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말을 기억해둬요, 한 아이를 키우는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지만,  한 아이를 학대하는데도 한 마을이 필요하단 것을.--극중 변호사가 기자에게 내뱉은 말.


 2001년 미국 3대 일간지중 하나라는 보스톤 글로브내 <스포트라이트> 팀이 카톨릭 성직자 추문을 밝혀내는 과정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보스톤 글로브에 새 편집자가 오게 되면서 시작된다. 그의 이름은 마티 바론, 유대인으로써 천주교 일색인 보스톤을 외부인의 시선으로 볼 수 있었던 그는 당시 떠들썩하게 소송중이던 성직자 성스캔들을 파볼 것은 <스포트라이트>팀에 지시한다. 그간 그 문제가 종종 제기되어 왔었고, 제보도 여럿 있었지만 그때마다 묵살되어 오던 것이 보스톤 글러브의 실정. 묵살 된것은 별 게 없기 때문이었겠지 하던 기자들은 사건을 파헤쳐 들어가면서 자신들의 생각이 안이했음을 알게 된다.  피해자들과 피해자들을 대변하는 변호인들, 피해자 단체들과 만남을 가지다보니 어쩔 수 없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아차릴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카톨릭 교단 내에서는 나쁜 양 한마리의 문제로 치부하는 성직자 아동 성추행 문제가, 사실 조직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보신 적이 없으신가? 만약 그 나쁜 양이 어쩌다 나온 한마리가 아니라, 전체의 6%를 차지한다면 우린 그걸 나쁜 양 한마리의 문제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니 말이다. 이건 전적으로 시스템의 문제이며, 그걸 무너뜨리지 않으면 이런 범죄가 계속되겠다는 것까지 추리해 낸 스포트라이트팀은 최선을 다해 이일을 밝혀 내기로 마음 먹는다. 그리곤 놀랍게도, 성직자의 아동성추행이 계속되어온 관행이며, 바티칸을 비롯한 카톨릭 기관은 이를 알면서도 지속적으로 은폐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었다는걸 알게 된다. 왜 아무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라는 물음에 피해자중 하나는, 우리가 내내 말을 했음에도 당신들은 듣지 않았다고 일갈을 하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두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하나는 나의 순진함이 깨지는 순간이었다고 해야 할까, 아하! 모먼트였다고 해야 하나, 그런 것이었는데,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세상이 일순간에 달라 보이는 경험을 내게 선사해줬다. 세상은 여전히 똑같은데 내가 그때까지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었다는걸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모든 단서들을 누군가가 열심히 흘려줬는데도 내가  제대로 꿰맞추지 못하고 있었구나 라는걸 깨달으면서 느껴지는 섬뜩한 기분...바로 내게 그런 기분을 선사한 장면은 피해자중 한 사람이 " 이 모든 것은 순결 서약에서부터 시작된 것" 이라는 말을 했을때였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니 당연히 성욕을 느낄 것이고, 그걸 풀 기회조차 막아 놓았으니 다른 해결책을 찾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피해자들 대부분이 남녀를 불문하고 가난한 집 아동들인 것도 그때문이라고. 성직자들이 그들을 고른건 그들이 쉽게 나서서 성직자들을 고발하지 않을 것이라는걸 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순진하고 가난하며 기댈 곳이 없는 아이들에게 행해지던 이 추악한 짓이 사실은 오래전부터 계속되어온 일종의 패턴으로,  사제와 바티칸, 교구민과 피해자 가족들 모두가 알면서도 쉬쉬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이 충격이었다. 그렇다. 단지 동성애나 소아성애증에 걸린 사제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성직자들이 자신의 성욕을 해결하는 하나의 패턴이었을뿐. 이 얼마나 가공할만한, 그리고 기이한 해결방식이라는 말인가. 그 섬뜩함에 히드라 머리를 본 듯 나는 그대로 굳고 말았다.

두번째 장면은 샤샤라는 기자가 피해자를 인터뷰하는 장면이었는데, 나는 그만 눈을 돌리고 말았다. 공포 영화도 아니고, 잔인하거나 야하거나 하는 장면 하나 없이, 그저 옷을 다 차려 입은 두 사람이 까폐에서 만나 차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인데도, 도저히 눈을 뜨고 바라볼 수가 없더라. 결국 외면한 채 한동안 마음을 진정시킨 다음에서야 볼 수 있었다. 이런게 가능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으면서,  인간이야말로 어쩌면 이 지구상에서 가장 잔인한 동물일지도 모르겠다 싶더라. 그런 일들이 벌어졌다는 것보다 더 경악스러웠던 것은 기사화한다는 기자들에게 그저 모른척하라고 주문하던 카톨릭계 인사들과 아예 성추문 전담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던 바티칸의 위선이었다. 순진하고 어린 피해자들이 무한정 늘어날 것을 잘 알면서도 그들은 멈추려 하지 않았다. 잠잠해진 다음에 다른 곳으로 전출을 시켰을 뿐...카톨릭이라는 것이 결국엔 거대한 사기 집단이자 성범죄의 온상이었다는 사실은 나를 망연자실하게 만들었다. 그들이 해온 일들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연 그들은 떳떳할 수 있을까? 그들이 어떤 장한 일을 해왔다고 한들, 한 어린 아이의 고통스런 눈물과 맞바꿀 수 있겠는가 말이다. 아이들을 자랄 뿐이고, 어린 시절의 기억은 잊혀질 것이라면서 단순히 별것 아니라고 하던 사람들의 생각은 얼마나 틀린 것이냐. 카톨릭이 세계적으로 신자가 줄어든다고 하던데, 현대인들의 믿음 없음을 탓하기 전에 어쩌다가 어린 아이들의 영혼을 짓밟는 가해자가 되었는지 심사숙고해볼 수는 없는 것인지 싶었다.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시스템의 문제라면, 이제와서라도 바꾸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싶어서 말이다. 그것이 위선을 떨면서 뒷방에서 아이들을 쓰다듬는 것에 비하면 훨씬 떳떳한 일이 아닐까.

깊은 여운과 생각할 거릴 남겨준 수작이다. 보고 나서도 한동안 먹먹해서 애를 먹었다. 이 이야기가 실화라는걸 알고서 보니, 도저히 담담할 수가 없었다. 최대한 냉정하게 언급만 하려 한 것도 그때문이다. 언급했다시피,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 이야기의 전개가  매우 자연스럽다. 군더더기 없는 것이 아주 맘에 든다. 드라마틱한 장면이 별로 없음에도 끝까지 지루하지 않게 몰입해서 보게 만든다는 점도 장점. 배우들의 연기는 다 출중해서 누구 하나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사람이 없다. 그 중 가장 눈에 뜨이는 배우를 꼽으라면 마티 바론 역의 리브 슈라이버였다. 그간 연기를 잘 한다는걸 별로 느끼지 못했었는데, 이 역에는 딱이다. 이성적이고, 난센스가 끼여들 여지가 없는 머리좋고, 논리적인, 불필요한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목표물에 향해 달려가는 건조한 편집자 역을 훌륭하게 해내서 작품의 무게 중심을 잘 잡아준 듯하다. 그리고 스포트라이트 팀장 역의 마이클 키튼 역시 자신의 전성기를 다시 되찾고 있는 듯하다. 젊은 시절의 그를 좋아했던 나로써는 그의 이런 귀환이 매우 반갑다. 그리고 열혈 기자역의 마크 버팔로...왜 한국인들이 자신을 그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토크쇼에 나와서 이야기를 하던데, 마크~~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건 당신이 선한 역에 잘 어울리기 때문이랍니다. 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그의 선한 눈빛과 현직 헐크다운 욱함이 영화의 생기를 살려내지 않았는가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샤샤 기자역을 맡은 레이첼 맥아담스는 욕심내지 않는 훌륭한 팀웍을 보여주었고, 경험주의자적인 냉소와 따뜻한 인간애가 공존하는  변호사 역의 스탠리 투치 역시 자신의 몫을 십분 해내고 있었지 않는가 한다. 총체적으로 말해 연기의 어벤져스들이 모여서 꽤나 근사한 영화 하나를 만들어냈다고 보면 된다. 이 추악한 세상, 원래 그렇게 돌아가고 있던 것이니 더이상 문제 삼지 말자고 하는 대신, 이 추악한 세상을 바꾸어 보자고 나선 그들의 용기와 신념에 박수를...만약 우리의 세상이 좀더 나은 것이 되었다면 아마도 그런 이들의 보이지 않은 열정과 이성때문일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더불어 자칫 선정적으로 흐르 수 있는 소재를 차분하고 냉정하게 하지만, 사려깊은 톤으로 연출해 준 감독에게도 감사를 표하고 싶다.  그의 연출 덕분에 이 영화가 더욱 더 진정성있게 다가왔다. 성직자 추문 피해자들이 이 영화를 통해 많은 위로를 받았기를. 영화 말미에 자막을 읽어보니, 바티칸은 이 사건 후에도 달라진 것이 없는 듯하다. 우리가 내내 떠들었지만 당신들은 듣고 있지 않았다는 피해자들의 말은 여전히 진행형인 모양이다. 이 영화가 상영된 후에라도 과연 얼마나 세상이 달라져 있겠는가 싶어 암담한 심정이다. 그저 바라건데 더이상 자라나는 아이들이 어른들의 일그러진 욕망의 희생자가 되는 일이 없기를.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이 우리 어른들의 의무 아니겠는가. 방관자나 방조자 역시 가해자 못지 않게 나쁜 것이라는 것을 이 영화는 보여주고 있던데, 과연 나는 어떤 어른일까, 이 밤에 고민해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그장소] 2016-02-09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상깊은 영화소개 잘 읽고 갑니다.
네 이웃의 범죄 ㅡ만이 아니란 말이죠...^^;

이네사 2016-02-10 12:46   좋아요 1 | URL
네, 그런 이야기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