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오구니 시로 지음, 김윤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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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어쩔 수 없는 이유에서

 

솔직하게 고백한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을 처음 떠올린 2012년 무렵의 나는, 치매에 관한 지식은커녕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었다.

주변에 치매를 앓는 분들이 없었다는 것이 나름의 변명이 될지도 모른다.

방송국 PD로서 수많은 현장을 취재하며 다녔으면서도, 치매 관련 프로그램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을 열게 되었다는 자체도 신기한데, 그 계기라는 것도 무슨 거창한 게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이유 때문이었다.

나는 그 무렵 아주 곤란한 상황에 있었다.

사연인즉슨, 어떤 현장을 한 달 정도 장기 취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촬영에 문제가 생겨서 방송사고가 날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정말이지 일생일대의 위기였다. 나는 필사적으로 다른 취재 현장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 모습을 본 동료 하나가 '이 사람 어때?' 하고 소개해 준 사람이, 바로 치매 시설 관련 일을 하고 있던 와다 유키오 씨였던 것이다.

 

 

 

ㅡ 맥 빠질 정도로, 지극히 평범한 광경

 

와다 씨의 현장은 나고야에 있었다.

그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스무 곳이 넘는 간병 시설을 총괄하는 매니저로, 나고야에 있는 그룹 홈은 아직 개설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아 거의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수준의 현장이었다.

와다 씨로부터는 사전에 '시설이 막 오픈된 탓에 입주자분들이 환경에 익숙하지 않아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뭐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취재 오셔도 좋습니다'라는 말에, 오히려 취재를 가는 나의 긴장감이 더 고조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로서는 인생 최초로 치매와의 조우가 아닌가. 다르게 표현하자면 말도 통하지 않고 사정도 전혀 알지 못하는 외국으로 떠나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방송 펑크를 낼 수는 없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할 수 없지!' 각오를 하고 취재를 시작했는데.... 의외의 일 연속이었다.

그곳에는 잔뜩 긴장하고 찾아간 사람의 맥이 빠질 정도로 지극히 평범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화기애애하게 요리를 하고.

조금 있자니, 약 700미터 떨어진 시장에 그날 저녁 찬거리를 사러 나갔던 할머니들이 돌아왔다. 오늘은 무얼 만들까, 아니야 그건 별로야, 왁자지껄 이야기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나는 멍하니 입을 벌린 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취재 전까지만 해도 치매라고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주 부정적인 것들이었다.

거의 기억을 잃고, 자꾸 집을 나가거나 가끔은 폭언을 하고 심지어 환각 증세도 나타나는.

어쨌든 정말 무섭고 슬픈 병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좀 더 솔직하게 고백하면, 치매 환자는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약간 위험한 사람들'이라는 느낌조차 있었다.

 

 

 

ㅡ 이 또한 현실입니다.

 

취재를 시작하고 며칠이 지나가 치매의 여러 가지 면들도 눈에 들어왔다.

어르신들이 우리 촬영팀의 얼굴을 기억 못하는 것은 당연지사고, 매일 만나는 와다 씨에 대해서도,

"처음 보는 사람이네. 이름이 뭐요?" 하고 물어보기 일쑤다.

촬영을 위해 시설에 가면 경찰차가 와 있기도 했다.

여든 되신 할머니의 행방이 아침부터 묘연하다는 것이다.

와다 씨가 총괄 매니저로 있는 시설은 야간을 제외하고는 문을 잠그지 않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출입이 자유롭다.

물론 입주자들이 외출할 때 직원들이 동행하기도 하고,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알려주는 장치를 달아놓는 등 나름의 안전 대책이 갖춰져 있기는 하다. 그런데 그날은 아침 식사 후 잠깐 눈을 돌린 사이에 할머니 한 분이 밖으로 나가버렸다는 것이다. '시설 오픈 직후라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어요'라고 했던 와다 씨의 말이 이해가 갔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르신 한 사람의 생명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이대로 계속 카메라를 돌려도 될까, 우리 촬영팀은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와다 씨가 우리의 걱정을 불식시켜 주었다.

"이런 사태를 초래한 저야말로 전문가로써 자격 상실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찍어 주세요. 이 또한 간병 세계의 현실이니까."

그는 이미 각오가 되어 있었나 보다.

 

 

 

ㅡ '평범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지키기 위하여

 

와다 씨가 간병 의료 세계에 막 입문했던 1980년대.

치매에 걸리면 몸을 침대나 의자에 묶어놓기도 하고, 방이나 시설에 가두어 두는 등 행동이 제한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상황에 의문을 갖고 있던 와다 씨는 '사람으로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유지하게 해 주는' 간병을 목표로 꾸준히 싸워왔다고 말한다.

"간병이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힘을, 살아가는 것뿐 아니라 그 이상으로 필요한 곳에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해 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까지 온전한 사람으로서 살아가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으로 살아가고, 더 이상 그 힘을 스스로 주체하지 못하게 되면 치매가 되는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사용할 수 있도록 응원해 주는 것이 내가 할 일이 아닐까요."

그렇기 때문에 와다 씨의 시설에서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대부분 각자 알아서 한다. 칼을 들고 불을 사용해서 요리를 하고 빨래와 청소를 하고, 마을로 쇼핑이나 산보를 나간다.

물론 나이 든 어르신들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상처를 입거나 사고를 당할 가능성에 늘 노출되어 있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어르신들 각각의 치매 정도나 신체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면서 전문가인 우리가 계속 지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와다 씨의 신념이자 각오였다.

 

 

 

ㅡ 방황과 갈등으로 흔들리지 않도록

 

행방불명이 된 할머니를 찾아 함꼐 헤맨 지 7시간.

아무래도 이 시점에서 물어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질문을 와다 씨에게 던졌다.

"이런 사태를 초래하면서도 시설의 문을 걸어 잠그지 않으실 겁니까?"

그러자 와다 씨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24시간 365일 잠그지 않을 거예요. 물론 문을 걸어 잠그면 두 번 다시 이런 일은 없겠지요. 하지만 그런 쪽으로는 전혀 생각이 없어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전혀 갈등이 안 되신다고요?"

그러자 와다 씨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갈등하지요. 늘 흔들리고 있어요."

와다 씨에게도 흔들림과 갈등은 있다.

자신이 하는 일이 이기적이지는 않은지, 억지로 밀어붙이고 있지는 않은지 계속 자문자답하고 있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 왔다고 한다.

"치매 환자는 평생 자신의 의사대로 행동에 옮기는 것을 억제당해 온 역사 그 자체인 거지. 하지만 인간이 왜 멋진 존재인가.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인간이, 자신의 뇌가 무너졌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가장 멋진 것을 빼앗으려고 해서는 아 된다. 최대한 그것을 지켜주는 것, 그 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

할머니의 행방이 묘연해진 지 15시간.

경찰서에서 무사히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옛날에 자주 참배를 갔던 아쓰다 신궁에 가고 싶어 무작정 걸어가다 보니, 길을 잃었다는 것이다.

 

 

 

ㅡ 치매 환자이기 전에, 사람이잖아요.

 

취재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와다 씨가,

"간병 시설을 세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겠죠?"

하고 물어온 적이 있다.

나는 이 말이 분명 비용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지역주민이나 행정단체들의 이해를 얻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

"치매 노인들이 마을을 걸어 다니는 것은 위험해."

"치매 환자한테 요리를 시키다가 불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이런 반대 의견이 연신 나오기 때문에, 시설을 세울 때에는 먼저 정중하고 또 정중하게 설명을 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주민들이 불안해하는 마음도 이해가 가는데......'라고 생각했다. 그런 나의 마음을 꿰뚫었는지, 와다 씨는 "오구니 씨, 저기 말이에요" 하고 말을 시작하더니 계속 이어갔다.

"치매 환자이기 전에, 사람이잖아요."

한 방 제대로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다.

그런 시각이 내 안에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와다 씨는 '치매 환자 오구니 씨'. '오구니 씨는 치매 증세가 있다' 이 두 가지 표현은 전혀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룹 홈에서 생활하는 노인분들을 '치매 환자 누구누구'라는 식으로 보아왔다.

누구를 보아도 마찬가지다. 한데로 뭉뚱그려서 '치매 환자들'이라고 여겨왔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는데, 아마도 그것은 '치매'라는 말을 어설프게 알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ㅡ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치매'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나도 당연히 이 말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대충 알고 있다는 느낌이 정말 위험한 것이다.

'치매란 이런 거야'하고 막연히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가 '대충 알고 있는' 이미지 때문에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반면에 와다 씨는 치매를 벌레가 달라붙어 있는 것에 비유한다. 사람에게 치매란 벌레가 달라붙어 있는 것일 뿐, 그 사람이 그 사람이 것은 변함이 없다. 거기에서 시작하라고.

와다 씨에게 배우고 난 후 다시 그룹 홈을 바라보자 정말로 그렇게 보였다. 깜짝 놀랐다.

운동신경이 좋고 늘 생기발랄한 사람도 있는가 하면, 요리를 잘해서 멋진 칼 솜씨를 보여주는 분도 있다.

말을 잘해서 사람들을 늘 웃게 해 주는 분도 있고, 야한 농담을 좋하하는 사람도 있다.

거기에 치매라는 병이 붙어있기 때문에 조금씩 정상 범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건망증이 심한 사람도 있는가 하면, 무조건 밖으로 나도는 사람도 있고 폭언을 일삼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백이면 백 언제나 늘 그런 상태인 것은 아니다.

그런 성향이 조금씩 보이기는 하지만, 이를테면 치매라 해도 단색이 아니라 사람들 저마다 다른 색깔과 명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치매 환자이기 이전에, 사람.'

와다 씨는 이 사실을 지역 주민이나 행정 단체에 거듭 알리면서 조금씩 협력의 범주를 넓혀온 것이다.

 

 

 

ㅡ 골칫덩어리에서 '어, 보통 사람이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듯, 이곳 그룹 홈에서는 매일 700미터 떨어진 시장까지 대여섯 명이 함께 장을 보러 간다.

나는 그분들을 따라 장에 가는 것이 정말 좋았다.

채소 가게, 생선 가게, 반찬 가게에 철물점까지. 길게 늘어서 있는 시장에서 어르신들의 표정을 들여다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보통 주부의 모습 그 자체다.

사전 정보가 없었다면 누가 치매 환자인지 전혀 알 수 없을 것 같다.

거리에 녹아드는 이 느낌이 참 좋다, 생각하면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그렇게까지 될 수 있는 것은, 와다 씨가 사전에 시장 사람들에게 정확하게 설명을 한 덕분이지만, 시장 측도 흔쾌히 받아들여 주었기 때문에 어르신들이 치매를 앓기 전과 변함없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시장 사람들에게 인터뷰를 해 보았더니, 처음에는 '괜찮을까', '괜히 성가시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위험한 사람들이 우리 동네에 오는군' 이런 생각을 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와다 씨와 직원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어르신들이 평범하게 장을 보는 모습을 보고, '어? 우리랑 똑같은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위험한 사람들'로 여겼던 치매 환자들을 '아, 보통사람이구나'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 사실이 너무나 흥미로웠고, 바로 거기에서 어마어마한 힌트를 얻게 되었다.(145-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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