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기   放浪記 (1930)

  하야시 후미코   이애숙 옮김

  2015년 03월 23일

 

 

 

 

 

 

 

 

 

 

 

 

(2015년 6월 X일)

 

며칠 동안 소설이 아닌 책을 봤더니 소설이 보고 싶었다. 소설 안 봤다고 해도 이 책 보기 전에 본 소설이 아닌 책은 두권이다. 두권보다 앞에 본 책은 소설이지만 실제 있었던 사람 이야기고, 그 앞에는 전기를 보았다. 소설도 사람 이야긴데 안 본 것 같은 느낌이 들다니.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가 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어떤 책이든 재미있게 보면 좋을 텐데,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재미있게 보았다고 하는 책도 나는 잘 못 본다. 그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기는 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울하다. 나는 왜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싶어서. 그럴 때마다 생각하는 건 내가 어릴 때부터 책을 잘 읽지 않았기 때문일까다. 잘 모를 때는 여러번 보면 좀 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두번 봐도 잘 모를 때가 많다. 그럴 바에는 시간 많이 들여서 두번이나 봐야 할까 한다. 잘 모를 때 두번 본 일 그렇게 많은 건 아니다. 바로 책을 두번 보는 것보다 시간이 흐른 뒤에 보는 게 나을 거다. 시간이 흐른다고 내가 많이 달라질 것 같지 않지만 아주 조금은 달라지겠지. 책 잘 못 읽어도 그 시간이 헛되지 않아야 할 텐데.

 

소설이 보고 싶다 생각하고 이 책을 보았는데 이것을 소설이라 할 수 있을까. 이 책 소설보다 일기에 가깝다(제목도 ‘방랑기’구나). 날짜가 있어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있고, 줄거리를 정리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말 맞지 않다. 소설에는 줄거리 알기 어려운 것도 있다. 그런 거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별로. 읽으면서 ‘이게 대체 뭐야’ 한다. 나는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소설을 좋아해서. 앞에서는 이해하지 못해서 아쉽다고 했구나. 이 책은 1부, 2부, 3부로 나뉘어 있는데 시간이 흐르는 대로 정리하지 않은 것 같다. 이 글을 쓴 건 다섯해쯤이라고 한다. 일기라고 해도 그것을 그대로 책으로 내지 않겠지. 나는 일기를 잘 못 써서 그런 일은 아예 생각도 못한다. 이 책이 나왔을 때 사람들이 많이 보았다고 한다. 어떤 것이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은 걸까. 1920년대 모습이 나와서일까. 잘사는 사람보다 못사는 사람이 좋아했을지도. 이 책이 나왔을 때라고 해도 잘사는 사람이 많지 않았겠다. 연재를 했을 때도 그리 좋지 않았을 때고 책은 전쟁 때 나왔다.

 

사람은 언제부터 한 곳에서 살게 됐을까. 한 곳에서 살게 되고 사람은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처럼 되었다. 농경사회가 되고는 사람은 한 곳에서 살고 글을 쓰게 되었다(기록이라고 해야겠다). 그전에는 다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떠돌지 않았을까(먹을 것 때문에 돌아다기도 했겠다). 떠돌아 다닐 때도 살던 곳에 남고 싶은 사람 있었을지도. 책 제목에 ‘방랑’이라는 말이 있어서. 사람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가운데 하나가 고향이다. 고향은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인데, 난 곳과 상관없이 자란 곳이 고향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 않나 싶다. 그때는 제2의 고향이라고 하는구나. 하야시 후미코도 난 곳이 있지만, 자신한테는 고향이 없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한 곳에서 살지 않고 부모와 함께 여기저기 다닌다. 친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살게 되고는 후미코와 엄마를 내쫓았다. 후미코 엄마는 다른 사람과 살게 되는데, 새아버지도 돌아다니면서 장사를 했다. 그런 것을 보고, 그냥 딸하고만 살지 왜 다른 사람을 만났을까 했다. 일본도 가부장제 사회여서 여자 혼자 아이와 사는 게 쉽지 않아서 그랬을 테지.

 

책을 볼 때는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기도 한다. 책 속에 나오는 사람이 ‘나와 비슷하구나, 아니면 나와 다르구나’ 한다. 언젠가도 말했을 테지만 책에서 나랑 비슷한 사람 거의 못 봤다. 내가 그렇게 달라서는 아니고 이상해서일지도. 생각은 보통으로 하지만. 가난이라는 것을 말할 때 앞에 ‘찢어지게’라는 말을 쓰기도 하는데, 이것은 무엇이 찢어진다는 걸까. 후미코는 아주 가난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삶이기 때문일지도. 어렸을 때부터 후미코는 장사를 했다. 부채와 화장품을 짊어지고 팔러 다녔다. 물건보다 먹을 것이 잘 팔렸다. 탄광촌에는 조선사람이 있었다고. 그렇게 돈을 벌면 책을 빌려다 보았다. 후미코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읽었다. 가난해도 책을 읽었다니. 나는 어렸을 때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는데. 옛날에는 책도 그렇게 많지 않았을 텐데 거기에 관심을 갖다니. 어떤 기회로 책을 보게 됐는지도 나왔다면 좋았을 텐데. 나는 내가 가난하게 살고 지금도 가난하다 생각하는데 찢어지게 가난했던 적은 없다. 먹을 게 없어서 굶은 적 있지만 그 시간이 길지 않았다. 가난하다 해도 어릴 때부터 일도 하지 않았다(집에서는 했구나). 후미코가 어렸을 때는 일본이나 우리나라 살기 어려워서 어린이도 일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는 1950년대쯤부터 일하는 아이 많았을지도.

 

여기 나오는 이야기는 후미코가 어렸을 때보다 스무살 넘었을 때 일이다. 드라마 같은 거 보면 가난한 사람은 누군가를 꼭 사귄다. 가난해서 처음 사귄 사람과 헤어질 때가 많고 나중에 부자를 만나기도 한다. 이건 신데렐라 이야기잖아. 후미코는 신데렐라가 아니다. 그런 것을 바란 것 같기도 하다. 벼락부자가 되고 싶다고 했으니까. 도쿄에 갈 때는 애인과 함께 갔는데, 애인은 자기 누나가 가난한 후미코와 결혼하는 거 반대한다면서 떠난다. 부모도 아니고 누나가 반대한다고 떠나다니. 후미코를 그렇게 좋아한 건 아니었을지도. 스무살이 넘었을 때 후미코는 공장에서 일하고 카페에서 일하고 길에서 장사를 하고, 사무원도 한다. 여급으로 일할 때 일이 많이 나온다. 이름을 ‘유미’라고 했다. 자신한테 30엔이 있다면 글을 쓸 텐데 하기도. 여러가지 일을 하면서도 후미코는 책을 보고 시를 쓰고 동화를 썼다. 어떤 동화였을까. 후미코는 왜 한가지 일을 오래 하지 않았을까. 월급이 아닌 그날 일한 돈을 받아서였을지도. 1920년대는 여자가 혼자 살아가기 힘든 때다. 지금하고는 아주 달랐다. 지금은 여성이 여러가지 일을 하지만. 글을 써서 돈을 버는 것도 그때는 그리 쉽지 않았겠지.

 

중요한 건 아닌데 후미코가 자주 헤어진 남자를 생각해서 대체 이 사람이 앞에 나온 사람인지, 다른 사람인지 했다. 누군가와 헤어지면 그 사람을 자꾸 생각하기도 하겠지. 그러고 보니 한번은 아내가 있는 사람을 만난 것도 같다. 내가 가장 알기 어려운 건 이 점이다(이것은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사람은 거의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나고 헤어지는가. 한때는 시인과 함께 살았는데 후미코를 때렸다. 엄마가 후미코한테 후미코도 자신처럼 남자 복이 없다고 했다. 결혼까지 한 사람은 괜찮았나보다. 동화를 써서 잡지사에 가지고 가니, 후미코가 쓴 동화를 고쳐서 다른 사람 이름(편집자)으로 잡지에 싣기도 했다. 후미코는 그 일을 알아도 모르는 척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돈을 벌기 위해. 후미코는 동화보다 시를 쓰고 싶어했다. 여기에도 시가 실렸다. 시 잘 모르지만 후미코가 쓴 시 괜찮게 보인다. 어떤 생각을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시가 아닌 글이라고 하다니. 앞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는데, 누군가한테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중요할지도.

 

한 곳에서 살지 않고 여기저기 떠도는 삶은 힘들다. 내가 그렇게 살아본 건 아니지만 그런 느낌이 든다. 후미코가 쌀밥이 먹고 싶다 생각한 시간이 길었지만, 그런 시간이 나쁜 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내 일이면 힘들어하고 다른 사람 일이면 나쁘지 않다고 하다니). 좀 길었지만 그때가 있어서 글을 썼다. 아니 후미코는 힘들 때도 책을 읽고 글 쓰는 걸 그만두지 않았구나(가끔 죽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글이 사는 데 무슨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건 잠시였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도 사람들이 자기 글을 본다는 것을 알면 기쁘겠지. 저세상에서는 모를까. 아니 알겠지, 그러기를 바란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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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7 18: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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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3 01: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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