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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마크하기 권지예, <4월의 물고기>, 나쁜 소설. (추천3 댓글0 먼댓글0)
<4월의 물고기>
201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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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물고기 
권지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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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좋은 문장이란 어떤 것인지 아직 잘 모른다. 그것을 안다면 글쓰기가 이렇게까지 괴롭지도 않을 것이다. 좋은 문장은 커녕 좋은 단어 하나 선택하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해 쩔쩔 매느라, 손바닥만한 문단 한 단락을 쓰는데 몇 시간, 어떤 때는 며칠씩이나 걸리기도 한다. 그렇게 오랜 시간 고민해 겨우 써 놓으면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잘 쓴 좋은 문장이 되어있는 것 같지도 않다. 순식간에 날려 쓴 한 문장이든, 몇 시간 고민해서 쓴 문장이든 여전히 거지같다. 나도 아마 타고난 '언치'인가 보다. 말문이 트이고 한글을 사용한 지 이십 년이 다 되어 가는데, 이십 년이면 그동안 뭐가 되었든 꾸준히만 했으면 달인 소리를 듣게 되었을 만도 한데, 아직도 언치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음치라고 해서 듣기 좋은 음악과 그렇지 않은 음악을 구분해 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요리를 못 한다고 해서 제 입맛까지 없는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이십여 년 째 언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좋은 문장의 조건이나 작법까지는 잘 몰라도 그것을 느낄 수는 있다. 읽고 말하고 쓰기 시작한지가 몇 년 인데 그것마저도 못하면 그건 언치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장애 수준이지 싶다. 다행히도 장애 수준으로 감각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서, 까닭까지 자세히 들춰 낼 수는 없더라도 좋은 문장과 나쁜 문장을 어느 정도 구분해 낼 수는 있다. 그렇다 보니 이제는 책을 읽더라도 조금만 읽어 보면 감이 온다. 아무래도 가장 많이 읽는 문학- 소설류의 경우엔 특히 그렇다. 끝까지 읽어도 괜찮을 좋은 소설인지, 읽어봐야 시간만 아까울 나쁜 소설인지, 앞 부분 몇 장만 읽어보면 금새 판가름이 난다. 물론, 이것은 온전히 취향의 문제다. 남들 다 맛있다는 음식이 내 입맛엔 별로일 수도 있지 않나. 좋고 나쁨의 구분은 내 입맛에 그렇다는 것이지,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할 만한 것은 아니다. 동의받아야 할 것도 아니다. 굳이 좋고 나쁨을 입 밖으로 내어 말하는 것은 단지 내 말 할 권리를 적절히 누리고 싶어 그리하는 것일 뿐이며, 강요할 생각도 동의할 생각도 없지만 공감을 받거나 적어도 대화를 하고 싶은 욕구 정도는 있다. 모든 취향은 도의적으로 어긋나지만 않든다면 마땅히 존중해주어야 하는 것이므로, 언치 주제에 감히 누가 누굴 판단하냐며 욕을 하더라도 그건 당신의 취향이니 과하지만 않다면 괜찮다. 

권지예가 문단이나 대중에게 어떤 평가를 받고 있으며,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 지는 잘 모르겠다. 잘 쓰는 작가라는 소문은 들어보지 못한 것 같은데, 꽤 많은 작품을 출간했고 이상문학상과 동인문학상에서의 수상 경력도 있다. 이제 보니 그녀는 이번 이상문학상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었다. 제법 인지도있는 작가인가 보다. 나도 예전부터 그녀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작품도 하나 읽어 봤던 것 같은데 어떤 작품이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보았다는 것, 단편집이였으며, 끝까지 다 읽지 못하고 중간에 반납했다는 것 정도만 기억이 난다. 왜 그랬었나 모르겠는데, <4월의 물고기>를 읽다 보니 그 이유가 대충 짐작이 된다. 읽을 시간이 없었다든가 하는 이유는 분명 아니였을 것이고, '안'읽은 것도 아니였을 것이며, 아마 '못' 읽었을 것이다. 권지예의 글은 도저히 나와는 맞지 않는다. <4월의 물고기>만 해도 끝까지 다 읽느라 무진 애를 먹었다. 읽고 있으면 뭐 이런 글이 있나 싶어 화가 나기도 했고, 다 읽고 나서는 소설을 읽는데 들어간 시간이 아까워 화가 나기도 했다. '뭐 이런 글'이라지만 어디가 어떻게 나쁜지 요목조목 짚어 낼 능력이 없으니 그것이 답답해 다시 화가 난다. 말했듯, 맛이나 볼 수 있는게 전부지 그 맛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디가 어떻게 잘 되었는지, 잘 못 되었는지 짚어내기는 아직 어렵다. 그러나 확실하게 나쁘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그녀의 문장이다. 가령 이런 문장들. 

1) 영화관 안은 럭셔리했다. 10p
2) 서인의 경우에 쿨한 척하는 건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위장술이다. 11p
3) "오늘은 낚싯대 접어부러야 되겠네. 입질이 영 신통치 않어." 67p
4) '세렌디피티'라는 어감이 왠지 좋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아까 이곳까지 무작정 차를 몰고 오면서 계속 마음속에 떠오르던 문장이었다. 67p 

1)은 소설이 시작한 지 세 페이지만에 나오는 문장이다. 보는 순간 식겁했다. 깜짝 놀랐다. 손발이 오그라든다. 영화관 안의 분위기를 '럭셔리' 한 단어로 일축해 놓은 것은 언어 선택에 대한 작가의 대담성이 돋보이는 부분이라 해 두자. '고급스러웠다'도 아닌 '럭셔리'인 것은 이대나온 여자라서 그렇다 하자. 하지만 나는 감각이 작가보다 너무 뒤떨어져 있어서인지, 소설가가 저런 식의 문장을 쓸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아예 해 보질 못했다. 군더더기 없이 주어와 서술어로만 이루어진 이 짧은 문장이 너무도 뜻밖이라서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어디가 어떻게 나쁜지를 고민할 것도 없이, 2 + 2는 5가 아닌 것처럼 이것은 어쨌거나 아닌, 그냥 원래 나쁜 문장이지 싶다. 도대체 왜 저렇게 썼을까. 이 문장을 보고 무작정 나쁘다 하는 것은 단지 내 취향이 별나서일까.
별난 취향 탓에 소설을 읽기 시작하자 마자 저 문장에서 걸려 한 번 손발이 오그라들고 나니, 그 이후로는 계속해서 거부감만 든다. 3)같은 경우에는 '부러야' 다음이 '되겄네'가 아닌 '되겠네'라는 것 만으로도 이건 거의 참사 수준이 아닌가 싶었고, 따로 어느 한 부분을 발췌할 것도 없이 인물들간의 대화가 나올 때마다 밑도 끝도 없는 어색함에 마치 개화기의 신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이었다.
누군가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서 갓 튀어나온듯한 2)같은 문장들을 읽을 때 드는 민망함도 소설에 대한 거부감을 한층 배가시켜주었다. '싸이월드스러운' 문장들만 그렇게 민망한 것도 아니다. 4)같은 문장은 저 문장만 따로 떼어놓고 본다면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문맥 속에서는 특정 작가나 작품의 감수성을 그대로 가져와 써 놓은 것처럼 읽혀 민망스럽다. 4)의 부분뿐만 아니라 저런 식으로 감수성을 도용해 놓은 듯한 부분이 자주 등장해서, 여기는 윤대녕같고, 여기는 또 누구같다 싶은 기분이 여러번 들었는데 이것도 단지 내가 너무 부정적인 쪽으로만 과민해 있어서였을까. 

100% 언어로만 소통해야 하는 문학에서 이미 문장으로 승부를 내지 못했는데, 내용이 아무리 좋다 한들 제대로 된 소설이 될 수 있을 리 없다. 게다가 <4월의 물고기는> 내용적인 층면에서도 과한 무리수를 두었다. "근본은 애절한 러브스토리지만, 미스터리 스릴러의 장르적 요소를 많이 가미했다('작가의 말' 중에서)."라는데, '스릴러'라고 하니 혹시라도 아직 소설을 읽지 않았으나 앞으로 읽을 독자들을 위해 어떤 이야기인지는 말하지 않겠다. 별 것 없이 진부하고 뻔한 이야기를 뻔한 방식으로 풀어내지 않았나 싶다. '스릴러'에 기대를 걸며 끝까지 힘겹게 다 읽었으나, 마치, 여배우의 노출이 논란이 되었으며 호화 캐스팅과 개봉 전 요란한 마케팅으로 화제가 되었으나 막상 개봉하고 보니 별 것 없는, 관람 전의 기대와 티켓값이 아까운 영화를 본 듯한 심정이었다. 

이 거부감이 유독 나에게만 드는 느낌일 수도 있다. 작가의 인지도나 수상경력따위를 생각하면 그럴 가능성이 상당히 높을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내 입맛에 권지예는 최악이며, 앞으로 다시 권지예 작가의 책을 읽을 일은 아마 없을 듯 하다. 차라리 킬링타임용 블록버스터를 보는 편이 훨씬 더 나을 것 같다. 그건 재밌기라도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