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활의 길잡이, 일명 생길 16페이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친구가 정직하게 행동해서 감동받았던 일을 적어보라. 언제, 어디서, 어떻게 감동을 받았는가, 그리고 정직하게 행동한 친구에게 편지를 써 보자.

딸롱이는 목요일부터 고민하다가 답을 찾지 못 하고, 결국 주일날 저녁에서야 생길책을 들고 부엌에 나타났다.

딸롱이 : 엄마, 나 이거, 도대체 못 하겠어~

(처음에는 우아하게 시작한다.)

나 : 응, 그래? 어디보자~~ 이건 ‘정직하게 행동한 친구’에 대한 거네. 그런 경우 없었어?

딸롱이 : 응, 없었어.

나 : 잘 생각해 봐~ 

딸롱이 : 없었다니까!

그럼 어떻게 하지? 다시 한 번 문제를 읽어본다. ‘정직하게 행동한 친구‘에 대한 이야기, 친구가 정직하게 행동해서 감동받은 이야기를 써 보자. 아, 이런 경우가. 이런 경우가 있긴 할텐데. 시간은 늦었고, 종일 뛰어다녀 피곤한 딸롱이는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딸롱이 : 아, 진짜 이런 경우가 없었다니까!

나 : 그럼, 이건 어때? 다른 애 이야기. 뭐, 예를 들면, 할머니가 동생이 없을 때, 어떤 아이에게 돈 2만원을 주시면서, 동생과 나눠가지라고 했는데, 돈을 몽땅 갖고 싶었지만, 정직하게 이야기하고 동생에게 돈을 나눠주었다. 뭐, 그런 이야기~

딸롱이 : 그건 지어낸 이야기잖아.

나 : 그렇지, 지어낸 얘기지. 그래도, 있을 수 있는 일이잖아. 있음직한 이야기. 어떨 때는 지어낸 이야기가 사실에 더 가까울 수도 있어.

딸롱이 : 그건, 안 돼. 아, 어떻게 해?

(남편 출현)

남편 : **이 숙제?

(생길 16쪽을 읽고)

남편 : 이런 경우 없었어?

딸롱이 : 이런 경우가 없었다니까. 친구가 정직하게 행동한 경우가!

남편 : 친구 아니면, 뭐, 동생이 정직하게 행동한 경우라던지...

딸롱이 : 아, 그러니까, 이거 빨리 해야 되는데!

나 : 그런 경우가 없었다면, 원래는, 사실대로 해야지. 친구가 정직하게 행동해서 감동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딸롱이 : 근데, 선생님이 숙제 꼭 해오라고 하셨단 말이야!

나 : 아니면, 이야기를 지어내서 숙제를 하던지.

딸롱이 : 그러면 안 되고!!!

남편 : **아, 숙제는 원래 네가 하는 거야!

딸롱이 : 잉~~~

(생길책을 들고 자기방으로 퇴장)

정직하게 숙제를 하자면, 그런 경우가 없다고 해야하고, 숙제를 해 가자면, 정직하지 않게 ‘이야기를 지어’ 내야 한다. 어떻게 해야할까?

2. 어디까지가 지어낸 이야기?

움베르트 에코의 책이다. 기대가 큰 만큼, 나도 긴장해서 읽기 시작한다.

 

시모니니, 주요 등장인물인 시모니니가 자기소개를 시작하자마자 유대인에 대한 미움과 증오로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운다. 어떡하려고 이러나 싶더니만, 그 다음은 독일인이다.

독일인 한 명이 평균적으로 생산하는 인분의 양은 프랑스인에 비해 갑절이나 많다. 뇌 기능을 저하시킬 만큼 장 기능이 지나치게 활발하다는 점, 그게 그들의 생리학적 열등성을 입증한다. ... 어디 그뿐이랴, 지난 몇 세기 동안에도 프랑스에서 알자스 지방을 거쳐 독일로 가는 여행자는 길가에 누어 놓은 대변이 보통 사람의 똥자루보다 왕청 굵은 것을 보면 자기가 국경을 넘었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19쪽)

대략 이런 식이다. 독일인 다음에는 프랑스인, 그 다음은 이탈리아인, 사제들, 예수회 신부들, 그리고 여자들. 그에게는 증오의 대상이 이렇듯 많다. 할아버지로부터 학습된 타인에 대한 증오는 어느덧 자신의 것이 된다. 마음 깊이 새겨진 증오는 편견을 가져 오고, 편견을 가지고 바라본 대상에게서는 더 큰 증오가 느껴진다.

증오의 대상이 많은 주인공이 사랑해 마지않는 대상이 딱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산해진미 진수성찬, 맛있게 잘 차려진 음식이다.

그가 주문한 음식은 바르뷔 소스 올랑데즈(네덜란드 소스를 친 가자미 구이), 카스롤 드 리알라 툴루즈(툴루즈식 냄비 쌀밥), 아스피크 드 필레 드 라페로 앙 쇼프루아 (어린 토끼 등심살 냉육 젤리), 트뤼프 오 샹파뉴 (샴페인을 넣은 송로), 푸딩 다브리코 알라 베니시엔 (베네치아식 살구 푸딩), 코르베유 드 프뤼 프레 (생과일 바구니), 콩포트 드 페슈 에 다나나스(복숭아, 파일애플 설탕 졸임)였다. (321쪽)

간단히 먹어도 이 정도다.

어떤 음식을 주문하느냐와 더불어 많이 소개되는 장면은 음식의 조리 과정이다. 내 관심을 끈 건 (먹고 싶다는 게 아니라, 관심을 끈 건) 바다거북 수프다. 바다거북을 잡아 손질하고, 내장을 정리하는 과정 및 조리과정이 아주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이 바다거북 요리법은 뒤마의 유작 『요리 대사전』에 나오는 영미식 바다거북 수프와 프랑스식 바다거북 수프의 조리법을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고 절충한 제3의 레시피라 할 것이다. (210쪽)

그러니까, 소개되고 있는 바다거북 수프 요리법은 실제 두 가지의 조리법이 취합 및 새롭게 구성된 에코만의 레시피라 할 수 있겠다. 어떤 조리법은 요리책 일부를 그대로 옮긴 듯 하다. 당연히 더 사실적으로, 더 객관적으로 느껴진다.

나는 다시 도서관에 갔다. 이번에는 토리노가 아니라 파리에 있는 도서관에서 프라하의 유대인 묘지를 그린 다른 판화들을 찾아냈다. ... 나는 그 판화들 덕분에 마녀 집회를 연상시키는 그런 분위기를 활용할 수 있으리라 확신하게 되었다. 나는 거기에 유대교 랍비들이 모여 있는 광경을 상상했다. (357쪽)

당연한 얘기지만, 나는 그 무시무시한 밤의 집회를 목격한 사람의 구두 증언을 기록한다는 식으로 문서를 작성할 생각이었다. 그 증인은 신원이 밝혀지면 사형을 면할 수 없으므로 부득불 익명을 유지해야 하는 사람으로 소개될 것이었다. 나는 그가 밤중에 랍비로 변복하고 예정된 의식이 시작되기 전에 묘지로 들어가는 데 성공한 것으로 상상하고 그의 눈으로 본 집회 장면을 머릿 속에 그려 보았다. (358쪽)

문서 조작 전문가인 시모니니가 묘지에서 이루어진 유대인 비밀 모임을 상상하는 장면이다. 도서관에서 찾은 판화를 보며 음울한 분위기를 상상하고, 가공의 증인을 통해 집회 장면을 그려낸다. 사실이 아니지만, 사실인 것처럼, 실재했던 일이 아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던 것처럼, 눈에 보일듯이 상상하고 그려낸다.

에코는 시모니니, 달라 피콜라 신부 그리고 화자의 입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기 때문에, 독자는 그들의 이야기를 취합해 스스로 전체의 이야기를 재구성해야 한다. 소설이 쓰여지고 있는 당시의 역사적, 사회적, 종교적 배경이 전무한 나로서는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시모니니와 달라 피콜라가 같은 사람이다’라고 쉽게 가정해 버리고 편하게 책을 읽어가다가 그만.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여기에 와서 당신의 일기를 읽어 본즉, 당신은 달라 피콜라 신부라는 사람을 만났다고 하는데, 당신이 묘사하고 있는 그 사람은 분명코 나보다 나이가 많고 게다가 꼽추이기도 하구려. 나는 당신 방에 있는 거울 - 내 방에는 성직자의 삶에 걸맞게 거울이 없소 - 앞에 가서 내 모습을 비춰 보았거니와, 자기 자랑에 빠져들고 싶지는 않지만 이 점만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으니, 나는 용모가 반듯하고 사팔눈을 뜨지도 않으며 앞니가 밖으로 벋지도 않았소. (375쪽)

이게 뭐야? 달라 피콜라 신부는 다른 사람인 거야? 그렇다면?! 엥? @#$%&*?

이제부터는 누구의 말도 믿을 수가 없다. 시모니니의 말도, 달라 피콜라의 말도, 또 다른 화자의 말도. 누구의 말이 진짜인지 도통 알 수가 없고, 누가 실제 인물인지도 알 수 없다. 하긴, 주인공들도 자기가 누군인지 모르는데... 아니지, 그래도 나는 소설 밖에 있는 사람인데, 나는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누가 진짜인 걸까? 어디까지가 진짜일까? 어디까지가 지어낸 이야기일까?

3. 딸롱이 성격상 숙제는 해 가야 해서

남편에게 눈짓을 한 번 준 뒤, 딸롱이의 방으로 들어갔다. 딸롱이는 울고 있었다.

나 : **아, 엄마가 생각해 보니까, 이런 경우가 있었던 거 같애. 그 때, ##가 처음 유치원에 갔을 때, 유치원 물건인가 친구 장난감인가를 집에 가져왔거든. 그래서, 엄마가 설명해주고, ##이가 그 다음날 유치원에 다시 가지고 갔던 일 말이야.

딸롱이 :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날 쳐다보며) 그거 진짜 있었던 일이야?

나 : 그럼~~~ 진짜 있던 일이지~~

딸롱이 : 언제?

나 : ##이가 여섯 살 때, 처음 유치원 갔을 때.

딸롱이 : (생길 16페이지 ‘언제’란에 ‘2011년’이라고 적어넣는다.)

고백하자면, 나는 그런 일이 있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뭐, 그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생길 숙제는 이렇게 끝나고, <프라하의 묘지 1>도 이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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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3-03-28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딸은 가끔 독서록과 일기에 사실과 다른(살짝 과장하거나 왜곡된) 내용을 넣더라구요.
뭐 기억은 자주 상상력과 뒤섞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단발머리 2013-03-29 06:38   좋아요 0 | URL
아... 그렇죠.

하긴 저도 첫애가 다섯살때 맨날 상상속의 친구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 사실적이어서요.
책 찾아봤더니, 그건 거짓말이 아니라, 상상을 현실과 똑같이 받아들이는 거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상상의 친구 덕 좀 봤어요.

"노니, 노니는 그 장남감 없더라. 노니 엄마가 그러던데~~" 하면서요. ㅋㅎ

금요일이네요. 이번 주도 이렇게 지나가네요.
즐건 주말 되세여, 감은빛님~~~

순오기 2013-03-29 0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직하게 행동해서 감동받은 적이 없다~~~~~~~~~는 왜 숙제를 하지 않은거라고 할까요?
우리학교 교육은 숙제부터 잘못되고 있어요.
정직하게 답하면 되는 일을 정직하지 않게 지어서라도 숙제를 하게 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아침부터 머리복잡해지네요.ㅠ
그래서 딸롱이는 숙제한 것으로 인정받고 좋아했을까...

단발머리 2013-03-29 19:03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어쩌면 딸롱이 선생님은 솔직하게 '숙제를 해 가지 않았음'을 이해해 주실 수는 있어도,
저희 딸롱이가, 딸롱이가 그걸 못 참아하는 것 같아요.

숙제니까, 꼭~ 해가야 한다. 뭐, 저야 항상, '안 해가도 된다'고 말하지만요. :D
 

오늘 아침, 신문의 <새책 소개>를 보다가 이 책이 새로 나온 걸 알게됐다.

 

 

 

 

 

 

 

 

 

 

 

 

 

 

일단 제목부터 흥미롭다.

<빌 브라이슨>이 그렇고, <영어>가 그렇다.

부제도 관심을 끈다.

"농부들이 썼던 영어는 어떻게 전 세계로 퍼졌을까"

 

고등학교 때, 독일어 시간, 명사의 "성"을 외우며, 이렇게들 말했었지.

"야, 영어가 제일 쉽다~~"

 

카자흐스탄에서 1년간 러시아어를 공부했던 친구도 말했다.

"야, 내가 이렇게 영어를 했으면,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안 있는다!"

 

그러게, 영어가 세계어가 될 수 있었던 것이 미국과 영국의 경제적, 문화적 힘에 더한 어떤 것이 필요했다면, 그건 오롯이 '영어'라는 언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개방성, 합리성이었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영어는

나의 꿈,

나의 이상,

나의 소망,

나의 연적,

나의 원수,

나의 숙제이다.

 

빌 브라이슨의 책은 거의 베스트셀러라 제목은 대충 들었고, 도서관에서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생각보다 책이 많다.

관심가는 책 몇 권을 올려본다. 물론 다 읽을 수는 없겠지만...

일단 집에 있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서부터 시작해봐야겠다.

 

 

 

 

 

 

 

 

 

 

 

 

 

 

 

 

 

 

 

 

 

 

 

 

 

 

 

 

 

 

 

 

 

 

 

 

 

 

 

 

 

 

 

잠실 야구 시범경기에 가기로 했는데, 아....

넘버 1과 넘버 2가 아직도 쿨쿨~~

가족나들이에 좋은 날씨라는데, 갈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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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견이란 참 무서워서, 난 이 책을 보자마자 읽지 않기로 결심했다.

첫째, 나는 ‘에세이’를, 그것도 많~~~이 유명하지 않은 (‘유명하다‘의 판단 기준은 다름 아닌 ’나‘다. 내가 아는 사람이면 유명한 거고, 내가 모르면 무명. 본인이 무식한 걸 몰라라치고, 이렇게 살면 인생 참 편하다.) 그래서, 내가 그 이름을 알지도 못하는 작가의 ‘에세이’를 읽을 시간이 없어서였고, 둘째, 나도 그녀가 책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세상에서 가장 곱고, 가장 예쁘며, 가장 완벽한 주제인 ‘딸’을 이미 갖고 있기에, 그녀가 무슨 말을 할건지 대강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서관투어의 마지막, 네번째로 들어선 00 도서관 신간코너에 이 책이 떡! 하니 꽂혀있는 것 아닌가. 새 책에 무지 약한 나는, ‘아니, 사람들이 이 책을 안 빌려갔네~ 읽지는 않겠지만 대출해 가야겠다.’하며 이 책을 집으로 들고 와버렸다.

그리곤, 3-4일을 책장에 고이 모셔 놓았다가 (이걸 ‘숙성과정’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책날개를 슬쩍 열어보았다. 특이한 이력이었다.

유희열의 소개글 역시 구미를 당겼다. ‘반교훈적, 반가족주의적 에세이’라니. 이거야말로 내가 찾던 것 아닌가.

한 꼭지씩 글을 읽어나가는데, 가장 먼저는 그녀의 자유로운 한국어 구사에 놀랐다. 어린 시절 대부분을 외국에서 보냈음에도 그녀는 일반적이고, 상투적인 표현마저도 특별하고 산뜻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간호사가 그러면 모유가 덜 나오는 다른 산모들에게 나눠주자고 했고 나는 공짜인데 뭐 어떠냐며 흔쾌히 좋다고 했다. 다만 내가 시간마다 알아서 젖을 짜낼 만큼 짜서 줄 테니 밤중에 신생아실로 호출이나 하지 말아달라고 거드름을 피웠다. (43쪽)

이런 식이다.

여자가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 그 소중하고도 아름다운, 지난하고도, 고통스러운 과정이 세세하고, 치밀하게 그리고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다.

내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연애에 대해서, 결혼에 대해서는 예상하고, 준비할 수 있었는데,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해선 예상할 수도, 준비할 수도 없었다. 나는 준비되지 않은 ‘엄마’였다. 정확히 말해서, 나는 ‘엄마’라고 불리는 것 자체가 두렵고, 무서운 ‘엄마 같지 않은 엄마’였다.

그러다가 보게 된 책이 이 책이다.

 

나는 책을 읽으며 느껴지는 고운 마음씨로 그녀가 아이들을 키웠을거라 생각한다. 그녀가 곱고 예쁜 심성으로 아이를 키웠기에, 그녀의 아이들이 그렇게, 내 눈에도 예쁘지만, 다른 사람 눈에도 예쁜 그런 아이들로 자라난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같은 마음을 품는 건 그 때의 내겐 무리였다. 그러니까, 지금 ‘보드라운 살결의 아이를 안고 있는 이 순간의 소중함’과 ‘내가 아이들에게 해준 것보다 아이들이 내게 더 큰 선물을 주었다’는 그녀의 의견에는 전적으로 동의했지만, 걸레질하는 등 뒤로 올라타는 아이와 함께 ‘히이잉~~~ 말타기 놀이’를 하기에는 좀 버거웠다. (정확히는 아니지만, 두 번, 두 번 정도 말타기를 해주었다. 말타기를 하며 나는 그녀를 생각했다. *^^*)

그녀는 나보다는 우리 엄마, 우리 세대보다는 우리 어머니 세대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다. 그녀는 ‘천상 엄마’, ‘천사같은 엄마’다. ‘엄마가 되었다는 감동과 행복함’이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심적으로 내게 더 가까웠던 책은 이 책이다.

 

 

 

 

 

고전적이고, 일반적인 엄마의 역할에 대해서 일종의 ‘반역’을 꾀했다고 볼 수 있다.

다음날 아침이 지나면 집은 다시 거짓말처럼 어질러져 있다. 벽에 기대 앉아 우두커니 바라보고만 있다. 어디부터 또 손을 댈까. 아기는 자기만 보아달라고 소리를 지르다가 옆에서 머리를 바닥에 박아댄다. 집이 나에게도 쉬는 곳이었던 때가 있었는데, 나는 집을 나가서 쉬고 싶다고 간절히 바라게 되는 것이다. (30쪽)

나는 그녀의 말에 완전 ‘긍정’했다.

사실 시댁과 친정 양쪽에서 양육에 대한 전폭적이고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내가 이 책의 내용에 긍정한다는 것이 조금 우습게 들릴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난 그녀의 의견에 완전 공감했다.

그리고, 이 책, <불안한 엄마, 무관심한 아빠>를 읽으며, 겨우 내 마음을 다독일 수 있었다.

불안을 다룰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솔직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오해하지 말하야 한다. 일하는 엄마라면 '나는 사회적 성취와 경제적인 것이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아이를 일보다 덜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스스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전업주부인 엄마도 '나는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이구나'라고 인정하고, 이렇게 살면 자신의 삶이 도태될 거라는 오해는 버려야 한다. 인정하고 오해하지 않아야 불안이 해결된다. (236쪽)

내 안의 정체성 중 자신을 위한 것의 개수를 늘려 나간다. 그래야 덜 억울하다. 나를 버리고 아이를 위해 살았다고 억울해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한테 가장 중요한 황금시기에 내가 부모로서 최선을 다해 아이를 키웠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그 시간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다른 사람이 그것을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는냐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그 시간이 소중했으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그것이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조건 없는 사랑이다. (332쪽)

일도 중요하고, 사회생활도 필요하고, 그리고 돈도 많으면 좋겠지만, ‘내 아이’가 가장 소중해서 커리어를 포기하고, 하던 일을 그만두고,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한 건 바로 ‘나’라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보다 내가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지만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이 ‘작은 진실’을 그제서야 겨우 다시 한 번 알게 됐다.

이 분야에 대해선, 참 할 말이 많은데, 그런데 어쩌냐. 임경선씨에게 ‘선점’을 당해 버렸다. 나는 생각만 하고, 풀어내지 못했는데, 그녀는 생각하고, 기록하고, 책으로 묶어냈다. 아, 글쓰기에서 ‘소재’가 얼마나 중요한데, ‘소재’를 ‘선점’당하다니. 이럴수가. 그/렇/지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녀는 ‘임경선‘의 이야기를 썼고, ’임경선‘의 마음을 풀어 놓았다면, 나에게는 ’내 이야기‘가 있고, 그녀와는 다르게 느낀 ’나의 감성과 느낌‘이 있으니. 그건 서로 다른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뭐, 그리 아쉬워하지 않아도 되겠다.

민음사 세계 문학 전집이 제일 먼저 ’세계 문학 전집‘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 제일 많이 판매되었고, 제일 많은 책을 번역했고, 제일 인기가 있다지만, 뭐, 민음사만 있는 건 아니고. 문학동네도 있고, 열린책들도 있고, 펭귄클래식도 있고, 그리고 을유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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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3-19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임경선의 저 에세이를 읽어본 사람으로서 단발머리님의 이 페이퍼가 더 좋다고 자신있게 말씀드립니다. 인용하신 문장중에 하나는 제 여동생에게도 보내야겠어요. 마지막책 332쪽이요.

단발머리 2013-03-19 17:39   좋아요 0 | URL
ㅋㅎㅎㅎㅎㅎ 허허. 제가 이렇게 웃으면 안 되고요.

다락방님의 칭찬에, 핫!! 진짜요? 이히히히히~ 이렇게 웃어야 될까요? 마지막책, 좋아요. 동생분도 332쪽 좋아하실 거예요. 요즘엔 육아관련 서적이 참 많은데, 그 책을 읽는 '엄마들'이 최근까지도 스키니에 10센티 굽을 신고 막 뛰어다니던 사람이란걸 모르는 듯한 책도 많아요. 시대는 변하고요.ㅎㅎ

암튼 저는 마지막책에서 '위로'를 얻었습니다. 내 아이를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나도 '나 자신'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고, 더 투자해야겠다는 생각을 말이지요.

즐거운 화요일이예요, 다락방님~ ㅋㅎ
 

조국 교수님, 신간이 나왔다. (근데, 출고예상일이 3월 20일이라, 그럼 아직 안 나왔나?)

 

 

 

 

 

 

 

 

 

 

 

 

 

 

「한겨레」에 10개월간 연재된 '조국의 만남'에 초대된 명사들의 인터뷰를 정리한 책이다. 계속해서 읽었던것 같은데도, 이효리나 강풀의 인터뷰는 기억이 안 난다. 내가 관심있어 하는 사람들인데, 왜일까?

 

특별한 내용없이 신간이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페이퍼를 쓰는 이유는, 단 하나!

 

그가 조국이기 때문이다.

 

그가 바로 조국이다.

 

그의 저서 & 그를 주제로 한 책들은 정리해 놓으신 분들이 많아, 나는 내가 읽은 것만 간단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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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9 0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19 1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19 0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5,000원이라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그 강사 선생님은 연거푸 말했다.

그 때 내게, 돈 5,000원은 그렇게 큰 돈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맘 편히 쓸 수 있는 돈도 아니어서, 나는 잠자코 강사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전공 필수는 아니었지만, 교양수업도 아니었으니, 전공과 관련된 수업일 거라 추측되는 그 수업을 그렇게 한 달 정도 들은 후, 난 5,000원짜리 시집을 하나 샀다.

 

 

 

 

과연 거기엔 또 다른 세계가 있었다. 시인의 삶과 시인의 시가 똑닮아 있는 시가 여러 편, 아주 여러 편 있었다.

2. 오늘 책을 반납하러 아파트 마을문고에 가서는 ‘제목’을 보고

이 시집을 대출했다.

 

 

 

 

 

정확히는 ‘제목’과 ‘지은이의 이름’을 보았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동시집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딸롱이에게 21쪽의 시를 읽어 주었다. 같이 듣던 아롱이까지 셋이서 “하핫!“하고 크게 웃었다.

콩, 너는 죽었다

콩타작을 하였다

콩들이 마당으로 콩콩 뛰어나와

또르르또르르 굴러간다

콩 잡아라 콩 잡아라

굴러가는 저 콩 잡아라

콩 잡으러 가는데

어, 어, 저 콩 좀 봐라

쥐구멍으로 쏙 들어가네

 

콩, 너는 죽었다

 

 

 

 

 

3. 그 선생님의 말이 맞다.

시인의 영혼을 담은 시집이 5,000원이라는 건 말이 안 된다.

(이 시집은 물가를 반영해 현재 7,5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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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3-15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김용택 시인의 시집을 [속눈썹] 말고는 읽어본 게 없어요. 그 중에 좋은 시 하나 단발머리님께 들려드릴게요..


우화등선(羽化登仙)



형, 나 지금 산벚꽃이 환장하고 미치게 피어나는 산 아래 서 있거든.

형 그런데, 저렇게 꽃 피는 산 아래 앉아 밥 먹자고 하면
밥 먹고, 놀자고 하면 놀고, 자자고 하면 자고,

핸드폰 꺼놓고 확 죽어버리자고 하면 같이 홀딱 벗고 죽어버릴 년

어디 없을까.

단발머리 2013-03-15 11:11   좋아요 0 | URL
어머, 어쩜 좋아~~~~

다락방님, 나도 이 시가 막 좋은데요. 좋기는 너무 좋은데, 일단 제 신랑이 요런 타입은 아니에요.
아, 다행이라 해야하나요. 사실, 저도 너무 끈덕진 사랑은, 그러니까, 가령 홀딱 벗고 죽어버리는 사랑은 쫌..... 그래요. 그냥, 은근한 사랑 하고 싶어요. 은근한 사랑, 사랑 아닌가요? 엥?

아침을 간단히 먹어서 배고파요. 점심엔 약속이 있어, 뷔페에 갑니다. 이야호! 다락방님은 뭐 드실거예요? 맛난 거 드시고, 행복한 금요일 오후 되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