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절망밖에 없을까

 

  중앙역

  김혜진

  웅진지식하우스  2014년 05월 19일

 

 

 

 

 

 

 

 

 

 

 

 

 

 

사는 게 힘들다 해도 살다보면 나아지기도 하겠지 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 많을 거다. 난 지금보다 나아지기보다 나빠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사는 게 나아지기를 바라지 않지만, 나 자신은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란다. 그것을 바라고 하는 건 책 읽고 쓰기인가. 여러 가지로 생각하는 건 어렵다. 이번에 본 책은 뭐라 말해야 할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이 가장 힘들겠다 여겼는데 그것보다 밑도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집 없이 바깥에서 사는 사람 말이다. 먹고 입을 것이 별로 없다 해도 잠 잘 곳이 있으면 괜찮다 생각하는데 아무것도 없으면 어떻게 살지. 길로 나 앉을 수밖에 없을까. 그런 일은 누구한테나 일어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가방 하나만 가지고 역에 나타났다. 커다란 가방을 들고 역에 나타나면 어딘가에 가는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나’는 역 둘레를 돌아보다 밤이 오자 잠 잘 곳을 찾았다. ‘나’가 왜 그렇게 됐는지 아무 설명이 없다.

 

집 없이 사는 사람이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닐 거다. 한번 그렇게 되면 거기에서 벗어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그런 거 본 적 있는데. 여기 나오는 사람도 돈을 벌면 그날 술 마시는 데 거의 다 써 버린다. 남의 것을 아무렇지 않게 빼앗는다. ‘나’는 어떤 여자한테 가방을 도둑맞는다. 그것을 경찰한테 말하고 찾으려 하지만 주소가 없어서 그럴 수 없었다. 주소가 없으면 국민의 기본 권리도 보장받을 수 없구나. ‘나’는 가방 찾기를 그만둔다. 누군가 여자가 다시 돌아올 거다 하는데 정말 돌아온다. ‘나’가 여자를 그렇게 거칠게 대할지 몰랐다. 난 어떤 형편에 놓여도 사람이어야 한다 생각하는데, 도덕이나 윤리를 쉽게 버릴 수 있을까. 난 그러고 싶지 않다. 얼마 전에도 이런 생각을 했는데. ‘나’는 다른 사람보다 젊었다. 길에서는 젊은 게 더 안 좋았다. 그게 안 좋을 수도 있다니. 여자도 ‘나’한테 ‘너는 여기를 떠나라’고 했구나.

 

‘나’와 여자가 좋게 만난 건 아니지만 그곳에서 서로 의지한다. 낮보다는 밤에 더 그런다. ‘나’는 여자와 사는 앞날을 꿈꾼다. 집 없이 살면 사랑도 못하는 걸까. ‘나’가 길로 나오지 않았다면 여자를 만나지 못하고 봤다 해도 거들떠 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나’가 더 여자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자는 몸이 아픈데도 술을 마셨다. ‘나’가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나오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여자 사정도 자세하게 나오지 않는다. 남편과 아들 딸이 있어서 나라에서 돈을 받을 수 없다는 것밖에. 여자가 많이 아프자 ‘나’는 자신의 이름을 판다. 그렇게 해서 받은 돈은 누군가한테 빼앗기고 나머지 돈도 받지 못한다. 갈 때까지 가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거기에서 더 나빠지면 어떻게 될지. ‘나’는 여자를 응급실에 두고 온다. 그리고 철거 지역 사람을 쫓아내는 일을 한다. 가진 게 없어서 가진 게 없는 사람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해도 절망만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어떻게 하면 좀더 괜찮아질지 모르겠다. ‘나’는 지금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조금 다르지만 그 마음은 알 것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없으면 살기 어렵다. 밑바닥에 떨어지고 더 떨어질 곳이 없어 보이는데 ‘나’는 그곳으로 떨어진다. 자존심도 다 버린다. ‘나’가 처음에 역에 갔을 때는 자신은 다른 사람과 다르다 여기기도 했는데. 쉽게 보기 어려운 사람을 보았다. 그 사람들이 자신을 밑으로 떨어뜨린 건지, 다른 사람(사회)이 그렇게 만든 건지. 둘 다가 아닐까 싶다. 집 없이 사는 사람도 있다 생각해야 할까, 누구나 바깥으로 밀려날 수 있다 생각해야 할까. 다른 건 잘 모르겠다. 하나, 집 없이 산다 해도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하겠지.

 

 

 

 

 

 

 

 

 

길을 건너기 전

빨간 불일 때는 멈추고

파란(풀색)불일 때는 건너기

쉽지만 지키기 어렵기도 하다

 

 

 

 

 

 

 

정말 깨어 있는 걸까

 

     ねむり (2009)

  무라카미 하루키   양윤옥 옮김

  문학사상  2012년 10월 17일

 

 

 

 

 

 

 

 

 

 

 

 

 

 

 

난 중, 고등학생 때부터 밤늦게 잤어. 열두시가 넘으면 자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새벽 한시나 두시가 넘어서 자고는 했어. 예전에는 밤 열시나 열두시가 꽤 늦은 시간이었는데 지금은 늦은 때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아. 그때 밖에 나가는 일은 없지만. 오랫동안 밤과 낮이 바뀐 생활을 하다보니 잠 자는 게 힘들기도 해. 그래도 어느 정도는 꼭 자려 해. 자려고 누워도 잠이 잘 들지 않고 작은 소리에 깨기도 해. 자다가 한번 깨면 라디오를 켜기도 하는데 라디오 방송과 꿈이 섞일 때도 있어.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건 아니야. 꿈을 꾸지만 한번 깼다 다시 자면 거의 잊어버려. 어떤 때는 밤에 꿈이 생각나기도 해. 긴 내용은 아니고 어느 한 장면만 떠올라. 별거 아닌 꿈만 꿔. 괜찮은 꿈을 꾸고 싶기도 한데. 꿈과 현실은 같지 않은 데 좋은 꿈 꾸고 싶다 생각하다니. 꿈이 들려주는 말이 듣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어. 책을 읽는 것도 꿈꾸는 것과 다르지 않은데. 꿈속에 뭔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설지도.

 

밤새 잠을 하나도 안 자고도 괜찮은 적 한번 있어. 겨우 한번이군. 여기에 나오는 ‘나’는 잠을 안 잔 지 어느새 십칠일째래. 대학생 때도 한달쯤 잠을 못 자고 잠 속에서 살았는데, 그때와 지금은 좀 다른 것 같아. ‘나’가 대학생 때는 잠을 거의 못 자면 정신이 흐릿했는데, 지금은 잠을 안 자도 아무렇지도 않았어. 대학생 때도 지금도 ‘나’가 잠을 안 잔다는 걸 아는 사람은 없어. 대학생 때는 어느 날 갑자기 잠이 왔대. 이번에도 다시 잘 날이 다가올까. ‘나’가 잠이 오지 않아서 한 건 책읽기야. 《안나 카레니나》를 세번이나 읽고 다음에는 도스토옙스키를 읽었어. ‘나’가 책을 읽다가 예전에 자신이 책읽기를 좋아했다는 것을 깨달아. 많은 사람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다보면 그전에 자신이 좋아한 것을 잊고 살기도 하지. 《안나 카레니나》는 ‘나’가 고등학생 때 한번 읽은 책인데 다 잊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돼. 예전에 나름대로 감동도 받았는데 그 시간은 대체 무엇인가 해. 이 마음 어떤지 알 것 같아. 시간은 언제나 흐르니 어쩔 수 없지. ‘나’는 결혼하고 조금씩 바뀐 삶도 생각해. 잠을 안 자니 여러 생각을 할 시간이 생긴 걸까.

 

잠을 못 자기 전날 ‘나’는 아주 안 좋은 꿈을 꾸고 깼어. 꿈에서 깼는데 발치에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이 서 있었어. 노인은 ‘나’ 발에 주전자에 든 물을 뿌려. 그때 ‘나’는 움직이지도 소리치지도 못했어. 그건 가위눌림이야. 가위눌리고 나면 다시 자기 힘들기는 해. ‘나’는 그것 때문에 잠을 못 잔 건 아니겠지만. ‘나’가 잠을 안 자고는 집안 일은 기계처럼 하고 새벽에는 혼자 깨어 책을 읽거나 차를 타고 나가기도 해. ‘나’는 낮에는 수영을 했어. 어느 날 ‘나’는 자신이 젊어졌다고 느껴. 그런 일 실제 있을까. ‘나’가 겪은 일은 현실인지 꿈인지 잘 모르겠어. 꿈과 현실이 섞인 것 같기도 하고, 다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안 좋은 꿈을 꾸고 가위눌린 다음부터 잠 못 자는 꿈을 꾸는 건 아닐지.

 

마지막에 ‘나’는 차를 타고 항구에 가. 얼마 뒤 검은 그림자 둘이 나타나서 차 문을 쾅쾅 치고 흔들어. 오른쪽 왼쪽에 있는 건 남편과 아들이 아닐지. 이건 무서운 일이 실제가 아니기를 바라는 거군. 어쩌면 잘 걸리지 않던 차 엔진이 시간이 흐른 뒤에 걸릴지도. 아무 일 없이 흐르는 일상이 좋지만, 그런 일상이 소중하다는 걸 모르면 지루한 날이 되겠지. 단조로운 일상을 여러 가지 색으로 칠하려면 스스로 애써야 해.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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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0 15: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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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1 02: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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