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밍고의 미소 스티븐 제이 굴드 자연학 에세이 선집 2
스티븐 J. 굴드 지음, 김명주 옮김 / 현암사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칼 세이건, 데이비드 아텐보러, 리처드 리키...나의 어린 시절 tv나 책을 통해 과학을 쉽게 소개해주던 세 명의 과학자다.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를 통해, 데이비드 아텐보로는 그 유명한 BBC 다큐들을 통해, 그리고 리처드 리키는 <오리진>이라는 책과 인간의 기원에 대해 소개를 하던 몇몇 다큐들을 통해...그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들을 어찌나 매혹적이면서도 쉽게 그리고 흥미진진하게 들려 주시던지, 당시 해당 분야에 별다른 지식이 없던 어린 나도 시청하는데 지장이 없었다는건 지금 생각해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정보가 넘쳐나는 요즘에도 가족들이 모두 모여 과학 다큐를 시청하는 일은 좀처럼 없는데, 그때는 그것이 가능했었다는 것도 그렇고... 그것들과  NHK방송사가 만든 < 실크로드>야말로 내 어린 시절을 근사하게 수놓아준 수작 다큐들이었는데, 지금 본다면 예전에 봤을때처럼 아련한 느낌이 나려나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그들이 뿌린 씨들이 지금 내가 좋아하는 많은 것들과 연관이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아직도 난 과학 다큐나 역사 다큐라면 사죽을 못쓰니까. 어린 시절 좋아했던 것들을 어른이 되어서도 좋아한다는걸 그때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으리요. 전공을 선택할때갈등하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그때 난 어른이 되면 애벌레가 나비로 변태하듯 취향도 변할줄 알았었다. 어른이 되었으니 어른스러운 관심이 생길거라고. 하긴 어른은 아이의 연장일 뿐이라는걸 그때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미처 살아보지 못한 세월을 헤아리는 아이는 없으니 말이다. 하여간 그들의 다큐를 보면서 자란 소녀가 어른이 도어서도 흥미를 잃지 않고 있다는걸 알게 된다면 아마 그들도 보람을 느끼지 않을런지...



내가 이 말을 꺼낸 이유는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들이 바로 그 세 명의 과학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분들이 영상 매체들을 통해 지식의 대중화에 앞장 서 왔다면 굴드는 지면이라는 수단을 이용해 같은 목적을 이뤄 놓으신 분이라는 것을 단박에 짐작할 수 있어서다. 알고보니, 굴드는 2001년 작고하기 전까지 무려 27년동안 <내추럴 히스토리>라는 잡지에 300편이 넘는 에세이를 연재하셨다고 한다. 자신의 전문 분야 외에도 과학의 최신 정보들을 독자들이 알기 쉽게, 하지만 결론만 내어놓은 것이 아닌,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된 추론 과정도 보여주면서 현재 과학이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 일목 요연하게 들려주고 있던데, 그 기간이 27년이고, 모두 합해 300편이란다. 어떻게 그렇게 긴 세월동안 쓸 말이 바닥나지 않았을지, 그리고 자신이 해야 하는 그 모든 일들에 대한 압박감을 뒤로하고 글을 쓰실 수 있었을지 존경스러울 뿐이다. 그의 박학함이나 지적인 통찰력, 그리고 실제 성격은 내성적이고 수줍어 하는 성격이지 않을까 싶음에도 남들 못지 않은 입담에, 이야기를 흥미롭게 서술해 나가는 유려한 글솜씨는 왜 그의 월간 에세이를 사람들이 목매달고 기다리며 읽었을지 짐작이 가게 해주었다. 사실 그 이야기를 들었을때 얼마나 부럽던지 말이다. 나는 미국 사람이 아니라서 그가 이런 에세이를 쓰시고 있었는지도 몰랐는데, 나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미국인들은 이런 재밌는 과학 에세이를 읽으면서 성장했을걸 생각하니 질투가 나더라. 이런 뛰어난 과학자를 배출해낸 미국이란 나라가 부러웠고, 그의 글을 따끈 따끈할때 읽을 수 있었던 미국 사람들이 부러웠다. 더불어 지금 미국이 과학 강국이 된 것도 이해가 갔다. 과학의 대중화에 이런 인재들이 나서서 솔선수범했으니 지금의 결과야 당연한거 아니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미국은 한 물 갔다고, 퇴페한 나라라고 말하던데, 솔직히 난 이런 글을 읽을때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그건 우리가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도 어디에선가 조용히 자신의 나아갈 길을 가고 있는 미국 지성인들의 실체를 우리가 몰라서 하는 소리가 아닌지 싶어서 말이다. 


더군다나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란 것은, 이 글을 쓰실 당시 저자가 암 투병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다. 글속에선 도무지 그가 암은 커녕 생사의 기로에서 발버둥을 치고 있다는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었는데, 그만큼 지식을 향한 그의 집중력에는 한치의 흐트러짐도 느껴지지 않아서 말이다. 그의 지식에 대한 열정이, 그리고 흔들리지 않은 집념이 이해되서 그를 존경하는 마음이 한층 깊어졌다. 전공이 전공이시다 보니, 진화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과학자가 아니라면 주목하지 않은 특이한 사연들을 진화 사례에 맞춰 흥미진진하게 서술한 것이 좋았다. 생물학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도 추리 소설 읽는 듯이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 가장 재밌었던 챕터는 제목인 <플라밍고의 미소>와 그가 자신에게 특별하게 한 턱 쓴 작품인 <작품 번호 100번>이었다. 특히< 작품 번호 100> 은 자신의 연구 분야인 케리온 달팽이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느라 정신이 없으시던데, 그가 그 작품속에서만 그 열정을 털어놓으신 것이 무척이나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굴드는 자신이 관심있는 것이 독자들에게도 흥미가 있겠는가라는 겸허한 생각에서 자신의 연구 분야에 대한 에세이는 가급적 피하셨다고 하는데, 그가 몰랐던 것이 있었으니, 독자들이 매혹을 느끼는 것은 때론 저자의 열정때문이기도 하다는 것이었다. 하니 이 책 속에 들어있는 30여편의 에세이중에서 그가 자신을 위해 쓴 그 작품이 제일 재밌었다는 것은 어쩜 당연한 일일 것이다. 예전에 리처드 포티의 <삼엽충>을 읽으면서 그의 열정이 압도되었던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굴드 역시 자신의 연구 분야에 대한 글을 썼더라면 그 못지 않은 매력적인 글이 되지 않았을지 싶기도 하다. 왜냐면 분야의 다양성이나 지적인 호기심에서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독자들을 매혹시키는 열정에서만큼은 리처드 포티에 미치지 못하는 듯 보여서 말이다. 그것이 자신이 잘 아는 분야를 쉬지 않고 주절대는 사람과 남들에게 새로운 분야를 소개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짓눌린 사람과의 차이가 아닐런지 싶었다. 결국 본인이 가장 재밌는 이야기를 해야 남들도 호응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왜 인간이겠는가. 공감하고 반응할 줄 알아서 인간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상당히 매력적이고 매혹적인 과학 에세이다. 굴드가 그 오랜 시간동안 인기 있었던 것도 무리는 아니란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충실한 글들이었고, 뒤늦게 나마 이런 글들을 접할 수 있었던 것에 무척이나 감사했다. 이 책을 읽다보니, 세상 모든 것들이 과학자의 눈으로 보면 얼마나 흥미진진하고 수수께끼 투성이일까 싶어 그들이 몹시도 부러웠다. 비록 내가 과학자는 아니지만 잠시나마 그들의 수수께끼 풀이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우주와 지구에 대해 우리는 아는 것이 얼마나 적은지, 눈뜬 장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살아가는데는 지장이 없기에 오늘을 살아가고는 있지만서도, 때론 저 먼 우주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여기에 있고, 이런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었는지 궁금증을 느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런 호기심을 느끼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아마도 이 책은 최선의 가이드북이 되지 않을런지,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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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lph 2014-03-29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굴드의 <풀하우스>에서 왜 야구에서 4할 대 타자가 더이상 나오지 않는지에 대한 추론을 읽으면서, 아 생각을 이렇게 할 수도 있구나 했었는데요.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분화이고, 이로인하여 생물의 다양성이 더 많아진다는 그의 주장이 다시 생각납니다. 요즘 복잡해진 사회를 보며,역시 사회도 진보하는 것은 아니고, 단지 분화하여, 다양성이 높아지는 쪽으로 움직이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군요.

이네사 2014-03-29 20:26   좋아요 0 | URL
<풀 하우스>는 2002년에 출간된 책이군요. 그런데 4할 타자론에 대해선 굴드의 책 중에서 어디선가 읽었는데, 어딘지 기억이 나질 않네요.요즘 굴드의 에세이가 줄줄이 출간되고 있는데 ,아마도 그 한편에서 읽은 모양이여요.

맞아요. 우리는 그냥 지나치는 것들에 대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신선하네 라고 생각하게 만드시더라구요.
더불어 과학자가 안 된 것이 무척 안타깝더라구요. ㅋㅋㅋ 이렇게 재밌는 것인줄 알았더라면 진작에 했을텐데 라면서요. 이젠 너무 늙어서 안 되겠지만서도, 아마 다음 생에 태어 난다고 해도 다른 재밌는 것들에 정신이 팔려서 과학자는 무슨~~~이라고 콧방귀를 뀔지 모르겠지만서도, 하여간 무언가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본다는게 참 멋지다 싶었습니다. 굴드는 돌아가시는 순간에도 그닥 이 생에 미련이 없으셨을 듯 싶어요. 워낙에 알차고 신나게 사셨으니 말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