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실들 

2018년과 2019년 사이 필립 로스를 다시 읽었다.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랬던 것 같다. 완성형의 사람, 완성형의 인간에 더 주목했던 것 같다. 완성형의 인간은 삶에 대해 성숙한 태도를 취하고 관조적이며 여유롭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난 완성형의 인간이 아니라 성공한 사람을 좋아했던 것일수도 있겠다. 

내가 필립 로스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그는 당대 미국 최고의 작가, 최고의 소설가였다. 백악관에서 수여하는 국가예술훈장을 받았고, 미국 예술문학아카데미 최고 권위의 상인 골드 메달을 받았고, 전미도서상과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각각 두 번, 펜/포크너 상을 세 번 수상했고, 미국 생존 작가 최초로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에서 완전 결정판을 출간한 소설가였다. 남아 있는 상이라고는 노벨문학상 뿐이라고 했던 작가. 내가 필립 로스를 알았을 때 그는 이미 완성형, 작가로서 완성형에 이른 사람이었다. 


사실들에서는 진행형의 로스를 만날 수 있다. 

가족들이 인정한대로 입으로 떠드는 재능(63쪽)이 있다고 여겨지던 유대인 소년이 대학에 들어가고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영문과의 젊은 문학 강사 부부들과 어울린다. 자신도 그들처럼, 영문과 교수가 되건, 너무 훌륭해서 돈이 안 되는 책만 쓰는 진지한 작가가 되건, 가난하게 살기로 결심하는 모습이 그려진다.(89쪽) 미친듯이 말을 쏟아낼 때의 열기와 광기가 소설 속에 어떤 식으로 구현되어야할지 아직 모른 채, 필립 로스는 그들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한다. 시간과 공간, 선과 악, 외양과 실재의 수수께끼와 아무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였던 뉴어크 유대인 동네 이야기(91쪽)가 문학이 될 수 있을거라 조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채, 필립 로스는 그들 앞에서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해간다. 

작은 아파트, 방 하나에 부엌 하나인 곳에서 소설을 쓰는 필립 로스의 모습도 만날 수 있다. 강의가 없는 날 오후, 콧구멍만한 아파트에서 볕이 제일 잘 드는 부엌 식탁에 앉아 휴대용 올리베티 타자기로 단편소설을 쓰는 필립 로스.(127쪽)

확실하지 않은 미래를 한 글자 한 글자 타자기로 밀고 나가는, 젊은 작가 필립 로스.
진행형의 필립 로스를 만날 수 있다. 




2. 자본론을 읽다 


작년에 읽다 만 양자오의 자본론을 읽다를 다시 읽었다. 양자오의 설명은 시원시원하다. ‘자본의 인격화’, 구체적인 인간이 아니라 자본에 의해 정의되고 자본에 의해 통제되는 반응이자 활동으로서 ‘자본가’에 대한 지적이 특히 그렇다. 저임금과 장시간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 뿐 아니라 자본가조차도 생명 없는 자본의 통제 아래에 있게 된다는 마르크스의 예언은 널뛰는 증시와 예측할 수 없는 경제 불황이 이미 수없이 증명해 보였다. 레일 없는 철길을 쉼없이 달려가는 자본주의 열차를 멈추게 할 수 있을까. 무엇이, 도대체 무엇이 자본주의의 이 미친 질주를 멈추게 할 수 있을까. 







3. 에디톨로지 



에버노트는 내가 사용하는 모든 IT 기기에서 동기화시켜 사용할 수 있다. 남의 컴퓨터에 들어가 사용할 수도 있다. 급할 때 최고다. 웬만한 텍스트 작업도 큰 불편 없이 할 수 있다. 데이터 관리를 할 때 난 일단 자료를 계층적으로 분류해 저장한다. 에버노트의 각 ‘노트북’이 대분류로 나뉘어 있고, 각 노트북 안에 또 다른 하위 노트북들이 들어 있다. 그 계층구조가 3단계, 4단계까지 올라가는 복잡한 것도 있고, 한 단계에서 끝나는 간단한 것도 있다. (369쪽) 




해아래 새로운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창조란 엄밀히 말하면 편집이라 주장하며 새로운 시대 ‘에디톨로지'의 시대를 말하는 책이다. 지식 권력은 이제 더 이상 대학에 있지 않다는 주장이나, 김용욕의 크로스텍스트와 이어령의 하이퍼텍스트론은 어렵지 않다. 쉽고 재미있다. 다만 예시 속 사진이나 그림이 적절한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이 책을 읽고는 바로 이렇게 책 세 권을 대출했다. 자료를 어떻게 보관하고 정리할 것인가가 최근 일주일간 나의 최대 화두다. 에버노트가 해법 중의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 




















4.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건, syo님 서재에서 봤던 바로 이 문장 때문. "엄마와 아저씨가 계산을 하는 동안 나는 주로 코딱지를 파며 서 있었다.” 책을 펼쳐보니 그에 걸맞는 그림도 있다.  







어렸을 때 내가 학교에 가기 싫은 티를 내는 날이며 엄마는 얼마나 아프냐고 물었다. 진짜로 아픈 날에나 가짜로 아픈 날에나 나는 꼭 진짜로 아프다고 말했다. 엄마는 그럼 꼭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걸어주었다.(86쪽) 


아이를 키우다보면 엄마들끼리 그런 얘기를 할 때가 종종 있다. 애가 엄살이 심하다고. 나는 꼭 그런 건 아니라고, 속으로만 말한다. 고통의 크기와 강도는 그 고통을 헤쳐나가고 있는 그 사람이 아니라면 옆사람은 알 수 없다. 그냥 ‘짐작’할 뿐이다. 서투른 위로가 도움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우리가 바라는 사람은 어쩌면 그런 사람이 아닐까. 그냥 내 말을 믿어주는 사람, 그냥 그렇다고 믿어주는 사람. 그 사람이 엄마일때, 그 때 행복하다. 살 맛이 난다. 나도 아프다며 학교 가지 않고 과자 먹으며 집에서 딩가딩가 노는 어린이를 종종 보아왔지만, “오징어 넣고 부침개 부쳐 먹을까?”까지는 이르지 못 했다.   

이슬아의 엄마 복희씨 이야기를 들으며 자주 엄마를 생각했다. 내 엄마가 복희씨처럼 다정하고 착한 엄마라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큰 함정은 누군가 나를 ‘엄마'라고 부른다는 사실. 알고 보니 나도 엄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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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1-09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봐도 귀여운 코 파는 애기 슬아.....

단발머리 2019-01-09 16:55   좋아요 0 | URL
다음 다음 장이던가요.
연속으로 나오잖아요. 코 파는 아기 슬아...... 넘 귀여워요.

독서괭 2019-01-10 0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버노트 등 자료정리 연구하시면 꼭 결과 알려주세요! 제가 워낙 정리를 못해서ㅜ

단발머리 2019-01-10 08:10   좋아요 0 | URL
일단 에버노트로 문서작업은 좀 불편한 것 같아요. 전 끄적일때 워드 사용하는데, 워드가 손에 익어서 그런지 워드가 편하네요. 검색 기능은 에버노트가 정말 좋은 것 같구요.
아직 많이 사용하지 않아 잘 모르지만서도 종종 후기 올릴께요. 저도 워낙 정리를 못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