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다 -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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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저성장 불황의 시대를 사는 법

그 때가 좋았어, 라고 모든 어르신들은 말한다. 이제 막 4땡의 세계에 진입한 나도 그렇게 자주 말한다. “아~ 나 대학 다닐 때는 진짜 좋았는데.” 그건 그냥 ‘지난 시절’이 좋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때는 진짜 좋았다. (힘든 시대를 살고 있는 현재의 20대들에게 사랑과 위로를...) 말 그대로 그 때는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 후로는 만고땡의 시절이었다. 학점은 좋아야 하지만, 학점이 좋지 않아도 괜찮았고, 수업에 들어가야 하지만, 수업에 들어가지 않아도 큰 지장은 없었다. 영어 점수가 필요하긴 했지만, 요즘같이 어마 무시한 점수 정도는 아니었다(라고 나만 기억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 대학 생활과 제일 가까운 단어는 ‘낭만’이나 ‘CC' 또는 ’동아리‘가 아니라, ’알바‘, ’대출금‘ 그리고 ’취업준비 스터디‘ 정도일 테다. 세상이 변했다. 세상이 바뀌었다.

만약 제가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그냥 여름 훈련에 참가하고 장교로 임관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요? 뭐든 됐겠지만 아마 작가는 되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에는 분명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습니다. 경제성장률이 10퍼센트를 넘나드는 시절이라 다들 미래를 낙관하고 있었거든요. ... 원래 부모님은 제가 공인회계사 같은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를 원하셨고 작가가 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시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아들이 끝내 밥을 굻게 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셨던 듯합니다. 그건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뭐 굶어죽기야 하겠어?’ 그런 마음으로 부모님께 빌붙어 몇 년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 지금 같은 시절에 대학을 다녔다면 저도 20년 전처럼 행동하지 못했을 겁니다. 예를 들어, 갚아야 할 학자금 대출이 있고, 안정적인 직장이 없는 부모 또한 아파트 담보 대출을 떠안고 그걸 매달 갚아나가야 하는 처지였다면, 저 역시 습작보다는 취업에 뛰어들어야만 했을 겁니다. (18-9쪽)

 

지금 같은 시절이었다면, 작가의 길을 가지 못했을 거라는, 습작의 시간을 견디지 못했을 거라는 작가의 말은 그 동안 시대가 얼마나 변했는지를, 지금이 얼마나 암울한 상황인지를 보여준다. 작가는 말한다.

이제는 열심히 해도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낙관이 아니라 비관입니다. 어떤 비관인가? 바로 비관적 현실주의입니다. 비관적으로 세상과 미래를 바라보되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23쪽)

비관적 현실주의는 인상을 쓰고 침울하게 살아가자는 게 아닙니다. 현실을 직시하되 그 안에서 최대한의 의미, 최대한의 즐거움을 추구하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관적 현실주의에는 개인주의가 필수적입니다. (24쪽)

많이 벌고 많이 쓰고 많이 저장하는 삶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이런 비관적 인식하에 지금 여기에서 어떤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까를 개인적으로, 독자적으로, 개별적으로, 현실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29쪽)

 

돈을 쓰지 않으면서, 지금 여기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찾는 것. 그것이 필요하다. 돈을 벌면서,라고 쓰면 더 좋겠지만, 당장은 가능하지 않으니, 일단은 돈을 쓰지 않으면서. 지금 여기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찾아야겠다. 그것이 내가 할 일이다.

 

2. 친구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마흔이 넘어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친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예요. 잘못 생각했던 거죠. 친구를 덜 만났으면 내 인생이 더 풍요로웠을 것 같아요. 쓸데없는 술자리에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했어요. 맞출 수 없는 변덕스럽고 복잡한 여러 친구들의 성향과 각기 다른 성격, 이런 걸 맞춰주느라 시간을 너무 허비했어요.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이나 읽을걸, 잠을 자거나 음악이나 들을걸. 그냥 거리를 걷던가. 20대, 젊을 때에는 그 친구들과 영원히 같이 갈 것 같고 앞으로도 함께 해나갈 일이 많이 있을 것 같아서 내가 손해 보는 게 있어도 맞춰주고 그런잖아요. 근데 아니더라고요.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은 많은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더군요. 그보다는 자기 자신의 취향에 귀기울이고 영혼을 좀더 풍요롭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한 거예요. (38-9쪽)

 

한국 사회,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동양 문화권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만약, 내가 이 이야기를 했다면, 내 주위의 사람들은, 내 친구들은, 같은 반 엄마들은,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 모두 이상한 사람 취급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김영하는 말한다.

친구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어떻게 보면 이런 정도의 이기심, 이런 정도의 자기애가 없다면, 그런 사람은 작가로서 성공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도 든다. 항상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소설가를 생각해 보라. 전화하면 언제나 콜!을 외치는 시인을 생각해 보라. 괴팍한 성격의 작가만을 상상하는 건 아니지만, 너무 사람 좋은 작가도 사실 상상이 안 되는 건 마찬가지다.

다시 친구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친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작가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고 말해야 내가 정상적으로 보일 거라 믿지만)고 하더라도, 친구에게만 인간관계에만 집착하는 것도 그리 권장할 것은 아닌 듯 싶다.

적어도 나는 우리의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친구만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그와 똑같은 톤과 강도로, 그럼에도 친구는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가족은 너무나 소중하고, 가족으로 인해 얻게 되는 기쁨과 안정감은 어디에도 비길 데 없다. 하지만, 그런 가정에서조차, 즉 남보기에 부럽지 않은 행복한 가정생활에서조차 갈등과 어려움은 존재할 테고, 그럴 때는 마음을 툭! 터놓고 이야기 나눌 친구가 필요하다. 가장 안전한 가정에 있을 때조차 사람들에겐 친구가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가장 큰 상처를 주는 건 사람일테지만, 그것을 이겨낼 위로 역시 사람으로부터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3. 책상 서랍에 숨겨놓을 수밖에 없는 글

 

선생님이 쓰라는 주제에 대해서만 쓸 때, 아이들은 전혀 즐거움을 느낄 수 없죠. 그렇다면 결국 금지된 것을 써야 해요. 선생님이 쓰지 말라는 것을 써야 합니다. 저는 가끔 학생들에게 그렇게 얘기했었습니다. 책상 서랍에 숨겨놓을 수밖에 없는, 그런 글을 써라. 부모가 보면 안 될 것 같은 글. 반대로 말하자면, 부모한테도 보여주고 싶고 선생님한테도 보여주고 싶은 글에는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거죠. (136쪽)

 

 

 

 

위의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도 보았던 것인데, 보여줄 수 없는 글에 대해서는 자주 생각하게 된다. 자기를 억압하는 것에 대해 자유롭게 발언하는 것, 희열을 느끼는 글쓰기에 대해서 말이다.

‘문학’이 도덕적 판단과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범위 안에서만 가능하다면 어떨까. 문학의 내용과 형식이 모두 교훈적이고, 모두 실용적이며, 모두 합법적이라면 어떨까. 인생의 많은 부분이 그러해야 한다고 말하고, 사실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할지라도 문학마저, 문학 너 마저 그러하다면 우리네 인생은 참, 재미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선생님이 쓰지 말라는 것, 부모에게 보여줄 수 없는 것을 쓰게 될 때, 그 때야 비로서 ‘글쓰기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고 김영하는 말한다. 이 시점에서 잠깐 생각해본다. 보여줄 수 없는 글, 보여주기 싫은 글에 대해서 말이다.

곰곰 생각해보니 내게도 그런 이야기가 하나 있다. 그리고 하나 더. 그런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에 대해 쓸 수 있을지, 아니면 마음에만 간직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 이야기를 쓰게 된다면, 그렇다면 그건 서랍에 넣어두어야겠다. 책상 서랍 속에 잘 넣어두어야겠다.

김영하,라는 이름이 익숙해 그의 작품을 많이 읽은 줄 알았는데, 소설 2권과 산문집 1권을 읽었을 뿐이다.

                         

 

 

 

『살인자의 기억법』, 『검은 꽃』,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다음은 2단계 도전리스트다. 언제 만나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기다리시라. 개봉박두. 

 

                           

 

 

 

 

『너의 목소리가 들려』, 『빛의 제국』,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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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4-25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비관보다 해석 or 결론의 유보가 더 적절하지 않을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비겁이나 우유부단이 되지 않도록 다방면을 살피는 직시가 필요한 터라 이또한 쉽지 않더군요.
비관 자체의 단어를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는 너무 한면만 생각한다고도 볼 수 있더군요. 니체를 비관주의, 염세주의라 보지만 그걸 도약판으로 종국엔 무엇을 보려 한건가가 중요한 것인데 말입니다.
김영하씨는 비관을 발판으로 현실주의...평소 김영하씨에게 느끼건 이미지와 잘 부합됩니다.

단발머리 2015-04-26 07:37   좋아요 0 | URL
네~ 저도 Agalma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현실이 암울한게 사실이더라도 `해석`과 `결론의 유보`가 더 적절하다고 믿어요.
다만 `비관적 현실주의`의 김영하가 ˝아프니까 청춘이야˝거라 ˝네 노력이 부족해서 네가 힘든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들보다 더 마음에 들어요.
약간 냉정한 듯 보이기는 해도요^^

에이바 2015-04-25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디 인터뷰에선가 김영하씨가 지금의 젊은 세대였다면 작가가 되지 못했으리라 한 기억이 나요. 그런 사회를 살아가며... 비관적 현실주의와 개인주의가 함께 갈 수 밖에 없다는 것, 지금은 그 안에서 최대한 즐겁고 의미있게 사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 모두 공감합니다. 이런 현실이 독서인구가 줄어드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요. 사회가 경직될수록 우리의 감성은 부드러워야 하지 않나, 그렇지만 노력하기도 전에 말라간다는 생각에 씁쓸하네요. 이런 얘기도 김영하이기에 좀 더 귀기울여 듣고 공감대를 얻어가는 거겠지요. 지식인들이 좀 더 나서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단발머리 2015-04-26 07:4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에이바님.
그런데 암담한 20대, 당장 취직을 해서 대출금을 갚아야하는 20대들이 책을 손에 들만한 시간이 있을지, 마음의 여유가 있을지, 그런 생각을 하면 참 답답하기는 합니다.
이 책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아르바이트생이 돈을 아껴 책을 사서 사장님에게 선물했다. 제대로 된 사회라면 사장님이 아르바이트생에게 책을 선물해야 한다면서요.

김영하처럼 영향력있는 사람들이 나서줬으면 하는 마음, 저도 동감입니다.

해피북 2015-04-26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글 읽으니 이 책이 읽고싶어지네요 아직 소설 한 권도 안읽어봤는데 도전해보고 싶어졌어요^~^

단발머리 2015-04-27 12:38   좋아요 0 | URL
네~ 테드 강의랑 다른 곳에서의 강의를 묶어놓은 거라서 아주 슉슉 읽힙니다.
저도 소설을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읽은 책 두 권 다 아주 재미있게 읽었구요.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옥수수와 나`가 아주 색다르게 야하면서 재미있습니다.
추천합니다. ㅋ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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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람난 아버지

라디오에서 들었던 이야기인데,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이름은 밝히지 않는 게 좋겠다. 아주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여가수, 지금은 예순에 가까운 이 여가수가 자신의 가정사에 대해 말하다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가 나이 사십에 바람을 피워 가정을 버렸다. 아버지를 많이 원망하고 미워했다. 그런데 내 나이가 아버지 나이쯤에 이르자, 그 때의 아버지가 조금 이해되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30대 초반이었다. 바람을 피웠다는 그녀의 아버지보다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다는 그녀의 말이 더 이해되지 않았다. 자신을 버리고 간 아버지가 이해되다니,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싶었다. 이제 내 나이도 얼추 그 근방에 가까워지는 찰나, 이젠 나도 그 아버지가 이해되고 아버지를 이해하는 그 여가수도 이해된다.

그 아버지, 아니 그 남자가 이해된다. 그건 그 남자의 행동이 박수 받고, 환영받고, 케익 자르고, 촛불 켜고, 폭죽 터뜨릴 일은 아니지만, 그도 역시 연약한 인간이기에 그럴 수 있다는 것, 그것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다. 잘했다는 게 아니라, 그럴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한다는 거다. 만약, 그렇게 못 하겠다면, 계속해서 그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정죄한다면? 그런 사람들에게는 필립 로스가 이렇게 말한다더라.

이 사악한 새끼들! 삐치기만 잘하는 씨발놈들! 할 줄 아는 게 비난밖에 없는 이 조그만 똥 덩어리들! 내가 달랐고, 일을 다르게 처리했다면 모든 게 달라졌을까? 그는 자문해 보았다. 지금보다 덜 쓸쓸할까?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이게 내가 한 짓이야! 나는 일흔하나야. 나는 이런 인간이 된 거야. 이게 내가 여기 오기까지 한 일이고, 더 할 말은 없어! (102쪽)

 

(두 번째 줄 ‘씨발놈들’ 밑에는 빨간 줄이 그어져 있어, 그 단어의 철자 혹은 표현이 올바르지 않다고 말해준다. 나도 어쩔 수 없다. 번역자가 쓴 표현 그대로다. 빨간 줄은 운명이다.)

떠나버린 아버지에 대해 아들들은 분노한다. 문제는, 계속 분노한다는 데 있다. 청년이었을 때는 너무 젊고 분노가 강해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 했고, 시간이 지나서는 나이가 들어 분노가 강해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 했다. (98쪽) 가정을 버린 아버지, 자신들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아들들의 분노는 지속된다. 계속된다. 멈추지 않는다.

외려 그가 이해할 수 없었다 ― 그들이 지금까지도 집요하고 또 진지하게 격분하면서 그를 탄핵할 수 있다는 것을. 그가 그의 일을 그렇게 처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이 자기들의 일을 자기들 식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변함없이 용서하지 않겠다는 그들의 자세는 그럼 용서받을 만한 것인가? 아니면 그 결과가 덜 해로운가? 그는 이혼을 하여 가족을 깬 미국 남자 수백만 명 가운데 하나였다. 그렇다고 그가 그들의 어머니를 때렸는가? 그들을 때렸는가? 그들의 어머니를 부양하지 못했는가, 아니면 그들을 부양하지 못했는가? (99쪽)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고 그들을 도왔지만, 그들을 떠났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어머니와 헤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일생 동안 아들들에게 탄핵받아온 일흔 하나의 이 남자는 말한다. 변함없이 용서하지 않겠다는 너희들의 자세는 용서받을 만한 것이냐? 그 결과가 덜 해로운 것이냐?

 

 

2. 가장 훌륭한 아내를 가장 엉망인 아내와 바꾸어 버리는 것

피비는 침대 옆 의자에 앉아 그의 손을 잡고 있었다. 이 창백하고 어여쁜 젊은 여자는 외모는 부드러웠지만 침착했고 흔들림이 없었다. 그녀는 두려움을 드러내지 않았다. 목소리도 변함이 없었다. (43쪽) 

 

아들들을 버리고, 가정을 떠나 새로 맞이한 두 번째 아내 피비는 말 그대로 훌륭한 사람이었다. 완벽한 여자가 아니었을지는 몰라도, 그녀는 완벽한 아내였다. 죽음의 문턱까지 끌려갔던 이 남자는 현명하고 용감한 그녀의 도움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멈출 수 없는 힘 때문에, 멈춰지지 않는 욕망 때문에 이 남자는 피비를 버린다. 오십대의 자신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새로운 한 여자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던 그는, 모든 걸 알아버린 아내와 이혼하게 된다.

그가 선택한 여자는 자신이 소유한 생물적 특성으로 그의 생존 본능에 노골적인 우위를 점한 사람이었다.(118쪽) 전적으로 에로티시즘의 영역에서만 대담함을 드러내는 사람이었고, 그와의 사이에서 에로틱한 모든 것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재능을, 오로지 그 재능만을 소유한 사람이었다. (130쪽)

이번의 그의 아내 ― 세 번째이자 마지막이었다 ― 는 피비와는 전혀 닮은 데가 없었으며, 비상시에는 외려 위험 요소에 가까웠다. 물론 수술하는 날 아침에도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지 못했다. 그녀는 이동용 침대 옆에서 따라오면서 두 손을 비틀며 울더니 마침내 도저히 참지 못하겠는지 소리를 질렀다. “나는 어쩌라고?”

그녀는 젊고 미숙했다. 따라서 뭔가 다른 말을 하려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남편이 살아나지 못하면 자기는 어떻게 되는 거냐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한 번에 하나씩 하자고.” 그가 아내에게 말했다. “우선 날 좀 죽게 해줘. 그런 다음에 내가 가서 당신이 견디도록 도와줄 테니까.” (50쪽)

 

세 번의 결혼과 세 번의 이혼. 그래서 그는 인생 말년을 이렇게 혼자 지내고 있다. 두 번째 결혼에서 얻은 딸 낸시, 자신을 버리고, 자신의 엄마를 버리고, 자신의 가정을 내던지고 떠나간 아빠를 아직도 살뜰히 보살피는 소중하고 예쁜 딸, 낸시. 낸시 밖에는 아무도 없다. 그 소중한 낸시도 자신의 삶에, 일에, 아이들에 치여 그 삶이 곤궁하다 보니, 그는 외롭다. 더 외롭다.

이 소설을 읽어가는 중에 여러 번, 아주 여러 번, 나는 내 안의 유혹, “고것 참 쌤통이다!”라고 말하고 싶은 유혹과 싸워야 했다. 나는 사실과 환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택했고, 사랑이 식어버린 이전의 여자들을 버렸다. 자신에게 행복과 안락함을 주던 가정을 버렸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렸다. 나는 그에게, “메롱!”이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을 여러 번, 억눌러야 했다. 나는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는 사랑을 선택했고, 그리고는 혼자가 되었다. 그는 욕망을 선택했고, 그리고는 외로웠다. 결국에는 그렇게 살게 된 거다. 

 

 

3. 유혹이 가능한 나이

젊음에 대한 그의 찬사와 동경을 이해한다. 열 일곱과 열 여덟, 열아홉과 스물, 스물 하나와 스물 둘, 스물 셋과 스물 넷의 싱그러움은, 활기는, 생명력은 이미 그것이 자신에게 있지 않음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절망에 다름 아니다.

그녀는 그에게서 불과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엉덩이에 두 손을 얹고 서 있었다. 몸은 땀으로 축축했다. 완벽하게 균형이 잡힌 아주 작은 생물체였다. (136쪽)

 

새로운 여자를 만날 기대를 가지고 그림 교실을 열었지만, 자신 또래의 과부에게서는 도저히 만족하지 못 하는 이 남자. 욕망의 화신. 욕정의 구현체. 욕망 그 자체. 뜨거운 이 남자는 이십대 후반의 그녀에게 도전한다. 이전에는 그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여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던 걸 기억(166쪽)하면서 말이다. 결과는...

그녀는 전화하지 않았다. 산책을 나가서도 그녀를 다시 보지 못했다. 다른 널빤지 길을 따라 조깅을 하기로 한 것이 틀림없었다. 이로써 마지막으로 크게 한 방 터뜨려보겠다는 그의 갈망은 꺾여버린 것이다. (140쪽)

 

자신이 늙어간다는 것, 이제는 육체적으로 아무런 매력을 발산할 수 없다는 것, 이제는 죽음이 더 가깝다는 것을, 기분 좋게, 무리 없이,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늙어간다는 것, 거울 속의 자신이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에 유쾌해 할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아무리 피하려 해도, 부인하려해도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누구나 속수무책이고, 누구나 두 손을 들 수밖에 없다. 이기는 건 결국, 시간뿐이다.

신은 허구라고 믿는 그가 유일하게 믿는 것, 그의 유일한 위로. 뼈.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뼈가 말한다. (177쪽) 

 

그의 어머니는 여든에 죽었고, 아버지는 아흔에 죽었다. 그는 소리 내어 말했다. “저는 일흔하나예요. 당신네 아들이 일흔하나라고요.” “좋구나, 네가 살아 있구나.” 그의 어머니가 대답했다. 그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되돌아보고 네가 속죄할 수 있는 것은 속죄하고, 남은 인생을 최대한 활용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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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무선) - 개정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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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나는 잘 우는 편이다. 내 이야기를 하면서도 쉽게 눈물을 글썽이고,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금방 눈물을 글썽인다. 혼자서도 잘 울고, 다른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도 잘 운다. 교회는 다른 곳보다 ‘눈물’에 대해 관대한 편이지만, 나는 보통 사람들보다도 훨씬 더 많이 우는 편이라 눈물대비용 손수건을 항상 챙기는데, 언젠가는 2층 유아예배실에서도, 4층 본당에서도 화끈하게 울어버리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요즘에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하야~~ 나이가 들어서) 예전만큼은 아닌데, 이 단편을 읽다가 그만 눈물이 쏙 나고 말았다. 책을 읽던 장소는 지하철이었는데, 나는 손에 책을 들고 있어 급하게 탈출하는 눈물들을 어쩌지 못해 혹시 내가 아끼는 이 소중한 책이 눈물에 젖을까 순간 당황했다.

눈물을 쏙 뺀 구절은 이렇다.

그는 아이들이 태어난 뒤의, 중간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처음으로, 그러니까 아일린은 열여덟, 그는 열아홉 시절의 일들, 한 소년이 한 소녀를 만나 사랑에 불타오르던 시절로 돌아갔다.

그는 이마를 닦기 위해 말을 멈췄다. 그는 입술을 적셨다.

“계속해요.” 웹스터 부인이 말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나는 알아요. 계속 말하세요, 칼라일 씨. 때로는 그렇게 다 말하는 게 좋을 때가 있어요. 때로는 말해야만 하는 거라우. 게다가, 나도 듣고 싶어요. 다 말하고 나면 기분이 한결 가벼워질 거예요. 나한테도 있었던 일이니까요. 당신이 말하는 그런 일. 사랑이라는 거. 바로 그 얘기 말이우.” (253쪽)

 

칼라일은 홀아비다.

칼라일은 버림받은 홀아비다.

칼라일은 아이가 딸린 버림받은 홀아비다.

어려서 만난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알콩달콩 행복하게 지내던 어느 날, 아내는 자신의 직장 동료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간다.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없어 애를 태우던 칼라일은 사정을 전해 들은 아내의 친절한(?) 주선으로 아내 새애인의 어머니 집안일을 돕던 웹스터 부인을 소개받고 그녀에게 아이 돌보는 일을 부탁한다. 그녀 덕분에 엉망이었던 집은 제자리를 찾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칼라일은 돌연 가슴이 조이고 머리가 아파왔다. 그리고 열이 난다.

웹스터 부인이 챙겨준 약을 먹고, 웹스터 부인이 가져다준 시리얼을 먹고 나서, 일어날 힘을 회복한 칼라일은 그녀에게 말한다. 자신과 자신의 아내는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이 세상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도 더 많이 사랑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떠났다.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로 가 버렸다.

여름 동안, 아일린은 아이들에게 몇 장의 카드들과 편지들과 자기 사진들과, 집을 나간 이후에 그린 펜화 몇 개를 보냈다. 그녀는 또한 칼라일에게 이 문제 - 이 문제 -를 이해해달라며, 하지만 자신은 행복하다는 내용의,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행복. 마치 행복만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투로군, 이라고 칼라일은 생각했다. (227쪽) 

 

세상 누구보다 더 사랑하고, 세상 누구보다 더 아끼는 자신의 유일한 그 사람이 “이제 내 인생을 찾겠다”고 떠나갈 때, 그 사람을 아직 사랑하는 사람의 실망이란 어떠할까. 떠나버린 사람에 대한 분노와 스스로에 대한 수치심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 사람을 기다리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때의 절망이란 어떠할까.

칼라일, 떠난 아내의 빈자리를 채우려고 애쓰는 남자. 아이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아이들 옷을 세탁해서 다리고, 아이들을 차에 태워 근교로 나가 기름종이에 싸온 샌드위치도 먹고 같이 꽃도 따는 칼라일. 아이들을 슈퍼마켓에 데려가 사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고르게 하는 사람, 칼라일. (225쪽) 자기 혼자 행복하겠다고, 행복을 찾아보겠다고 자신을 떠나버린 아내를 기다리는 칼라일.

칼라일은 아내가 돌아올거라 믿었다. 아니, 그녀가 돌아오기를 바랬다. 그녀와의 사랑은 너무나 소중해서 그것을 버려두고 자신의 인생을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이제 자신의 집을 더 이상 돌봐줄 수 없다는 웹스터 부인을 앞에 두고, 이제 곧 헤어지게 될 웹스터 부인을 앞에 두고 칼라일은 말하고 싶어한다. 그는 말하고 싶어한다. 자신과 자신의 아내에 대해, 그들의 사랑에 대해 말이다.

웹스터 부인은 칼라일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바로 그때, 창가에 서 있을 때, 그는 그렇게 뭔가가 완전히 끝났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일린과 관계된, 이전의 삶과 관계된 그 무언가가.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든 적이 있었던가? 물론 그랬을 것이다. 그랬다는 것을 안다. 비록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하지만 그는 이제 모든 게 끝났다는 걸 이해했고 그녀를 보낼 수 있다고 느꼈다. 그는 자신들이 함께한 인생이 자신이 말한 그대로 이뤄졌다는 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그 인생은 이제 지나가고 있었다. 그 지나침은 - 비록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서 그는 맞서 싸우기까지 했지만 - 이제 그의 일부가 됐다. 그가 거쳐온 지난 인생의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254쪽)

 

웹스터 부인에게 자신의 심정을 모두 털어놓고 나서, 그녀에게 손을 흔들고 나서 칼라일은 비로소 이제 모든 게 끝났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이젠 끝났다. 행복했던 순간과 마찬가지로 지옥 같은 이 순간도 이렇게 지나가 버렸다. 그는 이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아내가 자신을 떠나갔다는 것을, 이제 그 자체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칼라일의 아내를 이해한다. 그녀에게는 완벽한 하나의 사랑이 있었고, 그리고 또 하나의 완벽한 사랑이 그녀를 찾아온 것일테다. 그 사랑 역시 열병처럼 그녀에게 찾아왔을 것이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를 이해한다. 이해는 하지만, 그녀의 뻔뻔한 모습은 정말 별로다. 아이를 버려두고 떠난 그녀는 너무 당당하다.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어 아쉽다. 그녀가 얄밉다.

칼라일은 이제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웹스터 부인 덕택이다. 그녀는 많이 배운 사람도, 실연당했을 때 이루어져야 하는 치료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도 아니었지만, 그녀는 칼라일이 이 어려운 시기를 지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아스피린 한 개와 시리얼 한 그릇, 진심으로 그를 걱정하는 마음이 그에게 힘을 주었다. 말하고 싶어하는 칼라일에게 귀기울이는 마음이 그에게 인생의 새로운 시간을 열어 주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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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5 04: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15 0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풋내기들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우열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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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내기들」

항상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심장 전문의 허브는 자신의 두 번째 아내 테리의 첫 번째 남편에 대해 이야기한다. 허브는 미치광이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고, 테리는 그 미치광이의 사랑도 분명히 사랑이라고 말한다. 설사 그것이 미친 사랑이라 해도 말이다. 너무나 사랑해 자신의 사랑을 폭력으로 강제하는 사랑도, 사랑이 떠난 후에는 자살할 수밖에 없는 그 미치광이의 사랑도 사랑이 분명하다고, 그녀는 말한다.

단편 속의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문장을 보면 말이다.

로라는 서른다섯으로 나보다 세 살 어리다. 서로 사랑한다는 점 외에도, 우리는 서로 좋아하고 같이 있는 게 즐겁다. 로라는 사람을 편하게 해준다. (379쪽)

 

내가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랑은 이런 사랑이다.

사랑한다는 점 외에 서로 좋아하고 같이 있는 게 즐거운 사이, 그런 사랑. 사랑하기만 하는 사랑 역시 가능은 하겠지만 그런 사랑이 오래갈 수 있을지, 혹 그 사랑이 끝난 뒤에라도 아름답게 기억될 수 있을지 그건 잘 모르겠다.

이 특별한 단편에서 가장 의미 있는 질문은, 언제나 사랑타령인 허브의 이런 질문이 아닌가 한다.

여하간 난 한때 전처를 목숨보다 더 사랑한다고 여겼고 아이도 낳았어. 근데 이젠 꼴도 보기 싫거든, 정말로. 어떻게 생각해? 그 사랑은 어떻게 된 걸까? 그냥 지워지기라도 한 걸까,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애초에 일어나지도 않은 일처럼? 그 사랑이 어떻게 된 건지 난 그게 궁금해. 누가 얘기 좀 해줬으면 좋겠다고. (384쪽)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그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너무나 놀랍고 신기한 일이다. 지구상에는 수억 명의 사람들이 있고, 내가 살고 있는 시간을 지나쳐간 사람들도 있을 텐데, 나는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이 사람, 내 눈 앞의 한 사람, 바로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거다. 그 사람이 특별히 잘생겨서도 아니고, 그 사람이 특별히 잘나서도 아니다. 그냥 그 사람과 사랑에 빠진 거다. 그 사람을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거다.

김훈은 이렇게 썼다. “만유의 혼음으로 세계와 들러붙으려는 욕망이, 어떻게 인간이라는 종과 속 안으로 수렴되어 마침내 보편적인 여자, 그리고 더욱 마침내, 살아 있는 한 구체적인 여자에 대한 그리움으로 정리되어오는 것인지에 관하여 나는 아직도 잘 말할 수가 없다.”

(출처 : 로쟈의 저공비행, <문학동네 산문집을 떠올리다>, 2013년 11월 28일)

 

위의 글은 ‘로쟈님’의 서재에서 가져온 것이다. 한 번 읽은 후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 어떤 한 사람을 사랑하고 그를 그리워한다는 건 정말 말 그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사랑에 빠진다는 것’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그 사랑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허브는 말한다. 내가 전처를 사랑했던 건 정말 확실한데, 그런데 그 사랑은 어떻게 된 걸까?

우리 중 누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 이런 얘기 해서 미안 – 하지만 우리 중 누군가에게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상대는, 남은 배우자는 얼마 동안은 애도하겠지만 결국 다시 사랑하게 되고 조만간 다른 누군가를 만나게 될 테고, 그럼 이 사랑이라는 것도 – 맙소사, 이걸 어떻게 이해하겠어? – 그것도 다 그저 추억으로 남는다는 거야. 추억조차 안 될지도 몰라. 어쩌면 애초에 그렇게 생겨먹은 건지도 모르지. (385쪽)

 

사랑이 영원하지 않기에 사랑이 더 소중한 건지도 모르겠다. 유지태는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물었지만, 아니다. 그건 그가 잘 모르고 하는 얘기다. 사랑은 변한다. 시작되고 끝난다. 활짝 피고 그리고는 진다. 영원한 사랑이란 건, 불멸의 존재가 아닌 인간에게는 여하튼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변한다. 그리고 우리는 마지막까지도 사랑이 무엇인지 모를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사랑이 뭔지 얼마나 알겠어? 허브가 말했다. ”뭐 그건 내 이야기도 마찬가지야, 이런 얘기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여하간 내가 보기에 우린 사랑에 순전히 풋내기들이야.“ (3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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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3-04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놀음 이라지만 사랑은 변하지않고..단지 사람의 마음과 그 주어진 시간과 환경이 변하는 것이라죠.사랑은..그대로 있으니 내버려두라고..ㅎㅎㅎ
어디 안갔다고..순간 인것같아요.놓침도..놓겠다 맘먹는 자신도 서로 있는거예요.그래서 기억하기 싫은가봐요.영원할것 같더니..나를 포기한..누군가..와 순간들이 서로 얽혀서 용서할수없어..라며 때를 쓰는 거죠.고집임을 알아도..그러지않음 그 이별에 정당성을 잃으니 계속 그 연장선에 둘 뿐이고요.서로 놓기로 한 거예요.사랑은 버림받았죠.

단발머리 2015-03-06 02:46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제 결론이 그거예요.
정말 모르겠는 게 사랑같아요. 사랑한다 하고, 사랑하겠다 하지만 사실은, 그 사랑을 지켜낼 사람이 변하니까요. 영원한것 같았는데 말이지요.
아, 모르겠어요.

icaru 2015-03-05 00: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이네요~ 어쩐지 표지에서 그의 냄새가 느껴졌다 하면 오버겠죠?? ㅋ
제목에서는 영화 몽상가들..이 생각나요.. 에바그린이 시종 벗고 나오지만 메시지는 심상치 아니한듯 한 그 영화..
아참... 저두 마지막까지 사랑이 무언지 모를수밖에.. 에 동의할수밖에 네욤

단발머리 2015-03-06 02:48   좋아요 1 | URL
실제로 보면 얼마나 예쁜지, 정말 예~~~~~~~~~~~~쁜 민트색이예요.
사실 저 다 안 읽은거 아시지요?
오늘 3-4개 읽었는데, 그 중에 베스트는 `풋내기들`이네요.

영화 몸상가들은 보지 않아서요. 시종 벗고 나온다면.... 엥? 뮁? 장르가? ㅋㅎㅎㅎㅎ

아무개 2015-03-05 0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원할수 없다는걸 알기에
영원하길 바라지만
영원히 변하지 않는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없다는
그 사실뿐... 그죠?

대성당만 읽고 다른 책들 또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는데
이 리뷰 읽고나니 풋내기들이 읽고 싶어졌어요 ㅎㅎㅎ

단발머리 2015-03-06 02:51   좋아요 1 | URL
네. 변할거라는 게 가장 확실한데요. 문제는, 가장 큰 문제는 영원하길 바란다는 것 같아요.
사실, 저도 영원을 갈구하는 사람이라서요.
저는 영원을 믿는데. 인간의 영원은 영....... 그러네요.

저는 그 단편집에서는 <깃터들>이랑 <열>이 너무 좋았어요.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네요.
좋았어요.
 
문학동네 81호 - 2014.겨울 - 창간 20주년 기념호
문학동네 편집부 엮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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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자>

김훈이고, 김훈의 작품이다.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뺄 수 있겠는가. 내가 더한다고 해서 그의 완벽함이 더욱 빛나겠는가. 내가 뺀다고 해서 그의 완전함이 손상되겠는가.

나는 그냥 읽고, 읽으며, 또 읽을 뿐이다.

 

‘나’는 노량진에서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9급 준비생, 구준생이다. 흉어가 계속되자 4.5톤짜리 배를 팔아 수협 빚을 갚고, 남은 돈으로 서울 이주비용을 대주시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 덕분에 ‘나’는 구준생 나름으로는 윤택한 생활을 하고 있다.

‘영자’는 고시텔 집현전에서 일 년 반 동안 동거한 여자다. ‘나’는 거주하고 있던 방의 보증금이나 월세를 분담시키지는 않았고, 관리비만 내는 조건으로 그녀와 동거에 합의했다. 섹스 문제는 구체적으로 명기하지는 않았지만, 저절로 교감이 생기는 대로 이루어질 거라 예상했다.

저녁 여섯 시 무렵에는 시장한 구준생들이 컵밥을 파는 노점 앞에 줄을 섰다.

카레라이스, 제육덮밥, 김치볶음밥은 이천원이었고 그 위에 계란프라이를 얹은 크라운컵밥은 이천이백원, 계란프라이 위에 햄버거 한쪽을 더 올린 로열컵밥은 이천육백원이었다. 라면 스프를 푼 국물을 일회용 컵에 담아주었다. 노점마다 ‘국물 리필’이라는 팻말을 천막 끝에 매달았다. 인공조미료와 식용유를 끓이는 냄새가 퍼져서, 거리는 시장했다. (30쪽)

 

저녁 여섯 시 무렵에 시장한 구준생들이 컵밥을 파는 노점 앞에 줄을 선다. 거리에 가득찬 사람들, 내일을, 내년을 기약할 수 없는 암담함. 늙으신 부모님, 주변의 기대 그리고 가벼운 주머니. ‘국물 리필’ 팻말 밑에 줄 선 사람들, 줄 선 청춘들.

'나'는 9급 지방 행정직 시험에 합격해서 경상북도 내륙 산골 마장면 면사무소로 내려왔다. 영자가 노량진에 아직 남아 있는지, 노량진을 떠났는지는 알지 못한다.

노량진을 떠날 때 영자에게

- 나, 간다. 잘해.

라고 문자를 보냈는데 응답이 없었다.

영자가 문자를 봤는지 안 봤는지를 나는 알 수 없었다. 노량진에서 뚝불이라도 함께 먹고 헤어질걸‧‧‧‧‧‧ 고속버스가 도청 소재지에 닿았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데없이 떠오르는 그런 생각에 나는 당혹했다. (34쪽)

 

도청 소재지에 닿아서야, 그렇게 멀리 와서야 영자를 생각해낸 ‘나’가 너무 야속하다. ‘나’는 고시텔에서 영자와 일 년 반 동안 동거했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동거했다 하더라도, 계약하에 이루어진 관계라 하더라도 말이다. 함께 지낸 시간들이 있는데, 두 사람은 서로를 축하해주지도, 마지막 인사를 건네지도 않는다. 한 사람은 붙고, 한 사람은 떨어졌다. 방을 뺄 날짜를 말해주고, 짐을 챙겨 나간다. 서로에게 인사하지 않는다. 같이 밥 먹지 않는다.

먹기를 마치고 카운터에서 사천오백원을 계산할 때 영자와 눈이 마주쳤다. 영자는 떡라면 냄비를 기울여서 국물을 들이켜고 있었다. 나는 영자가 먹은 떡라면 값 이천오백원을 함께 계산했다. 내가 영자의 밥값을 내주기는 그것이 처음이었다. 아마도 9급 시험이 가까워서 둘 중에 누가 붙고 떨어지건 간에 곧 동거를 끝내야 할 수도 있으리라는 예감이 그런 자선심을 발동시킨 모양이다. 영자는 어색하게 웃는 것으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 잘 먹었어. 고마워.

라고 영자는 말했다. (42쪽)

 

‘내’가 딱 한 번 영자의 식사비를 내주는데, 그 때도 두 사람은 같이 밥을 먹은 게 아니다. 배를 팔아 돈을 보낸 아버지가 있는 ‘나’는 사천오백원짜리 뚝불을 먹고, 마을버스 차부 옆에서 순댓국집을 하는 엄마가 있는 ‘영자’는 이천오백원짜리 떡라면을 먹는다.

두 사람은 같이 밥 먹지 않았다.

마장면에서, 단풍 든 숲을 바라보면서 나는 때때로 영자를 생각했는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40쪽)

 

이 단편의 결말과 상관없이, 나는 ‘나’가 영자와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영자를 찾아 노량진에 온 ‘나’는 이제 노량진을 영영 떠나려는 영자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재회하게 된다. 이제 ‘나’는 ‘내’가 영자를 만나야만 하는 이유를 분명히 알고 있지만, 영자는 지금 자신이 왜 ‘나’와 다시 만나게 됐는지 알지 못 한다. 가벼운 인사를 마치고 지나쳐가려는 영자에게 ‘나’는 말한다. 우리 밥이라도 한 번 먹자.

내켜하지 않는 영자를 끌고서 식당에 들어선 ‘나’. ‘나’는 영자에게 묻지도 않고 주문을 한다.

아주머니, 여기 ‘뚝불 2개’요.

 

 

 

<출처 : 네이버블로그 땅콩쿠키의 달달한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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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2-11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마지막 결말 참 멋지네요 뒷이야기를 듣는듯^~^

단발머리 2015-02-11 08:34   좋아요 0 | URL
아하... 그런가요? 저의 소망을 간절히 담은 결말인데요.
허접하기는 하지만 해피엔딩을 추구하는 저로서는 나름 마음에 드는 결말이예요.
김훈 작가님께는 비밀입니다~~
반가워요, 해피북님*^^*

라로 2015-02-11 0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뚝불 사진 오려주시는 줄 알았더니~~~.^^;;;;

단발머리 2015-02-11 08:40   좋아요 0 | URL
헤헤헤...
어떻게, 뜨뜻한 걸로다가 한 장 올려볼까요? :)

라로 2015-02-12 16:46   좋아요 0 | URL
ㅋㅎㅎㅎㅎ 올리셨네요!! 그러니 글이 더 잘 느껴집니다요!!!^^

단발머리 2015-02-13 10:02   좋아요 0 | URL
아롬님이 예쁘게 봐주시니 매우 기쁨니다요!!!^^

다락방 2015-02-11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다. 이 책 사서 읽어봐야겠어요. 김훈의 소설 말입니다.

단발머리 2015-02-11 11:56   좋아요 0 | URL
네.... 네개 정도 읽었는데, 모두 다 좋더라구요.

김영하님 작품도 좋구요, 성석제님 작품도, 박현욱님 작품도 좋아요.
두껍다는 단점 빼고는, 완전 좋은 단편이 수두룩 빽빽합니다. *^^*

양철나무꾼 2015-02-11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단발머리님.
계속 눈팅은 했었는데,
아무래도 댓글은 처음 남기지 싶습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꾸벅 (__)

단발머리 2015-02-11 12:3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양철나무꾼님~~
처음 댓글 감사합니다*^^*

많이 부족한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저야말로 양철나무꾼님 서재에서 좋은 글 많이 읽고 있어요.
앞으로 자주 뵈어요~ 꾸우벅 (__)

icaru 2015-02-13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렇게 해서, 김훈 단편 하나를 단발머리표 썸머리로~ 촵촵,,, 꿀꺽 소화~
시키지도 않은 작은 고백을 하자면,,, 저는 작가 김훈 님의 글은 십년전 교과서에 실린 자전거기행이 전부예요..
아아... 밥벌이의 괴로움도 있군요.. ㅎㅎ 근데 그건 김훈은 컴맹이고, 운전면허도 없다,, 라는 밖에 기억 나는게 없는거있지요. ㅠ,ㅜ)
밑천 드러나는 이런 고백~~ ㅎㅎ
아,,뚝불 참 맛나보인다~

단발머리 2015-02-14 09:19   좋아요 0 | URL
김훈님은 컴맹이고 운전면허도 없어야지요. 사람이 너무 가진게 많으면 안 됩니다.
조금 부족한 구석도 있고 그래야지요.ㅋㅎㅎ

저는 <자전거기행> 새로 나왔을때 준비시켜 놓았는데 아직 시작을 못했어요.
역시, icaru님은 십년 전에. 주로 icaru님은 십년전에... 진심 부러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