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센던트
카우이 하트 헤밍스 지음, 윤미나 옮김 / 책세상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재작년 영화를 먼저 접하고 나서 책으로 만나게 된 케이스. 영화를 보면서 이 작품은 책이 더 좋지 않을까 싶었는데, 읽어보니 역시나 그렇다. 영화를 먼저 봤기에 망정이지, 책을 먼저 보고 나서 영화를 봤더라면 원작을 못 살렸다고 실망할 뻔했다. 무엇보다 주인공이 어울리지 않는다.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아내가 알고보니 그간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더라, 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 남편 역에 조지 클루니가 연기를 했는데, 아시다시피 그의 비주얼이 바람난 남편으로 설득력 있어도 오쟁이 진 남편으론 아니질 않는가. 보는 내내 저렇게 좋은 남편을 두고 바람이 났다는 끔찍한 아내가 이해가 안 가서 고개를 갸우뚱 했었는데, 책을 보니 단박에 이해가 간다. 설득력에 있어서만큼은 책이 더 나았다는 말씀. 인물을 설명하는 것이나 자연스러운 전개, 인물들 간의 충돌 등도 책이 훨씬 더 자연스럽다. 영화속 배우들의 연기가 딱히 부족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왜 실제로 보여주는 것보다 머리속으로 상상하는 것이 더 그럴듯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그럴듯해 보이는 이유를 들자면, 일단은 아내의 모습이 책 속에서는 이런 저런 설명들을 통해 완벽하게 그려지는 반면, 누워있기만 한 아내의 과거를 통해 추리를 해야 하는 영화속 모습속에선 아내가 비교적 긍정적으로 그려질 수밖엔 없었다는 것이 설득력을 반감시키고 있지 않았을까 한다. 현실주의자 남편과 쾌락주의자 아내의 조합이라는 시한폭탄 같은 부부 사이를 책 속에서는 잘 보여주고 있었던 반면, 영화속에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더라는 것이다. 왜냐면 바람을 피우긴 했지만 그래도 아내가 비교적 멀쩡한 사람 같아 보였으니까. 착한 아내와 착한 남편이 문제를 일으킨다는 설정은 아무래도 관객들을 설득시키기에 부족하다. 왜냐면 이 세상에는 나쁜 남편과 나쁜 아내들이 넘쳐 나기에 그들의 불협화음이 쉽게 이해되는 반면, 좋은 아내와 남편의 경우는 왜 굳이? 라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아무리 이혼이나 불륜이 흔하다고 해도, 부부가 다들 결혼에 대해서만큼은 노력할만큼 노력하고 , 인내할만큼 인내한다는 것이 사실 아니겠는가. 해서 책 속에서 입체적으로 묘사된 아내와 남편, 그리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비로서 이야기가 딱 맞아 떨어진다. 도저히 만들어낸 허구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말이다. 

무엇보다 작가의 자신감이 대단한듯 싶다. 군더더기없이, 집중력도 흐트러지는 법 없이 끝까지 사람들의 내면을 독자에게 설명하는데, 억지스러운데가 조금도 없다. 보통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 과장하게 되거나 공감이 가지 않는 허황된 이야기를 지어내게 마련인데, 이 작가분은 도무지 그런 기색이 없더라. 다른건 몰라도 작가로써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태어난 분 아닌가 싶다. 첫번째 장편 소설이 이 정도라면 다음편을 충분히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싶을만큼 대단한 통찰력이던데, 종종 궁금하다니까. 어떻게 이런 작가가 탄생하는지 말이다. 타고난 재능일까, 노력일까, 아니면 열정인 것일까, 작가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도대체 당신은 어떻게 컸냐고...어떻게 컸길래 이런 이야기의 직조가 조금도 힘들어 보이지 않는 것이냐고.

 줄거리는 이미 영화를 통해 충분히 들으셨을테니 생략하기로 하고, 영화를 보신 분이라고 해도 책을 읽으셔도 좋지 않을까 한다. 이런 작품은 줄거리보단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시키고, 작가가 주인공을 통해 생각들을 피력해 나가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에, 줄거리를 안다고 해도 책을 읽는 재미가 반감되지는 않을 듯하다. 물론 처음 읽는 것이라면 어떻게 나아갈지 조마조마하면서 지켜보는 재미가 있을테지만서도...일류 여류 작가의 탄생을 알린 작품으로 기억에 남을 듯한 책으로, 이 책을 읽고 나니 하와이에 가고 싶어졌다. 작가가, 여기는 천국이 아니라고, 여기에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점은 다르지 않아, 인생이 가져다 주는 갖가지 고통과 슬픔과 고뇌에 면죄부를 받는건 아니라고, 자연 경관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그것을 중화시키지는 못하며, 때론 아름다운 자연 경관마저도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눈길을 사로잡지 못한다고, 했다고 해도 말이다. 아마 내가 하와이에 산다고 해도 맷 킹처럼 밖에 바람이 부는지 파도가 치는지 알지 못한채로 하루 하루를 보낼 가능성이 120%일 것 같기는 하지만서도, 그럼에도 부러움을 감출길이 없더라. 작가에게 익숙해져서 그저 한낱 배경이 되어 버린 하와이가...비극을 읽으면서도 배경에 눈길이 돌려지고 그것에 위로가 되는 것도, 하와이에 산다고 해도 일상이 천국이지는 않다는 작가의 자조가 엄살처럼 느껴지는 것도 다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보면 환상이야말로 정말로 깨기 힘든 편견인 듯 싶다. 어느정도는 진실이 담겨져 있어 듣는 사람들이 남모르게 수긍하게 되는 편견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