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두 번 요리를 배우러 다닌다. 

 

요리를 배우면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게된 사실이 하나 있다.

글쓰기를 하지 않고 글쓰기를 배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요리를 하지 않고는 요리를 배울 수 없다는 점이다.

 

엄마가 해 준 음식을 아무리 많이 먹어봤더라도

내가 직접 그 음식을 해 보지 않으면 그것을 배울 수가 없다.

엄마 뒤에서 옆에서, 엄마가 요리하는 모습을 아무리 많이 봤더라도

내가 직접 요리를 해 보지 않고서는 요리를 배울 수가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는 얘기다.

 

처음엔 달걀 후라이를 하나 하더라도

기름을 얼만큼 둘러야 하는지

불은 세게 해야하는지 약하게 해야 하는지

언제 뒤집어야 하는지

소금은 언제 쳐야 하는지

얼만큼 익어야 다 익은 건지

그 모든 걸 내가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에 엄청난 압박감을 느꼈다.

 

맛이 있어도 내 탓, 맛이 없어도 내 탓, 싱거워도 내 탓, 짜도 내 탓, 덜 익어도 내 탓, 너무 익어도 내 탓, 노른자가 터져도 내 탓, 안 터뜨려도 내 탓, 기름을 너무 둘러서 느끼해도 내 탓, 기름이 모자라서 눌러붙어도 내 탓..

모든 것이 내 탓이라는군?

그렇군. 내 탓이로군.

 

시간이 지나면서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그 모든 부담을 안은 채 다시 달걀 후라이를 하겠다고 나서는 이유는

그 모든 탓 중에서 "맛있다"는 한마디를 듣고 싶어서라는 것을..

 

당연히 '맛있게' 하기 위한 방법을 알고 싶어진다.

나 혼자 먹는 음식이라면 대~충

그저 먹을 수만 있으면 되는 정도로 후다닥

해치우고 말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맛있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요리하는 거라면, 어쩌겠나.

그 욕망이 사그라들기 전까지는 또 이렇게 계속 책을 읽어대는 수 밖에..

 

 

 

 

 

 

 

 

 

 

 

 

 

 

 

 

 

 

 

 

 

 

 

 



 
 
pek0501 2014-02-26 11:14   댓글달기 | URL
이번엔 요리군요. 먹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느껴요.
먹기 위해 살기도 하고 살기 위해 먹기도 하는 것 같아요. ^^

메리포핀스 2014-02-26 20:34   URL
20년 전에 21:79정도였다면, 지금은 100:0 이예요.
하루 하루, 먹기 위해 사는 날들이지요. ㅎㅎ

돌이킬 수 없는 오늘 마지막 식사를, 아직 안 드셨다면, 맛있게 드세요. 페크님!^^

세실 2014-02-26 16:31   댓글달기 | URL
요리 중요한데 전 왜 대충 먹고 사는 걸까요?
울 아들내미 계란 후라이 할때 들기름 듬뿍 쏟아 구박했더니 다시는 안하려고 하네요. 참을껄! 하는 후회감^^
저 갈비 김치찜은 자신 있어요~~~ ㅎㅎ

메리포핀스 2014-02-26 19:03   URL
음.......... 세실님은 날씬하시잖아요! 먹고싶은대로 다 잘 먹으면서 그런 몸매 유지하신다고 하면 저 같은 사람은 배 아파서 어떻게 살라구요! ㅎㅎ 갈비 김치찜은, 한번도 못 먹어본 음식이어요. 갈비 먹으면서 김치찌개 먹어본 적은 있지만.. ㅎㅎ

꿈꾸는섬 2014-02-26 23:16   댓글달기 | URL
요리 배우는 시간도 재미나죠. 예전에 잠깐 배울때, 배우기 전엔 요리의 매력을 잘 몰랐어요. 근데 배우는동안엔 정말 재밌더라구요.

메리포핀스 2014-02-27 01:22   URL
꿈섬님도 요리를 배우셨군요! 요즘 부쩍 '요리사'가 멋져 보여요.
부지런함, 꾸준함, 넉넉함, 인간미, 활력, 체력, 상상력.. 이 모든 것을 갖춘 사람 같거든요.
기회가 된다면(?) 요리사와 결혼하고 싶을 정도라니까요! ㅎㅎ
 

 

 

 

 

 

 

 

 

 

마른 멸치를 한 상자 샀다. 13,000원, 국물용. 

상자째 놓고 똥을 뺀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 다섯 마리 여섯 마리 일곱 마리 여덟 마리 아홉 마리 열 마리 열 한 마리 열 두 마리 열 세 마리 열 네 마리 열 다섯 마리 열 여섯, 열 일곱, 열 여럷, 열 아홉, 스물, 스물 하나, 스물 둘, 스물 셋 스물 셋 스물 셋. 이게 내 나이였으면 좋겠구나.

백 마리, 백 한 마리, 백 두 마리.... 이백 마리가 머지않다.
소치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갈라쇼, 
김연아는 언제 나오나..

멸치 냄새 가득해도 시간 되니 잠이 오는구나.
멸치도 아직 반 남았으니 잠은 참을 수 있겠는데
이러다 배고프면 어쩌나.

앗! 슈퍼맨이다!
노란 슈퍼맨이다!
빨간 망토, 빨간 스케이트를 신고
얼음판을 뛰어다닌다.

슈퍼맨 퇴장하고
김연아 입장.

이매진.
음악이 흐른다.

 

 

 

 

 

 

 

* 생각난다.

번뜩인다.

스러진다.

잔상.

.

 

 

 

 

 

 



 
 
pek0501 2014-02-23 09:39   댓글달기 | URL
저도 그게 제 나이였으면 좋겠어요. ㅋ
김연아의 열연을 보고 눈물이 나왔어요. 그의 피나는 노력에 대한 감동의 눈물이었죠. ^^

메리포핀스 2014-02-23 16:14   URL
김연아 선수, 어릴 때 자기 몸은 무척 뻣뻣했다면서 스케이팅 할 때 보이는 유연성은 모두 훈련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그 말 듣고 "훈련으로 만들어낸 유연성이라고? 정말? 그게 가능해?" 했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알았어요. 밤 새 기다렸다가 본 김연아 선수 갈라쇼 마지막 순간 미소를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요.
 

 

오늘날 자기가 직접 요리하는 것보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요리 장면을 보느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수백만  명에 달한다. 텔레비전에서 요리되는 음식이 우리가 먹는 음식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지적할 필요는 없다.

특이한 일이다. (12p. 머리말)

 

요리사들은 손에 잡히는 진짜를 다루게 된다. 키보드와 스크린 뿐만이 아니라 동물과 식물, 그리고 곰팡이 같은 근본적인 무언가를 접하는 것이다. 이들은 물과 불, 흙과 공기 같은 태곳적 원소들과 함께 일하며, 이들을 이용해 ㅡ 이들을 자유자재로 다루면서! ㅡ 최상의 맛의 조합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13p. 머리말)

 

 

 

 

어저께, 설거지를 하다가 유리 냄비를 깨뜨렸다.

깨뜨렸다기보다는 쪽이 떨어져나갔다고 해야겠지만.

비싼 건데 아까비..

위쪽에 아주 조금만 쪽 난 거니까 그냥 쓸까?

조심하면서 쓰면 될 거 아닌가 하다가

"처음엔 조심하면서 쓸지 몰라도 쓰다보면 금방 조심하지 않게 될거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 아주 조금 쪽 난 거기에다가 썩- 하고

손을 베어 봐야 정신 촤리지?"

부르르.. 정신차려! 하고 냉큼 갖다 버렸다.

막상 버리고 왔더니 하나도 안 아깝다.

재활용 쓰레기장까지 찬 바람 맞고 걸어서 그런지

기분마저 상쾌하다.

 

*

그저께, 무우 한 개(1,500원), 봄동 한 봉다리(1,200원), 콩나물 한 봉지(1,200원), 두부 한 모(2,300원), 대파 세 뿌리(1,350원), 청양고추 한 봉다리(2,300원), 표고버섯 일곱 송이(4,500원), 완도 자른 미역 한 봉지(1,200원), 고등어 3마리(5,000원), 조갯살(3,100원), 어묵(2,500원), 감자 한 봉다리(3,000원)을 사왔다. 당일에 조개미역국을 끓이고 고등어무우조림을 해서 먹었다. 요리 교실에서 배운 보람이 느껴질 만큼 맛있었다.

 

어저께, 또 요리를 했다. 이번엔 김치콩나물국을 끓였고 봄동된장무침, 감자어묵양파볶음을 해서 먹었다. 요리 교실에서 배운건 아니지만 응용해서 요리를 할 수 있다는 데 자신감을 가질 만 한 맛이었다. 하긴 맛 평가는 어디까지나 주관적이다. 나는 내가 한 요리가 언제나 만족스럽고 자주 환상적이라며 감탄하게 되는 쪽이라서... 한가지 확실한 건, 나 혼자 먹으려고 요리를 하게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안 해본 건 아니지만, 나 혼자 먹자고 된장찌개라도 끓일라 치면 마늘 하나 까는 것부터 참 귀찮게 느껴진다.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오늘, 또 요리를 할 것이다. 요리는 혼자 해도 먹기는 여럿이 먹는 게 좋다. 요리할 때 훨씬 재미있고 신난다.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뭐 그런거까지 따지면서 밥을 해먹냐 싶기도 해서 덮어뒀던 얘기다. 마침 그 얘기를 쓴 책이 나왔다. 『요리를 욕망하다』.. 오호~ 제목과 표지는 마음에 안 들지만 내용을 기대하며 읽어보기로 한다. 역시 주문은 다음 달로..  

 

 



 
 
순오기 2014-02-22 14:55   댓글달기 | URL
요리는 혼자 해도 맛나게 먹어주는 이들이 있어야 즐겁지요~^^
찌찌뽕!!

2014-02-22 14: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22 2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설마 아무리 그래도《설마 철수가 약속을 어기겠니?》

 

설마가 사람 잡는다(속담) 설마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고 마음을 놓았다가 탈이 난다는 뜻으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을 헤아려서 준비해야 한다는 말.

 

_출처: 보리 국어사전

 

 

저는 울산, 그 중에서도 경주랑 가까운 북구에 살아요.

이번에 경주 마리나 리조트 체육관 지붕 붕괴 사고를 보고 많은 분들이

"또 설마가 사람 잡았다"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저는 어쩌면 ‘설마’라는 생각조차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옛날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최근 3, 4 년 동안은 이 지역에도 눈이 많이 내렸거든요.

지난 달에는 울산에 있는 공장 건물 지붕이 똑같은 이유(지붕에 쌓인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해)

무너지는 사고도 뉴스에 나왔었구요.

그때도 사람이 두 명이나 죽었어요.

그런 뉴스를 보면

설사 벽돌 집에 사는 사람이라해도

‘우리집 지붕은 괜찮은가?’ 하는 생각을 하기 마련일텐데

하물며

무너진 공장 건물과 똑같은 구조물을 관리하는 사람이,

더구나 그 리조트는 진짜 산 꼭대기에 있어서 내린 눈도 녹지 않고 그대로 얼어버렸던 상황이니까요,

그런 상태에서,

그런 날씨에,

그 밤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행사를 하게 놔뒀다면

그건 결국 ‘설마’조차 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아닐까,

답답한 마음에 댓글이 길어지네요.

 

10명 희생자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사고 나기 일주일 전에 찍었던 사진.

 

2014. 2. 10. 아침.아이폰4

 

 

 

 

2014. 2. 15. 오후. 아이폰4

 

이건 사고 나기 이틀 전에 찍은 사진.

저기 먼 산 꼭대기에 마리나 리조트가 있음.

밑에 눈은 그늘 진 곳이라도 다 녹았지만

산에 눈은 양지 바른 곳이라도 녹지 않고 그대로..

이번에 눈이 많이 와서 산을 통과하는 도로는 전면 통제되었었음.

양남 지역에서 학원을 하시는 지인 분이 도로가 막혀 집에 못 오고 이틀을 찜질방에서 주무셨다고..

눈이 오면 도로가 마비되는 건 기본이고 비닐하우스가 무너지는 것도 흔하게 목격.

 

별별 생각이 다 듬.

아무래도 공개 글이니 막말하기는 그렇지만

이번 사고는 절대로 눈 때문이 아님.

욕심에 눈 멀고 귀 막힌 몇 사람이

더이상 어떻게 할 수 없다 싶을 정도로

기가막힌 때와 장소를 골라낸

참혹한 결과임.

 

이상함.

다 이상함.

어쩌면 그렇게 돈만 보는지.

어쩌면 그렇게도 돈만 보는지.

어쩌면 그렇게나 돈만 보는지.

리조트 측도 이상하고.

학교 측도 이상하고.

학생회도 이상하고.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를 학교에서 하지 왜 큰 돈 들여서 리조트에서 하는지 그것도 이상하고.

신입생 환영회는 뭐고 OT는 또 뭐고 입학식까지 왜 다 따로 따로 찢어서 하는지 그것도 이상하고.

그렇게 눈이 왔는데, 그렇게 외떨어진 산꼭대기인데, 그렇게 추운데, 쌓인 눈이 녹지도 않아서 더 내리는데, 눈만 왔다하면 도로 통제하는데, 까딱하면 고립되는데, 있는 투숙객도 집으로 돌려보내야될 판 아닌가? 그만한 판단도 못하는 사람이 그 큰 리조트를 운영하면서 손님 받고 있는 그게 제일 이상하고..

학생이 돈으로만 보이나.

후배가 돈으로만 보이나.

사람이 돈으로만 보이나.

이상함.

정말 이상함.

 

 

 

 

 



 
 
hnine 2014-02-21 07:08   댓글달기 | URL
이 나라에선 이제 그 무엇을 해도 불안해요. 화가 나다가 이젠 힘이 쭉 빠집니다...

메리포핀스 2014-03-14 12:41   URL
더 이상한건요. 여기선 사고 얘기를 하지 않아요. 뉴스에서만 해요. 다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나만 아니면 돼!"인건지.. 분위기가 그래요. 뭔가 생각이 좀 바뀌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이렇게 저렇게 얘기를 꺼내봤는데요, 누구 아는 사람이 다친 것도 아닌데 왜 그러느냐고, 얘기해봤자 화만 나고 기분만 나빠지는 얘기를 뭐하러 자꾸 꺼내냐고 대놓고 타박 들었어요. 정말 이상해요. 힘이 쭉 빠지구요. 이렇게 봄이 되고 여름이 오고.. 세월이 흐르면 정말 또 새까맣게 잊고 다음 겨울을 맞이할 지 몰라요. 그럴까봐, 잊을까봐, 잊혀질까봐, 자꾸 일기를 쓰게 되요. 올해는 공개 일기 안 쓰고 공책에 손으로 쓰는 일기를 쓰고 있어요. 그나마 일기를 쓰면 뭔가 안심이 되는 기분이 들어요.

꿈꾸는섬 2014-02-21 05:36   댓글달기 | URL
이번 리조트붕괴 사고는 정말 무서워요. 눈때문에 지붕이 무너지는 리조트라니 정말 상상이 안가요. 이제 무엇이든 해보려고 도전하는 청춘들이 꽃도 못피우고 죽었다는 사실은 너무너무 가슴 아프구요.ㅜㅜ

메리포핀스 2014-02-21 13:24   URL
사상자 대부분이 대학 신입생들이라서 그 시절을 지나온 입장에서 더 애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라는 말이 있지만 실제로 하늘이 무너진 적도 없고 무너질 수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니 그런 말은 너무 과장된 표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번 사고 희생자 부모의 입장을 생각해보니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질 뿐더러 땅이 꺼지는 심정이 아니었을까.. 짐작만 할 뿐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흐익. 보리 국어사전, 산 지 벌써 5 년째라니..! 5 년 동안 사전을 찾아 본 건 열 번도 안된다. 사실, 어떤 낱말이 궁금할 때는 스마트폰 들고 검색하는 게 가장 손쉬운 방법이니까. 그러나 일년에 한 두 번, 명절에만 찾아뵙더라도 충만한 사랑을 느끼게 해주시는 고향의 부모님 같은, 그런 존재이기에 당연히 개정판도 구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