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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 가는 것들에 대하여 - 인생의 끝자락에서 만나게 되는 뜻밖의 행운
윌리엄 이안 밀러 지음, 신예용 옮김 / 레디셋고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나의 아버지 때문이었다. 70이 넘으시더니 부쩍 기력이 쇠약해지시고, 기억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에 놀라신다고 해야 하나, 두려움을 느끼시는 것을 곁에서 지켜 봐왔던 나로써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드리고 싶었다. 도움은 아니라도 적어도 이해는 해드리고 싶었다. 아버지가 노년이 되시면서 느낄법한 허무함이나 상실감 그리고 두려움등등...해서 '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지혜를 얻었다는 사실에 기뻐하기 보단 자신이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에 두려워 하는 경향이 있다. 냉소적인 유머와 심오한 통찰력을 갖춘 이 책은 사람들의 그러한 태도에 일침을 가한다." 는 이 책의 소개글이 솔깃하게 다가왔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인건 나도 안다. 다만, 조금이나마 더 우아하게 노년에 대처하는 방법을 혹시나 알려준다면 정말로 반가울 것 같았다. 무엇보다 저자가 아버지와 비슷한 연대시라서, 아버지가 나에게 하시지 못하는 말이나 생각들은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가 있었다. 물론 나 역시도 이런 책을 읽어둔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은 나이가 되긴 했지만서도, 솔직히 아버지 앞에서 나를 위해 노년에 대한 책을 읽고 있어요 라는 것은 우스운 일이 될 것이다. 정작 심각하게 노년을 겪고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아버지이니 말이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라는 기대로 읽기 시작한 책은 초반엔 저의기 만족스러웠다. 빙통맞은 할아버지 같다고나 할까?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대로 말하는 것이 아닌 그저 자신의 그대로 말하려 하는 것들이 마음이 들었다. 그러니까, 젊은이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허세를 떨지도, 그렇다고 엄살을 떨지도 않는 것이 저자에 대해 믿음을 가지게 했다. 그래, 진짜로 노년에 대해 정확한 데이타를 들려주실 분이 만났는가 보네, 란 믿음 말이다.
하지만 그런 믿음은 초반을 넘어가면서부터 점차로 사라져갔다. 내 개인의 편견이겠지만, 경험상 교수가 쓴 글은 재미있지도, 그렇다고 유용하기도 힘들다고 지레 짐작한다. 그런데 이 책도 역시나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더라. 노년에 대한 이런 저런 허상과 편견에 대해 신랄하게 파헤치는가 싶더니만, 종래 그가 하고 싶어 하는 말이 그가 평생 연구해온 주제에 관한 것이라는 것이 분명해지는데, 이건 아니지 했다. 북유럽 영웅담인 사거(신화) 분야에 거장이라고 불린다는 저자 윌리암 이언 밀러는 이런 저런 신화와 햄릿과 그리고 유대 설화등을 통해 그들은 노년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필력하고 있던데, 그러니까 어떤 느낌이었는가 하면, 밀러 교수의 강의실에 앉아서 그의 강의를 듣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노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사가에 대해 얼마나 그가 많이 알고 있고, 사가에 얼마나 많은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있는지, 그리고 분석하기에 따라서 얼마나 많은 의미가 들어있는지 설파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쯤되면 생각나는건 한가지밖엔 없다. ' 나는 학생이 아닌데, 난 사가에 대해 그다지 궁금하지 않는데' 라는것 말이다. 그럼에도 불만족스러움을 감춘 채, 어차피 강의 시간에 들어왔으니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라는 생각으로 꾹 참고 들어봤는데, 이건 재미도 없다. 내가 얻고자 하는 정보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에, 재미도 없어요, 통찰력? 이라고 할만한 것도 없이, 그저 저자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를 열심히 토로하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었는데, 도무지 왜 잃어가는 것들이라고 저자가 제목을 붙였는지 알 길이 없었다. 저자는 잃어가는 것들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이 늙었음에도 얼마나 많이 아는지, 그래서 얼마나 쓸모가 있는지를 피력하고 싶어하는 것은 혹 아니었을까. 늙었으나 아직은 살아있다는 것을 동네방네 떠들고 싶어하는 노인네를 보는 듯해서 기분이 씁쓸했다. 내가 기대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으니까.
솔직히 실망이었다. 왜냐면 노인 문제가 너무나도 심각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고 노인이 되어서도 존중받거나, 이해 받는 삶을 살지 못하는 많은 비참한 노인들을 생각하면, 고작 자신의 정신력을 말짱하다고 주장하는 이런 책이 반가울리 없으니 말이다. 노년에 대해 누구보다 공감이 갈만한 이야기를 늘어놓으실 줄 알았더니 기껏 자기 자랑으로 끝을 맺은 듯한 느낌이다. 누가 그랬던가. 나이가 들면 지혜가 는다고 말이다. 어쩜 노인이 되었을때 정말로 비참해 지는 것은 결국 우리가 아무리 허세를 떤다고 해도 지나온 세월만큼 지혜가 쌓이지 못했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우리는 나이가 들면 지금보단 대범해지고, 세상이 만만해지며 사는 것이 한결 쉬워지지 않겠나 라는 기대를 하기 마련이다. 정작 나이가 들면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서도 말이다. 그래서 늙는다는 것은 허무한 것이라고? 삶이라는 것은 다 말짱 거짓일 뿐이라고? 아니...난 아직까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허심탄회하게 자신을 바라본다면, 젊은이들에게 이 작가처럼 아직도 자신이 대단하다는 것을 어필해야 한다고, 자신은 충분히 그럴만한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않았더라면, 보이지 않는 지혜는 분명 우리 어딘가에 쌓여 있을 것이다. 그것이 타인에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건 아니건 간에 말이다.
그런 것들을 보여주지 못했단 점에서 이 책은 당초 내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어쩜 이 책에 대해 미리 읽기도 전에 이런 저런 내용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던 것이 나빴던 것인지 모르겠다. 저자가 내가 기대한 내용을 늘어놓을 생각이 없다는 것이 그의 탓은 아닐터니이 말이다. 그저 내가 책을 잘못 고른 것일뿐. 해서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읽고 과연 아버지에 대해 더 많은 이해를 하게 되었을까? 책 읽기 전보단 하나도 아는 것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어쨌든지 간에 무언가 느끼고 배운 점은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노년이 되어서 잃어가는 것들에 대해 쓸모있는 정보를 주시지 않을까 라는 기대에는 현저하게 못 미쳤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아마도 이 저자는 노년에 대해 정색하고 직시하는 것은 피하고 싶으셨던 것이 아닐까 한다. 그의 노년이 그렇게 비참하지 않는다는 증거일지도, 그리고 아무리 그가 노년을 지나고 있다고 해도 다른 노인들의 현실에 대해서는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아닐까. 사가에 대해선 그렇게 많이 알지만서도, 정작 자신의 연배들의 고통에 대해선 별로 관심이 없는 이 저자, 내가 왜 그에게 별로 공감을 못하는지 이해가 되실 것이다. 교수로써는 그는 합격점을 받아도 좋을만한 사람일지 모르나, 좋은 책의 저자가 되기엔 부족함이 있으신 분이 아니었을런지...좋은 책이란, 나이가 주는 지혜나 책에서 얻은 지식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재능과 통찰에서 얻어지는 것이니 말이다.무자비할 정도로 솔직하고 , 이것을 내가 말하지 않는다면 죽을 것 같다는 진실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런 것이 없는 작가들은 어쩜 종이 낭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런지 싶다. 공감을 주는 생명력 있는 통찰력은 바로 거기서 나오는 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