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링 - 제2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도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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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몇해 동안 내가 본 만화영화에 어떤 운동이 있었는지 생각해봤다. 테니스 축구 야구 수영 사이클 유도 미식축구 경기 카루타 그리고 권투. 기억을 더듬어 본 건 권투 만화가 있었나 해서다. 아니 사실은 권투도 봤다는 거 생각났다. 내가 본 건 만화책이 아닌 만화영화 그러니까 영상이다. 야구는 만화책도 하나 보지만. 어떤 건 재미있어서 여러 번 보기도 하고, 어떤 건 한번만 봐서 제목을 잊어버리기도 했다. 운동 만화는 거의 소년만화다. 이건 일본에서 말하는 거기는 하다. 난 순정만화보다는 소년만화가 더 좋다. 이상하게 순정만화에 나오는 사랑 이야기라는 거 보기가 힘들다. 그걸 아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삼각 사각 이런 식으로 흐르는 게 싫다. 여자든 남자든 왜 그렇게 마음이 쉽게 흔들리는지. 본래 사람 마음이 그럴지 몰라도. 운동이 나오는 만화는 그게 거의 없다(아다치 미츠루가 그리는 야구 만화는 순정만화에 가까운가). 그게 있어야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난 없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하나도 없는 건 아니다. 그게 중심이 아니고 있는 듯 없는 듯 넣는다. 운동하는 사람도 사람이니 누군가를 좋아하기도 하고 누군가와 사귀다 헤어지기도 하겠지만, 운동하는 것을 더 그리겠지. 운동 만화라면.

 

 앞에서 쓸데없는 말을. 이런 거 말하는 거 좀 창피하다. 나만 그런 것 같아서. 많은 사람은 운동경기를 하는 거여도 누구와 누가 좋아하는 모습 보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게 보고 싶으면 만화가 아닌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괜찮겠구나. 영화나 드라마는 원작에 없는 것을 만들어 넣기도 한다. 예전에 우연히 권투 만화영화를 봤다. 일본에는 없는 만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못 봤을 뿐 더 많은 운동 만화가 있을 거다. 인파이터, 아웃파이터 잘 모르지만 내가 본 만화영화에 나온 하지메는 인파이터였던 것 같다. 생각나는 건 이 정도뿐이다. 권투하는 사람이 여럿 나오기도 했는데. 권투를 잘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지는 사람도 있었다. 만화에서는 거의 꿈을 이야기한다. 졌을 때는 어떻게 하는지도 잘 나타내야 하는데. 아쉽게도 그런 건 거의 생각나지 않는다. 이기는 것만이 다는 아닐 텐데. 한국 사람이 권투 보기를 즐긴 적도 있는데 요즘은 별로 안 보는 것 같다. 지금도 권투하는 사람 있을까. 텔레비전 방송에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없어진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뭐든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서 하기보다 자신이 좋아해서 하는 게 낫겠다.

 

 장태주는 어린 엄마한테 버림받고 보육원에서 자랐다. 학교에서는 보육원 아이들과 집안 형편이 안 좋은 아이들을 한반에 두었다. 정말 그런 학교 있을까. 에전에는 있었다 해도 지금은 없기를 바란다. 부모도 친척도 없이 보육원에서 자라는 게 아이 잘못은 아닌데. 엄마나 아빠 한 사람이 없는 것도 안 좋게 본다. 엄마 아빠가 다 있어야 정상일까. 부모와 살아서 더 힘든 아이도 세상에는 많다. 지금이니 이렇게 생각하지 어릴 때는 달랐을지도. 태주는 초등학생 때는 아이들한테 괴롭힘 당하기도 하는 힘없는 아이였는데, 같은 반 아이가 태주가 돌보던 새 알리를 죽여서 그 아이를 때렸다. 주먹을 쓰게 되었다고 해야겠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선도연합회 아이 때문에 소년원에 들어간다. 그때 태주는 돈 있는 사람 힘을 느꼈다. 자신의 억울함을 말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자 태주는 기대를 버렸다. 기대는 본래 하지 않았던가.

 

 소년원에서 태주는 잘 지냈다. 늘 감시 받는 건 마음을 날카롭게 만들기도 했지만. 그곳에서 태주는 담임을 만나고 권투를 하게 된다. 담임과 누나 그리고 할아버지와 한동안 식구처럼 지낸다. 태주는 잠시동안 되풀이되는 일상의 행복을 느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그것을 지루하게 여길지 몰라도 그것을 몰랐던 사람은 그것도 좋게 여기겠지. 언제나 좋은 때는 짧다. 태주가 권투 선수로 돈을 많이 벌었지만, 담임과 누나와 할아버지는 전과 똑같이 살았다. 태주가 돈을 많이 벌거나 권투 선수로 잘되는 것보다 자신은 자신 그대로면 된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늦고 말았다.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태주한테 큰 시련을 주다니. 태주는 자신이 좋아하는 걸 다시 찾을 수 있을까. 태주한테 즐거운 때가 있었다는 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때조차 없는 사람도 있을 거다. 부모 없고 돈이 없으면 불행할까. 앞에서 태주는 자신이 우주에서 가장 불길한 기운을 타고 태어났다고 하는데 그런 건 없다. 하는 것마다 안 되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그것을 좋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나도 잘 모르지만. 가끔 나도 운이 별로 없다 생각하면서 저런 말을 했다. 운을 바라지 않으면 낫겠지. 그러면 신기하게도 운이 찾아오기도 한다.

 

 부모 없이 사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른다. 그래도 난 그게 아주 안 좋다 생각하지 않는다. 부모와 같은 사랑을 주는 누군가를 만나면 좋겠지만 누구나 그런 사람을 만나지는 못하겠지. 세상에는 공평하지 않은 게 많다. 그런 것에 좌절하지 않고 자신은 자신대로 하면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도 있다. 아니 누가 그걸 모른다 해도 자신은 자신이 생각하는대로 사는 게 좋다. 태주는 인정받으려 했다가 그게 아니어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된다. 담임은 남의 질서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자신의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건 태주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래야겠다. 지금은 사람을 이리저리 휘두르는 게 많다. 거기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잘 생각하고 정해야 한다. 나 한 사람 좋은 일 한다고 세상이 바뀌겠어 하기보다 나 한 사람이라도 하자고 생각하는 게 좋겠다.

 

 

 

희선

 

 

 

 

☆―

 

 “때론 생각이라는 걸 안 하고 살면 그게 가장 편한 것 같지만, 또 막상 자기 생각이라는 걸 하지 않고 살면 명확히 제 세계를 구축하고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질서에 휩쓸리게 돼. 문제는 그들이 세운 질서가 네가 바라는 질서와 다를 수도 있다는 거야. 너한테 무조건 불리하고, 너한테 무조건 억울한. 이해가 돼?”  (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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