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속의 소녀들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얼음속의 소녀들>이라는 제목의 책이 나왔을때 내가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소재때문이었다. 물론 이 책을 쓴 저자가 <차일드 44>의 톰 롭 스미스라는 말에 솔깃했던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의심이 많은 나 같은 독자는--내지는 경험이 많은 나 같은 독자는?--전작이 좋았다고 할시 오히려 경계심이 들기도 한다. 아무리 우등생이라고 해도 맨날 백점만 맞기는 힘든 것처럼, 전작만큼 좋은 작품을 계속해서 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는 언제나 존재해서, 연작인데도 비교적 고르게 작품을 내주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동일 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형편없는 작품을 내놓는 작가도 있다. 때론 전작에서 작가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티가 역력해서 다음에 뭐가 나올지 별로 기대가 되지 않는 작가도 있고. 톰 롭 스미스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차일드 44>가 굉장히 재밌기는 했지만 후속작이 기다려지지는 않았다. 해서 그가 다른 작품을 내놓았다고 해도 별 반응이 없었는데,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읽어야 겠다고 마음 먹게 된 것은 한 문장때문이었다." ....작가 자신의 체험에서 발상을 얻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망상에 빠져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은 작가는 , 그때의 혼란과 불안을 바탕으로 밀도 높은 심리 스릴러를 구상해냈다...."는 것 말이다.


영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스웨덴으로 이주를 한 부모님, 잘 계시는 줄 알았더니 아버지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엄마가 미쳤단다. 그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이번엔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남편이 이웃 사람들과 공모해 자신을 정신병자로 몰고 있다고, 나는 병원에서 탈출했으나 분명 아빠에게서 전화가 갈 터이니 그를 믿지 말라고, 지금 내가 믿을 사람은 너밖에 없다고 말이다. 과연 이런 전화를 연달아 받게 되었을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당신이라면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라는 것에 궁금증이 일었다. 과연 작가는 그걸 어떻게 극복해 냈을지가 난 궁금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가 무엇을 배웠을까 라는 점도...그것이 바로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다.


예상대로 초반부터 숨차게 밀어붙이는데, 역시나 재능있는 작가다. 원래 글을 잘 쓰는 작가인데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쓰다보니 일필휘지로 시원스럽기 그지 없다. 아버지에게서 걸려온 끔찍한 전화 한 통, 한눈에 봐도 미친게 틀림없는데 미친 것이 아니라고 주장을 하는 엄마의 등장. 확연하게 달라진 엄마의 모습에 경악한 아들 다니엘까지 숨돌릴틈이 없다. 믿을 사람이 다니엘밖에 없다며 엄마는 자신이 마을의 살인 사건을 알고 있으며 그 사건의 주모자들이 자신을 정신병으로 몰고 있다고 주장을 한다. 엄마가 제기한 사건의 심각성에 놀란 다니엘은 다른 한편으로는 엄마를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당황하는데...



라는 것이 기본 줄거리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전작에 버금가는 작품은 아니었다. 가장 맘에 안 드는 것을 꼽으라면 중반 정도에서 결정적인 헛점을 드러내며 멈칫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책을 내려 놓을 정도로 신빙성이 떨어져서 말이다. 스웨덴 태생인 엄마가 열 여섯에 고국을 떠나야만 했던 사정을 털어놓는데, 그게 좀 어설펐다. 고작 그런 이유로? 의문부호가 생겨나자 그다음부터 이어지는 이야기가 별로 재밌지 않았다. 그것이 진실이건 망상이건 간에 이미 설득력을 잃었기 때문에. 다행히도 결말 부분에 가서 설득력을 되찾아 올 수 있었지만, 이미 생긴 실망감을 감추기란 힘들었다. 초반과 결말 부분만 두고 보자면 잘 짜여진 소설이라고 할만했는데, 추리 소설로 만들기 위해 억지를 쓴 것이 오히려 매력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읽고 나니 작가가 어떤 경험을 했을지 대충 짐작이 간다. 그의 엄마가 어떤 이야기를 했고, 아들은 그 말을 들으면서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아니면 믿는 척을 해야 할지 난감해졌었겠지. 그리고 그런 경험을 토대로 이 책을 써냈고 말이다. 하지만 엄마의 이야기가 얼마나 거대한 음모를 포함하고 있었던 것이건 간에 아마 아들을 즉각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뭔가 이상하다고. 이상하다는걸 알기에 더 섬뜩하다고. 간단하다. 이렇게 복잡하지 않다. 그런데 그걸 엄청나게 복잡하게 만들었다. 추리 소설을 만들었어야 했기 때문에. 그점이 아마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실망한 부분이 아닐까 한다. 이야기를 잘 짜여내긴 했지만 어딘지 진실이 부족한 것 같은 느낌 말이다. 하니, 아귀가 맞는 듯한 추리 소설을 보고 싶다시는 분들은 보시길. 과연 이 엄마가 미친 것인지 아닌지가 궁금하신 분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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