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젯밤의 카레, 내일의 빵/ 기자라 이즈미


 부부 각본가라는 말에 별 흥미가 없다가, 일본 드라마 <수박>과 <들돼지 프로듀스>가 그들의 각색 작품이라는 말에 들여다 보게 된 책.  과연 괜찮은 각본가가 괜찮은 소설가가 될 수 있을까 저의기 의심스러웠는데, 역시나 <수박>의 이야기를 지어낸 사람들답게 이야기가 흔연스럽더라. 칠년전 남편을 암으로 잃고, 그 이후로 쭉 시아버지( 이하 시부)와 살아가고 있는 데쓰코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하지만 그녀가 딱히 주인공이라고 할 수는 없고, 그녀와 그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것일 듯. 


결혼 구년차지만, 남편과 살았던 날은 고작 이년, 스물 여덟살의 처녀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줌마라고도 할 수 없는 모호한 입지에 서 있는 데쓰코는 자신이 며느리라는 사실조차 가물가물한 시부와 함께 살아간다. 냉정하게 보면 생판 남이라고 할 수 있는 관계임에도 척척 생활의 호흡을 맞추며 서로에게 의지해서 살아가는 그들. 그들의 완벽한 앙상블은 한편으로 더이상 바랄게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그대로 유지될 수 없다는 것 또한 사실. 데쓰코는 자신에게 청혼하는 직장 동료에게 단호하게 선을 긋고, 시부는 은퇴후의 생활을 어찌할 것인가로 고민을 한다. 어느날 더이상 미소 짓지 못하게 되었다는 이유로 스튜디어스에서 백수 신세가 된 오다양은 그녀와는 반대로 병때문에 실실 웃는 것을 멈출 수 없어 잘린 산부인과 의사 동창과 사고로 무릎을 다치는 바람에 직장을 그만 둔 스님 동창을 만나 새로운 직업을 구상하게 된다.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는 데쓰코의 남편은 어떻게 데스코와 만나 결혼을 하게 된 것이며, 그녀는 남편을 잊고 새로운 삶을 찾아가게 될 것인가 라는 이야기가 지극히 담담하게 하지만 신선하게 그려진다.


<수박>을 보면서 익히 느낀바대로, 저자가 착하지만 결코 멍청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참으로 잘 그려낸다. 세상에 이렇게 사는사람들이 어디 있어? 라면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에게 빠져들게 되는건 이상향에 대한 아련한 향수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인생을 이렇게 해석하고 풀어가면서 살아갈 수도 있겠다 싶은 깨달음 때문이 아닐런지. 그러니까, 착하고 모나지 않게 인생을 살아가려 애쓰는 보통 사람들에게 이런 삶도 있어요. 인생이란 당신만의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일지도 몰라요, 라고 독자들에게 말을 건네는 듯 싶어서 말이다. 아무 생각없이 들었다고 해도 흐믓한 채로 책을 내려 놓지 않을까 싶은, 쉽게 쉽게 읽히면서도 감동도 얻을 수 있는 꽤나 괜찮은 작품이었다. 내 확신컨대, 이 작품은 반드시 드라마로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다. 내용이 워낙 좋아서 그냥 버려질리 만무하니 말이다. 과연 어떤 배우들이 출연할지는 모르겠지만, 만들어진다고 하면 반색을 하면서 보게 될 것이다. 내용을 알기에 더 보고 싶어지는 드라마가 될 것이므로.




 ★★★☆☆  꿈을 파는 남자 /햐쿠야 나오키 


 재능도 열정도 없지만 미래의 조앤 롤링을 꿈꾸는 현실감 제로의 허무맹랑한 사람들에게 접근해 그들로 하여금 자기 돈으로 책을 출간하게 함으로써, 불황이라는 출판업계에서 자비 출판이라는 분야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마루에라는 출판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책이다. 출판업자의 눈을 통해, 작가라는 허영에 찬 집단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 특징. 더불어 그들을 꼬드겨 잇속을 챙기면서도 타인의 꿈을 이뤄주고 있다고 자화자찬하는 편집자의 절묘한 내공까지 보여주고 있었다. 사기꾼과 출판업자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면서도, 자기들은 그래도 그나마 양심이란게 있다고, 그저 자신들은 남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어 놓은 것 뿐이라고 --다른말로해 남들보다 조금 더 영리한 것일뿐이라고.--호언하는 마루에사의 편집자 우시가와라의 감언이설이 이 책의 포인트. 그의 입을 통해 출간이라는 행위의 적나라한 뒷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는 점이 압권. 본인도 작가면서도 어쩌면 이리도 동료 작가들과 출간업자들을 통찰력 있게 비판하시던지, 이 책이 왜 블랙 코미디라고 하는지 이해가 갔다. 자비 출판의 함정을 통찰력 있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합격점. 무엇보다 칭찬하고 싶은 점은, 읽기 쉽도록 썼다는 것이다. 누가 읽어도 금방 이해가 되게. 이상한 미사 여구에 횡설수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감상 나부랭이를 부끄러운줄 모르고 끄적여 대는 사람들에 비하면, 이런 글이야말로 생명력이 있지 않는가 한다. 고상한척 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호감이 가던 책. 출판계의 이면을 들여다 보고 싶으신 분들은 들어보시길.


★★★☆☆  <나는 상처를 가진 채 어른이 되었다/ 오카다 다카시>


 어린 시절 가장 처음 경험하는 엄마와의 애착 관계가 인생을 어떻게 바꾸어놓는가를 증명하고 있는 책. 나름 멀쩡하게 자라났지만, 속은 곪은대로 곪아버린 유명 인사들의 일화를 통해 저자는 어린 시절의 애착이 얼마나 파괴력이 큰지 설명하고 있었다. 저자의 주장에 의하면 아무리 좋은 유전자를 타고 태어난다고 해도, 어린 시절의 애착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은 결국 상처를 가진 어른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것이 그가 애착을 " 제 2의 유전자' 라고 일컬으면서, 유전자 못지 않게 우리의 인생 전반에 걸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고 강변하고 있는 이유다.


일단 클린턴이나 헤밍웨이, 나쓰메 소세키,가와바타 야스나리,등 유명인사들의 사례를 통해 그들이 애착장애의 희생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설득력이 있었다. 그렇게 능력 있는 사람들도 어린 시절의 상처를 쉽게 극복하지 못한다는 것에서 보듯, 일단 고착이 된 애착 장애는 쉽사리 고쳐질 수 없다고 한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먼저 애착 장애를 가지지 않은 아이로 키워내는 것이 부모의 할 일이라는 것. 하지만 그런 안정적인 어린 시절을 경험하지 못한 어른들이라고 해도 실망하거나 억울해하진 마시길...알고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애착 장애를 겪고 있다고 하니 말이다. 다시 말해 행복한 어린 시절은 지극히 불가능한 환상에 불가능할지 모른다는 것. 어른이 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과거의 상처와 마주하고 자신을 다독이며, 불안이건 회피건 자신안에 깃들여진 애착장애를 교정하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진정한 성숙의 의미일수도...


이 책의 장점은 애착의 중요성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점은 인간관계에서 드러나는 행태 하나 하나를 애착 장애 하나로 설명한다는 것. 그가 언급한 유명 인사들의 예만 들어봐도, 그들 중에서는 소시오 패스나 경계성 인격 장애, 고기능성 자폐증으로 설명해야 할만한 부분임에도, 애착 장애라는 한가지 창으로만 들여다 보는 것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졌다. 인간이란 어찌나 복잡한지, 한가지 창으로는 들여다볼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해서 모든 것을 애착 장애로 설명하는 작가의 태도에 살짝 거부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애착의 중요성에 대해 심도있게 서술해준 것만큼은 잘 하지 않았는가 한다. 물론 이런 책을 읽고서 나는 좋은 엄마가 되어야지 라는 생각을 하는 부모는 거의 없을테지만서도...이젠 안다. 부모들 역시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어린 아이들일 뿐이고, 그들의 상처가 아이를 낳는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도대체 어디서 끊어야 하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그리고 이 책을 보면서 느낀 건데, 위대한 작가의 원동력은 지극히 불행한 어린 시절이라는 점이다. 과연 자신의 인생을 저당잡혀 위대한 작가가 되는 것이 좋을 것인가? 아니면 그저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는 것이 인간적으로 더 나을 것일까? 내 아이들이라면 나는 위대한 작가가 아닌 한 명의 행복한 어른으로 성장해주길 바랄 것이다. 위대한 작가는 이미 차고 넘치므로...



★★★☆☆ 박쥐/ 요 네스뵈 


요 네스뵈의 데뷔작이자 해리 홀레 시리즈의 탄생을 알린 작품. 호주에서 23살의 금발 노르웨이 미녀가 살해된 채 발견되자, 경찰청에선 해리를 파견한다. 이미 술에 절을대로 절은 뇌로 사고를 친 전적이 있는 해리는 낯선 땅에서도 금주를 이어가려 각고의 노력을 한다. 더불어 금발 미녀의 살해범 역시 잡아내려 하지만, 말도 유창하게 통하지 않는 호주에서 도착한지 며칠만에 범인을 잡는다는건 아무리 해리라도 무리. 호주 형사팀 역시 해리에게 시체나 인수해 가라고 별 기대하지 않는다는걸 분명히 하지만, 어디서나 자신이 유용하길 원하는 해리는 허수아비 역활은 사절한다. 그를 가이드해 다니는 호주 형사는 여기저기 해리를 끌고 다니면서 그의 친구들을 그에게 소개시켜준다. 처음에는 단순한 제스쳐라고 생각하던 해리를 단서를 쫓던 중 그들이 살해범과 연결이 된다는 사실에 경악하게 된다. 과연 호주 형사는 그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가 범인을 알고 있었다면 왜 그는 자신이 직접 잡아들이지 않았던 것일까? 해리는 이번에도 특유의 고집불통을 내세워, 집으로 돌아가라는 호주인들의 말도 무시한 채 직접 사건을 파헤쳐 들어가는데...


데뷔작스러운 패기가 다분했던 책. 이만하면 데뷔작치고는 잘 썼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요 네스뵈의 최고작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다행이지 뭔가. 데뷔작이 최고라는 것은 어쩜 작가에겐 저주이자 모욕일 수도 있는 것이니 말이다. 해리 홀레 시리즈의 시그니쳐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희미하건 노골적으로건 이 작품안에 들어있는 것도흥미거리. 술과 여자에 약점 투성이의 영웅이라. 그를 사랑하는 것은 명백한 죄라는 듯, 애인들을 다 저 세상으로 보내는 것도 이때부터 시작되던데, 연쇄 살인범 못지 않는 타율, 작가가 왜 이런 설정을 고안해 냈는지 이해가 되진 않았다. 극적인 것을 강조하고, 해리에게 동정심을 유발하며, 그가 트라우마 있는 고독한 형사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 그런 것인가는 모르겠는데, 솔직히 주인공에 대한 가학이 지나친게 아닌가 싶더라. 이것도 지나치면 질리는 것이니 말이다. 내가 가마슈 경감을 보면서 안도하게 되는 것도 그가 살인 사건을 풀기는 하지만, 그건 그의 일일 뿐이며 집으로 돌아와서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에서 주는 안정감때문이니 말이다. 가마슈가 더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내 주변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잔인무도하게 살해되는 일들이 반복된다면 과연 누가 제 정신으로 살아남게 될까 궁금하다. 그게 그렇게나 반복될만한 일인가도 의문이고. 해서 다소 극단적인 설정으로 시리즈를 이어가면 이어갈수록 피곤해지고 있는 해리 홀레. 과연 그가 정상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을 보게는 될른지 데뷔작을 보면서 궁금해졌다. 이방인이자 형사로써 호주라는 낯선 환경에 적응해나가는 해리를 보는 맛이 꽤나 괜찮던 추리 소설. 살인범을 잡아가는 과정보다 그 주변 이야기가 더 흥미로웠던 작품이었다.


★★★★☆ 내 안의 살인마/ 짐 톰슨


요 네스뵈가 군더더기 없는 문장에 완벽한 구성을 가진 작품이라고 칭찬한 작품. 텍사스 작은 마을의 부보안관 루 포드는 잘생긴 외모에 친절한 태도로 모든 이들에게 호감을 주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 있으니 그가 바로 싸이코패스를 넘나드는 소시오패스라는 것. 지금까지 자신의 충동을 잘 억누르며 살아왔던 그는 마을의 창녀를 만나면서 일탈의 기회를 잡게 된다. 두 건의 살인을 저지르고도 완전범죄를 꿈꾸던 그는 자신을 조여오는 난데없는 올가미에 당황하고 만다. 어떤 상황에서도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고 자신의 위기대처능력에 자신만만해하던 그는 과연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인가? 그는 그 누구도 자신을 잡을 수 없을 거라 확신하는데...


완벽한 소시오패스에 대한 보고서. 도대체 짐 톰슨이란 양반은 어떻게 소시오패스에 대해 이다지도 잘 아신다냐? 혀를 내두른 작품이 되겠다. 일인칭 시점으로 쓰여져 마치 진짜 살인범의 고백처럼 들려오던데, 어떻게 이런 신빙성을 작품속에 집어넣을 수 있었을지 궁금했다. 위에서 언급했던 <꿈을 파는 남자>의 주인공이 작가는 어딘가 감각이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유명작가와 평범한 작가들 사이의 차이는 재능뿐이라고 단언하던데, 어느정도는 일리있지 싶다. 난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런 소시오패스의 마음은 상상할 수 없던데 말이다. 통찰력 넘치는 심리 묘사, 소시오패스의 황량한 내면을 압도적인 절제미로 표현하는 것이 장점. 자신의 넘치는 꾀와 매력으로 살인을 하고도 넘어갈 수 있다고 자신하는 사내의 자신만만한 여정을 보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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