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 어느 토요일 아침 이제 막 옷을 다 입고 신발 끈을 매고 (이제는 다 컸다. 제 할 일은 다 할 수 있는 소년이다),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가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다 마치고, 이른 아침 봄날 햇빛 속에서 서 있는데 행복감이 밀려들었다. 평안과 기쁨을 억누를 수 없는, 황홀한 느낌이었다. 잠시 후 당신은 혼잣말을 했다. 여섯 살보다 더 좋은 건 없어. 여섯은 될 수 있는 나이 중에서 단연코 최고의 나이야. 당신은 그 순간을 3초 전만큼이나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날 아침으로부터 5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당신 안에서 조금도 줄어들지 않게 또렷하게, 당신이 지니고 있는 수많은 기억들 중 그 어느 것보다도 밝게 타오르고 있다. 이렇게 강렬한 느낌을 일으킨 것이 무엇일까? 알 수는 없지만 추측건대 자의식의 탄생과 관계가 있지 않나 싶다. 내면의 목소리가 깨어날 때 여섯 살 무렵의 어린아이에게 일어나는 일, 생각을 하고, 스스로에게 생각이 시작된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말해 주는 능력. 우리의 삶은 그 시점부터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선다. 그것이 우리가 우리의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들려주고, 죽는 날까지 끊김 없이 계속될 내러티브를 시작하는 능력을 얻게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날 아침까지는 당신은 그저 존재했을 뿐이었다. 이제 당신은 당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일단 그렇게 할 수 있게 되자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에게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말해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19-20

 

눈에 익은 제목과 표지 때문에 책을 뽑아 들었고 집에 돌아와서야 이 책이 폴 오스터의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라는 걸 알게 됐다. 소설-에세이의 순서가 좋은데, 요즘엔 자꾸 에세이-소설의 순서로 작가를 만나는 것 같다. 소설을 읽으면 작가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고, 에세이를 읽으면 작가가 바로 옆에서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좋다.

여섯 살. 자의식의 탄생을 이야기하는 이 장면이 좋아서 한 번 읽고 두 번 읽고, 계속해서 19페이지와 20페이지를 오가며 읽고 있다. 생각을 하고, 스스로에게 생각이 시작된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말해 주는 능력. 그 때가 바로 삶이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서는 때라고, 작가는 말한다. 자의식이 탄생되고 스스로가 스스로를 인식하던 때.

나 스스로는 그 때가 언제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자신을 인지하는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며 놀라워했던 기억이 있다. 작은 손, 작은 발, 작은 머리. 작은 입에서 나오는 말들. 엄마를 말하고, 자신이 만든 애칭으로 스스로를 부르던 시간들. 아이가 세상과 스스로를 인지하던 그 때, 나를 처음으로 엄마라고 부르던 그 시절에, 나는 좋은 엄마였을까. 나는 착한 사람이었을까.

 

어린이날에는 파주 지혜의 숲에 갔다.

 

차를 주차하고 가는 길에 길 잃은 거위를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높은 천장 끝까지 가득 채워진 책들이 너무 근사했다.

  

 

 

 

 

 

  

 

넓은 탁자 아무 자리에나 앉아, 좋아하는 책을 아무거나 뽑아서는, 좋아하는 음료 아무거나를 마시면서, 아무 때까지 그냥 마냥 책을 읽을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사진 100장을 찍겠다는 내 앞에서 아롱이가 한껏 점프를 한다. 아롱이는 나를 많이 닮아 생김새와 성격은 물론, 고기, , 소시지를 좋아하는 식성까지 판박이인데, 이렇게 점프를 하면서도 코믹한 표정을 놓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가히 나를 능가한다고 볼 수 있겠다. 하트 속 아롱이는 참말로 어린이다

 

 

 

마냥 좋은 어린이날, 하루가 그렇게 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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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5-10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어린이날 지혜숲 갔었어요!!!

단발머리 2016-05-10 13:44   좋아요 0 | URL
우앗!!! 진짜요?
저는 10시부터 3시까지 있었어요.
아... 아른님을 만날 수 있었던 건가요?
아이고... 아쉬워라~~~~~~~~~~~

비로그인 2016-05-10 13:48   좋아요 0 | URL
저두 10시부터 있다가 12시쯤 긴급대피했어요 사람이 너무 많아서 ㅎㅎ 옷깃 스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요~~^^

단발머리 2016-05-10 13:55   좋아요 0 | URL
아... 저는...
밥먹으러도 안 가고 한 자리에만 앉아있었거든요.
화장실 먼 곳으로 가느라 한 번 멀리 움직였는데...
그 때, 아른님과 옷깃이 스쳤으면 좋았을텐데...
혹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저도 기분이.. 헤에.... .*^^*

2016-05-10 1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11 17: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읽는나무 2016-05-11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군요!!멋져요!!
마지막 사진도 멋져요
나는 저렇게 카메라 앞에서 멋진 포즈와 멋진 표정을 짓는 아들들이 부럽습니다
울집 아들은 넘 재미없어서요ㅜ
재미없는 부분은 나를 닮은 부분이긴 합니다만^^
파주는 정말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곳이어요!!
지혜의 숲으로 가야하는군요
음~~

단발머리 2016-05-11 17:46   좋아요 0 | URL
멋지다해주시니 감사해요^^
저희는 사진 10장을 찍으면 10장이 다 다르게 나와요. 표정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지혜의 숲, 넘 좋더라구요. 책도 많고 떠들어도 되고 커피도 마시고~~*^^*

해피북 2016-05-19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데 독특한 화자 ,`당신`이라고 자꾸 불러서 처음엔 의아해 했어요.ㅋㅋ 그렇게 차츰 폴오스터 당신에 이야기군요 싶어서 읽고 있다가 혹시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읽으셨는지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역시 단발머리님의 글이 보였어요 ㅎㅎ 저는 방금 막 발췌하신 부분을 지나치는 중이였고요 ㅎㅎㅎ

그리고 파주!! 늘 동생하고 속닥거리면서 한번 다녀오자고 의기투합하지만 실행이 안되는 곳이라 아쉬워하곤 해요. 이곳에서 파주까지 움직이려면 기차타고 버스타고 4~5시간이 걸리더라고요. 그래도 언젠가는 꼭 그 자리 그곳에서 좋아하는 책과 좋아하는 음료들고서 오래오래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정말 사진도 좋고 글도 좋아서 막 설레였어요^~^

단발머리 2016-05-23 09:00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에 그 `당신` 때문에 집중이 좀 안 되더라구요. 근데 특이하고 재미있죠~
아쉬운 건 폴 오스터를 좋아했다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선셋파크> 작품 하나밖에 안 읽어서요^^

파주는 저도 자주는 못 가는데, 좀 멀어도 다녀오면 참 좋고...
근처에 헤이리도 구경할 수 있어서 저도 또 가고 싶네요~~~ㅎㅎㅎ
 

 

 

 

 

 

 

 

 

 

 

 

 

준다해서 이 책, 저 책, 그리고 요 책을  

 

 

 

 

 

 

 

 

 

 

 

 

 

 

 

 

구입했다. 주기율표 데스크매트가 생각보다 마음에 들어서 딸롱이 친구 선물로 주고.

 

딸롱이 용으로 하나 더 주문했다. 생각보다 근사하다.

 

 

 

 

 

『세상의 모든 원소 118』 <특별판>은 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한 책인데, 올컬러의 색감이 너무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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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6-05-03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주기율표 탐나는데요~~

단발머리 2016-05-03 22:24   좋아요 0 | URL
아주 아름답습니다.
저는 화학 안 좋아했는데, 주기율표는 아주 근사하네요.
책은 그림이 완전 멋진데, 내용도 흥미로와요.

예를 들어 제가 좋아하는 원소 79에 대한 설명은 이렇습니다.

< >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만큼 아름답다. 모든 금속 중에서 색이 있으며 동시에 그 색의 광채와 아름다움을 영원히 지니고 있는 것은 < > 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요~~ ㅎㅎㅎ

나와같다면 2016-05-03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때 싫어하던 화학이..
참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발머리 2016-05-09 14:35   좋아요 0 | URL
실제로 보면 훨씬 더 아름다워요.
빛깔이 아주아주 고와요.
아.. 원소의 세계란~ ㅎㅎ

수이 2016-05-04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학자 되는 게 끔이었던 때도 있었으나......아니 꿈!

단발머리 2016-05-09 14:35   좋아요 0 | URL
이제는 불어 원서를 읽고 카페의 주인장이 되었습니다.
화학자보다 더 좋은대요~

2016-05-04 18: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09 14: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런 제목의 책이 있다.

내 옆에 있는 사람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눈에 익은 책이고 많이 들었던 책이다.

이 책, 내 옆에 있는 사람저자 옆에 앉았다.

마지막 시의 한 연을 고쳐 가느라, 아니 고쳐야한다고 생각하느라, 나는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옆에 앉을 수도 있다는 걸 까맣게 잊어버렸고, 책을 준비하지 않아 싸인 받을 기회를 놓쳐 버린 것을 야나님 탓으로 돌렸다.

이 자리를 빌어 야나님에게 쏘리를 전한다. 야나님, 쏘리~

 

[내 옆에 있는 사람], [찬란], [눈사람 여관]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이 어렵다. 어렵다고 느낀다. 그냥 인사하는 정도가 아니라, 애정이 샘솟는, 살갑게 대하고 싶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게 쉽지 않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시창작 수업을 하면서 제일 좋았던 건 좋은 사람들,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났던 거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많이 웃었다. 그 시간들이 참 좋았다.

  

  

지지난주였던가. 토요일 아침에 일어났는데 몸이 아팠다. 나는 타고난 저질체력이라 몸을 아끼는 편인데, 전날 밤에 흥에 겨워 너무 신나게 연주해서 그런가. 손목, , 어깨에 통증이 느껴졌다. 밥을 준비해서 먹이고 각각 자기의 자리로 보내놓고는 시집을 들고 침대에 누웠다. 시를 다섯 개 읽었다. 너무 많이 읽기에는 어려운 시다,라고 생각했다.

시 다섯 개를 읽고는 잠이 들어서 한 시간을 잤다. 정확히는 50분 정도 잔 것 같은데, 일어나니 몸이 가뿐하니 방금 전의 통증이 거짓말 같았다. 한 시간의 단잠이 몸살을 이기게 했나,라고 생각했다가 침대 머리 맡, 시집에 눈이 갔다.

나를 낫게 한 건, 시였다. 이 시, 아마도 이 시가 아니었나 싶다.

시를 읽고 나았다. 시를 읽고, 나는 나았다.

 

 

 

일어나지 않는 일

 

                                                                       정영효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려고

기분과 눈빛을 함께 이야기하려고

그런 상황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태어났으면 좋을 사람과 사귀면 건강해지고

가지 못하는 나라의 소식을 듣는 게 오히려 경험적이다

오 분을 먼저 걱정할 때마다 오 분간만 해야 하는 생각

우연히 마주쳤는데 마주치지 않더라도 생기는 일

그런 상황이 나타나는 곳에서 멈춰야 할 순간이 생긴다

하나쯤 붙잡고 싶은 의지라는 것

졸음이 묶인 개의 꼬리를 풀어주고

정오에 들리는 종소리가 누군가를 신실하게 만들 듯

가까이할수록 멀리서 진실이 다가오는

가까운 미래를 바라보며 떨어진 과거를 찾는

그런 일이 일어나기란 쉽지 않다

유일한 장면을 목격한 것처럼

다만 당장을 불러보면서

이제부터 끝으로 밀려나는 세계를 믿고

문을 잠근 채 누워 있는 너를 친구로 여기고

꿈을 가진 자의 속물을 감춰주는

그런 상황을 기다리며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는 나에 대해서만 말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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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6-05-01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로 사진 올리기가 가능했다면 수십장 올렸을 텐데_ 시인님 시집 내일 입고된다 하오 ㅎㅎㅎㅎㅎㅎ

단발머리 2016-05-01 22:10   좋아요 0 | URL
내 폰에 있음을 감사히 여기기로... (나만 보기로) 했어요. ^^

수이 2016-05-01 22:13   좋아요 0 | URL
그럼 제가 올려야겠습니다 ㅎㅎㅎㅎㅎ 굿나잇❤️

단발머리 2016-05-01 22:15   좋아요 0 | URL
좋죠, 좋아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야나님도 굿밤~~~

꿈꾸는섬 2016-05-01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시인님 팔뚝사진ㅎㅎ 정말 숨막히게 멋진분이에요.
근데 정시인님 시 정말 좋네요.♡

단발머리 2016-05-01 22:36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우리가 저런 시를 쓰는 분께 배웠는데...
근데 그걸 몰랐네요. 그 때는...
선생님이 추천해준 시집도 많이 읽고,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그럴 것을...
저는 숙제도 20분 만에 대충대충 해가고, 성의 없이..
후회가 좀 되네요. 좋은 기회였는데... 쩝...

꿈꾸는섬 2016-05-02 05:05   좋아요 0 | URL
대충대충 성의없는 숙제가 참 좋은 시였다는 건 시 쓰기 자질을 타고난 건가봐요.
수업하면서 단발머리님의 타고난 감각이 부러웠어요.^^
노력해도 얻기 힘든 태생적으로 타고난 감각!

단발머리 2016-05-02 10:20   좋아요 1 | URL
아하하.... 오늘 아침 5시 댓글인거예요? ㅎㅎ
완전 부지런한 아침새시군요.

아침에 일어났더니 꿈섬님 댓글이 있어서 저는 시간 확인 안 하고,
와... 꿈섬님 늦게 주무시네~~~ 했거든요.

제가 첫시간부터 하기 싫다, 하기 싫다, 해서 정시인님이랑 선생님들이 칭찬해 주신 거예요.
다정한 칭찬 말씀 감사해요~~~ㅎㅎㅎㅎ

해피북 2016-05-01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이 어렵다. 어렵다고 느낀다`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을 단발머리님 글에서 만나니 너무 좋아요 ㅎㅎㅎ
정말 나이를 먹어갈 수 록 사람을 만나는 일도, 사귀는 일도 또 마음을 주는 일도 버겁고 힘겹게 느껴지더라구요.. 그래도 단발머리님 곁에 좋은 분들이 많으셔서 다행이예요^~^

단발머리 2016-05-01 22:37   좋아요 0 | URL
너무 좋군요. 제 글이 해피북님 생각과 닿아서요.

그러게요. 나이 들수록 새로운 사람 만나는게 어려워요.
시수업 하면서 좋은 분들 만나서 좋았어요.
시간이 여유로웠다면 더 좋았을것을... 아쉬움이 많네요.
해피북님 주변에도 좋은 분들이 많으시기를, 더 많아지시기를... 바래봅니다.^^

2016-05-01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6-05-01 22:34   좋아요 0 | URL
에헤야디야~~ 어야디야~~
 

 

 

 

 

 

 

 

 

 

 

원하지 않았지만 반쪽으로 나뉘는 특별한 역사를 가지게 된 나라, 한 쪽의 미사일 발사로 다른 한 쪽이 들끊는 나라. 그런 나라에서 태어나 한민족 단일언어, 서로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 틈에서, 다른 나라 심지어 다른 지역에서도 살아보지 못한 내가.

그런 내가, 로맹 가리를 생각한다.

소설보다 더 소설적인 삶을 살았던, 그런 삶으로 살아졌던 그의 삶을 생각한다.

그를 생각한다.

그의 소설을 읽기도 전에 나는 자꾸 가슴이 뜨거워진다.

나는 아마도 그를...

아마도...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하늘의 뿌리], [유럽의 교육]

 

 

  

  

 

 

 

 

 

 

 

 

 

 

 

그래서 어머니를 만나려고 니스로 갔습니다. 메르몽 호텔에 도착하고 나서야 나는 지금까지도 친구로 지내는 르네 아지드 교수와 그의 부인 실비아, 그리고 그의 형제 로제 아지드로부터 어머니가 이미 3년 전에 세상을 뜨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2백여 통의 편지를 써서 스위스에 있는 폴란드 친구분에게 맡겨두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죠. 어머니는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탯줄이 계속 작동하게 해두었던 겁니다. (55쪽)

이 책(『하늘의 뿌리』)으로 내가 거리낌 없이 요구하고 싶은 것, 그것은 바로 자연보호와 환경보호에 관한 중요한 소설을 쓴 최초의 작가라는 지위입니다. 소설의 관점에서 볼 때 나는 프랑스 최초의 생태주의자였습니다. 제 자랑처럼 보여도 어쩔 수 없습니다만, 나는 내가 그런 자격을 주장할 만하다고 생각하며, 또 자긍심을 느낍니다. (61쪽)

이 대담 초반부에서 나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기보다는 삶에 의해 살아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내 삶에 의해 살아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내가 삶을 선택했다기보다는 삶의 대상이 되었다는 느낌입니다. 분명 우리는 삶에 조종당합니다. (109쪽)

나와 여성들의 관계는 무엇보다 나를 위해 희생한 내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숭배였고, 물론 성을 포함한 모든 차원에서 여성에 대한 사랑이었다고 말입니다. 만약 내 책들이 무엇보다 사랑에 관한 책이라는 사실, 거의 언제나 여성성을 향한 사랑을 얘기하는 책이라는 이 단순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내 작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1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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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로 적다보니 길어져서 따로 페이퍼로 씁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릅니다. 크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다른 사람의 생각에 대해서는 상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 삽니다. 가끔 제 리뷰에서 제가 말한 의도를 다르게 이해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경우 댓글을 달지 않습니다. 제 글을 읽고 다르게 이해했다면 그건 그 사람의 일이지 저의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이렇게 쓰기 시작합니다.

4월 19일 페이퍼 '자꾸 왜 이러세요'  http://blog.aladin.co.kr/798187174/8438826

에 대한 feel6115님의 댓글 전문

 

우연히 글을 보고 그냥 지나갈까 하다 글을 남겨봅니다.

분위기로 봐서 좋은 소리 못 듣겠지만..

 

저는 성평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정의에 따른다면 페미니스트에 속한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언급하신 위의 글들을 보고 자꾸 왜 이러세요라고 하시는 단발머리님의 반응은 조금은 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들어가는 말에서 아내의 부정을 알고 폭력을 행사한 남편이 동정을 받을 것이라는 점에 관해서는,

작가가 말 그대로 동정을 받을 수 있다는 취지로 쓴 것이지 그것이 꼭 정당화될 수 있다는 의미로 이야기한 것은 아닐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 동정 정도는 받을 수도있다고 생각하구요.

사실 나에게 잘못을 한 사람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것은 상당히 보편적인 감정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프랑켄슈타인을 읽고 프랑켄슈타인을 동정하기보다 그의 피조물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것 아니겠습니까?

죄질로만 따지면 프랑켄슈타인은 죄가 없고 그의 피조물은 전혀 동정조차 받아서는 안 될 대상이 됩니다. 후자만 살인을 수없이 저질렀으니까요.

하지만 자신의 창조자에게 버림받고,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받았다는 점을 알기에 그의 행위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 측면에서 생각을 한다면 - 다소 꺼림칙한 건 사실이지만 - 오다시마 유시라는 작가의 글이 그렇게 매도할 수준은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여성 분들 중에는 티비에까지 출연해서 공공연히 여자의 외도를 남편 탓으로 돌리고 정당화하는 분들도 적잖습니다.

글쓴 님의 생각대로라면 남편이 잘해주지 않았다 해서 부인이 바람을 피운 게 정당화될 수 없기에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비판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오히려 공감을 사는 게 현실이지요.

(물론 님께서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시리라 생각지는 않습니다만..)

 

다음으로 사노 요코라는 분의 글과 관련해서는 솔직히 무엇이 문제인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제가 저 책을 다 보지 않아 섣불리 판단하는 게 아닌가 하는 염려도 있습니다만, 언급하신 부분만 봤을 땐 그저 한 여성이 남편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점을 이야기한 것뿐이니까요.

만일 작가 혹은 다른 등장인물이 그 여성의 이야기를 듣고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 뭐라는 식으로 반응을 했다면 당연히 문제가 되겠지만, 그점에 관해 위에서 어떤 가치판단을 내리는 부분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위 글에서 청자는 왜 헤어지지 않았냐는 식으로 여성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펼치는 책마다 가정 폭력, 남편에 의해 아내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미화되고, 이해되고, 동정되고, 서술된다.˝는 글쓴 님의 생각은 조금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남녀 불평등에 직접 기여한 세대는 아니지만(오히려 저도 왜곡된 성 역할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겠네요), 여성들이 저런 내용에 화가 날 수 있는 점 이해합니다.

다만 그럴수록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제대로 비판을 하는 게 성차별을 조장하는 사람들에게 더 확실하게 어필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들어 몇 자 남겨봤습니다.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하구요.

하시는 일 모두 잘 되시길 바랍니다.

    

 

1. 오다시마 유시의 처음 읽는 셰익스피어에서, 제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부분은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한 남편의 경우, 아내의 부정을 알고 미친 듯이 노한 상태였음이 드러나면 동정을 받을 것입니다.”라는 대목입니다.

feel6115님은 댓글에서,

작가가 말 그대로 동정을 받을 수 있다는 취지로 쓴 것이지 그것이 꼭 정당화될 수 있다는 의미로 이야기한 것은 아닐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 동정 정도는 받을 수도있다고 생각하구요.“ 라고 썼습니다.

feel6115님은 아내의 부정을 알고 폭력을 행사한 남편이 동정 정도는 받을 수도있다고 생각하시는 것이구요.

저는, 페이퍼에 썼듯이, 부정한 아내라고 해도 아내에게 폭력을 가한 남편의 행동은 동정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동정이라는 단어에 다른 의미가 있나 찾아보았습니다.

1 . 남의 어려운 처지를 자기 일처럼 딱하고 가엾게 여김.

2 . 남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하고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도움을 베풂.

feel6115님이, 아내의 부정을 알고 미친 듯이 노한 상태에서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람의 처지를 자기 일처럼 딱하고 가엾게 여기며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도움을 베푸신다면, 그에 대해 제가 어떻게 할 수는 없지만, ‘동정정도도 받을 수 없다고 판단하는 제가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미국 중년 여성 외상의 제1원인이 교통사고가 아니라 가정 폭력이라는 점에서, 더 많은 수의 여성이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 채, 가정 폭력으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그 원인이 아내의 부정이라면, 아내에 대한 남편의 폭력이 동정 정도는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은 도대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굳이 하나의 의견을 더하자면, 아내의 부정을 의심해서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은, 아내가 살림을 못 한다고, 아내가 음식을 못 한다고, 아내가 아이들을 잘 돌보지 못한다고, 아내가 돈을 적게 벌어 온다고, 아내가 돈을 많이 벌어온다고, 아내가 퉁명스럽다고, 아내가 너무 싹싹하다고, 이 중의 어떤 이유를 가지고서도 폭력을 휘두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폭력은 해답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폭력은 미화될 수도, 이해될 수도, 동정 받을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2. 사노 요코의 에세이에 대해서는

남편에 의해 아내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미화되고, 이해되고, 동정되고, 서술된다.“는 저의 문장 중, ‘서술된다만 사노 요코의 글과 관련이 있습니다.

저는 오다시마 유시의 <머리말> 속 문장들이 아내에 대한 폭력을 미화하고, 이해하고, 동정하는 관점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사노 요코의 문장과 관련해서는 서술된다만 해당됩니다.

 

3. 저는 객관적일 수 없습니다.

제가 자란 독특한 배경이 있고, 환경이 있고, 그래서 지금의 제가 있습니다.

알라딘서재, 나의 서재 속, 제 글들은, 어디까지나 저의 생각입니다.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제대로 비판을 하는 게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의견이 객관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겠구요. 저는, 저의 주관적인 의견만 밝힐 수 있습니다.

아내의 부정을 이유로 흥분한 상태에서 아내에게 폭력을 가한 사람은 동정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동정정도도 받을 수 없습니다. 동정 받아야 할 사람은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제정신이 아닌 상태의 남편에게 폭력 행위를 당한 피해자입니다. 이게 저의 주관적인 의견입니다.

성차별에 반대합니다. 그와 동일하게, 가정 내 폭력 행위에도 반대합니다. 저는 여자입니다. 여자인 제가, 성차별에 대해 의견을 말할 때, 어떤 면에서도 제 의견은 객관적으로 해석되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그건 남자라도 마찬가지구요.

다만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권리를 믿는 사람으로서, 남편의 부정을 알고 미친 듯 흥분해서 폭력을 휘두른 아내가 동정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동일하게, 아내의 부정을 알고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한 남편도 동정 받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 feel6115님의 댓글에 제 기분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지만, 하는 일은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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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6-04-29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feel6115님이 우연히 제 글을 보셨다던데, 댓글에 댓글이 안 달리네요.

다락방 2016-04-29 16: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댓글 쓰다가 튕겨나갔어요... 다시,

이 페이퍼에 제가 따로 덧붙일 말은 없고요, 다만 객관적이란 것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왜 여성이 여성주의에 대해 말할 때, 남성들(혹은 어떤 여성들 포함)이 `객관적`이 되라고 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본인들은 객관적이라고 생각하는지요. 이 세상에는 아무도, 숨 쉬고 살아가는 그 누구도, 객관적인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나 자기가 살아온 환경이 있고 그 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았습니다. 그렇기에 `나의 상식`과 `너의 상식`이 `상식`이란 이름이 붙었어도 충돌하는 것이고요. `문유식` 판사도 자신의 책 [개인주의자 선언]에서 `아무리 객관적인 척 논리를 펴도 결국 인간이란 자신의 선호, 자기가 살아온 방법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말한 바 있죠. 세상엔 객관적인 사람이 없고요, 객관적인 시각 자체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게속되는 불평등에 `이제 그러지좀 말라고 쫌!!` 하고 버럭하니 `그렇게 화만 내지 말고 객관적이 좀 되어봐`라고 하다니, 거기에 객관적이라는 단어 자체를 쓸 수 있다는 게 이미 기득권이라 가능한 것임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아요. 본인이 객관적이라 생각된다면, 그건 본인이 객관적이어서가 아닌 겁니다. 객관적인 줄 착각하는 겁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는 쪽이 분명히 존재하고, 약한 쪽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아파하는 쪽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여기에 어떻게 `객관`이 끼어듭니까.

단발머리 2016-04-29 17:05   좋아요 1 | URL
이 세상, 아무도, 숨 쉬고 살아가는 그 누구도, 객관적인 사람이 없.다.는 다락방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지역/나이/문화/성별을 초월한 사람만이 충분히 `객관적`일 수 있는대요. 우리 중에 그런 사람은 없죠.
그런데도, 사람들은 `객관적`으로 말해라, 생각해라, 하던데...

맞아요. 다락방님이 지적해 주신대로, 일정 부분에서의 기득권층이 이 `객관적`이라는 말을 좋아하는 것 같기는 해요. 한국이라고 한다면, 서울/청장년/주류문화/남자겠죠.

서울에 사는 중년 여성인 내가 말하는 것들은 `주관적`인 것으로 이해되고 해석되겠죠. 이 뭐....

꿈꾸는섬 2016-04-29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폭력은 그 어떤 것에도 동정받거나 이해받거나 미화될 수 없다에 전적으로 공감요.
아무리 아내가 부정을 저질렀다고해도 그러시면 안되는거죠!

단발머리 2016-04-29 17:39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동정받거나 이해받거나 미화되서는 안 되죠.
아이에 대한 부모의 폭력이 그런것처럼, 남편에 대한 아내의 폭력, 아내에 대한 남편의 폭력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아내의 부정을 의심해 아내에게 폭력을 가한 남편의 경우에 관해서라면,
남편이 가해자이고, 아내가 피해자죠. 폭력에 대한 가해자, 폭력에 대한 피해자.
동정을 받아야 할 사람은 피해자입니다.
아내라서 동정받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폭력 행위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동정받아야 합니다.

2016-04-29 17: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6-04-30 10:47   좋아요 1 | URL
어떤 이유에서라도 폭력에 대해서는 동정도, 이해도 안 됩니다. 저도 동감합니다.

아내에 대한 폭력, 가정폭력이 이해되거나 동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내가 불륜을 저지른 이유 중의 일부가 자신에게 있지 않나 스스로 돌아보는 행동에 대해서는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완벽한 남편의 아내도 무언가 부족함을 느껴 부정을 저지를 수 있으니까요.
문제는 아내의 부정을 이유로 폭력을 사용할 수 있느냐, 그 행동이 동정받을 수 있는가, 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거슨인생 2016-04-29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본의 아니게 여러 분들의 심기를 많이 거스른 거 같네요.
조금 해명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객관적`이라는 말.. 저는 객관적이기 어렵다 해서 객관적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여러 분들의 의견을 보니 조금 더 주의해서 그 단어를 써야겠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다만 어떤 분의 말씀처럼 여자인 님께서 하필 여성주의를 얘기해서 남자인 제가 객관적이 되라고 했던 건 아닙니다.
첫 댓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저도 한편으로는 왜곡된 성 역할의 피해자입니다.
기득권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합니다.

그리고 `동정`이라는 말과 관련해서는, 제 의도가 잘 전달이 안 된 것 같긴 합니다만..
저는 그랬습니다.
전에 중국에서 부인이 외도한 남편의 성기를 잘랐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는데요.
당연히 그런 행위는 지탄받아야 하지만, 그 배신감 자체에는 어느 정도 공감이 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배우자의 외도를 경험한 것과 배우자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을 구별해서 접근한 것입니다.
동정의 정의가 `남의 어려운 처지를 자기 일처럼 딱하고 가엾게 여김`이라 말씀해주셨는데요.
(이 사안에서 동정이 `도움을 베푸는 것`까지 포함한다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네요)
성기를 자른 부인이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과 별개로, 남편의 외도를 경험한 어려운 처지에 한정해서는 딱하게 여길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오다시마 유시의 글에서도, 특별히 남성이라서 동정받을 수 있다는 게 아니라 배우자의 외도를 경험했다는 점에서 동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어찌 보면 모순된 감정이 공존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제 의견은 그렇습니다.

쓰고 나서 든 생각인데, 제 생각이 있고 님 생각이 있는 건데 제 생각을 기준으로 님의 생각에 대해 과하다고 평가한 것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점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누차 말씀드리지만 제 의견이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건 결코 아님을 다른 분들께서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배우자에게 폭력을 휘두른 사람은 당연히 콩밥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발머리 2016-04-30 10:49   좋아요 1 | URL
제가 말하는 건, ˝여자˝가 객관적이라고 말하는 것과 남자가 ˝객관적˝이라고 말할 때 그 의미에 차이가 있다는 뜻이예요. 남자들이 ˝사태를 객관적으로 봐˝ 라고 말할 때 대부분의 남자들은 스스로를 남자/여자의 ˝남자˝가 아니라, 자신을 ˝인간˝으로서 인지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문제에 초월했는데, 나는 (남자가 아니라) 인간인데, 나는 객관적인데...
너는 여자야. 그러니까 네가 흥분했지. 상황을 좀 객관적으로 봐. 이렇게 말입니다.

feel6115님이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렇게 느껴졌다는 거예요.

외도한 남편의 성기를 자른 여성의 행동은 지탄받아야 하고, 그 여성을 동정하느냐 마냐는 님의 선택이지만,
제가 문제 삼은 문장을 다시 한 번 보세요.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한 남편의 경우, 아내의 부정을 알고 미친 듯이 노한 상태였음이 드러나면 동정을 받을 것입니다.” <처음 읽는 셰익스피어, 머리말>

저는, 이 문장을 문제 삼은 거예요.
아내의 부정을 알고 미친 듯이 화가나서 아내에게 폭력행위를 한 남편.
그 남편이 화난 이유가 아내의 부정 때문이라면,
그래서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이라면 동정을 받을 수 있는가.
동정받는 것이 옳은가.

제가 문제 삼은 건, 이것 뿐입니다.
동정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 이유가 아내의 부정이든 아내의 잘못이든,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한 남편은 동정받아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