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1월에는 꽤 바빴다. 

수지에 사는 친구를 명동에서 만나 파니니를 먹었고, 시부모님 칠순 문제로 폭발해 버린 친구를 만나 커피를 마셨다. 지지난 주에는 엄마가 김장을 하셨다. 내가 한 일은 없었지만, 아무튼 나도 '엄마 김장을 도와야 한다'고 말하고 다녔다. 지난 주에는 교회에 부흥회가 있어, 저녁마다 온 가족이 출동했다. 


 

 

 

 

 

 

 

 

 

 

 

 

 

 

 

맘 같아서는 이틀이면 강신주님 책을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많이 어렵지 않은데도, 약한 정체 상태다. 마음은 급하고, 책은 쌓여간다.   


2. 대김장 기여도 

'대김장 기여도'라는 게 있다. 내가 지은 말인데, 김장에 대한 기여도를 말하는 것이다. 나는 올해로 결혼한지 12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결혼 2년차 정도의 음식 솜씨를 가지고 있다. 엄마와 어머니는 자꾸 늙어가시고, 내 실력은 늘지 않는다. 

예전에 김장에 대한 내 기여도는 2.2 정도였다. (가끔 장 보는 걸 돕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어머니께서 장을 보시고, 어머니께서 배추를 들이시고, 어머니께서 배추를 절이시고, 어머니께서 양념속을 만드시고, 어머니께서 배추를 씻어놓으신 후에 등장해, 배추속을 넣은 배추를 김치통에 넣어 우리집으로 가지고 왔다. 

하지만, 요근래 어머니 허리 통증이 더 심해지셔서, 2.2의 대김장 기여도를 조금 높여보자 생각했다. 모레가 '김장'하는 날이니 어제 저녁쯤에 시댁에 가면 되겠다 싶어, 신랑에게 말했다. 

"내일 오후나 저녁쯤에 (시댁에) 가볼려고." 
"씻는 거 오늘 아침 일찍 하실 것 같은데. 나 내일 일찍 끝나는데. 내가 아롱이 받아줄 수도 있고." 
"그래?

당신, 김장의 기역자도 모르는 사람. 토요일에 '김장'하기로 했으면, 절이는 것은 당연히 금요일 오후인데, 아침 일찍 절이실거라니. 나는, 착한 나는 오전에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어머님, 배추 절이는 거 제가 도우려구요. 언제 하..."
"그래? 그럼 너, 지금 와라."
"에? 네. 그럼 저 좀 준비 좀 하고..." 
"준비할게 뭐 있냐? 얼른 와."

그래서, 시댁에 가서는, 무를 사고, 갓을 사고, 생새우를 사고, 굴을 사고, 떡을 사고(?), 당근을 사고, 대파를 사고, 쪽파를 샀다. 그리고는 양질의 상품, 저렴한 가격 때문에 재래시장을 종횡무진하시는 어머니덕에 이 모든 걸 바퀴 달린 장바구니에 담고 시댁으로 돌아왔다. 너무 무거워 장바구니가 두 번이나 뒤집어졌다. 나는 '어머나' 하면서 웃었다.

그리고는, 갓을 다듬고, 무를 다듬고, 대파를 다듬고, 쪽파를 다듬었다. 배추의 꼭지를 따고, 그리고, 배추를 절였다. 

다음날, 배추를 씻었다. 짬뽕을 먹고, 탕수육을 먹었다. 신문지를 깔고는 배추에 속을 넣었다. 속을 넣은 배추를 김치통에 넣었다. 고추가루, 젓갈로 범벅이된 다라이(다라이~ㅎㅎ)를 씻었다. 어머니께 봉투를 드리고 인사를 하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2013년, 나는 나의 대김장기여도를 2.2에서 4.3정도로 상향조정하려 했는데, 신랑은 6.1 정도 기여할 것을 조심스레 제안했고, 어머니는 7.4 정도를 요청하셨다.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단순 노동의 범위에서 내 대김장 기여도는 7.8 정도에 육박한다고 감히 단언한다. 

내가 먹을 김치를, 우리 식구가 먹을 김치를, 시댁 가서 한 것 뿐인데, 주위에서는 모두 '수고했다'고 칭찬하셨다. 김장 다음날 어머니는 내게 전화를 하셔서, "너, 몸은 괜찮니?"라고 물으셔서, 나는 어머니의 이 귀한 말씀을 플랜카드로 만들겠다고, 신랑에게 말했다. 
"내가 이렇게 많이 애썼다니까. 오죽하면, 어머니께서, 어? 알겠어?" 

3. 아롱이 수영반의 S엄마를 만나 

나의 대김장 기여도를 자랑하려 말을 꺼냈다. 
저번주에 시댁에서 김장을 했거든요. 
응, 그래? 나도 이번주에, 김치 한, 230포기쯤 했지. 
네? 김치 공장하세요? 아니, 누가 김치를, 그렇게 많이? 

알고 보니, S 엄마는 동네에서 일 잘한다고, 손 빠르다고 소문난 알뜰 주부로서, 김장 때가 되면, 같은 빌라 사시는 아주머니들이 손에 손을 부여잡고, 부탁 아닌 부탁을 하신다는 거다. 내일 우리 김장이야. 와서 좀 도와줘. 그럼 맘 착하고, 손 빠른 S 엄마는 그 집에 가서는 김치를 착착 해준다는 거다. 이번주에도 40포기쯤의 김치가 남아있다고. 허걱. 

아, 나는 우리집 김치 30포기를 해놓고는 여기 저기 그렇게 자랑을 해대고, 내 사랑하는 알라딘서재에 이렇게 장문의 글을 올리고 있는데, S 엄마는 자기네 김치도 아닌, 남의 집 김치를, 200포기 넘게 해 주고는, 이렇게 환하게, 예쁘게 웃고 있다. 

대김장 기여도 10을 넘어, 14.8을 구가하시는 S 엄마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아, 나는 아직도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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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11-28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김장 기여도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단발머리님께서 강신주로부터 배운 단어 '육박하다'를 아주 적절하게 쓰셨다는 데에 있습니다!!!!!

단발머리 2013-11-28 11:12   좋아요 0 | URL
헤헤, 지금 저 칭찬해주시는 거죠?

여보세요, 여러분~
저는 책을 내신 유명 작가님께 칭찬받는 사람입니다, 만세^^

노이에자이트 2013-11-28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라이같은 단어를 쓰면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일제잔재라고 하면서...방송에서도 못쓰게 하더군요. 저는 정겹더라고요.이제 우리말 단어로 간주해도 좋을 것 같은데...

단발머리 2013-11-29 11:5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노이에자이트님~~
저 사실, 노이에자이트님 방에 자주 갔었는데, 댓글 남길 용기가 없어, 공감만 누르고 퇴장했었는데, 제 서재 방문해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이 '다라이'라는 단어가 체화되었나봐요.
쓸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네요. ㅋㅎㅎ
앞으로 자주 뵈어요~~

감은빛 2013-11-28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까 김장한 얘기를 쓰다가,
'다라이'에서 딱 막히는 거예요.
이걸 우리말로는 뭐라고 해야하는 거지?
대야? 큰 대야?

애 많이 쓰셨네요!
저는 과연 몇의 기여도를 가질 수 있을지 계산 한번 해봐야겠어요. ^^

단발머리 2013-11-29 12:02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 안녕하세요~~
저는 쓸 때는 암 생각이 없었는데, 써 놓고 보니, 좀 웃기네요. 다라이^^

제가 님 글 읽고 대김장 기여도 계산 해 놓았거든요. 너무 수고 많으셨어요.
김장 하셨으니, 올 겨울이 든든하시겠어요. (이거, 어머니들 멘트인데...쩝)

따뜻한 겨울, 행복한 겨울 되시기를...

박선영 2013-11-28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 너무 재미있게 보았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무거워 장바구니가 두 번이나 뒤집어졌다. 나는 '어머나' 하면서 웃었다.
여기서 빵터졌어요 . .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3-11-29 11:53   좋아요 0 | URL
하핫, 안녕하세요, 박선영님~~

그러게요. 저도 제가 그렇게 웃을 줄 몰랐어요.
사실.......
오늘 아침에 일어났는데, 발목이 좀 아프더라구요. 장바구니 여파가 아직까지...
그런데, 그 때는, 그게 그렇게나 웃겨서 웃었거든요.

박선영님도 즐거우셨다니, 제 맘도 좋아요~~
앞으로 자주 뵈어요^^
 


 

1. 딸롱이와 뮤지컬 공연을 보러갔다. 

진작에 예매해놓고 오매불망 기다리던 그 날이 바로, 그 날이었다. 올해에는 '화려한 외출'이 잦아서 남편에게 조금 눈치보였는데, 철없는 딸롱이는 지하철에서 물었다. 

"엄마, 아빠가 1년에 뮤지컬 몇 번 보래?" 
나는 "홍광호꺼는 다 봐야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건 마음속으로만 '자막'으로 처리하고, "응, 두 번. 두 번이면 되지."하고 말했다. 홍광호가 일년에 두 작품을 하지는 않겠지, 생각하면서 말이다. 

 

 

 

 

 

2. 부드러운 목소리 '콰지모도'의 절규 

'콰지모도'는 애꾸눈, 꼽추에 절름발이이다. '미치광이들의 교황'으로 뽑힌 것이 당연하다.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홍광호'가 콰지모도로 분해 분장을 하고 무대에 섰을 때, 마음속으로 충분히 각오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실망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었다. 아, 그러게, 왜 콰지모도를 맡아가지고... 

하지만, 그의 목소리를 듣고 난 뒤, 난 그를 용서했다.(*^^*) 
난 홍광호를 용서했다.  

안타깝고 절망스러운 콰지모도의 삶을 연기하기 위해, 국내 아니, 세계 최고의 꿀성대, 미친 가창력의 홍광호는 나름 '거칠게' 노래하려 했지만, 고음의 발성에서는 어쩔 수 없이 그의 아름다운 소리가 무대 전체를, 관객석 이 쪽에서 저 끝까지 가득 채워버렸다. 이렇게 부드러운 목소리의 '콰지모도'라니. 이렇게 귀여운 홍광호의 '콰지모도'라니. 

 

 

 

 

 

 

 

3. 코스트코에서 피자를 주문할 때 

난 작품이나 무대, 오리지널 팀이나 아니냐를 보고 뮤지컬을 결정하지 않는다. 오직, 배우. 내가 좋아하는 배우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그의 연기를 보기 위해 뮤지컬을 감상한다. 

<노트르담 드 파리>도 원작이 위고의 작품이라던가, 그 동안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성공적인 공연을 이어왔다던가, 아름다운 넘버들이 많다던가 하는 이유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내 결정의 원인과 목적은 오로지 하나, 오직 홍/광/호/다. 

그런데, 공연장에 가보니, 사실 홍광호의 노래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조연들의 노래가 무척이나 (특히, 내게는 더욱) 많았다. 오죽하면, 이 뮤지컬에서 제일 유명한 곡 '대성당들의 시대'가 작품 속에서 시인으로 나오는 '그랭구와르'의 곡이겠는가. 아무튼, 여러 조연들의 노래와 댄서들의 화려한 춤을 감상할 시간이 많았다.

그 중에, 아름다운 집시 여인 '에스메랄라'와 귀족처녀 '플뢰르 드 리스'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페뷔스'의 심정을 표현한 <괴로워>라는 곡이 있다. '이 고통~~~'을 외치며 노래하는 페뷔스 뒤로 커다란 막이 쳐지고, 켜지고 꺼지는 다섯 개의 조명 아래 다섯 명의 무용수들이 거칠고 긴박한 움직임을 통해 페뷔스의 고통을 표현했다. 다섯 명의 남자 무용수들은 짧은 하의 타이즈만을 입고 있었는데, 그들이 보여주는 아크로바틱은 정말, 너무나 아름다웠다. 

인간 내면의 슬픔과 고통을, 낙심과 절망을 인간의 육체 그 자체로 여과 없이, 가감 없이 보여주는 역동적인 무대였다. 내 사랑하는 '홍광호'의 <춤을 춰요, 에스메랄라> 다음으로 감동적인 곡이었다.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조명 속에서 자신의 몸을 통해, '페뷔스'의 고뇌를 표현해내는 다섯 명의 무용수들을 멍하니 바라 보고 있을 때, 갑자기 코스트코의 직원들이 생각났다. 

 

코스트코에 두번째 갔을 때, 대형 피자와 베이크를 먹기로 했다. 맛은 어쩐지 모르겠지만, 커다란 쟁반보다도 더 큰 대형 피자와 베이크, 그리고 머스타드를 곁들여 양파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맛과 사이즈, 아니면 두 가지 모두에 만족한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피자와 베이크를 주문하러 '주문대' 앞에 섰을 때,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주문을 받는 직원 뒤로 보이는 은색의 커다란 조리기구들, 내 키보다도 더 큰 오븐들, 어마어마하게 큰 대형 피자, 뜨거운 불고기 베이크, 밖까지 훅~~ 몰아치는 열기. 하얀 가운을 입고, 역시 하얀색 빵모자를 쓰고, 쉴새 없이 손을 움직이는 직원들을 쳐다봤을 때,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 이 사람들은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구나. 이 사람들은 자기가 맡은 일에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구나." 

그런데, 나는 뭘 했나. 

나는 오늘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나. 나는 오늘 내 몫을 잘 담당했나. 남을 돕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내 할 바를 감당 못 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았나. 나는 내 맡은 일을 잘 해나가고 있는가. 이 사람들처럼 이렇게 열심히,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는가. 

피자 구역에서 일하는 직원들 대부분은 앳된 얼굴의 20대 초반으로 보였다. 낮에는 공부를 하고, 주말에는 혹은 저녁에는 코스트코에서 일할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일해도 학자금 대출을 받지 않으면 등록금을 낼 수 없는 상황. 간신히 학교를 졸업한다해도 취업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답답한 앞날, 계속되는 경제적 압박, 미래를, 핑크빛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암울한 환경. 이미 학교를 졸업하고, 이 곳에 취직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 곳이 직장, 이 곳이 일터인 사람들. 주문하기 위해 서 있는 사람들, 줄어들지 않는 줄, 끝업는 줄. 하얀 까운에 하얀 빵모자를 쓰고, 계속해서 바쁘게 손을 움직인다. 쉬고 있는 손이 하나도 없다.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에서 '이만교'가 말했듯이, 나는 안정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전업주부다. 웬만해선 잘릴 일이 없다. 내가 하는 일은 이 세상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이 엄마, ##이 엄마다.

아무에게도 빼앗기지 않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나, 해야할 일이 있는 나, 그런 나는 내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나는 내 맡은 바를 잘 해 나가고 있는가. 이런 저런 생각에, 코스트코 대형 피자는 맛이 없었다. (원래, 맛이 없는 것일수도 있겠다.) 

공연장에서 <괴로워>라는 곡을 들으며, 코스트코 대형 피자가 생각났다. 조명의 움직임을 따라 자신의 육체를 통해 '페뷔스'를 표현해내는 다섯명의 아크로바틱 무용수들. 자신의 일에 열정을 다하는 사람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그리고 코스트코 직원들. 어쩔 수 없이 일하는 사람들, 또는 그 곳이 자신의 일터인 사람들. 하지만 그 속에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자신의 몫을 다해 내는 사람들. 

만약, 내가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면, 아니면 내가 아직 직장에 다니고 있었더라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일하고, 잠깐 여유를 내는게 뭐가 어때서?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내가 번 돈이 아닌, 나의 노동과 직접적인 관계를 찾고 찾아야 비로소 그 연관성을 조금 추측해 볼 수 있는 '돈'을 사용해 표를 끊고, 비싼 커피 한 잔을 마신 후, 공연장 의자에 앉았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불편함을 느끼고 말았다. 

나는 열심히 살고 있는가. 나는 내 몫을 잘해 내고 있는가. 

혹, 내가 맡은 일에 전문가인 '프로 전업 주부'라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수도 있겠다. 하지만, 난 항상 낙제점에 간단간당 걸려있는, 말 그대로 '날라리 주부', 내지는 '모양만 주부'이다. 언제나처럼 할 수 아는 것보다 못하는 게 훨씬 많은, 그런 주부이다.  

<노트르담 드 파리>를 관람하며 다른 것을 생각할 수도 있었을텐데. 

이를테면, 정념에 사로잡혀 신에 대한 사랑을 저버린 '프롤로'의 고뇌라던지, 마음 속 타오르는 '에스메랄라'에 대한 사랑과 정숙한 귀족여인 '플뢰르 드 리스' 사이 '페뷔스'의 갈등이라던지, 흉칙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가장 순수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 '콰지모도'라던지. 이런 것은 생각이 안 나고, 코스트코의 피자가 생각나, 울적한 기분이 들려 했다. 

한 가지 위로는, 
오직 한 가지 위로는 그의 노래였다. 


그의 노래 소리, 
그의 노래, 
그의 목소리가
유일한 위안이었다.

4. 책은 진작에 사 두었지만

 

 

 

 

 

 

 

 

 

 

 

 

 

 

 

 

 

그 때 막 <레 미제라블> 5권의 대장정을 마친 터라, '빅토르 위고'의 책을 연거푸 읽기가 조금 두려워(^^),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결국 책을 읽지 못하고 공연을 보게됐다. 항상 그렇지만, '얼른 읽어야겠다.' 혼자 다짐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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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10-08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파리의 노트르담 읽고 싶어했었는데 그래서 사두었는지 안사두었는지가 기억나질 않네요. 사두고 안읽은건지 아직 안사고 안읽은건지..원.. ㅠㅠ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 보면(제목이 정확하게 이게 맞던가요?) 사람들이 '프로'병에 걸렸다고 하는 부분이 나와요. 왜 너도나도 다들 프로가 되어야만 하는건지, 아마추어이면 안되는건지, 언론의 홍보가 사람들을 뭔가 있어보이게 만드는 프로로 이끌었다 뭐 그런식의 말이요. 그렇지만 단발머리님, 프로가 뭘까요? 왜 프로가 아니면 불편한 마음이 들어야 할까요? 누구나 하루하루 간당간당하게 살고 또 어떤것들에 대해서는 불편해 하면서 사는거, 그게 삶이 아닐까요? 만약 단발머리님이 프로였다면 피자를 앞에 두고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겠죠? 같은 상황을 마주하고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됐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잖아요? 생각했으니 우리는 그 생각을 하기전과 조금, 아주 조금이나마 달라질 수 있을거에요. 설사 태도가 달라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생각은 머릿속에 남아있을테고, 그것은 언제 어떻게든 영향을 미칠겁니다. 전 그렇게 생각해요, 단발머리님.

단발머리 2013-10-08 12:16   좋아요 0 | URL
내가 다락방님 보다 먼저 읽을 수도 있으리라는 ㅋㅎㅎㅎㅎㅎ

나두 저 책 읽었는데, 저 부분은 기억이 안 나요. 가물가물도 아니고, 아예~~요. 책이 없으니 확인도 불가하고.
맞아요, 그럴 수도 있네요. 프로가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제 공연관람을 엄청 방해했죠.^^

나를 불편하게 했던 생각이 나에게 어떻게든 영향을 미치기는 할 텐데요. 사실....................................
이런 불편한 생각은 일을 그만두고 집에 있으면서부터 시작된거 같아요. 해보지 않던 집안일이 생각보다 어려웠구요, 아이들이랑 투탁거리는 것도 장난이 아니더라구요. 전 시집오기 전까지 재미로 청경채 샐러드는 고사하고, 떡볶이 한 번 만들어보지 않던 사람이거든요. 가정사랑 완전 담쌓고 살다가, 이제 주로 하는 일이 이게 되니, 솔직히, 아직도 적응 안 됐는데.

앞으로도 안 될 거 같아요. 그냥 ..... 이렇게...... 살아도............ 되겠지요. 호홍

순오기 2013-10-10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뮤지컬과 친할 수 없는 고장에 살다보니 홍광호 이름도 처음 들어요,
하지만 앞으로 단발머리님이 사랑하는 그 이름을 꼭 기억할게요!^^
다음주에 바리톤 김동규의 노래를 들으러 가요,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생각만으로도 즐거워요!^^

단발머리 2013-10-11 09:07   좋아요 0 | URL
아하... 꼭 기억해 주세요. 아름다운 이름, 홍광호... ㅋㅎㅎㅎ

김동규씨가 오시는군요.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는 김동규씨 버전이 최고더라구요.
10월에 이 노래를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 야외무대였으면 더 좋을텐데요.

mira 2013-10-13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뮤지컬 팬이시군요. 저도 뮤지컬 좋아하는데 시간내기가 참 힘들더라구요. 내용은 아는데 안읽은 고전중 하나이네요. ㅎㅎ

단발머리 2013-10-14 09:27   좋아요 0 | URL
네, 안녕하세요, mira-da님.
전 시간은 괜찮은데, 지갑이 안 도와줘서요. 많이는 못 가구요.

이렇게 찜만 해놓고 아직 못 읽은 책이 많아서 이 책은 순서 많이 기다려야겠어요.^^
 

 

1. 홍대 와우북 페스티발에 다녀왔다.

 

'책만 먹어도 살쪄요'님 서재에서 소식을 듣고, 온 가족이 함께 다녀왔다.

사람들이 다니는 통로에 부스를 설치하다 보니, 생각보다 좁아 통행이 불편했다.

딸롱이는 이 책을 사고 싶어했지만, 하루종일 들고 다닐 일이 만만치 않아 다음에 사주겠다고 꼬셨다.

 

 

 

 

 

 

 

 

 

 

 

 

 

 

2. 나온김에 팥빙수 먹는다고, 팥빙수 먹으러 가는 길에 '공연'을 보게됐다.

 

<투스토리>라는 인디밴드였다.

 

노래하는 언니의 목소리는 감미롭고, 바이올린 소리도 너무 좋았다. 

기타치는 언니도 실력이 수준급, 작은 드럼에서도 신나는 음악이 계속 흘러나왔다. 

드럼 치시는 분, 남자냐 여자냐 물어보다가 신랑한테 퉁 들었다.

신발을 벗고 앉았다. 

 

동화책을 읽어주다가 중간 중간 노래를 불러주는 공연이었다. 

아이들은 노래를 듣는 둥, 마는 둥, 앉으라고 준비해온 방석을 쌓아놓고 재미있게 놀았다. 

주위는 시끄러웠지만, 노래 소리는 참 좋았다.

 

 

 

 

 

 

3. 옥루몽에서

 

 

 

 

팥빙수를 먹었다.

 

가마솥에서 4시간 팥을 삶아서 만든다는 '팥빙수'는 부드럽고 맛있었다.

 

책으로 시작해, 팥빙수로 끝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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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13-10-07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팥빙수 진짜 맛나 보여요...꿀꺽!
저 책은 가끔 알라딘 중고서점에도 깨끗하게 나오곤 해요. 전 오프라인 서점에서 반값 안주고 산 것 같아요.
지난 주말 덕수궁돌담길에서 장이 섰던데 거기서도 봤네요^^ 기회 많은 책입니다. 그나저나 많이 사셨어요?^^

단발머리 2013-10-07 18:32   좋아요 0 | URL
팥빙수는 진짜 맛있었어요.
둘째가라면 서운하다고 할 만했고요. 팥도 팥이지만, 우유얼음이 완전 눈처럼~~ 사르르.
강력추천합니다^^

그럼 저 책 중고로 사도 될까요? 책을 잘 안 사기도 하고, 중고도 자주 이용하는 편이 아니라서요.
고민 좀 해봐야겠네요.

글구, 책 대신 팥빙수라서요.
팥빙수만 먹고 책은 안 샀다는.... ㅋㅋ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순오기 2013-10-10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름엔 꼭 팥빙수를 먹어줘야 무더운 여름나기를 인정할 수 있어요.ㅋㅋ
저도....알라딘 중고샵을 종종 이용해요. 출판사나 작가한테는 미안하지만....

단발머리 2013-10-11 09:16   좋아요 0 | URL
여름 끝자락에 먹었지만, 그래도 여름 날씨에 먹어서 좋았어요.
사실 전 중고샵에서 책 한 권 팔아본게 다거든요.

딸롱이 책은 워낙 잘 안 사주다 보니, 사줄때는 새걸로 사주거든요.
근데, 사실, 중고샵이 너무 깔끔하고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요. ㅋㅎㅎ
앞으로는 이용 많이 할것 같아요.^^
 

 

1. 임경선의 남편은 그녀의 칼럼을 읽지 못 하고.

아롱이 준비물로 신문을 챙기다가 한겨레신문 5월 16일자 임경선의 칼럼을 보게 되었다. 아이들이 수영 수업을 할 때, 읽어보려고 가방에 챙겨 넣었다. 맨 먼저 보이는 글자는 <끝>, 그 날은 <임경선의 남자들> 연재 마지막 날이었다.

내용은 이랬다. 15개월 전, 임경선은 한겨레로부터 칼럼 연재 제안을 받았는데, 주제가 ‘내가 사랑한 남자들’이었다. 조심스럽게 남편에게 어떠냐 물었더니, 남편 왈, ‘사랑했던 남자들 얘기만 해서는 한계가 있지 않겠냐. 반년이라도 버티려면 ’사랑한 남자‘만이 아니라, 미워하거나 인상적이었다거나 다양하게 써야 하지 않겠냐’며 다만 자기 얘기는 빼줄 것을 점잖게 요청했다는 것이다. ‘사랑한 남자들’로도 반년은 족히 쓸 수 있었지만, 아무튼 그러마고 연재를 시작했고, 격주로 신문이 나올 때마다 그녀의 남편은 칼럼이 실린 섹션만 고이 빼내, 손도 안 댄 듯 그녀의 책상 위에 올려놓더라는 것이다. ‘읽지 않고 있다’는 그만의 표현이었다고.

2. 홍서트에서 생긴 일

지난 주 티켓은 남편 카드로 결제했다. ‘홍광호, 홍광호’를 연호하며 정신줄을 놓아버린 날 위해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는 하지만, 남아있는 자리 중 그래도 괜찮은 자리를 골라주며, 결제를 향해 클릭, 클릭하는 모습이 뭐, 그렇게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 전날 갑작스레 발생한 가정사도 있고 해서, 남편은 토요일 아침 8시부터 그 날밤, 그러니까 내가 집으로 돌아온 밤 11시까지 애들을 돌봤다. 차려놓은 아침을 먹이고, 김밥을 사 먹이고, 콩국수를 사 먹였더랬다.

<Hongcert>에 다녀와서 나는 페이퍼를 썼다. 기획사를 통해 공지되었다시피 <Hongcert>는 ‘홍광호’를 그대로 보여주기 위한 콘서트였다. 홍광호는 몽골청년 '솔롱고'도, 로맨시스트 '유리 지바고'도, 냉혹한 ‘지킬’도, 귀족청년 ‘라울’도, 가면을 쓴 ‘팬텀’도, 넉살 좋은 ‘배비장’도 아니었다. 그냥, 말 그대로, 홍광호 팬들이 표현하듯 순수배우 그 자체, 인간 홍광호였다.

나는 사실 홍광호의 연기를 본 적이 없다. 뮤지컬 배우 홍광호의 뮤지컬을 본 적이 없다는 거다. 난 그냥, 그의 노래 소리가, 그의 목소리가 너무 좋아 그 콘서트에 가게 된 거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기 전부터 ‘빠순이’ 문화가 한반도 널리 널리 퍼지기는 했지만, 난 누가 보고 싶어, 누가 좋아서, 어디를 쫓아다닐 만큼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었다. 대학 때는 부지런히 쫓아다닐 곳이 있었고, 졸업 후에는 바로 결혼을 했다. 이제는 얘가 둘, 명실상부 제3의 성, 아줌마다.

그런 내가, 거금을 주고 티켓을 예매하고, 남편과 스케쥴을 조정하고, 싱가폴에서 사 왔으나 노출강도가 심해 입지 못했던 새 원피스를 꺼내 입고, 8cm의 샌들을 신고, 바야흐로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 나타났던 거다. 오직 그의 노래를 듣기 위해.

그런데, 아뿔싸. 그의 노래를 듣던 중, 난 정말로 ‘홍광호’에게 반하고 말았다. 그에게 열광하는 4,000여명의 10, 20, 30, 40대 및 50대 여성들의 환호성은 귀에 들리지 않았다. 저번 페이퍼에 썼듯이, 내 귀엔 그의 노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노래가 좋아서, 노래를 들으러 콘서트장에 갔는데, 그런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직 그의 얼굴만 보일 뿐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지독한 ‘외모 지상주의’라는 비난보다는 ‘콩깍지’ 이론을 선택한다.

 

 

 

3. 내가 쓴 페이퍼를 남편은 읽지 못 하고.

콘서트에 다녀온 후, 난 페이퍼를 썼다. 미친 가창력, 꿀성대, 뮤지컬계의 아이돌, 이런 이야기야 다 당연하고, 선곡은 물론, 피아노 연주도, 색스폰 연주도 너무 너무 훌륭했다.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은 유머를 구사할 때도 자신만만한 모습이 항상 당당해 보이는데, 홍광호의 말 소리를 직접 들어본 바, 홍광호에게서는 ‘연극 배우’ 느낌이 났다. ‘어이구, 감사합니다, 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좌측, 우측, 정면으로 90도 폴더인사를 날려주었다.

저번 페이퍼에서, 난 정말로,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썼다. 내게 일어난 중대한 심적 변화를 난, 내 서재, ‘사람 사는 이야기‘에 올렸다. (알라딘 서재에 ’일기 좀 올리지 말라‘는 이야기들이 심심찮게 올라오는 건 알고 있지만, 난 사실, 다른 분들의 ’일기‘가 그렇게나 재미있다. 또 나름 생각하기에, 내 이야기는 ’그냥 일기‘가 아니라, ’사람 사는 이야기‘다라는 생각도 있고.) 암튼, 그 날 오후, 집에 돌아온 남편이 말했다.

“그가 눈을 감았다.

그가 눈을 떴다.“

헉.

 

 

내가 홍광호와 사랑에 빠지기 직전, 그의 아름다운 모습을 묘사한 저 잔잔하고, 애잔한 문장을 남편은 아무런 느낌 없이 그렇게 외우고 있는 것이었다.

“뭐야? 읽었어? ... 읽었어?”

“로그인을 했는데, ... ”

왜 읽었어, 왜 읽었어를 5분간 목놓아 외치고, 다시 들어와 그 글을 읽어봤다.

남편에게 보여주기 어려운, 보여주기 싫은 글이었다. 임경선의 남편은 그녀의 칼럼을, 그것도 신문에 정기적으로 실리는 그녀의 칼럼을 읽지 않고 고이 고이 접어 그녀의 책상에 올려놓았다는데, 어째 울 신랑은 ‘알라딘 서재’에 올려진 내 페이퍼를 읽었단 말이냐.

그리곤 생각했다.

남편에게 보일 수 없는 글을, 어떻게 알라딘 서재에는 올리고 있나.

이건 <Hongcert> 아니, 홍광호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물론, ‘홍광호’에 대한 것이 가장 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글들, 책에 대한 내 생각, 내 느낌, 내 감상, 내 결심을 표현한 내 글, 내 페이퍼를 난, 남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

알라딘 서재에는 떡~하니 올려놓는 그 글들을, 남편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다.

하루를, 이틀을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임경선은 결혼 전 ‘사랑한 남자들’에 대한 글을 1년 넘게 신문에 연재하면서 남편이 읽었단 한들 어쩌라고~ 말하고, 임경선의 남편은 그녀의 칼럼을 읽지 못 하고, 나는 내가 ‘사랑하게 된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알라딘 서재’에 올리고, 울 남편이 ‘우연히’ (남편은 내가 그렇게 ‘알라딘 서재’에 가서 놀아도 도통 관심이 없다. 아마, 이번 글도 실수로 읽었을 가능성이 크다.) 내 글을 읽게 된 걸 알게 된 나는, 통탄해 마지 않는다.

나는 무엇을 쓰는가.

나는 무엇에 대해 쓰려 하는가.

무엇에 대해 쓸 때, 남편에게 보여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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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1 1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11 1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홍서트에서 홍광호가 제일 먼저 부른 곡이다.

 

사실,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참 예뻐요. 내 맘 가져간 사람

 

참 예뻐요. 내 맘 가져간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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