 (164쪽)

 

 

 

 여기 실린 시는 창비시선 301번에서 399번까지에서 고른 거다. 시인 한사람에 시 한편이다. 여러 시인 시를 한번에 만날 수 있다. 이것도 괜찮지 않나 싶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장날에 아들한테 마음 쓰는 게 애틋한 고광헌 시 <정읍 장날>도 괜찮았다. 아들만 나왔지만 부모는 자신보다 자식한테 맛있는 것을 더 먹이려 하겠지. 딸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늦게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몰래 우는 아버지도 있다(<부녀> 김주대, 110쪽). 한편 한편 잘 보면 다 좋을지도 모르겠다. 고은 시인과 신경림 시인 시도 담겼다. 오랫동안 시 쓰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두분은 오랫동안 시를 썼다. 시뿐 아니라 글은 한번 쓰면 그만두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쓰는 재미를 알면 그렇겠구나. 나도 재미있게 쓰고 싶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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