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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8 - 제3부 어둠의 산하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의열단......
입단과 동시에 죽기로 맹세한 사람들.... 2-300명의 젊은 피들은 일본 고관을 암살하고 관공서를 테러하며 사라져 갔다. 무모하리 만치 아까운 청춘 들은 죽어 나갔다. 그러나 그들의 무장투쟁이 무모한 것만은 아니었다. 테러의 투쟁은 충격적 효과를 거두었고, 조선의 독립투쟁 의지가 죽지 않았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친일파의 자식들은 대를 이어 친일을 했고, 독립운동가의 자손들은 대를이어 3대에 이러러까지 독립운동을 하였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고,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며,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내 자식에게 자랑스러운 부모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부끄러운 부모는 되지 말아야 겠다는 다짐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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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12 - 제4부 동트는 광야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다 깨어지는 때에 혼자 성키 바랄소냐
금이야 갔을망정 벼루는 벼루로다
무른 듯 단단한 속을 알 리 알까 하노라》

- 최남선 깨진 벼루의 명 -

 나의 분노는 두 가지 사실에 어찌 이렇게 뻔뻔스런 변명을 정는 두 가지 사실에서 비롯되고 있었다. 첫째는 친일 한 자가번뻐스런 변명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고, 둘째는 어떻지조가 교과서에 실릴 수 있는가 하는 점 때문이었다. 꽤나 긴 게 이런 시조이 지난 뒤에 깨달은 사실이지만, 그건 친일파들이 우리 사회의 저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를 속속들이 장악한 현실 속에서 벌이이었다. 그러니까 그 시조는 교육 분야를 장악한 친일파들이 교토해서 자기들의 입장을 변호함과 동시에 후대들을 최면시켜 비 파의식을 마비시키고, 또한 상황불가피론을 주입시켜 자기들의 편을 만들려는 주도면밀한 음모로 취해진 일이었다.
다시 최남선의 시조를 읽어보라. 그 시조 아닌 시조에 친일파들이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내세우는 <상황불가피론> 과 〈책임회피〉 〈책임전가〉가 얼마나 충실하고 뻔뻔하고 교묘하게 잘 나타나고 있는가. 이것은 바로 60년대를 풍미하고, 70년대에 절정을 이루었던 친일파들의 자기 변호를 넘어선 역습논리인 〈그때 조금씩이라도 친일 안한 놈이 어디 있느냐〉, 〈네가 그때 살았으면 별수있었을 것 같으냐〉, 〈너는 뭐가 잘났다고그러느냐〉, 〈이제 와서 친일이고 뭐고 따지는 건 다 촌놈들 짓이야〉이런 언행들이 횡행하게 만든 바탕을 이룬 것이었다.
나는최남전으로 대표되는 반역의 역사에 대한 분노와 실망을 안은 채 대학생이  문학에 일생을 걸기로 하고 대학에 가서 깨달은 것은〈대학은 문학을 가르쳐주는 곳이 아니다.는 단 한 가지 사실일 뿐이었다.~~ 그리고 작가가 되어 나는 그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하면서 친일파의 문제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견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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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장하고 장엄한 자태의 지리산은 우아하고 환상적인 으로새 비단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백설로 치장했을 때의 지리산은 신령 스러웠고, 눈이 녹으며 흑회색의 모습을 드러냈을 때의 지리산은 위엄이충만했고, 이제 싱그러운 유록색이 번지고 있는 지리산은 자애스러웠다.
산 높고 골 깊으되 그 준령 또한 몇십리에 뻗치며 산맥을 이루어내고 수많은 골짜기를 거느렸으니 누구나 함부로 범접하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 보며 감탄하는 산, 그것이 지리산이었다.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에 〈지리산의 도령들) 소문이 퍼진 지는 이미오래되었다. 그 소문은 가지가지였다. 독립군으로 나서기 위해 훈련을하고 있다고도 했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 도를 닦고 있다고도 했고, 왜놈들 총에 이길 수 있는 무술을 연마하고 있다고도 했다. 그 소문들의 한 가지 공통점은
 그들이 <나라를 되찾기 위해>지리산에 있다는 것이었고
 그들을 그냥 <청년들>이라고 부르지 않고 <도령들>이라고
 높것에서 그들의 하는 일을 장하게 생각하고 있는 마음을 나타여 부르는 것에서 그들의내고 있었다.
 그 여러가지 소문들과 달리 그들이 누구인가 하는 것만은 어느 사람의 말이나 다 똑같이 일치하고 있었다. 
그들이 학병으로 끌려가기를 거부하고 지리산으로 들어갔다는 시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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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160여만 명을 강제징용했고, 30여만 명의 여자들을 위안부와정신대로 끌어갔고, 4천5백여 명의 학도병을 포함해 징병으로 전쟁터에끌려간 젊은이들은 40여만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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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모윤숙, 이화여전 교장 김활란.
반도여성은 웃음으로 내 아들과 남편을 전장으로 보내야 한다며 일제의 전시동원에 앞장서라고 충동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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