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보통의 책보다 1센티미터 정도 작은 크기, 100페이지가 채 안 되는 짧은 분량, 201212월 테드×유스턴 TED×Euston 강연을 다듬어 출간된 이 책은 페미니즘이라는 무거운 주제, 10초 안에 사람들을 모세의 홍해처럼 둘로 가를 수 있는 이 민감한 주제를 다루는 책이라는 선입견을 가볍게 밀쳐버린다.

보세요, 저는 이렇게 얇은 책이에요. 보세요, 저는 이렇게 가벼운 책이에요.

그 다음으로는 표지. 내가 워낙 하늘색(조금 더 정확한 표현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부디 다른 사람도 그러하기를. 나는 이 색을 하늘색이라 부른다)과 분홍색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남성과 여성, 서로 다른 성에 속해 살고 있으면서도, 함께 살아가기를 원하는 두 개의 성을 영문자 WM으로 디자인화한 게 마음에 든다. 보통의 경우와 달리, 여성을 상징하는 W가 남성을 상징하는 M앞에 배치되어 있다는 것 또한 눈길이 간다. 특별한 의미가 없는데 나 혼자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일반적으로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좀 더 구체적으로는 페미니스트와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편견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다. 사회적으로 페미니스트를 불편해 하고 있음을 느끼는 여자들의 경우, 벨 훅스의 표현대로라면, “저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이라는 말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는 경우, 더 큰 오해와 반발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페미니스트: 모든 성별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믿는 사람이라는 사전적 정의(51)를 강조해도 마찬가지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는 순간, 고백하는 순간 그 사람의 언변은 곡해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다면, 속여야할까, 말하지 말아야할까.

이런 난처한 상황에 대해 저자는 이런 방법을 사용한다. 재치 넘친다.

아무튼 페미니즘이 비아프리카적이라고 하니까, 나는 이제 스스로를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친한 친구 하나가 나더러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일컫는 것은 남자를 미워한다는 뜻이라고 말해주더군요. 그래서 나는 이제 스스로를 남자를 미워하지 않는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더 나중에는 남자를 미워하지 않으며 남자가 아니라 자기자신을 위해서 립글로스를 바르고 하이힐을 즐겨 신는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가 되었습니다. (14)

이 방법은 비교적 응용이 쉬워 일상생활에서 바로 적용가능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안녕하세요, 단발머리입니다. , 저는 페미니즘에 찬성합니다. 페미니즘의 모든 이론이나 해석에 찬성하는 건 아니지만, 바탕이 되는 제일 기본적인 생각, 모든 성별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혹은 평등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 그럼요. 저는 페미니스트예요. 저는 남자를 미워하지 않고 남자가 아니라 저 자신을 위해 립스틱을 바르고 하이힐을 즐겨 신는 행복한 아시안 페미니스트예요.

또 어떤 남자들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좋아요, 이건 흥미로운 문제입니다. 하지만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아요. 나는 젠더를 의식조차 하지 않는다고요.”

어쩌면 정말 의식하지 않을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바로 그점이 문제의 일부입니다. 많은 남자들이 젠더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생각하거나 의식하지 않는다는 점 말입니다. (45)

나는 뭐든지 경험해봐야 안다고 믿지 않는다. 결혼하지 않아도 결혼의 폐해에 대해 알 수 있고, 아이를 낳아 보지 않았다해서 아이의 빛나는 순간순간을 알아채지 못할거라 생각지 않는다. 결혼했어도 외로울 수 있고, 제 배로 낳은 아이라도 인격이 없는 것처럼 머리에 꿀밤을 때리며 수시로 무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뭐든지 경험해봐야 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똑같은 근거로 남자라고 해서, 여자들의 사정을, 여자들의 입장을, 여자들의 상황을 끝까지 모를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물론 가까이에서,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의 아내가, 자신의 누나가, 자신의 여동생이, 자신의 딸이 처한 환경, 주어진 환경에서 어쩔 수 없이 제한된 선택을 하게 되는 걸 직접 보게된다면, 남자들도 젠더에 대해 의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건강한 남자, 건전한 남자조차도 그런 젠더’, ‘젠더의 다름으로 인한 불합리와 모순을 스스로발견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이다.

<옮긴이의 말>을 보니, ‘스웨덴 여성 로비라는 단체가 출판사, 스웨덴유엔연맹, 스웨덴노동조합연맹등의 후원으로 이 책을 스웨덴의 모든 16세 학생들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젠더 주류화 gender mainstreaming가 정부의 핵심 의제이고, 현재 장관 스물네명 중 열두명이 여성이며, 남녀 불문 480일의 육아휴직이 법으로 명시되어 있는 나라에서 말이다.(90)

오늘 아침에도 한국인 읽기 능력 최하위? 독서의 중요성이라는 기사가 떴던데, 어른들이야 책 한권 읽는다고 생각이 크게 바뀔리 만무하지만, 전국의 중학교 3학년들에게 이 책 한 권씩.

만원의 행복. 기대하는 건 무리겠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6-03-04 2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만 느끼는건지 모르겠지만, 도서정가제 시행하고나서부터 독서 안하는 국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보도하는 내용이 많아진 것 같아요. 그리고 결론은 항상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의 예를 들면서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옛날에는 이런 내용의 글을 읽으면 정신 차리고 책을 읽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었겠죠.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책보다 훨씬 재미있는 게 더 많아졌으니까요. 무엇보다도 책을 안 읽는 이유는 도서정가제 때문입니다. ^^;;

단발머리 2016-03-07 08:29   좋아요 0 | URL
사실, 저는 도서정가제 이전보다 지금 책을 더 많이 사는 것 같거든요.
저는 책을 많이 사는 경우가 아니기 때문에 도서정가제 영향을 덜 받는다고 생각하는데, cyrus님 말씀 듣고 보니 그런것 같기도 해요. 도서정가제가 우리의 적인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