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나온 반달,

아니 눈썹달

 

20170202

 

 

 

 

 

 

 

  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

  김기택

  다산책방  2016년 09월 12일

 

 

 

 

 

 

 

 

 

 

 

 

 

봄엔 봄을,

여름엔 여름을,

가을엔 가을을,

겨울엔 겨울을,

제대로 느낀다면

삶이 더 넉넉해지겠지

 

 

 

잿빛 겨울이라 해도 하얀 눈이 오면 좋아. 나이를 먹고 일을 하면 눈이 오는 걸 싫어하기도 하더군. 걷는 사람보다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난 걸어다녀서 눈이 오면 눈 맞고 다니기도 했는데, 지난 겨울에 눈이 많이 오고 집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나고는 눈이 많이 오지 않기를 바라게 됐어. 비는 본래 좋아하지 않았지만 눈까지 싫어하면 안 될 텐데. 봄을 먼저 말하려 했는데 어쩌다 보니 겨울을 먼저 말했네. 별것 없는 겨울이야기. 예전에는 십이월이 오고 성탄절이 오면 들뜨기도 했는데 언젠가부터 그 설렘을 느끼지 않게 됐어. 어쩐지 조금 슬프군. 그래도 십이월이 오면 꼭 하는 게 있어. 친구한테 성탄절 잘 보내라는 말을 적은 엽서를 보내는 거야. 그걸 받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기뻐하면 좋겠어. 겨울이라 해도 늘 추운 건 아니야. 삼한사온은 사라진 것 같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날씨가 이상해지는 것 같기도 해. 이걸 좀더 늦추도록 애써야 할 텐데. 세상이 빨리 돌아가는 것처럼 지구 환경이 나빠지는 속도도 빨라진 것 같아. 언젠가는 한국이 사철이 뚜렷한 곳이 아닌 여름과 겨울만 있는 곳이라는 말이 책에 실릴지도 모르겠어. 아직 짧게라도 봄과 가을이 있지만.

 

사람이 지내기에 좋은 때가 봄과 가을이잖아. 그런 때가 사라지면 무척 아쉬울 거야. 사는 일에 바쁜 사람이 꽃이 피고 지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할까. 그럴 것 같군. 학교 다니는 아이도 그럴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아침 일찍 학교에 갔다 늦은 밤에 집에 돌아올 테니까. 학교에서라도 가끔 창 밖을 바라보면 좀 나을까. 내가 고등학생일 때는 날씨가 좋은 날 창 밖을 보고는 나중에 학교를 마치면 봄에는 바깥에 다녀야겠다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런 때가 왔을 때는 게을러서 그러지 못했어. 날씨 좋은 날 밖에 나간다고 좋은 일은 없어서 그랬지. 해마다 똑같지는 않았어. 어느 때는 봄이 왔구나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다니기도 하고 어느 때는 별 느낌없이 봄이구나 했어. 별로 바쁜 일이 없어도 모든 걸 잘 느끼지 못하기도 해. 바쁜 사람만 봄에 꽃이 피고 지는 걸 모르고 지나가는 건 아니야.

 

잠시 시는 사람한테 어떤 일을 할까 생각해봤어. 난 왜 시를 볼까, 하는 생각을 먼저 해야 할까. 별난 일이 있었던 적은 없어. 그저 시를 보다보니 괜찮았던 것 같아. 알고 보기보다는 그냥 느낌이 좋았어. 그 느낌은 결국 자기 자신 것이겠지. 시인이 느끼고 쓴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아닐 거야. 시는 꽉 찬 삶에 틈을 만들어주지 않을까. 나는 꽉 차게 살지 않지만. 시를 보고 평소에 하지 않던 생각을 하는 여유 좋잖아. 난 가끔 기분이 가라앉고 안 좋기도 해. 가끔이 아니고 자주 그러던가. 김기택은 시 읽고 쓰기가 우는 방법에서 하나래. 어릴 때는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고 울고 싶으면 울고 웃고 싶으면 웃었겠지. 나이를 먹고나면 편하게 울지 못하기도 해. 웃는 횟수도 많이 줄어들고. 우는 게 나쁜 건 아닌데. 사람은 웃기뿐 아니라 울기도 해야 해. 울어서 자기 안에 쌓인 감정의 찌꺼기를 바깥으로 내보내야지. 그걸 시 읽고 쓰기로 하면 멋지겠네. 더운 여름이라고 시를 보기 어려운 건 아니야. 여름은 여름만의 맛이 있지. 무더운 날 부는 시원한 바람 느껴본 적 있어. 그건 참 짧지만 기분은 아주 좋아. 시가 시원한 바람이 되기도 하겠어.

 

겨울에도 시리고 파란하늘을 볼 수 있지만, 파랗고 높은 하늘은 가을에 만날 수 있지. 가끔은 구름이 멋진 그림이 되기도 하고. 여름 하늘에서 만나는 뭉게구름도 좋아. 구름으로 하늘에 그림을 그리는 건 바람일까. 공기 안에 물기가 엉기어 물방울이 되거나 어는 게 구름이라지. 구름은 폭신폭신하고 따스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차갑겠어. 그걸 만질 수도 없고. 구름과 안개는 어쩐지 덧없군. 그런 게 아름다운 거겠지. 세상에는 그런 게 참 많아. 시인은 그런 것을 잘 보고 시로 적겠지. 김기택은 시가 나와서 받아적었다는 말을 하더군. 그런 경험 부러워. 난 아주 조금만 생각나거나 쓰고 싶기도 해.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지도 않고, 생각나면 쓸 때도 있지만 잊어버릴 때도 많아. 그것을 잘 잡아두어야 할 텐데. 시를 자주 만나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해. 하루에 한편 만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아니 한주에 한편이 더 낫겠어. 시를 보고 거기에 나온 것을 상상해 보면 재미있겠어. 나도 잘 못하는 건데 이런 말을 했군. 시 한편을 오래 본 일은 한번도 없어. 처음 봤을 때 마음에 들면 좋구나 하고, 잘 모르는 건 그냥 넘어가. 앞으로는 시를 좀더 잘 만나려고 해야겠어. 시는 자신을 만나는 사람이 자기를 잘 알든 모르든 상관하지 않을 것 같아. 그저 한번이라도 자신을 바라보면 좋아하지 않을까.

 

 

 

 

 

시랑 친구 되기

 

 

 

시랑 친구가 되고 싶으세요

그건 아주 쉬워요

책장에서 시집 한권을 꺼내 펼쳐보세요

시집이 없다면 밖으로 나가 세상을 보세요

시는 언제나 그곳에서 당신이 찾아오길 기다립니다

 

 

 

희선

 

 

 

 

☆―

 

좋은 시는 아무 때나 아무 데서나 한껏 울게 해주면서도 하나도 울지 않고 평온하게 독백을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해준다. 얼굴과 입은 울지 않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는 세차게 우는 형식이라고 할까.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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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7-02-24 02: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예뻐요!^^ 낮달 ㅡ

희선 2017-02-27 02:15   좋아요 1 | URL
며칠 지나면 비슷한 달을 볼 수 있겠네요 밝을 때 보일지 그건 모르겠지만... 초저녁에 만나는 것도 괜찮죠


희선

[그장소] 2017-02-27 06:59   좋아요 2 | URL
음 .. 초저녁 달도 낮달도 다른 색으로 투명한 느낌이죠~^^ 아 ..달은 그대로인채 주변의 바탕 색이 그저 변화하는 걸까 요? ㅎㅎ 달 구경하러 밤 마실 또 해야겠어요.

AgalmA 2017-03-12 2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영감에서 누군가는 시를 쓰고,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고, 누군가는 이론을 세우고, 누군가는 가사나 음악을 만들죠. 시인은 하늘이 만들어준다는 표현도 있듯이 시는 좀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 같은데, 다른 능력과 달리 언어적인 능력은 다들 갖고 있기 때문에 같은 언어를 쓰는데 시인은 어떻게?가 되는 것 같아요. 요즘 시에 관심을 특히 많이 두시는 듯^^?

희선 2017-03-15 01:56   좋아요 1 | URL
어떤 생각을 하고 바로 무언가를 하는 사람 부럽네요 그게 떠올랐을 때 놓치지 않아서 그렇겠습니다 늘 보는 거라 해도 잘 보면 다르게 보이기도 할 텐데... 저는 그런 일은 어쩌다 한번이네요 어떤 생각을 했다가 바로 잊어버리기도 하고... 어릴 때는 누구나 시인이었을지도 모를 텐데, 시간이 흐르고 달라지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