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언어는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이데올로기지만, 최근 양성평등이라는 말처럼 반대 진영에 의해 완벽히 전유된 경우는 드물다. 그 효과도 엄청났다. 지난 30여 년간의 여성 운동의 경험과 역사는 재검토가 불가피해졌고, 많은 여성 운동 단체들이 전망을 모색하느라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여성주의는 성차별이 있는 현실을 다시 증명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8)  

 

 

 

 

 

마지막 문장은 우리의 현실이다. 왁싱샵 살인 사건이 그 증거이고, 몰래 카메라 역시 그렇다.

 

강남 왁싱샵에서 혼자 일하던 여성 업주, 여성 사장은 왁싱 시술 후에 미리 흉기를 준비해온 남성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가해자가 범행 전 봤다는 인터넷 방송에서 BJ는 해당 왁싱샵을 여성 혼자 있는 외진 곳이라 강조한다. "왁싱 도중 섰다"는 자막을 비롯해 피해자를 철저히 성적 대상으로 봤다. 가해자는 범행 당시 성폭행을 시도하기도 했다.

강남 왁싱샵 여주인 피살 피의자 30검거 <서울신문. 2017-07-06>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70706500049&wlog_tag3=naver>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호프집 화장실, 여행지 숙소에서 촬영된 몰래 카메라 영상은 성인사이트에서 거래된다. 돈을 내고 여성의 몸을 본다. 성관계 몰카도 있다. 성관계 촬영 및 유포에 동의할 여성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 남성 얼굴만 모자이크 처리하고, 여성의 얼굴은 그대로 노출된다. 성관계 몰카 콘테스트에 자신의 여자친구, 아내와의 성관계 몰카 영상을 올린다. 회원들끼리 평가해 순위를 매기고 영상을 공유한다.

관음의 나라... 몰래 찍고보고관음에 중독된 사회 <한국일보. 2017-08-05>

<http://www.hankookilbo.com/v/0854834a7edb4cdcb875078de1f0f929>

 

사람들은, 남자들은 그렇게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여자라서 죽은 것은 아니라고. 여성 혐오 범죄는 아니라고. 여혐 살인은 아니라고. 서재에 올릴 수도 없는 글이라 링크만 건다.

 

[기자수첩] ‘여혐에 가린 왁싱샵 살인사건 <오피니언 2017-08-04>

<http://news.g-enews.com/view.php?ud=201708041712296812a8b5e7c93c_1&md=20170804171526_F>

 

그러니까,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거다. 피의자는 여성을 혐오해서 살인을 저지른 게 아니고, 사건의 본질은 살인이라는 거다. 사건이 여혐으로 공론화 됐을 때 살인이라는 본질이 가려져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여험이 공론화 되었을 때가 두려운 건 아닌가.

 

몰카를 찍어 올린 가해자들을 만나보면 대부분 장난이었다고 대답하며 죄책감이 아예 없다고 한다. “자신이 올린 몰카 촬영물에 대한 반응이 쏟아질 때 영웅이 된 듯한 느낌을 즐긴다고도 말한다. 몰카 촬영물은 그대로 돈이 된다. 포르노물보다 더 많은 수요자가 있다고 한다. 유통되는 것은 여성의 몸이다. 돈만 내면 동의 없이’ ‘몰래촬영한 여성의 몸을 볼 수 있다. 이 문제를 간단히 관음의 문제, ‘엿보기 심리라고 말할 수 있는가.

 

강남 왁싱샵의 여성 사장은 처음 본 남자에게 살해당했다. 여자였기 때문에. 여자 혼자 운영하는 1인 사업장이었기 때문에 범죄의 표적이 됐다.

 

성관계 몰카의 피해자 여성은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 사랑한다고 믿었던 남자에게 이용당했다. 여자였기 때문에. 남자를 사랑해 남자를 안고, 자신을 안아주는 남자와 함께했기 때문에 범죄의 대상이 됐다.

 

강남 왁싱샵 사건이 분노를 일으킨다면, 계속되는 몰카 관련 기사들은 절망을 안겨 준다. 생판 모르는 남자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남자를, 말 그대로 사랑을 나누는남자를 믿을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여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자로 태어난, 그 사람들은 어떡해야 하는가.

 

 

여름은 독서의 계절인데, 내게는 독서의 계절이 아니었다. 6월부터 2의 성을 읽고 있는데, 많이 읽은 날은 50, 보통은 10쪽 내외로 읽어가고 있다. 너무 더울 때는 며칠 동안 읽기를 쉬기도 했다. 2의 성을 읽다 보면, 더 덥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니, 진짜 더 더웠다.

 

페미니즘은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 중의 하나이다. 페미니즘을 읽고, 새로운 안목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것에 대해 배우는 이 시간들이 소중하다. 하지만, 그것에만 매이고 싶지는 않다. 페미니즘 관련 좋은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어 기쁘기는 한데, 워낙 읽는 속도가 느리다 보니 도대체 따라잡을 수가 없다. 다른 책들도 줄 서서 기다리고 있다. , 잊고 있었다. 나는 소설을 좋아한다. 나는 소설을, 좋아한다. 다른 책들에게 피난을 간다.

  

 

 

 

 

 

 

 

 

 

 

 

 

 

짧은 피서의 끝에 만난 책은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책을 들고는

펴서 읽는다.

멈출 수가 없다.

멈출 수가..

없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7-08-18 10: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페미니즘 도서 계속 읽다보니 인류애도 사라지지만 스스로 되게 지치고 우울해지더라고요. 기운을 내기 위해서라도 제가 좋아하는 소설을 더 읽어야 할 것 같아요. 그렇게 기력을 회복하고나면 다시 페미니즘 도서로 가야할 것 같고요.

얼마전에 트윗에서 강남역이나 왁싱샵 살인사건, 여성혐오살인사건에 대해서 ‘남자들은 남자들도 죽이는데 그러면 남성혐오냐, 살인이지 여성혐오가 아니다‘ 이런 개소리(미안합니다, 제 서재도 아닌데)를 보았어요. 와 너무 빻아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생각하는 남자가 많다는 데 너무 절망적이더라고요. 사람들이 아무리 설명해줘도 몰라요....진짜 버릴 건 버리고 가야할 것 같아요. 고쳐쓸 수 없는 건 굳이 고치려 애쓰다가 기운 빠지는 것 같아요.


지치고 힘들고 우울하고 절망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서로에게 용기와 격려를 주며 함께 나아갑시다. 저 역시도 과거에 진짜 혐오발언 많이 했었고요, 지금도 어느 순간 또 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혹시 내가 그러고있진 않나, 자기를 돌아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생각해요. 페미니즘을 공부하면 바로 완벽한 어떤 인간이 되는 건 아니지만(물론 성차별주의자들은 페미니스트에게 완벽을 바라죠),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후퇴할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고 생각해요. 그럴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어요.

저도 제2의 성 사서 조금씩 읽어볼까봐요.
단발머리님, 제가 여기서 힘차게 응원하고 있다는 거, 잊지 마세요!!

단발머리 2017-08-18 10:26   좋아요 0 | URL
네... 그래서 저도 메인 텍스트는 페미니즘으로 하되^^ 중간 중간 소설도 더 많이 읽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렇게 기력을 회복하지 않으면, 정말 인간사 오만정이 떨어지려고 해요.

여혐,에 대한 남자들의 예민하고 적극적 반대는, 여혐을 인정하는 순간, 예전부터 현재까지 우리 사회에 계속되고 있는 그 동안의 모든 차별과 억압이 수면위로 떠오르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여혐 살인이 아니고 그냥 살인 사건이라고 말해야, 여혐을 근간으로 하는 대화, 문화, 관습등이 존속될 수 있을 테니까요. 지금은 말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참....
그 말을 여자들만 알아듣는 이 상황이 뭐랄까...
분노 7.3, 절망 1.9의 배합으로... 나머지 소수점은 희망으로 남겨두고요 ㅠㅠ

서로에게 용기와 격려를 주며 함께 나아가요.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가요.
사랑한다는 말 뒤로 숨겨진 거짓과 속임을 고발하면서요.
손을 잡아요, 우리^^
다락방님 손은 아기 손 같아.
너무 부드러워.
자꾸 잡고 싶어~~~
손을 잡아요, 우리...

다락방 2017-08-18 10:29   좋아요 0 | URL
자, 여기요. (손을 내민다)

단발머리 2017-08-18 10:32   좋아요 0 | URL
헤헷^^ (내민 손을 잡는다)

syo 2017-08-18 17:54   좋아요 0 | URL
(두 사람이 잡은 손 위에 슬쩍 손을 올려본다. 두 사람이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손을 아랫방향으로 밀면서) 아자, 아자, 화이팅!

단발머리 2017-08-18 22:46   좋아요 0 | URL
(슬쩍 올라온 손을 덥석 잡으며)
아자, 아자, 화이팅!!

블랙겟타 2017-08-18 16: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남성으로 살아온 저는 공중화장실에 들어가 몰카가 설치되어 있는지 의식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밤길에는 누군가에게 ‘조심해서 다니거라‘라고 들은 적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아요.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순간순간이 누군가에겐 신경이 곤두서고 혹은 두려움에 휩싸인 경험을 한 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몰지말라며 억울해 하기보다 남자는 이것부터 인정해야합니다.
이 상황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젠더 이슈에 남성쪽에서 오히려 반발이 과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17-08-22 11:30   좋아요 1 | URL
블랙겟타님 같은 남성분이 많지 않을거라 생각해요. 블랙겟타님 본인의 생각이 바른 생각이지만, 사실 희귀한 생각임을 아셔야할것 같아요. ‘보통의 남자‘에게는 급진적인 생각일 수 있을테니까요.
젠더 이슈에 대한 남성들의 반발이 과도하다는 블랙겟타님 지적에 동의합니다. 강한 피해의식을 넘어 여서혐오로까지 발전하고 있으니까요. ㅠㅠ

블랙겟타 2017-08-22 14:48   좋아요 1 | URL
저도 제가 가진 생각이 아직 주류가 아닌 소수라는 걸 인정하고 있어요. ㅜㅜ
제 스스로도 책이나 글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 한채 나이를 먹어왔다면 ˝뭔 호들갑이야..˝ 이라고 치부해버렸을 수도 있었겠구나라는것을 느끼니깐요. 이런 과도한 반발을 보고 있으면 한편으론 건드려선 안되는 ‘역린‘이라도 건드린것인지.. 한꺼풀 벗겨지면 마치 숨겨져있던 나약함이 드러날 것 같은 공포가 오히려 더 폭력적으로 대응하는 것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단발머리님도 어떤 현상을 접할땐 무척이나 지치기도 하고 답답함을 많이 느끼시겠지만.. 저도 늘 응원 하고 함께 할께요.

단발머리 2017-08-25 12:47   좋아요 1 | URL
현대 사회에서 남성 혹은 개인 소외의 원인은 여성들이 아니지요.
자본주의 혹은 국적없는 힘, 금융 자본의 힘들이 개인들을 억압하고 있구요.
남성들은 자신들의 몰락의 원인을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폭력적으로 비열하게 대응하는 거고요.

보내주신 응원 감사합니다.
남자로서, 소수로서, 페미니스트가 되어 버리신 블랙겟타님께도
제 응원을 보내드립니다. 아자, 아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