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섬에 살고 있던 히라야먀 부부는 자식들을 보기 위해 처음으로 동경으로 장거리 여행을 떠난다. 동경 변두리에서 개업의를 하고 있는 장남 코이치, 미용실을 하고 있는 장녀 시게코, 그리고 언제 사람 구실 할지 알 길이 없는 막내아들 쇼지까지...장성한 아이들이 독립해서 자신의 삶을 꾸려 가는걸 보는 것만큼 부모에게 흐믓한 광경이 있을까, 히라야마 부부는 그래도 자신들이 비교적 운이 좋은 편이라고 , 그렇게 생각한다. 부모의 첫번째 동경 나들이를 하는 반기는 자식들, 하지만 하루가 지나지 않자 다들 각자의 스케줄로 부모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한다. 동경 구경 한번 시켜드리겠다고 나선 장남은 갑작스런 환자의 호출에 서둘러 불려 나가고, 둘째 딸은 가뜩이나 좁은 집에 미용실 운영과 이런 저런 일정으로 챙겨드릴 여유가 나지 않자 짜증이 난다. 교사인 아버지로부터 뭘 해도 안 될 놈으로 어렸을 때부터 찍한 막내 쇼지는 눈만 마추지면 요즘 뭘 해 먹고 사냐고 다그치듯 물어보는 아버지가 영 불편하다. 자식들 보겠다고 큰  맘먹고 나선 길이건만, 얼마되지 않아 눈칫밥 신세로 전락한 히라야마 부부는 자신의 처지가 서글퍼진다. 자식들이 살아가느라 바빠서 그럴 수 밖엔 없다는걸 어른답게 이해한다고 해도 섭섭한 마음이 드는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다들 제자리를 찾아 잘 살아가고 있는걸 봤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홀가분하다고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은 뜻밖의 사건으로 인해 새로운 고비를 맞이하게 되는데...

일본 영화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다른 영화보다 일본적인 색채가 두드러진 영화였다. 절제된 감정과 대사, 흐트러짐이 없이 정갈한 배경,  한편의 화보 모음 같은 영상, 조곤조곤 언성 높아지는 법 없이 상대의 감정을 추하지 않게 정리하는 그들만의 대화법, 감사하다거나, 다행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아무리 바쁘고 슬퍼도 절도 있게 절하는 것만은 포기하는 법이 없는 일본인 특유의 미학을 광고하는 듯 보였으니 말이다. 일본의 문화는 이렇다고, 만약 일본인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면 이 영화를 보심 된다고 말이다. 아직은 끈끈한 부모 자식간의 정, 부모 자식 세대간에 존재하는 갈등을 그래도 이해하는 시선에서 바라보려 하고, 과거의 관습과 현대의 편리한 삶 속에서 그들이 지키려 하는 것과 그럼에도 흘려 보내야 하는 것들에 대해 그들이 열심히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점들은 정말 훌륭한 유산 아닌가요?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하지만 지금을 살아가기 위해선 우리가 포기해야 하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라는 현재의 모습을 잘 포착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거기서 한 발자욱도 나가지 않은 채 현재만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 특징. 일본 특유의 관조적인 태도랄까, 그런 것이 반영된 듯하다. 과거 인기 있었던 작품을 현대에 와서 다시 만들은 것이라고 하던데, 그만큼 일본인들에게 사랑받던 작품이라고 말이다. 보니 이해가 간다. 우리가 보기엔 한없이 심심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그들에겐 간직하고 싶은 가치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은...엄하고 이해심이 부족한 남편을 다독이면서 자식들에게 헌신한, 그래서 자식이 잘 살아가는 모습에 이보다 더 다행일 순 없다고, 자신의 모든 행복이 다 실현된 듯 미소짓던 할머니의 모습 말이다. 아마 일본인들이 그리워 하는건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은 그 어머니의 사랑 아니었을런지...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궁금해졌다. 영화속 배우들이 굉장히 자연스러운 듯 보이는 극도로 절제된 연기를 펼치던데, 하나도 힘들어 보이지 않아서 놀랐던 것이다. 과연 어느것이 더 힘들까? 미국처럼 리얼하게 연기하는 것이 더 어려울까? 아니면 일본처럼 어떤 틀 안에서 감정을 보여주는 것이 더 어려울까? 분재를 보는듯하던 일본 배우들의 연기가 더 힘든 것이라면 나는 그들에게 찬사를 보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정말로 하나도 흐트러짐 없이 연기를 해냈으니까. 부자연스러운데도 그게 하도 흔연스러워서 자연스러운 것을 보는 듯 착각이 일어났다고나 할까.  해서 정작 보는 나는 힘들어 죽겠는데, 연기하는 당사자는 힘들어 보이지 않는, 과연 어느게 진짜일까 싶은...얼핏 보기엔 하도 리얼해서 현실과 구분이 가지 않는 미국 배우들의 연기가  훨씬 더 잘 하는 듯 보이지만서도, 어쩜 연기 하기는 일본 배우들이 더 힘든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니까,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틀 안에서 연기 하는 것이 더 힘들거란 생각이 든다. 그런 틀은 아마도 가부끼인가 그런 전통의 영향을 받은 듯하고. 거기에 생각이 미치다보니, 과연 30년 뒤엔 일본인들은 어떤 연기를 펼치려나 궁금해진다. 그들은 그때도 여전히 이런 연기가 정답이라고 생각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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