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피아노』를 읽게 될 때, 연이어 생각나는 책은 『숨결이 바람될 때』이다.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아침의 피아노』의 저자는 철학자이고, 『숨결이 바람될 때』의 저자는 의사라는 점. 갑작스럽게 닥친 죽음 앞에 차분히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는 두 사람의 글은 모두 정갈하고 따뜻하다. 더 깊어진 사유와 더 정교화된 통찰, 삶에 대한 관조, 애정,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마음. 이제 두고 떠나야 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
죽음은 인간의 실존이고 피해갈 수 없는 문제이다. 라는 문장에 유발 하라리는 반대할 수도 있겠다. 그는 『호모 데우스』에서 죽음의 문제를 넘어선 인간이 불멸의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과 전망에 대해 말했다. 기대수명을 두 배로 늘리는 소박한 소망에서 시작한 인간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앞으로만 질주하고, 이제 의학의 발달로 불멸과 영생의 문 앞에 선 인간이 그것을 거부할 리 없다고 하라리는 말한다. 죽음 없는 영원한 삶을 원하는가 혹은 원치 않는가의 질문과는 상관없이 그런 세상은 곧 우리에게 펼쳐질 것이다.
문제는 시기. 언제 그 일이 가능해지겠는가. 90년대말 인터넷의 보급으로 이메일, 스마트폰, 인터넷상거래 등이 가능해졌고 우리는 10년, 20년 전에 상상하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존재하고 또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일부 생명 연장의 기술이 상용화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것 또한 사실이다. 물론, 그 일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내가 그런 삶을 선택할 수 있을 만큼의 ‘경제적 여유’가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태초로부터 인간을 속박했던 죽음의 문제를 대면한 사람이 여기에 있다.
15.
오늘은 주영이 화실 가는 날. 외출을 망설이는 등을 떠민
다. 내 재촉을 못 이겨 거울 앞에 앉은 모습을 바라본다.
작고 동그란 몸. 늘 웃음을 담고 있다가 아무 때나 홍소를
터뜨려서 무거운 세상을 해맑게 깨트리는 웃음 항아리 같
은 몸.
나는 이 잘 웃는 여자를 떠날 수 있을까.
229.
사랑의 마음.
감사의 마음.
겸손의 마음.
아름다움의 마음.
태어나고 살고 죽는 것이 인간의 일이지만, 우리는 모두 죽지 않을 것처럼 산다. 죽지 않을 것처럼 자신 있게 말하고, 죽지 않을 것처럼 확신에 찬 행동을 하며, 죽지 않을 것처럼 나의 무언가를 자랑한다. 하지만, 죽음이 내 앞에 다가섰을 때, 임무로서의 죽음이 내게 배달되었을 때, 그 때 나의 모습은 어떠할 것인가. 나는 담담할 수 있을까. 의연할 수 있을까.
죽음에 대한 갑작스러운 예고를 받게 되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 한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겼느냐고 분노하기도 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자포자기하기도 한다. 자신의 삶을 그대로 놓아버리며 체념하기도 하고, 불안과 슬픔을 증오로 되바꾸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죽음의 예고 앞에 자신의 기억과 삶을 돌아볼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현재를 누리려 한다. 죽음이 임박한 그 때, 그 시간을 그는 꿋꿋이 살아낸다. 인생의 마지막을 써 내려가는 이 책에서 그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단어는 산책, 사랑, 그리고 감사이다.
지금 나의 고민과 염려가 작은 것이라고 말하지 않으면서도, 지금 나의 고민과 염려를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여유를 이 책은 선사해주었다. 작가의 말처럼, 그의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속삭임이 성찰과 위안의 독서가 되어 주었다.
고맙다. 나도 그에게 고맙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