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도시 에도의 탄생 - 도쿠가와 가문은 어떻게 원예로 한 시대를 지배했는가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조홍민 옮김 / 글항아리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오래전에는 어디든 싸움이 끊이지 않았어. 다들 넓은 땅을 가지려고 했으니 그랬겠지. 한국도 고려 조선이 되기 전에는 고구려 신라 백제 세 나라였어. 세 나라라 했지만 가야도 있고 다른 나라도 더 있었을지도. 가야는 신라가 되지. 가야 왕 후손이 김유신 집안이야. 어쨌든 같은 땅인데도 나라가 다르던 때도 있었어. 지금은 그게 ‘도’로 나뉜 건가. 한 나라 사람이면서도 사는 지역에 따라 성격이나 말이 다르기도 해. 사람 사는 곳은 거의 그렇군. 작은 마을에서도 친한 사람끼리 모이기도 하잖아. 모임에 들어간 사람과 들어가지 못한 사람으로 나뉘고 다툼이 일어나기도 하는군. 사람은 왜 그러는 걸까. 나는 어딘가에 들어가고 싶으면서도 혼자이고 싶기도 해. 예전에는 들어가고 싶었는데 지금은 혼자가 나은 것 같아. 아니, 나도 어딘가에 들어갔겠지. 나 혼자 사는 건 아닐 거야. 이건 지금 할 말이 아니군.

 

 일본에서 싸움이 끊이지 않던 센고쿠시대(전국시대)에는 무장이 식물을 길렀다고 해. 전쟁을 할 때 그런 건 아니고 전쟁을 하지 않을 때 그랬대.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이어지는 게 많았어. 센고쿠시대에는 무사가 농사를 짓고 전쟁이 일어나면 싸움터에 나갔는데, 오다 노부나가는 농사 짓는 사람과 싸울 사람을 나누었대. 이때 싸움터에 나가는 사람은 집안을 잇지 않아도 되는 둘째였어. 일본은 첫째가 집안을 잇고 그 밑에 사람은 할 게 없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건 에도시대뿐 아니라 센고쿠시대에도 마찬가지였겠지. 예전에 땅을 가지고 싸운 건 먹을거리 때문이었어. 땅이 많아야 벼를 심을 수 있잖아. 쌀을 화폐로 쓰기도 했대. 에도시대에 와서는 쌀이 많아서 화폐 가치가 떨어졌어.

 

 이웃 나라 일본 이야긴데 한국이 생각나기도 했어. 비슷한 게 많아서 말이야. 한국도 쌀을 주식으로 하고 거름으로는 사람 배설물(똥, 오줌)을 많이 썼잖아. 그런데도 한국에는 보릿고개가 있었군. 먹을 게 없는 사람은 나무 껍질이나 풀도 먹었지. 이건 어느 나라나 비슷한 듯해. 여기에서는 일본만 그랬다는 것처럼 말하는 것 같아. 한국 이야기는 한번 나왔나. 일본에서 임진왜란을 일으켰을 때는 도자기 장인을 일본으로 끌고 갔잖아. 그때 이야기는 센고쿠시대 무장이 차를 좋아했다는 말로 나오기도 해. 무장이 차를 좋아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센고쿠시대 무장은 차 모임을 열고 그때 비밀 이야기를 하거나 자신이 가진 다기를 자랑하기도 했어. 일본 다도에서 빠질 수 없는 사람이 센노 리큐야. 리큐는 수수한 ‘와비차’를 좋아했어. 리쿠와 반대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화려한 것을 좋아하고 금칠을 한 다도실을 만들었어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나중에 리큐한테 할복하라고 했다지.

 

 싸움을 할 때는 먹을 게 중요하지. 그래서 일본에는 ‘배가 고프면 싸울 수 없다’는 말이 있어(한국은 금강산도 식후경이군). 누군가는 활로 쓸 대나무를 말린 고사리로 묶었어. 가토 기요마사는 구마모토 성에 구황식물을 숨겨둬서 싸움에 이겼다고 해. 예전에는 세끼가 아닌 두끼를 먹었는데 지금 먹는 양보다 많았어. 이건 한국도 마찬가지야. 센고쿠시대에는 현미밥과 된장을 먹어서 건강했는데, 에도시대에는 흰쌀밥을 먹어서 각기병(에도병)이 생기기도 했어. 닌자는 약초를 잘 알고 화약도 만들었어. 에도시대에는 무사가 할 일이 없어서 식물을 길렀어. 몇해 전에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에 노란 나팔꽃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 이야기가 여기에 있어서 조금 반가웠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건강 때문에 약초를 기르는 약초원을 만들고 오래 살았대.

 

 제목에는 ‘에도시대’라는 말이 나오는데 에도시대보다 센고쿠시대 이야기가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네. 아니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수도를 에도로 옮기고 에도를 많이 바꿨어. 땅에서 자라는 식물 때문에 그곳 이름을 정하기도 했더군. 그리고 땅이름이 그곳에 사는 사람 성이 되기도 했어. 무사가 꽃이나 나무를 좋아했다는 말을 보니 조선시대에 전남 강진으로 귀양 간 정약용이 생각났어. 조선시대 선비가 귀양 간 곳에서는 글을 많이 썼지만, 정약용은 밭도 가꿨어. 식물을 기르는 건 마음에도 좋잖아. 싸움을 하던 무장이 꽃이나 나무를 좋아한 것도 싸움에서 받은 정신의 괴로움을 잊으려 한 거겠지. 요새는 반려 식물도 있더군. 복잡한 지금 같은 세상에서는 식물을 보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싶겠어.

 

 

 

희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