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않아도 배부른 마음을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묵은지까지가 유쾌하…, 하하하…. 사실 썩 유쾌하진 않고요? 뭔 괴랄한 소리냐 싶으시겠지만 제가 몇 해 동안 꾸준하게 불성실한 서재활동을 이어오면서 처음으로 리스트를 뽑아봤습니다. 책장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취향도 기준도 없이 남들이 재밌다고 하면 아묻따 데려와서는 아무렇게나 책장에서 비어져 나와 방치된 책들은 제 어지러운 정신머리만을 나타내는 듯하네요.
책장이 크지 않아서 이렇게 한 칸을 앞뒤로 꽉꽉 채워서 쓰고 있어요.
이렇게 끼어버린 벽돌들의 쾌적한 공간을 위해서라도 어서 유배 보낼 녀석들을 솎아내야 합니다.
늘 계획따윈 없이 손에 잡히는 대로 충동적 독서를 해왔는데 무분별한 소비를 지양하고 재고파악도 할 겸 남은 두 달 플러스 21일 동안 책장 파먹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주제는 이 제목 모르는 사람 없을 만큼 유명한 책이지만 막상 읽은 사람 찾자면 쪼오끔 힘들 수도 있는 그런 책! 한마디로 스테디 고전 위주로 골라보았습니다. 요즘 웹소설에 빠져서 문학을 멀리했는데 이렇게 페이퍼로 남겨 놓으면 책임감 때문에라도 좀 읽겠죠..?
첫 번째로 밀란 쿤데라 님 모셔봤습니다. 집에 이분 책이 네 권이나 있는데 읽은 게 하나도 없단 걸 깨닫고 혼자 깜짝 놀랐어요. 이름이 너무나 익숙해서 마치 읽지 않았는데 읽은 듯한 이 느낌적인 느낌.. 이왕이면 대표작이 낫겠다 싶어 이 책으로 골랐습니다. 네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배경으로 역사적, 철학적 메시지를 담은 소설이라고. 예전에 한창 필독서로 추천이 많아서 고민도 않고 구매했었는데요. 이분이 한 농담도 궁금해서 이 기회에 해치워버릴까 싶어 리스트에 넣었다가 뺐어요. 욕심내다가 다시 저 어두운 책장에 박혀 못나오는 수가 있으니까요. 후기를 살펴보니 극강의 호불호로 나뉘는 모양인데 과연 저는 어느 쪽일지 몹시 궁금해집니다.
표지에 아저씨만 봐도 골머리 꽤나 아프겠구나, 지레 겁먹게 되는 소설.
맨 첫장을 펼쳤더니 벌써 고독해집니다. 보통 가계도가 필요한 소설은 공부하듯이 메모하며 읽어야 해서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거든요.. 뭐 어쨌든 잘 익은 묵은지를 찾기 위한 여정이니 감수해야겠지요. 다행히 마르케스의 글은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로 경험을 해보아서 조금 부담이 덜하기도 합니다.
죽지 않는 사람들, 부엔디아 가문의 고통과 절망을 다룬 이야기.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너무나 유명한 소설이죠? 네, 아직도 안 읽었네요 제가.. 유명세 만큼이나 많은 출판사에서 출간이 되어서 번역 선호도에 따른 선택지가 제일 넓은 책 되시겠습니다. 소년 싱클레어의 자아탐구 성장소설인데요. 이 책을 읽은 사람은 둘로 나뉘는 것 같아요. 읽을 때마다 감상이 달라지는 인생소설이거나 당최 뭔 소린지 모르겠다거나. 헤세의 책은 몇 권 읽어보기도 했고 아직 읽지 않은 책도 많아서 저의 선호도는 데미안을 기준으로 판가름이 나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리스트로 뽑은 다른 책들도 그렇지만 미디어에서 유독 많이 거론된 사회비판 풍자소설이에요. 1945년에 출간된 소설임에도 작금의 사태와 비교하며 오웰의 통찰력에 감탄하는 감상을 많이 보아서인지 가장 기대되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아마 이웃님들은 다들 읽으셨겠죠? 이 책으로 출발선을 끊어야겠습니다. 가장 얇기도 하고요? 얇고 알찬 책이 제일 좋거든요.
+ 번외로 알라딘에서 젤 처음 산 책!… 은 아니지만 그 비슷한 것으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타나타노트 꼽아봤습니다. 올해로 14살 먹었네요. 세상에나.. 무려 강산이 한 번 바뀌고도 남을 동안 이 두 권을 안 읽었다니.. 어릴 때 베르베르 책 읽고 독서의 참맛을 잠깐 느꼈던 적이 있었는데 말이죠. 추억여행 떠나듯 읽어봐야겠습니다.
다독하시는 분들은 다소 협소한 리스트에 실망하셨겠지만 거북이의 속도로 읽는 저는 완독률 백퍼센트가 아주 무거운 과제처럼 느껴지네요. 왜 늘 일을 사서 만드는가. 마구잡이로 사들이던 대가를 치뤄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종스텝으로 도입부에 대한 악명이 자자한 <장미의 이름>이나 완독한 사람 찾기가 하늘에 별따기라는 <율리시스>, 시작이 어렵지 그래도 한번 펼치면 재밌다는 벽돌책 <코스모스> 등등 도전정신을 일깨우는 책들도 쾅쾅 묵은지 타파해보려고 합니다. 2022년이란 숫자에 낯가리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네요. 남은 한 해 동안 이웃님들따라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