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사슴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1998년 8월
평점 :
절판


한승원 작가에 빠져서 그의 책들을 읽다가 '한강'이란 작가를 알게 되었고 또 그녀의 책에 빠져서 몇 권의 책을 읽었고 이 책 또한 읽어 보리라 구매해 놓고 미루다 읽게 되었다. 그녀의 첫 장편소설,그런데 표지의 소개처럼 친숙하면서도 왠지 낯설어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 않고 자꾸만 같은 곳을 반복하고 있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더 오기를 부려 읽어 보았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녀의 필력은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이 정말 첫 장편이라니 여리여리한 그녀의 모습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듯한 이 거대함은 무엇인지.소설을 잡고 나서부터 검은 사슴 한마리가 내 영혼에 각인된 듯 하다.

잡지사 기자인 인영에게 명윤은 의선을 찾으러 가자고 한다.의선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은 거의 없다.그가 한 이야기 속에서 겨우 알아 낸 것은 탄광이 있던 황곡인가 하는 지명과 연골등 몇 안되는 단어들밖에 없다는 것이다. 의선은 인영이 다니는 잡지사 아래층 제약회사에서 일하던 아가씨인데 어느 날 갑자기 대로변에서 옷을 모두 벗어 버리고 거리를 달리던 일이 있어 모두에게 회자되던 아가씨이다.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인영의 집앞에 나타나 인영은 그녀와 동거아닌 동거를 하게 되었지만 그녀에 대하여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인영이 아끼던 바다사진까지 몽땅 태워 버렸다.그리고 그날 목욕탕에 가겠다고 나서고는 없어진 것이다. 어디로 갔을까 기억도 흐리고 정신마져 온전하지 못한 그녀가 갈 곳이란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그런 의선을 명윤은 왜 좋아했는지.

인영은 겨우 그들이 가야 할 곳의 사진작가와 이야기 구성을 대충 짜 놓고는 의선을 찾아 보기로 한다. 탄광이 있었지만 지금은 폐허가 된 곳에서 그들이 마주하게 될 것은 무엇일까.출발부터 명윤은 무척 흔들린다. 가진 것도 없어 탈탈 털어서 가지만 기차를 타는 것도 무서워 하고 모든 것을 무척이나 불안하게 만든다. 그런면에서 인영은 강단이 있다고 할까. 그런 인영과 함께 하니 여행은 아니 의선을 찾아 나서는 취재는 아무 탈 없이 잘 끝날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그게 아니다. 산을 넘으니 다시 더 거대한 산을 만나는 것처럼 더 큰 난관이 그들을 가로막고 있듯이 무척 힘들게 한다. 숨을 들이 마시고는 언제 내쉬어야 할지 모를 것처럼 숨 막히게 만드는 이야기의 전개,그러면서 빠져들어 읽게 만든다.

의선을 찾아 나선 길은 그들이 잃어 버렸던 '검은 사슴'을 만나는 길처럼 그들에게는 과거 자신의 '나'와 만나는 시간과 같다. 실체는 존재하지만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모르는 것처럼 언제 어디서 검은 사슴을 만날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이 터널을 꼭 지나야만 한다. 광부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검은 사슴'에 대한 전설,광부를 만나 햇빛이 쏟아지는 지상으로 나갈지 모른다는 희망에 자신의 이빨과 뿔을 주지만 어두운 땅 속에서 죽어가야만 하는 검은 사슴,그것은 과거 자신의 '아픔'이다. 명윤은 가난 때문에 막내 동생 명아가 집을 나가게 되고 동생을 찾으러 다녔던 이야기가 전개 되며 인영은 엄마와 언니와 살았는데 집안의 가장이나 다름없던 모든 것을 가졌다고 생각되었던 언니가 제주도 여행에서 친구와 자신의 생명을 바꾸면서 그녀의 삶 또한 변하게 되었다.과거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그들에겐 의선이라는 인물은 그들에게는 과거이며 현재이고 미래다.그래서 그녀를 꼭 찾아야 되는 이유다.

그저 밖으로 끄집어내지 않고 어두운 굴 속에 그대로 두면 언젠가는 서서히 죽어갈 검은 사슴처럼 그들의 과거 또한 그대로 두면 언젠가는 그들의 가슴 속에서 사라져 아니 지워져 버릴 것이다. 스스로 묻어 두는 것이겠지만.하지만 그들은 방치해 두지 않고 황곡이라는 이제는 폐허가 된 탄광에서 그들의 과거를 들추어 내어 한번 더 보듬어 준다.연골의 의선이 찾아 왔던 그의 아버지 집처럼 그들은 과거 아픔에게 화해주를 건낸다.막장의 광부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아니 좀더 살아 있는 사진을 원했던 장처럼 과거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날 것 그대로 꺼내어 고스란히 아픔으로 겪어 내며 이겨낸다. 모진 환경 속에서 지독한 감기로 일어나지 못할 것만 같았던 명윤도 일어났고 기차 사고로 모든 것을 날렸어도 인영은 건재하다.살아가면서 검은 사슴 같은 과거의 아픔 한가지 없는 이가 있을까.그 아픔을 간직하고 있기에 더 밝은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게 되는 이야기다.

인영과 명윤이 찾아 다녔던 의선의 존재는 간혹 등장을 한다. 그녀의 시선에서 마주하는 인영과 명윤의 이야기도 등장을 하고 그녀가 어디엔가는 존재함을 간간이 나타내며 그녀가 없어도 그들의 과거와 마주했던 황곡여행 후의 그들의 삶은 희망적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고 본다. 의선이라는 존재는 어쩌면 우리 의식속의 어떤 존재나 생각이라 할 수도 있다. 의선을 만나기 전과 후,검은 사슴의 존재를 알기 전에는 몰랐던 과거속에 잠들어 있던 것들과 마주하는 순간 검은 사슴이 누리지 못했던 햇빛이 있는 희망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더욱 강하게 느끼게 해주는 이야기를 작가는 여리면서도 강하고 때로는 소름이 돋게 표현해 낸다. 탄광의 이야기는 실감나면서도 그녀와 함께 호흡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잘 표현해 놓았다.사진을 좋아하는 작가라 사진작가에 대한 이야기도 능숙한데 탄광에 대한 자료나 이야기도 사전답사가 있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그려 놓아 철저한 준비가 밑바탕이 된 소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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