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기, 괴물
임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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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해 전에, 오랜만에 한국 단편소설을 봤을 때는 단편소설이 예전보다 짧아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임철우 단편소설은 긴 편이네요. 임철우는 예전부터 알았는데 소설은 그다지 자주 만나지 못했습니다. 제가 만난 것에서 가장 처음 생각나는 건 《봄날》입니다. 그리고 곽재구 시 <사평역에서>를 보고 <사평역>이라는 소설을 썼지요. 그 소설 읽었는지 읽지 않았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데, 어렸을 때 드라마 본 것도 같아요. 생각나는 건 역에 사람이 모여있는 것뿐이지만. 눈 오는 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지금도 소설로 드라마를 만들지 않는 건 아니지만, 단편소설로는 거의 만들지 않지요. 영화로 만들까요. 제가 한국소설을 보기 시작했을 때는 그때를 말하는 소설보다 더 옛날 이야기를 하는 걸 본 것 같기도 합니다. 어쩌다 그랬는지. 아니 어쩌면 그때 소설가가 예전 이야기를 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했지만 예전에 단편소설 많이 못 보고 잘 못 봤어요. 지금도 잘 보는 건 아닙니다.

 

 여기 담긴 소설은 거의 어둡습니다. 슬픔과는 다른 것도 같아요. 언젠가 어떤 소설집을 보니 소설마다 나오는 사람이 다른데도 그 사람들이 비슷한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게 대체 뭐였는지 잘 모르겠어요. 은희경 책 《중국식 룰렛》이었던 것 같기도 한데(조해진 소설 《빛의 호위》도 비슷했습니다). 그때 다른 사람이면서 비슷한 건 소설마다가 그 사람의 평행우주여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쓰지는 않았나 봐요. 지금 생각하니 평행우주에 사는 건 다른 사람이 아니고 같은 사람이군요. 다른 사람일지라도 비슷한 점이 있기도 한데. 그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여기 담긴 소설을 보고도 다른 사람이지만 비슷하기도 하다고 느꼈습니다. 연작소설은 아니지만 이어져 있는 소설 같아요. 예전에 박완서 님 소설을 보고 같은 사람이 여기저기 나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거야말로 연작소설인데 그때는 그런 것도 몰랐습니다. 지금도 아는 게 별로 없군요. 이런 말로 잘 못 써도 이해해달라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2017년에 나온 소설집인데 여기에는 지금보다 예전 이야기가 더 많아요.

 

 네번째 소설 <간이역>을 보니 어렸을 때 본 흑백영화가 생각났습니다. 제목은 생각나지 않는데 여자가 아이 있는 남자와 결혼하고 자기 아이는 낳지 않는 게 나왔어요. <간이역>에도 그런 사람이 나오더군요. 그 사람은 췌장암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도 않았습니다. 그동안 남편은 지금 아내보다 예전에 차 사고로 죽은 아내를 생각하고 시를 썼어요. 남편은 세상을 떠날 아내보다 두번이나 아내를 떠나 보내야 하는 자신을 더 불쌍하게 여겼군요. 나중에는 지금 아내보다 예전 아내를 생각한 걸 미안하게 생각한 것 같기도 합니다. 소설에 시인이 나오는 거 한편 더 있어요. <남생이>예요. 여기에서 남자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어떤 여자를 보고 어릴 적에 만난 친구를 떠올렸습니다. 남자가 어릴 적에 만난 미화와 여자가 같은 사람인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미화 아버지와 오빠는 한센병에 걸렸다가 나았지만 한 곳에서 살 수 없습니다. 그 일을 누군가한테 들키면 미화는 다른 곳으로 떠나야 했어요. 남자가 어렸을 때 그걸 알고는 바로 다른 친구한테 말해서 미화는 그곳을 떠났습니다. 나이를 먹은 남자가 그 일을 생각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거군요.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죽습니다. 소설에서는 죽음을 우울하게 그릴 때가 많더군요. 그건 결국 산 사람이 생각하는 죽음이잖아요. <흔적>과 <세상의 모든 저녁>은 그런 이야기예요. 두 소설에 나오는 사람은 다르지만 아픈 데는 같은 것 같기도 했습니다. <흔적>에 나오는 사람은 아들과 아내를 먼저 떠나 보내고, 병든 개도 떠나 보내고 자신이 살았던 흔적을 모두 없애려 합니다. <세상의 모든 저녁>에 나오는 사람은 쪽방에 혼자 살았어요. 오래전에 옹기를 만들었는데 시간이 흐르고는 그것을 쓰는 사람이 줄어들고 그걸 그만뒀습니다. 그때 결혼한 사람과는 헤어지고 혼자 살다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것을 알아채는 사람도 없었어요. 혼자 살던 사람이 죽고 그것을 시간이 흐르고 알았다는 이야기는 가끔 들리기도 합니다. 사라진 일을 말하는 소설 하나 더 있어요. <물 위의 생>은 아우라지 뗏사공 이야기예요. 소설에 나오는 사람은 왜 그렇게 삶이 평탄하지 않은지. 소설에는 잘되는 사람보다 이런저런 일을 겪고 역사에 휩쓸리는 사람 이야기를 더 쓰는군요. 임철우는 1980년에 일어난 광주민중항쟁을 《봄날》로 썼습니다.

 

 죽음이 나오는 소설이 앞에서 말한 두 편만은 아닙니다. 여기 담긴 소설에는 다 죽음이 나옵니다. <연대기, 괴물>은 송달규가 지하철에 몸을 던져 죽었다는 기사로 시작합니다. 아니 처음에는 이름이 없군요. 송달규라는 이름도 자기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한사람 삶을 말한다기보다 보도연맹 사건, 베트남 전쟁, 5 · 18 그리고 세월호에 이르는 굵직굵직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역사는 실체없는 괴물이 만들어낸 일일지. 그 괴물은 사람 마음이기도 하겠지요. <이야기집 - 단추눈 아짐>도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단추눈 아짐 이야기면서 부용도 해송리 이야기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단추눈 아짐처럼 산 사람이 많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 나이가 차면 적당한 사람과 혼례를 올리고,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나 헤어지고 아이가 있는 사람과 다시 사는 일. 조금 쓸쓸해 보이지만 단추눈 아짐 삶이 아주 안 좋은 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을 말해도 덜 안타깝게 덜 쓸쓸하게 하면 좋겠습니다. 그런 소설이 아주 없지 않을지도 모르겠군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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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의 빈 방  죽음 후에

  존 버거, 이브 버거   김현우 옮김

  열화당  2014년 07월 30일

 

 

 

 

 

 

 

 

 

 

 

 

 

 

 누군가 쓰던 방이 비면 쓸쓸하겠지. 좋은 일이 있어서 집을 떠난 거라면 덜 하겠지만. 그 방을 쓰던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면 슬프겠다. 주인이 돌아오지 않는 방을 그대로 두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사람은 없지만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 방을 썼을 테니. 그대로 두면 언젠가 방주인이 돌아올 것 같기도 할 거다. 그저 기억하는 것과 무언가를 남겨두고 기억하는 것에서 어떤 게 더 슬플까. 이런 생각을 하다니.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보이는 게 더 마음 아프겠지. 그렇다고 세상을 떠난 사람 물건을 빨리 정리하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남은 사람한테는 슬퍼할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런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죽은 사람 물건을 정리할 수 있다. 슬픔은 평생 가겠지만 산 사람은 살아간다. 어쩐지 이 사실도 무척 슬플 것 같다. 죽는 사람은 더 살지 못해서 안타까울까.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 더 살지 못한 안타까움도 산 사람이 더 크게 느낄 것 같다.

 

 좁은 방에 물건이 가득해도 거기에 사람이 없으면 그 방은 넓어 보일 거다. 내 방도 내가 없으면 그렇게 보일까. 그전에 정리를 해야 할 텐데. 그 생각을 오래해서 그런지 현실에서는 못하고 꿈속에서만 한다. ‘빈 방’이란 말은 아프고 슬프다. 본래부터 빈 방이었다면 다르겠지만. 난 아직 그런 빈 방이 없다. 언젠가는 갖게 되겠지. 내가 먼저 만들까. 존 버거와 아들 이브 버거는 아내면서 어머니인 베벌리 밴크로프트 버거를 떠나 보내고 한해가 지난 뒤에 베벌리 밴크로프트 버거를 그리는 그림과 글을 썼다. 존 버거 이름은 들어봤지만 잘 모른다. 존 버거는 글뿐 아니라 그림과 사진과 상관있는 걸 한다.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가지를 하다니 대단하다. 여러 가지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난 하나도 제대로 못해서. 죽은 사람도 조금 부럽다. 남편과 아들이 그리워해서. 그걸 죽은 사람은 모르겠지만. 사람이 살다 가는 것을 슬퍼하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건 자기 삶을 다 산 거니까.

 

 이 책에는 많은 것을 담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겠지만 조금만 한 것 같다. 존 버거는 아내가 아픈 모습도 아름답다고 했다. 아픈 사람을 돌보는 사람은 그런 거 좋아하지 않을 텐데. 이건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이 남지 않았을 때 그러겠구나. 존 버거는 아내가 아플 때도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이 그대로였구나. 존 버거는 어떤 일을 떠올리고는 그런 건 아내가 더 잘 기억할 텐데 한다. 그런 말을 하는 건 존 버거가 아내를 잘 보고 있었다는 게 아닌가 싶다. 그것도 조금 부럽구나. 별걸 다 부러워한다. 존 버거 아내 베벌리는 암으로 죽은 것 같다. 아들 이브 버거도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그리워하는데 울지 못했다.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그때는 그랬다 해도 이제는 눈물 흘릴지도 모르겠다.

 

 오랜 시간 함께 산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 마음이 뻥 뚫린 것 같겠다. 뻥 뚫린 마음을 채워야 할지 그대로 두어야 할지. 나도 그건 잘 모르겠다. 앞으로도 잘 모를 것 같다. 떠나간 사람과 함께 한 시간을 떠올리고 사는 것밖에 없겠지. 보이지 않고 이야기할 수 없다 해도 곁에 있다고 여길 수도 있지 않을까. 소설에서 그런 걸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하는데. 실제로도 그럴 거다. 주인 없는 빈 방에 들어가면 조금 슬프겠지만, 곧 방 주인이 즐겨하던 게 떠오르겠지. 옷이나 신발, 뜰을 봐도 그렇겠다. 살았을 때 상대를 잘 봐야 나중에 떠올릴 수 있겠다. 곁에 있는 사람이 떠났을 때 자신이 그 사람을 잘 모르는구나 하지 말고, 곁에 있을 때 잘 보고 자주 말하면 좋겠다.

 

 

 

 

빈 방

 

 

 

네가 떠나고 가끔 난 네 방에 들어가 봐

그 방에서 넌 무엇을 하고 무엇을 생각했을까

너와 잠깐이라도 함께 시간을 보냈다면 좋았을걸

언젠가 네가 돌아온다면 기쁠 텐데

잊지마,

네가 돌아올 곳을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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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일 글쓰기라는 책을 보고 나도 한번 해 볼까 생각했다. 책을 읽으면 어떻게든 쓰니 그렇게 어렵지 않을지도 몰라 생각했는데, 처음부터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럴 수가. 무엇을 써야 할지 생각하지 않아서인 것 같다. 처음 쓰려 한 건 ‘글’인데, 글을 쓰고 싶은 건지, 글을 쓰고 달라지고 싶은 건지. 둘 다다.

 

 글은 나한테 말과 같다. 난 사람을 만나지 않고 누군가와 말하는 일은 거의 없다. 어렸을 때는 학교에 다녀서 사람을 만났지만, 사람을 만난다 해도 말 잘 못하고,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듣기만 했다. 중학교 때부터 편지를 썼다. 그렇게라도 친구와 말했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지금도 편지를 쓰는데 학교 다닐 때 친구는 하나도 없다. 난 말로 하는 것보다 오래 생각해도 괜찮은 글이 편하다. 오래오래 친구와 이야기 했다는 말 보면 신기하다. 어쩌면 부러운 건지도.

 

 어쩐지 난 말을 대신하는 글을 쓰려는 것 같다. 그런 것도 있고 그저 글이 쓰고 싶다. 글을 쓰고 싶은 까닭도 잘 알아야 할까, 그냥 하면 안 될까. 무언가를 좋아하는 건 말하기 어려운 게 아닐까 싶다. 글을 쓰면 달라진다고도 하는데 난 그런 게 없는 것 같다. 아주 조금은 달라졌겠지만, 여전히 안 좋은 생각에 빠지고 나를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좋아하고 싶다. 그러려면 그런 글을 써야 할 텐데. 글을 쓰면 무언가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날마다 글 쓰는 건 어려울 거다. 글 길이는 그렇게 길지 않아도 된단다. 쓰면서 늘려가면 될 거다. 짧게 써도 날마다 쓰기는 쉽지 않겠지. 쓸거리가 떠오르지 않아서. 그래도 한번 해 보면 글쓰기 조금 편해질까.

 

 

 

*더하는 말

 

 이건 시작이 아니다. 마음을 먹고 시작하는 게 좋을지,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그냥 해 보려고 했다. 그건 그저 일기나 마찬가지겠다. 준비운동 하는 글을 써 보고 시작하라고 했는데 정말 그래야 할 것 같다. 이것도 준비운동이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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殺人の門 (角川文庫) (文庫)
히가시노 게이고 / 角川書店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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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문

히가시노 게이고

 

 

 

 

 

 지금까지 살면서 이제 그만 만나야겠다 생각한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만난 사람과 연락하고 사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학교 다니기 전에 사귄 친구가 하나 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 친구하고는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헤어졌다. 어렸고 아주 먼 곳으로 이사해서 그랬구나. 이름도 얼굴도 생각나지 않지만, 그 친구는 어떻게 사귄 걸까. 내가 사람을 만나고 사귄 건 학교에서다. 학교 친구하고 오래 연락하고 살고 싶었는데 그런 마음은 나만 있었나 보다. 같은 학교나 같은 반이 아니면 멀어질 수밖에 없겠지. 그렇다 해도 한사람이라도 친구가 있다면 좋을 텐데, 난 그런 친구 사귀지 못했다. 학교 다닐 때는 친하다 여겼는데. 친구라는 이름으로 사귀는 사이라 해도 다 좋은 관계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살인의 문》에 나오는 다지마 가즈유키(田島和幸)와 구라모치 오사무(倉持修)가 그렇다. 아니 그렇게 생각한 건 다지마뿐일지도 모르겠다. 구라모치는 다지마를 이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단 한사람이라 여겼다. 그런 마음인데 왜 다지마를 힘들게 했을까. 정말 사람 마음은 알 수 없다.

 

 친구가 나보다 잘살거나 잘하는 게 있으면 그런가 보다 한다, 했던 것 같다. 친구가 잘해서 부러워한 적보다 다른 사람이 잘하는 걸 부러워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친구와 친하면 걱정했다. 친구가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좋아할까봐. 나 혼자만의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실제로도 그런 것 같다. 아직도 난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다니. 내가 나를 좋아하지 못해서 그런 거겠지. 이 책은 이런 것과 별로 상관없다. 그냥 저런 게 생각났을 뿐이다. 다지마와 구라모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친해졌다. 다지마 집은 어느 정도 살고 아버지는 치과의사였다. 하지만 다지마는 집에 자기 자리가 없다고 느꼈다. 그런 때 구라모치를 사귀었다. 구라모치는 자신도 아이면서 다른 아이를 어리다 여기고 사귀지 않았다. 다지마는 구라모치가 자신과 비슷하다 여겼지만 그건 아니었다.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하는 두 사람이 알게 되고 좋은 친구가 되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건 그런 것과는 다르다. 구라모치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다지마는 구라모치를 만나지 않는 게 나았을 거다.

 

 어렸을 때 집이 잘살아도 그게 오래 가지 않기도 한다. 다지마 집이 그랬다. 아파서 누워있던 할머니가 죽고 얼마 뒤, 동네에 다지마 집안 사람이 할머니한테 독을 먹여서 죽였다는 소문이 퍼지고 다지마 아버지와 어머니는 헤어진다. 다지마는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와 살기로 한다. 이때부터 잘못된 걸까. 어머니와 헤어진 아버지는 술집 여자 시마코와 사귀다 시마코 애인한테 머리를 맞고 후유증으로 치과의사를 못하게 된다. 아버지는 자신이 치과의사인 걸 자랑스럽게 여겼는데 그것을 못하게 되고는 술만 마시는 날이 많았다. 아버지는 땅을 팔고 다른 데 아파트를 지어 집세를 받고 살려 했다. 좋지는 않아도 아파트를 지었다. 그전에 다지마는 중학교를 옮겼는데 거기에서 괴롭힘 당했다. 괴롭힘 당하던 다지마는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을 모두 죽이고 싶다 생각한다. 그 아이들을 죽이기 전에 다지마는 구라모치를 떠올렸다.

 

 중학생 때 다지마는 아이들을 죽이지 않고 독약으로 겁만 주고 끝났다. 그때 다지마가 구라모치를 떠올린 까닭은 구라모치가 초등학생 때 다지마를 속여서다. 구라모치가 다지마를 내기 오목두는 곳에 데리고 갔는데 구라모치와 내기 오목하는 사람은 아는 사이로 구라모치는 바람잡이였다. 그것뿐 아니라 구라모치는 다지마한테 저주의 엽서가 가게 했다. 구라모치는 왜 다지마한테 그런 걸 보냈을까. 다지마네 집이 잘살아서 그것을 부러워한 건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초등학생 때는 그랬다 해도 나중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도 구라모치는 다지마가 괜찮게 살려 할 때마다 나타나서 다지마를 안 좋은 일에 빠뜨렸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다지마가 아르바이트 하는 곳에 나타나서 다지마가 좋아하는 여자아이 요코를 가로채고, 요코는 몇달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다지마 아버지가 술집 여자 시마코 때문에 빚을 지고 아파트를 팔게 되고 다지마는 여러 친척집에 얹혀 살았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다지마는 기숙사가 있는 회사에 다니게 되는데, 구라모치가 한번 만나자고 한다. 이때 다지마가 구라모치를 만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싫어하고 미워하면서 왜 만났을까. 그 회사에서 다지마를 괴롭히는 선배가 있었다. 어쩐지 중학생 때와 비슷하구나. 다지마가 구라모치를 만나려 한 건 요코 때문이었지만. 다지마가 구라모치한테 요코 이야기를 했을 때 구라모치는 요코를 나쁘게 말했다. 다지마는 거짓말이다 하면서도 그 말 조금 믿었나 보다. 구라모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해야겠다.

 

 구라모치는 다지마한테 자신이 하는 일을 도와달라고 했다. 그 일은 다단계 회사 바람잡이였다. 초등학생 때는 구라모치가 다지마를 속였는데, 나중에는 안 좋은 일에 끌어들이다니. 다지마가 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다단계 회사 설명회에 자신을 괴롭히는 회사 선배가 있어서 다지마는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하고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의지할 부모가 없는 다지마는 구라모치한테 도움받지 않겠다 마음먹었는데, 구라모치와 살기로 한다. 다지마가 구라모치와 살기로 한 건 구라모치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서였다. 함께 살아도 구라모치는 자기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니 그것보다 다지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겠다. 다지마가 쉽게 일을 구하지 못하자 구라모치가 또 자기하고 같이 일하자 한다. 거기도 사기 치는 회사였다. 구라모치는 잘도 그런 일을 한다. 구라모치는 남을 속이는 일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다지마는 남을 속이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바로 그만두지 못했다. 그거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 거겠지. 때가 되자 윗사람은 돈을 가지고 달아났다. 다지마는 경찰한테 조사를 받지만 자신은 아무것도 몰랐다 말한다.

 

 몇해 동안 다지마는 가구 옮기는 일에서 파는 일을 했다. 이제 자리잡고 살겠다 했는데, 구라모치가 또 나타났다. 구라모치는 다지마가 조금 마음에 둔 여자와 결혼했다. 그저 서로가 자기가 하는 일 하고 살았다면 괜찮았을 텐데, 그때 다지마는 구라모치를 죽일 기회를 엿보았다. 그것 때문에 구라모치를 자꾸 만나다 덫에 걸린다. 이번에는 여자였다. 다지마는 왜 몰랐을까. 책을 읽는 나도 그건 다 구라모치가 꾸민 일이라는 거 알겠던데. 다지마는 결혼에 실패했다. 다지마는 자기 삶이 엉망진장이 된 건 다 구라모치 탓이다 여겼다. 구라모치 때문에 죽은 건 요코만이 아니다. 그걸 생각하고 다지마는 구라모치를 죽이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먼저 구라모치를 칼로 찔렀다. 구라모치는 목숨을 건졌지만 식물인간이 되었다. 식물인간이 되는 걸로 하다니. 다지마는 어떻게 마음을 풀어야 할까. 구라모치가 식물인간이 되었다고 했을 때 그거 정말일까 했다. 그것도 꾸민 거 아니야 생각하게 했는데.

 

 이것저것 많이 말했다. 구라모치가 다지마를 어떻게 힘들게 했는지 제대로 말하지 못한 것 같다. 책을 보면서 구라모치가 속인 사람이 다지마뿐일까 했는데, 아니 속였다고 말하는 건 잘못된 건가. 구라모치는 말을 잘했다. 다지마가 구라모치를 처음 죽이려고 한 중학생 때는 자신이 다지마한테 저주의 엽서를 보냈다고 말하고 미안하다 했다. 다지마가 구라모치를 죽이려고 마음먹고 만날 때마다 다지마는 구라모치 말을 듣고 마음을 접었다. 다지마는 자신한테 뭐가 모자라서 구라모치를 죽이지 못할까 생각했다. 말을 들으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다지마가 구라모치 때문에 힘들었지만, 다지마 가까이에 자주 있었던 것도 구라모치였다. 미워하면서도 구라모치하고 인연을 끊지 못한 건 다지마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렇게 만든 건 구라모치지만. 구라모치는 성실하게 일하는 것을 우습게 여겼다. 집이 두부를 팔았는데 초등학생 때부터 자신은 돈을 아주 많이 벌 거다 했다. 그게 사기라니. 남을 속이고 그 돈을 빼앗는 건 좋은 일이 아닌데. 구라모치한테는 양심이 빠져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사람을 소시오패스라고 하던가. 처음에는 사이코패슨가 했는데 소시오패스에 가깝겠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 소설 썼을 때는 소시오패스라는 말 알려지지 않았던 것 같다. 구라모치 마음은 잘 모르겠다. 왜 다지마가 평범하게 사는 걸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는지. 다지마가 돈을 많이 번 것도 아닌데, 구라모치는 다지마를 친구라 생각해도 자신보다 행복해지는 건 볼 수 없었나보다. 그건 진짜 친구가 아닌데. 구라모치는 친구라는 것을 좀 다르게 생각한 것 같다. 구라모치가 그렇게 된 건 어렸을 때 만난 사람 때문일지도.

 

 초등학생 때 할머니가 죽고 사람의 죽음을 생각하고 사람을 죽이는 건 어떤 걸까를 생각한 다지마도 좀 이상했지만 그건 이상한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다지마는 이런저런 일을 겪고 평범하게 살려고 했는데. 구라모치는 다지마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알아본 걸까. 구라모치가 다지마 앞에 나타난 건 우연처럼 보이지만 우연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사는 것도 힘들 텐데. 구라모치는 다지마가 자신을 죽이고 싶어하고 몇번이나 죽이려다 그만둔 걸 알았는지. 두 사람이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 테지만 그랬다면 다른 이야기가 됐겠다. 나름 재미있게 봤는데 뭔가 모자란 느낌이 드는 건 왤까. 비뚤어진 구라모치 마음 때문일지도. 구라모치는 다지마를 자신이 바라는대로 만들고는 ‘그건 네가 결정한 거다’ 했다. 구라모치는 자신이 빠져나갈 길을 늘 만들어두었다. 구라모치가 다지마를 힘들게 만든 건 어렸을 때 느낀 질투로 정리할 수 있을지. 구라모치 말을 듣는다 해도 제대로 알 수 없을 것 같고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지도 않았겠다. 소설이어서 이렇게 쓴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니 어딘가에는 구라모치 같은 사람 있을까.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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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의 끝 문학과지성 시인선 86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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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여름이 오기 전부터 걱정했습니다. 지난해만큼 더운 여름일 것 같아서. 여름도 아닌데 여름 같았던 날도 있었습니다. 다행스럽다 해야 할지 아주 더운 날이 오래 이어지지 않았어요. 이건 저만 그렇게 느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별로 덥지 않은데 라디오 방송에서 ‘오늘도 참 덥습니다‘ 해서 바깥은 더운가 보다 했어요. 본래 저는 움직이지 않으면 열이 많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주 더울 때는 저도 지내기 힘듭니다. 어렸을 때는 여름 좋아했는데, 언젠가 더워서 잠자기 힘들었던 때가 있었어요. 그 뒤로 여름을 좋아하지 않게 됐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덥습니다. 여름에 바람 하나 불지 않는 길을 걸으면 숨이 막힙니다. 여름에는 바람이 불어도 시원하지 않지요. 그래도 바람이 부는 게 더 낫습니다. 한여름 한낮에는 걷지 않는 게 좋겠지요.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어도 엄청 더울 때 걸으면 더위 먹을 겁니다.

 

 제가 이 시집을 처음 본 건 2003년이에요. 아니 어쩌면 그때 시집을 사고 바로 펴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딘가에서 이성복 시집 《그 여름의 끝》과 《남해 금산》 이야기를 보고 관심을 가졌어요. 《남해 금산》이 두번째고 이게 세번째더군요. 첫번째 시집도 예전에 봤을 거예요. 그 시집이 어땠는지 생각은 나지 않지만. 언젠가 그것도 다시 볼 날이 올지 오지 않을지. 이건 전부터 다시 봐야지 생각하다가 이제야 봤습니다. 오래전에 제가 어떻게 봤는지 떠오르지 않지만, 이번에 볼 때는 제가 생각한 것과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예전에 어떻게 봤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데. 이 책 날개에는 ‘연애시말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연애시에는 달콤하고 기분 좋은 말을 쓸 것 같기도 한데 여기 담긴 시에는 그런 말은 별로 없어요. 무거운 느낌입니다. 이건 제 느낌일 뿐이지만(이런 말 가끔 하는군요). 무겁기는 해도 그게 아주 안 좋은 건 아니예요. 연애시말법이라 해서 이성을 생각하는 것만은 아니겠지요. 그런 것 같기도 하면서 아닌 것 같기도 해요. 하나만 생각해도 괜찮을 텐데, 무언가 다른 뜻이 있을지도 몰라 했습니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가장 더러운 진창과 사람들 손이 닿지 않는 정결한 나무들이 있다 세상에는 그것들이 모두 다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함께 있지 않아서 일부러 찾아가야 한다 그것들 사이에 찾아야 할 길이 있고 시간이 있다

 

-<산>, 24쪽

 

 

 

 섬과 섬이 만나 자식을 낳았다 끝없이 너른 바다를 자식 섬은 떠돌았다 어미 섬과 아비 섬을 원망하면서…… 떠돌며 만난 섬들이 저마다 쓸쓸했고 쓸쓸함의 정다움을 처음 알았을 때 서둘러, 서둘러 자식 섬은 돌아왔다 어미 섬과 아비 섬이 가라앉은 뒤였다

 

-<섬>, 55쪽

 

 

 

 시가 어떻다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시는 자유롭게 봐도 괜찮겠지요. 시는 그것을 보는 사람 마음에 따라 보일 것 같기도 합니다.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나도 그랬지 할 테고, 경험이 없다 해도 그것 자체로 봐도 괜찮겠지요. 숲, 나무, 강……. 이런 제목이 붙은 시가 좀 있습니다. 섬 하면 정현종 시가 생각나기도 하는데, 이성복도 <섬>이라는 시를 썼네요. 어쩐지 쓸쓸하게 보이는. 시집 보고 쓸쓸함이 느껴진다는 말 자주 했군요. 실제 그런 걸 어쩌겠습니까. 부모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식이 부모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면 좋겠지만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식이 부모가 되면 조금 안다고는 하지만. 사람은 부모뿐 아니라 다른 사람 마음을 다 알기는 어렵지요. 남의 마음을 다 알 수 없으니 몰라도 된다 생각하면 안 되겠습니다. 상상하면 되잖아요.

 

 

 

날 버리시면 어쩌나 생각진 않지만

이제나저제나 당신 오는 곳만 바라봅니다

나는 팔도 다리도 없어 당신에게 가지 못하고

당신에게 드릴 말씀 전해줄 친구도 없으니

오다가다 당신은 나를 잊으셨겠지요

당신을 보고 싶어도 나는 갈 수 없지만

당신이 원하시면 언제든 오셔요

당신이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다 가셔요

나는 팔도 다리도 없으니 당신을 잡을 수 없고

잡을 힘도 마음도 내겐 없답니다

날 버리시면 어쩌나 생각진 않지만

이제나저제나 당신 오는 곳만 바라보니

첩첩 가로누운 산들이 눈사태처럼 쏟아집니다

 

-<기다림>, 84쪽

 

 

 

 예전에 이 시집 봤을 때 이 시가 좋았어요. 그냥. 그때는 그저 누군가를 기다리는가보다 했어요.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찾아오길. 그때는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번에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게 사람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앞에서 나무를 봐선지, 나무가 사람을 기다리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성복 시집에는 《아, 입이 없는 것들》이 있어요. 이 시와 그 시집 상관없지 않겠군요. 그 시집에는 시집 제목과 같은 시가 있을지. 그 시집 생각하니 그것도 언젠가 다시 만나고 싶네요. 저한테 이성복 시집이 여러 권 있다니 신기하네요. 예전에 시 잘 몰라도 그냥 봐서 그런 것 같습니다. 잘 모르고 보는 게 나은 것 같기도 하고 자꾸 보다 잘 읽는 게 나은 것 같기도 하네요. 제가 앞으로 시를 봐도 그것을 잘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거 잘 못해도 괜찮겠지요. 시를 만나고 느끼기만 해도 좋겠습니다.

 

 아주 더운 한여름 한낮에는 시간이 가지 않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런 느낌 신기하기도 합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때도 시간은 흐르고 여름도 갑니다. 여름이 끝나갈 때는 여름이 가는 것도 조금 아쉽겠지요. 여름이 끝날 때쯤 이 시집 한번 만나도 좋겠습니다. 늘 똑같은 것 같아도 사람은 철이 바뀌고 해가 갈 때마다 조금씩 자라겠지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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