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화요일.

신문의 부록, 책 소개 지면이 있었고, 그 마지막 페이지는 전면이 책 광고였다. 모두 여덟 개의 책이 광고되고 있었는데, 맨 왼쪽 위의 책이 눈에 띄였다.

강신주의 [망각과 자유].

어, 나도 이 책 샀는데... 책 오른쪽으로 두 개의 문장이 보였고, 이내 눈이 동그래졌다.

 

 

 

 

“나는 강신주의 책 대부분을 좋아하지만, 이 책은 더 진중하고, 더 클래식한 느낌이다.”

나는 다시 한 번 신문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건 내가 쓴 문장인데... 알라딘에 들어가 마이페이퍼를 찾아봤다. 내가 쓴 문장이 맞았다.

나는 강신주의 책 대부분을 좋아하지만, 이 책은 이전과는 조금 더 다른 느낌이다. 그의 말처럼, ‘방금 박사학위를 마친 젊은 학자 강신주’의 모습이 설핏 보이는 것 같다.

여러 자리의 사진에서 보면 강신주는 ‘등산바지’ 차림인 경우가 많다. 워낙 산을 좋아하기도 하고, 또 등산복이 편하다는 얘기를 자주하고는 했다.

이 책의 느낌은 이렇다.

맨날, 허구헌 날, 항상 ‘등산바지를 입는 강신주’만 보아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정장을 차려입은 강신주’를 만나게 된 거다. 더 각이 잡히고, 더 정숙한(?) 느낌이다. 더 진중하고, 더 클래식한 느낌이다.

 

내가 쓴 몇 개의 문장 중,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이어져 독자리뷰로 신문광고에 실려있는 거다. 하하하. 혼자 웃다가 누구한테 이 이야기를 해야하나.

강신주? 아니다, 안 되겠다. 트위터도 안 하시고. 사실 트위터를 한다해도 어디에다 대고 무슨 내용으로 트윗을 날리겠나.

출판사에? 어떻게 제 문장을 제 허락도 안 받고 사용하셨나요? 제가, 감사합니다~~

혼자서 한참 난리부르스를 치고 나서, 그러고서 다시 보니, 이 문장은 너무 평범하다.

“나는 강신주의 책 대부분을 좋아하지만, 이 책은 더 진중하고, 더 클래식한 느낌이다.”

평범하고 무난한 단어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아무나 쓸 수 있는, 그런 문장이다. 이 문장이 내 문장인지도 의심스럽다. 이 평범한 문장을 내 문장이라 할 수 있을까?

아니다, 이건 그런 문장이 아니다.

이 문장은, 나의 사랑이 한 획 한 획 아로새겨진 애정의 결정체로서, 심지어 책을 읽기도 전에, 서문만 읽고도 북받쳐오르는 감상을 주체하지 못 해,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망각과 자유] 재출간 환영 페이퍼의 당당한 일원이다.

그나저나, 신문의 저 문장은 진짜 내 문장일까?

저 문장은 진짜 내 문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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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5-21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이러면 원래 출판사에서 단발머리님께 의견을 묻고 실어야 하는걸텐데요. 출판사에 전화를 해본다거나 이메일을 보내본다거나 해야할 것 같은데요. 전 안실려봐서 모르지만..

단발머리 2014-05-21 13:14   좋아요 0 | URL
아하하, 출판사에 연락을 해야한다함은 일단, 다락방님은 저 문장들을 제 문장으로 받아주신다는 거군요.
일단, 저는 거기에 감사드리구요^^
연락은 잘 모르겠어요.

출판사에서 죄송해요. 그럼, 빼죠! 그럼 어쩌죠? ㅋㅎㅎㅎㅎ

비연 2014-05-21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출판사에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요... 왜 그냥 실었냐고. 항의해야 할 듯.

단발머리 2014-05-23 08:23   좋아요 0 | URL
아, 비연님.
저도 처음이라 어쩔 줄 모르겠어요. 원래 이렇게 아무말 없이 쓰면 안 되는 거지요? 항의할 수 있는 문제군요.
사실, 화가 많이 나지 않기는 하는데요.
"- 알라딘, 단발머리 "
이렇게 실어주면 되겠는데....

아무튼 비연님도 저 문장을 제 문장으로, 받아주시나요?
감사합니다*^^*

그렇게혜윰 2014-05-21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의를 구하고 실제 닉네임이나 아이디를 실어야할 것 같은데요....

단발머리 2014-05-22 08:30   좋아요 0 | URL
아, 그렇게혜윰님~~
그러게요. 여러분들이 그렇게 하는게 좋겠다고 하시는데, 출판사에 전화하는게 무척 큰 일처럼 느껴지네요.
아... 그래도 해야겠지요? ^^
댓글 감사해요~

아무개 2014-05-22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백히 단발머리님의 문장입니다.
미리 양해를 구했어야죠. 출처도 독자리뷰라니..킁!!

단발머리 2014-05-23 08:27   좋아요 0 | URL
네, 아무개님.
안 그래도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네요. 이 글 보고 연락한거 같아요.
아직 자세한 이야기는 안 해봤는데요, 닉네님 넣어달라고 해야겠어요.
댓글 감사해요~~

2014-05-22 1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23 08: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14-05-23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뉘,,, 한쪽 눈감고 봐도 읽어도 단발머리님 리뷰 앞머리 뒷머리 가져 왔는데요~ 필시 허락구했어야 할 일인듯 해요... 아님 출처라두 밝혔어야지 않능가??
갈라파고스,,, 아마추어 출판사도 아니고 말야 ~ 헐 ㅋ

단발머리 2014-05-26 08:14   좋아요 0 | URL
네, 출처를 밝히지 않은 건 잘못이지요.
출판사랑 통화했구요. 정중하게 사과했습니다.
 

이런 구절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책을 읽으면 이러저러한 효과가 있다고 말하지 말자. 책을 많이 읽는다고 생각이 깊어진다거나 훌륭해지는 게 아니다. “태어나길 정말 잘했구나.” 아이들에게 이런 응원을 보내는 것이 어린이문학의 출발점이다. 자신에게 아주 중요한 한 권을 만나는 일이 더 소중하다.

그의 말이 옳다.

‘희망’을 가르치려 한다면, ‘절망’을 말해야 할 것이다. 인생사 각양각색 절망에 대한 세세한 안내보다 “태어나길 잘했구나.”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응원’이 먼저여야 한다,는 그의 말이 옳다.

우리나라에서는 순서가 바뀌었다. 현재의 한국, 오늘의 우리는 아이들에게 ‘절망’을 먼저 가르치고 있다. 아니, ‘절망’을 ‘가르치지’ 않아도 된다. 눈앞의 현실이 그렇다.

더 두려운 건, 그렇게 ‘절망’에, ‘절망적 환경’ 속에 익숙해져가는 것이다. 잊는다는 건,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그가 좋아했던 50권의 책 중에 마음에 드는 책들을 골라본다. 아직 읽지 않은 책이 많아 기대가 된다. 예쁜 그림은 서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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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4-05-26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야자키 하야오도 그렇고, 오에 겐자부로도 그렇고, 부인이 삽화가니까~
작업을 하는데, 협업도 가능하고~ 즐거움도 공유하고~ 그랬을 거 같아요

단발머리 2014-05-27 08:48   좋아요 0 | URL
아하... 그렇군요.
저는 icaru님이 말씀해 주셔서 알았어요.
부부끼리 협업이 가능하다는 건 참 멋진 일인것 같아요.
외국의 소설가들 같은 경우, 초고를 아내한테 보여주는 일이 많더라구요.
좋아 보여요^^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
사사키 아타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 매우 매력적이긴 하되, 가감없이 전해지는 부담감 100%의 제목

-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1) 잘라라.

과거와의 단절, 악습을 끊기로 하는 결단, 썩어 있는 어떤 것을 이제는, 잘라버려라.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전혀 어렵다. 잘라라.

2) 기도하는.

무엇을 자르는가. 기도하는 무엇을. 나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기도한다.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기도한다. 일어나서, 자기 전에, 그리고 자주자주 기도한다. 틈만 나면 기도한다. 기도하는.

3) 그 손을.

무엇을 자르느냐. 손을. 기도하는 그 손을. 잘라라.

여러모로 불편한 제목이다.

2. 마르틴 루터가 일으킨 ‘대혁명’이란 무엇인가.

미적인 것에만 관련되는 ‘문학’은 역사적, 지리적으로 굉장히 한정된 용법(57쪽)임을 지적한 저자는 문학이란 “성전을 읽고, 성전을 편찬하고, 또 그것에 대한 주석을, 신학서를 쓰는 기법”임을 밝히고 있다. (59쪽) 이에 마르틴 루터가 일으킨 ‘대혁명’이란 성서를 읽는 운동이라고 말한다.

한 마디로 하지요. 대혁명이란 성서를 읽는 운동입니다. 루터는 무엇을 했을까요? 성서를 읽었습니다. 그는 성서를 읽고, 성서를 번역하고, 그리고 수없이 많은 책을 썼습니다. 이렇게 하여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책을 읽는 것, 그것이 혁명이었던 것입니다. (75쪽)

 

책을 읽었다. 루터는 이상할 정도로 철저하게 성서를 읽고 또 읽었다. 그것을 통해 이미 부패해버린 기독교 사회가 주창하는 여러 질서들은 성서에 근거가 없는 것임을 확인하게 된다. 루터는 깨닫는다. 이 세계는 이 세계의 근거이자 준거여야 할 텍스트를 따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86쪽)

반복합니다. 책을 읽고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그런 정도의 일입니다. 자신의 무의식을 쥐어뜯는 일입니다. 자신의 꿈도 마음도 신체도,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 일체를, 지금 여기에 있는 하얗게 빛나는 종이에 비치는 글자의 검은 줄에 내던지는 일입니다. (87쪽) 

 

읽어버린 이상 되돌아갈 수 없다. 보름스 국회의 소환에서 주장을 철회하라는 요구를 거절한 루터는 말한다.

성서의 증언이나 명백한 이유를 가지고 따르게 하지 못한다면, 나는 계속 내가 든 성구를 따르겠다. 나의 양심은 신의 말에 사로잡혀 있다. 왜냐하면 나는 교황도 공의회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중략)

신이시여, 저를 도와주소서. 아멘.

나, 여기에 선다. 나에게는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91쪽)

 

읽어버린 이상 이제 어쩔 수 없다. 자신의 양심이 말하는 것들의 정확한 근거를 찾은 루터는 묵묵히 그 길을 간다. 멜라 출신 농민의 아들이 책을 읽은 후, 성서 박사가 되고, 그리고는 책을 썼다. 그래서 ‘교황의 방해자’가 되고 그리하여 예술, 문학, 정치, 법, 신앙, 종교, 그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104쪽)

이 모든 변화의 시작은 ‘읽기’이다. 도대체 그가 한 일이란 무엇인가?

그는 책을 읽었다.

아니, 읽어버렸다.

대학교 4학년 2학기, 취업이 정말 코앞에 닥쳤을 때, 공부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예~~쁜 과친구가 아시아나 항공에 입사하게 되어 그 애 이름이 불릴 때마다, “선생님, 걔는 취업했어요.”를 읊어주던 시절,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심각하게 고민해야만 했던 때, 학교게시판 직원 채용 공고를 샅샅히!(는) 아니고, 설렁 설렁 보고 다니던 시절.

그 때, “Understanding of Culture”라는 과목이 있었다. 곰 푸우를 닮은 외모의 교수님. 자기집 둘째 아들은 아직 자기가 아빠인줄 모른다는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시던 그 교수님의 수업이었다.

하~~도 예전일이라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었던 문장은 “읽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혁명적인 일”이라는 의미의 문장이었다. 교수님의 이야기는 ‘힐링’ 아닌 ‘힐링’이었다. 세상에서는 스펙을 보여주라고(사실, 이 때는 ‘스펙’이라는 단어를 잘 사용하지도 않았지만), 네 영어점수를 보여주라고, 네 성적을 보여주라고 했다. 나는 자신있게 내밀만한 게 하나도 없었고, 그렇다고 내게 ‘그 어떤 가능성’이 있다고 말할 만한 자신감도 없었다.

내가 읽어왔던 시와 소설이, 세상에서는 얼마나 필요한지 당최 물어볼 수가 없었다. 세상은 이미 답을 주고 있었다. 그런 건 필요없다고. 네가 읽은 시와 소설은 우리에게 필요없다고. 우리에게 필요한건 너의 실력이라고 말이다. 실력이요? 전 실력있는 사람은 아닌데.... 실력없는 나는, 내세울만한 게 하나도 없었던 나는, 그 해 가을에 그렇게 쓸쓸했다.

그래서, 더욱 일주일에 두 시간, 그 시간이 좋았다. 내가 배운 문장과 내가 읽은 작품을 통해 난 어떤 ‘성과’도 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래도 되는거구나, 나는 안심했다. 읽기만 해도, 읽기만 해도 되는 거구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문장들을 통해, 난 ‘힐링’되었다.

3. 그것 자체가 의미이다

즉 우리는 우주의 거대한 생성의 ‘일부이고’ 그 ‘의미인’ 것입니다. 이 방대한 우주의 생성 안에서 이리하여 우리가 말을 얻을 수 있고, 그리고 그것을 자아내가는 것은 절대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의미를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 자체가 의미입니다. (293쪽)

 

우주의 일부이고, 그 자체로 ‘의미’인 내가, 말을 얻어, 그것을 자아내가는 것. 늦은 밤, 자판을 두드려가며 이야기하는, 이야기를 풀어놓는 이 일들은 의미를 이루는 것이 아니다, 라고 저자가 말한다.

이것 자체가 의미라고 말한다.

“읽고, 다시 읽는 것, 쓰는 것, 다시 쓰는 것”을 통해 ‘나’는 변해갈 것이고, 그 ‘과정’만이 중요하다고 내게, 말해준다.(295쪽)

4학년 2학기의 힐링이, 오늘에 되살아난다.

행복하다.

행복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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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04-10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나면 정말
읽는게 단순히 읽는다는게 아니라는 뭐 그런 생각이 잠시 들더군요.
뭔가 무서웠달까요.

단발머리 2014-04-10 14:27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읽는 게 단순히 읽는게 아니다'라는 이야기는,
'읽는다'는 행위 자체를 무척이나 위대하게 느껴지도록 하지만요,
동시에 부담스럽더라구요.
난, 지금 뭘 읽고 있지? 하는 생각이 자꾸 들더라구요.
맞아요, 무서워요.@@
 
민음 한국사 : 15세기, 조선의 때 이른 절정 - 조선 1 민음 한국사 1
문중양 외 지음, 문사철 엮음 / 민음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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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근대’의 마지막 시대, 조선

가장 가깝고, 가장 잘 알고 있는 듯하지만, 실상은 모르는 이야기, 가까운 과거, 어제 우리들의 이야기, 조선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2. 정화의 항해

 

1415년(태종 15년) 정화의 보선이 인도양을 돌아 아프리카까지 다녀오는 대항해를 마치고 황도 남경으로 개선했다. 이 배에는 아프리카에서 바치는 목이 긴 짐승이 타고 있었다. 명의 관리들은 이 신기한 짐승을 보고 지혜와 덕망을 갖춘 성인이 나오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전설의 일각수 기린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야심 찬 군주 영락제에게 바치는 아부였다. 그러나 영락제는 “짐은 성인이 아니고 이 짐승도 기린이 아니다.”라고 손사래를 쳤다. (12쪽)

62척의 대형 함선과 100척 가량의 소형선으로 이루어져, 총 2만 7800명이 탑승해, 서양취보선(서양 각지의 지배자에게 내리는 황제의 하사품과 그들이 황제에게 바치는 보물을 운반하는 배)으로 불리며 싱가포르에서 모가디슈에 이르는 광대한 무역로를 구축했던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최대 선단, 정화의 대함대는 중국 지주 계급인 사대부들의 이데올로기와 몽골의 위협등으로 계속되지 못하고, 무역 대신 농업 생산을 장려하는 국가 정책에 의해 흐지부지되고 만다. 보선을 비롯한 배들은 뜯어서 연료로 쓰고, 선원들은 집을 짓거나 베트남과 전쟁을 하는데 보냈다.

역사에서 '만약‘이라는 가정만큼 어이없는 일도 없을 테지만, 만약 그 때, 중국이 바다 저 편 세계에 대한 탐험을 계속했다면,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지 않은 신세계에 대한 개척을 역동적으로 해냈다면, 그래서 아메리카를, 아프리카를, 오스트레일리아를, 자신들의 지배 아래 두었다면, 지금의 세계 공용어는 영어가 아니라, 중국어가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해 본다.

3. 15세기 조선이 만든 세계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한 폭의 비단 위에 바다와 육지가 어우러진 세계를 조선의 눈, 조선의 자부심으로 표현한 지도이다. 여기에는 조선과 직접 교류한 동아시아뿐 아니라 서남아시아, 유럽, 아프리카까지 그려져 있다.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 이른바 ‘신대륙’으로 불리는 지역을 제외하고 당시 유라시아 사람들이 알고 있던 세계는 모두 망라된 셈이다. (52쪽) 이는 중국에서 만들어진 두 장의 지도를 교정하고 합쳐 만들어진 것으로(53쪽), 각 대륙의 윤곽이나 나라별 면적 등은 객관적 실재보다 매우 과장하고 있지만 포괄하는 지역의 광범함은 당시 어느 지도에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55쪽) 

당시 우리나라가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소중화, 더 나아가 문화적으로는 중국과 동등하다는 자존의식이 이 지도에서는 우리나라 국토 면적으로 직접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실제로 이 정도의 영토였으면 좋겠다는, 이런 허튼 생각을, 또 해본다.

이슬람과 조선의 우주관을 보여주는 사진 역시 눈길을 끈다. 지구와 천체가 모두 둥글다고 생각한 이슬람 세계의 우주관과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동양의 전통적 우주관을 통해, 이슬람의 천체 과학의 눈부신 일면을 확인할 수 있다.

4. 빛나는 유산, 한글

세종대왕은 한 치의 의심 없는 천재형 왕이다. 아니, 세종은 천재다. 천재인데 부지런하다. 부지런한 천재왕. (밑에 사람은 힘들어 죽을 지경이다) 쓰시마 정벌, 영토 확정, 농업 장려, 공법 실시, 천문학 장려, 천문 의기 창제, 예악 정비등 가히 전방위적이라 할 만한 업적들을 남겼다. 하지만, 그의 최고 업적은 뭐니뭐니해도 한글 창제다.

명군으로 일컬어지는 다른 왕들, 예컨대 고구려의 광개토대왕, 백제의 근초고왕, 신라의 태종무열왕, 고려의 문종, 조선의 정조 등은 일세를 풍미한 군주로서 자신들의 왕조와 백성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그들이 세운 업적이 현대 한국인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없다.... 그러나 세종은 다르다. 세종은 왕정 시대의 다른 군주들은 물론 어떤 의미에서는 근현대 한국의 지도자들보다도 더 현대 한국인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종이 만들었지만 그의 시대보다는 현대 한국에서 더 많이 사용되고 있는 한글 때문이다. 한글은 한국인의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고, 한국인이 독창적이고 우수한 문화를 소유한 민족임을 만방에 과시하는 최고의 지표이다. (100쪽)

오늘의 리뷰를 가능하게 하는 이 아름다운 한글의 창제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말과 글이 따로 노는 상황에서 한자, 한문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보통 백성과 여성은 많은 불편을 겪었지만(165쪽), 과거 시험을 통해 양반 관료로 편입되어 정체적 권력과 경제적 이익을 챙기는 지배층은 보통 백성까지 쉽게 배울 수 있는 문자의 출현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169쪽)

세종은 매우 은밀하게 한글 창제를 진행했다. 한글이 완성된 후, 세종은 한글을 이용해 처음으로 공개적인 사업을 추진한다. 집현전의 실제 책임자인 부제학 최만리를 비롯한 여러 명의 신하들이 상소를 올린다. 언문 창제와 같은 중대한 일을 신하들의 공론을 모으지 않고 진행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임금이 건강이 안 좋아 요양을 떠나면서까지 그리 급한 일도 아닌 언문 관련 사업에 신경을 쓰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이었다(171쪽). 이에 대한 세종의 답이 걸작이다.

상소문을 받아 본 세종은 진노해서, 상소에 참여한 최만리 등 7명의 집현전 관리들을 불러다 호통을 치는데, “그대들이 운서를 아느냐? 사성과 칠음을 알며 자모가 몇인지 아느냐? 만일 내가 운서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누가 바로잡는단 말이냐?” 하고 언성을 높인다. 음운학에 대한 세종의 학문적 자부심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한글은 당시 한국어의 음운 체계를 정확하고 정밀하게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음운학에 조예가 깊은 학자가 아니면 그런 일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세종은 그러한 언어학적 식견을 가지고서 한글을 만들었으며, 기득권에 젖어 있던 유신들의 반대를 예상하고 있었기에, 한글 창제 사업을 신하들 몰래 은밀히 추진했다(171쪽).

근면성실한 천재왕의 강한 결단으로 오늘의 ‘한글’이 탄생했다. 독자적인 문자, 과학적 원리에 의해 창제된 한글은 우리의 자랑이자, 보물이다. 특히, 한글 사랑은 문자를 보낼 때, 더욱 극명해진다. 다른 언어는 잘 모르겠지만, 영어만 놓고 비교했을 때, 한글처럼 문자보내기가 용이한 문자가 있나 싶다.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과거 ‘천지인’ 조합으로 인한 문자 보내기는 한글, 오직 한글로서만 가능한 놀라운 ‘문자 보내기’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5. 아름다운 책, 아름다운 사진들

책의 판형이 크고, 무거워 들고 다니면서 읽기는 조금 어렵다. (굳이 들고 다닌다면 말릴 수는 없겠다.) 책 속의 여러 삽화와 사진들이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의 노력과 정성을 보여준다. 특별히 좋았던 점은 ‘조선의 때 이른 절정’을 보여주면서 주변 국가를 비롯한 세계 정세도 소상히 안내해 줬던 것이다. 넓고 넓은 우주, 끝이 보이지 않는 이 땅에서, 우리만 달랑 살았던 것은 아님을, 다시 한 번 기억하게 해 준다. 

그나저나, 예쁜 사진은 어떻게 올려야 되는건지 도통 모르겠다. 나는 아이패드로 찍어 N드라이브에 올리고, 네이버에 접속해 사진을 내 컴퓨터에 다운 받은 후, 그림판에서 정갈하게 잘라내기를 한 후에, 알라딘서재에 올리는데, 들이는 정성에 비해 사진이 넘 별로다. 어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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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2014-04-09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단발머리님의 이 글 보니, 이 책 저도 사서 보고 싶어요. 그렇게 할래요^^.

단발머리 2014-04-10 11:16   좋아요 0 | URL
앗!! 테레사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어요^^
이 책 아주 재미있구요. 두고두고 봐도 좋을 것 같아요.

요 위에는 쓰지 못했는데요. 저는 알라딘서재 민음사 방에서 [서평단모집] 이벤트를 통해서 이 책을 받았어요.
제 생각으로는 다음에 나오는 책들도 이벤트를 계속 할것 같아요.
책이 필요하시면, 이벤트 응모해보시면 좋을 듯 해요~~~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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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딜리팅‘ 의뢰를 원하십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나를 둘러싼 세계와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다. 우리는 나를 둘러싼 세계를 확장해나가면서 내가 모르는 세계를 줄여나간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모르는 세계는 늘 어떤 방식으로든 존재하게 마련이다. 구동치는 굳이 물건을 없애는 것보다는 물건의 위치를 바꾸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구동치는 두 개의 세계 모두에서 물건을 없애는 것을 풀 딜리팅 full deleting이라 불렀고, 나를 둘러싼 세계에서 내가 모르는 세계로 물건을 옮기는 것을 하프 딜리팅 half deleting이라 불렀다. 물건을 그저 옮기는 것만으로 딜리팅이 가능한 것이다. 의뢰인의 입장에서는 풀 딜리팅이든 하프 딜리팅이든 문제 될 게 없었다. (85쪽)

 

구동치는 딜리팅 전문 탐정이다. 죽은 사람들의 휴대전화기를 찾아 없애주고, 죽은 사람의 컴퓨터를 망가뜨리고, 죽은 사람의 일기장을 찾아서 갈기갈기 찢고 불태우는 일(84쪽)을 한다. 소설은 구동치의 의뢰자 중 하나였을 것으로 생각되는 한 사람이 갑작스럽게 죽게 되면서 일어난 일들을 보여준다.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은, ‘만약, 내가 생각해본다면, 난 어떤 물건의 딜리팅을 의뢰하게 될까?’였다. 일단, 이 노트북을 딜리팅 의뢰하겠다. 쓰단 만 글, 어디에다 대고 하는지 모르겠는 하소연 글, 내가 싦어하는 사람 명단 및 소소한 욕 등이 저장되어 있는 이 노트북. 노트북 딜리팅 의뢰. 그 다음으로는 곱슬머리 여드름투성이 중학교 시절 사진들 딜리팅 의뢰, 옷방 유아용의자 밑 쇼핑백 속에 00오빠가 보낸 편지꾸러미 딜리팅 의뢰, 휴대전화기는 2G라 딜리팅 하고 말것도 없고. 아, 참.

그리고보니, 진짜 딜리팅할 것들이 막 생각난다.

유통기한 확인조차 불가능한 냉동실 속 냉동식품들, 냉장고 속 시들시들 야채들, 각종 서랍 속 각종 물건들, 언제 쓸지 모르겠지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각종 물건들. 써놓고 보니, 이건 아니다 싶다. 이 책은 봄맞이 대청소와 정리 정돈에 대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딜리팅에 대한 책이다. 딜리팅 의뢰, 딜리팅 의뢰를 원하십니까.

2. 구동치는 김중혁? 

소설은 의뢰인이 죽은 후에야 일이 진행되는 딜리팅에 대한 것이고, 소설 초반 의뢰인 중 한 명이 죽게 된다. 어둡고 자칫 음산해지기 쉬운 분위기를 화~하게 해주는 건, 악어빌딩에 사는 사람들이다. 주변에서 흔히 만날 것 같지만, 실제로도 만나고 싶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 중에 제일은 역시 구동치다. 구동치에 대한 묘사 중 키에 대한 부분이 2번 정도 나오는데, 두 번 다 구동치가 보통 사람들보다 키가 무척이나 크다는 내용이다. 작가의 의도가 어떠하든 (그 의도일수도 있겠지만^^), 나는 구동치를 김중혁 작가님이라고 생각한다. 구동치는 김중혁이다.

남자는 코트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지갑을열자 비닐막 아래 있는 사진이 보였다. 남자는 손가락으로 사진을 문질렀다.

“그런데, 그냥 줄 수는 없지 않겠소?”

남자가 지갑 속에서 사진을 꺼내며 말했다.

“그냥 줄 수 없으면, 반으로 접어서 주십시오.”

구동치가 웃으며 말했다. (415쪽)

 

이 외에도 깨알 재미 에피소드가 수두룩 빽빽, 촘촘하지만, 일단 이 정도만 하기로 하고.

3. 빛나는 어록

킥킥거리며 읽어갔던 부분이다. 이 멋진 소설을 작가가 쓴 원문 그대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내가 한국어에 이렇게도 능통하다는 것이, 무척이나 기쁘다.

“아 역시, 구 선생님이시네요. 멋진 말씀입니다. 예방이 의심보다 낫다. 제가 아이들에게 인성 교육을 할 때 그 말도 꼭 하겠습니다. 구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라고 꼭 밝히겠고요.”

“아뇨, 뭐 그러실 것까진 없고요.”

“부담스러우시면, 제가 한 말로 하고 이렇게 고쳐도 되겠습니까?”

“어떻게요?”

“인자무적이요, 예방 우선이다. 어진 자에게는 적이 없고, 적의 공격을 예방하는 자에게는 한 치의 의심도 없다.”

“뭐든지 인자무적이냐. 아주 지랄하고 자빠졌다.” (28쪽)

 

“사진 안 찍으시면 안 되냐고요.”

“뭐요?”

“사진 왜 잘 안 나오는지 모르죠?”

“무슨 소리예요?”

“사진이 왜 자꾸 이상하게 나오는지 모르죠? 얼굴이 별로니까 사진이 잘 안 나오는 거예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니까 일찌감치 포기하시라고요.” (168쪽)

 

4. 작품은 작가보다 위대하다.

소설가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부쩍 드는 요즘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는, 구동치=김중혁이라 생각할 때가 참 많았지만, 사실, 철물점 백기현도, 합기도관장 차철호도, 영민한 이영민도, 선배 형사 김인천도, 피시방 이빈일도, 셰프 박찬일도 모두 다 김중혁이다. 그들 모두는 김중혁의 자식이고, 김중혁의 인형이고, 김중혁의 작품이고, 그리고 모두 다 김중혁이다. (내 진심으로, 김작가님을 좋아하니까, 천일수는 일부러 빼주는 거지만, 만일 작가님이 ‘천일수도 나야.’, 그렇다고 하면, 뭐, 그것도 OK.)

그들은 모두 김중혁이고, 각자 백기현이고, 차철호고, 이영민이고, 김인천이고, 이빈일이고 그리고 박찬일이다.

어설픈 귀동냥으로 들은 얘기 하나. 김작가가 위대하지 않다는 얘기가 절대 아니다.

어쨌든, 작품은 작가보다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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