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전부일까?

페미니즘의 방아쇠를 당기다 - 베티 프리단과 <여성의 신비>의 사회사
김진희 지음 / 푸른역사 / 2018년 8월

『페미니즘의 방아쇠를 당기다』는 베티 프리단의 생애를 통해 저술 배경을 드러내고 『여성의 신비』의 의의와 파장과 한계를 짚어낸 해설서이다. ‘공산당 선언’만큼이나 위험하다 해서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위험한 책 10선’에 빠짐없이 오르는 문제적 저술 『여성의 신비』 (2018년 『여성성의 신화』로 재출간됨, 이하 ‘여성성의 신화’로 통일함) ‘제대로 읽기’ 안내서이다. 

‘와습(White-Anglo Saxon-Protestant)’의 가치가 미국 정체성의 근간으로 받아들여지던 전형적인 미국의 중소도시인 피오리아에 정착한 베티 골드스타인의 부모는 중산층 사회에 편입하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그들의 전방위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베티 골드스타인 가족은 피오리아 중산층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베티 골드스타인도 점차 유대인이기에 받아야만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을 인식하게 된다. 학생기자였던 베티는 대학시절 내내 부모세대의 중산층 부르주아 문화를 비판했고 노동계급과 연대했으며 인종적, 민족적 다양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냈다. 『여성성의 신화』에서도 소개되었듯, 베티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과 학업 추구에 대한 혼란으로 박사 과정 장학금을 받을 기회를 포기하고 버클리를 떠난다. <연합신문>, 전기노조 UE에서 발간하는 <유이뉴스UE News>에서 기자생활을 하던 베티는 1946년 결혼을 기점으로 스스로 일하는 여성의 위치에 서게 됨으로써 여성 노동자의 문제에 더욱 집중한다. 

1956년경 베티와 남편 칼 프리단은 파크웨이 빌리지를 떠나 교외 스네든즈 랜딩에 정착한다. 이 시기에 프리단 가족의 가정경제는 늘 적자 상태였고 베티는 끊임없이 돈문제를 걱정했다. 베티는 더 많은 여성지에 더 자주 글을 기고하여 만성적인 적자상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글 쓸 시간을 위해서는 아이들을 돌봐줄 베이비시터가 필요했다. 베티는 프리랜서 작가로 일해서 번 돈으로 베이비시터를 고용해야만 했다.(91쪽) 

『여성성의 신화』를 쓴 계기는 스미스대학 동창회의 설문조사에서 시작되었다. 1956년 스미스대학 동창들이 이듬해 개최될 졸업 15주년 동창회를 준비하며 15년간 동창들이 무엇을 경험하고 어떠한 생각을 하며 살아왔는지 확인할 기회라고 생각한 베티는 설문 조사 작업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베티는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들’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교외에 거주하는 중산층 주부들은 자기들이 모든 것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성공가도를 달리는 남편, 좋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편리한 최신 가전제품이 갖춰진 현대식 주택까지, 여성지에 나오는 행복한 가정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가정의 주인공이 곧 자신이라고 자부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응답자들을 과연 이것이 전부인지, 그 밖에 다른 것은 없는 것인지 하는 질문을 하고 있었다. 그 질문은 베티 프리단 자신의 것이기도 했다. (105쪽) 

베티 프리단은 이 결과를 바탕으로 1961년 스미스대학 동창회보에 글을 실었다. 고등교육이 전업주부가 될 여성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뉴스위크> 최신호 기사를 반박한 것이었다. 전업주부들도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음을 강조하며, 고등교육이 여성을 좌절시키기보다는 그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여성의 신비’가 야기하는 좌절감을 극복하게 해준다고 결론을 내렸다. 여성지의 성향을 고려하여 내린 매우 온건한 결론이었다. 

이 온건한 주장에 대해 <맥콜>의 편집자들은 난감해 했다. 그들에게 베티의 주장은 대학 졸업생들이 가정의 경계를 넘어 자신들의 권리를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보였다. <맥콜> 편집자들은 게재 불가를 알렸고, 베티는 자신의 에이전트를 통해 기사를 보냈던 <레이디스 홈 저널>로부터도 논지를 전면적으로 수정할 경우 게재할 의사가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새롭게 수정한 원고 완성본을 <레드북>에 기고했을 때, 잡지 편집인은 오직 ‘병든 여성들’만 동의할 것이라며 게재를 거부하고 원고를 돌려줬다.(108쪽) 베티는 여성지들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자신의 가치와 반대에 있음을 새삼 절감하고 여성지 기사 대신 책을 출간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문제작 <여성성의 신화>가 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내가 『여성성의 신화』를 처음 읽었을 때,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인 문단 중 하나는 바로 이것이다.

사회과학자는 스스로 만든 문화라는 테두리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하나의 슬로건이 아니라 진리에 가까운 것이 되었다. 즉 사회과학자는 자신의 시대의 과학적인 틀 안에서 관찰한 것만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혁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개혁가들은 그들이 사는 시대까지 진행된 과학의 진보가 결정해준 언어와 기준을 통해 자신의 혁명적인 발견을 번역해야 한다. 새로운 기준들을 만들어낸 발견들조차 그들의 창조자의 시점과 무관할 수 없다. (『여성성의 신화』, 215쪽) 

20세기 중반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프로이트 이론은 심리분석 뿐 아니라 대중지 작가와 편집자, 광고대행사, 대학과 출판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견고한 성이며 완벽한 이론이라 여겨지는 프로이트 이론 역시 자신이 속한 시대의 과학적인 틀 안에서 관찰한 것만을 설명할 수 있을 뿐임을, 베티는 지적했다. 프로이트는 유대 집안의 전통적이고 독재적인 권위로 가족을 다스리는 아버지와 첫 아들 지크문트를 특별히 사랑했던 어머니에게서 자랐다. 누이의 피아노 연습 소리가 그의 연구를 방해하자 ‘피아노가 치워지는’ 환경 속에서 자라났다. 베티는, 프로이트의 연구 속에서 그가 생물학적이고 본능적이고 변화하지 않는 것으로 여기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특정 문화’에 근거를 둔 것임이 밝혀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프로이트가 보편적인 인간성의 특질로 묘사한 것은 19세기 말 어느 유럽 중산층 남자와 여자의 특성일 뿐임을 지적했다. 베티는 프로이트의 이론이 ‘여성성의 신화’를 강화하는데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설명했다.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에 근거해 여성의 본성과 역할을 제한하고, 남성과의 성적인 관계라는 측면에서만 여성을 보았던 프로이트 이론의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보론에서는 ‘물결론’에 따른 여성학/페미니즘 계보를 통해 미국 여성운동의 각 단계에서 영향을 미친 페미니즘 이론을 요약했다. 각 시대별 여성운동의 특징과 주요사건, 역사적 맥락과 주요 텍스트까지 정리되어 있어 간략하게나마 여성 운동의 흐름을 훑어볼 수 있는 좋은 자료라 생각한다. 중학생 딸아이에게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마치겠노라 약속하고 집필을 시작한 책이 아이가 대학생이 되고도 2년 반이 지나서 탈고하게 되었다는 지은이의 말이 그대로 느껴질정도로 학자적 노고와 노력이 느껴지는 책이다. 

전체를 읽기에도, 부분적으로 발췌해 읽더라도 페미니즘의 기본 텍스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