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길로 돌아갈까? - 두 여성작가가 나눈 7년의 우정
게일 캘드웰 지음, 이승민 옮김 / 정은문고 / 201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별로 재밌을 것 같지 않은 제목에 눈길이 간 것은 행간에서 읽은 캐롤라인 냅이라는 이름때문이었다. 어디에서건 어느때 들려지건 간에 내겐 잊을 수 없는 이름, 충격적일만큼 글을 잘 써서 한번 읽고는 이름을 외울 수 밖엔 없었던 이름. 캐롤라인 냅... 그녀가 이미 몇 년 전에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때는 얼마나 안타깝던지, 아마 내 가까운 친척이 돌아가셨다고 해도 그렇게 마음이 아프진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본적이 없는 사람임님에도, 거기에 이미 죽은 사람임에도, 단지 내가 그녀에게 아는 것이라곤 그녀가 쓴 책 몇 권 읽은 것 뿐임에도, 캐롤라인 냅은 내 뇌리에서 쉽게 지워질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만큼 그녀는 강렬했고, 솔직했으며 독특했다. 그녀의 무자비할 정도로 가혹한 글들을 통해 나는 어느 여류 작가에게서도 얻어내지 못하는 위로를 얻었고, 공감을 느꼈으며, 그녀가 누구보다 가깝게 생각되었다. 아마도 내가 그녀를 그렇게 가깝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고통에 대해 조금 안다는 사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고통을 정확하고 예리하게 주시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그것에 대해 완벽하게  끝장을 내기 전까진 자신을 내려 놓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그런 지성적인 태도와 집요함이 난 마음에 들었었다. 왜냐면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이기에...늘 고통 앞에서 주춤대며 망설이는 나에게 그녀는 자신의 고통의 크기를 보여 주었고, 그 고통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용기를 보여 주었기에. 그녀는 자신이 완전한 실패작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으나, 내가 보기에 그녀는 현실 속의 영웅이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드링킹>을 보면서부터 그녀가 이젠 좀 행복해졌기를 바랐었다. 이런 고통과 갈등과 처절한 사투를 뒤로하고 이젠 편안하게 살기를 말이다. 그러다 <남자보다 개가 좋아>라는 책을 보고는 그녀가 멋진 동반자 개 루실을 얻었다는 말에 매우 흐믓했었다. 그녀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전까진 말이다. 2002년 41살의 나이로 폐암으로 그녀가 사망했다는 말을 들은 나는 <남자보다 개가 좋아>에서 그녀가 썼던 구절에 신경이 쓰였다. 자신이 고통스럽게 죽어갈 때 과연 누가 나를 지킬까 라는...가까운 친구도 애인도 남편도 없었던 그때, 그녀는 자신에겐 루실이 있으니 쓸쓸하게 죽지는 않을 거라고 썼었다. 그것이 자신에게 굉장한 위로가 된다는 뉘앙스를 담아. 물론 그 말은 개가 얼마나 충실하며, 사랑하는 사람의 죽어가는 순간을 담담하게 지킬 수 있는 애정이 있는 동물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지, 진짜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이란 것을 가정한 것이 아니었다. 왜냐면, 자식을 먼저 두고 떠나길 원하는 부모가 없듯, 냅에서도 가장 두려운 일이 자신이 그녀의 개 루실보다 먼저 떠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인생이란 원래 바라던 대로 풀려가지 않는 법. 그래서 그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들었을때 내가 걱정한 것은 두 가지 였다. 하나는 냅이 외롭게 죽어갔을까 라는 점과 루실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것. 어디에서도 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없었기에, 답을 얻는 것을 불가능 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곳에서 답을 들려 준다고 나타났을때 내가 얼마나 반가웠을지 짐작이 되실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 책에 꽂힌 것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작가임에도 캐롤라인 냅의 친구라는 사실만으로 덥썩 손을 잡고 싶어지던 그녀, 이 책의 저자 게일 캘드웰이다. 


우선은 그녀가 이런 회고록을 내어 준 것에 무척 고마웠다. 이책을 쓰는 것이 그녀에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슬픈 과정이었던지 간에, 나는 실제로 그녀가 이 책을 써 냈다는 것에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왜냐면 냅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었으므로, 그리고 그녀가 이렇게 세상 사람들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는 것이 허무했었다. 난 알고 싶었다. 그녀가 책속에서 미처 드러내지 않은 모습은 어떠한지. 글에서 보는 겸손함과 극도의 자기 절제력을 감안하면 분명 그녀는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면만을 보여줬을 것이었다. 최악을 보여주면서, 최고의 모습은 쑥쓰러워서, 내진 자신에게 그런 괜찮은 자질이 있는지 알지 못해서 보여주지 않았을 것이란 것이 내 짐작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 직감은 이 책을 통해 옳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녀는 정말로 대단히 매력적인 여자였던 것이다. 자신이 그렇게 매력적인지 이해하지 못하는...아마도 그런 점 역시 그녀의 매력중 일부에 속했겠지만서도.


이 책은 두 여류 작가가 나눈 7년간의 우정을 그린 책이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나고, 8살 차이가 나는 언뜻 보기에 공통점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둘은 개를 통해서 가장 친한 친구가 된다. 그 둘의 우정의 연차가 7년밖에 되지 않는 것은 그 중 한 명인 냅이 죽었기 때문이다. 평생을 함께할 친구라고 생각하고, 늙어서 서로에게 기댈 수 있을 줄 알았던 우정은 그렇게 갑작스럽게 끝이 난다. 그 누구의 동의도 얻지 않은 채. 죽음이란 그렇게 무정한 것이다. 타협도 안 되고, 되돌릴 수도 없으며, 게일이 말했듯이 거대한 부재를 남겨 놓은 채, 그곳에서 활보하라고 산 사람을 밀어넣고는 그만이다. 만약 죽은 이를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우린 그것을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그 안에 떨어져 벌벌 떨면서 이 고통이 언제쯤 끝이 날까 두려워할 뿐... 그리고 깨닫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살아있고, 기억이 남아 있는 한 계속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렇게 사려깊고 우아했던 냅이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때 자신보다 남편이나 게일이 더 상처를 입을 것을 걱정한 것은 얼마나 정확한 예견인지. 물론 그것은 죽음 이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우리의 단순한 추측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르지 말이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가장 친한 친구를 잃은 게일 캘드웰은 10년이 지난뒤 이 책 속에서 비로서 그녀를 추억한다. 그녀의 모든 것과 그녀와 나눈 우정, 그리고 함께 나누었던 그 풍부했던 삶의 여정들과 남겨진 자의 비통한 슬픔까지...그래서 사람들이 없다고 단정하는 여자들의 진한 우정에 대해 우리에게 들려준다. 말이 더 하고 싶어서 먼 길로 자진해서 돌아가는 단짝 두 친구에 대해서.


이 책을 보면서 우선 가슴이 아팠다. 마치 내가 게일인 것처럼. 아니 게일이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라면 견딜 수 없었을 것 같으니 말이다. 그런 고통을 묵묵히 견디어낸 게일이 대견해 보였다. 물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긴 하지만서도... 둘째는 냅이 외롭고 쓸쓸하게 죽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서 안도했다. 폐암 진단을 받은 지 7주만에 사망을 했다는데, 그 동안 많은 사람들에 둘려싸여 간병을 받았다고 한다. 알고보니 역시나 냅은 엄살장이였더라. 그녀 주변에 그녀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았는데, 그걸 알아 차리지 못했다니, 어딘지 그녀 답다. 거기에 20대와 30대를 자신을 파괴하는데 몰두하는 듯 보였던 파괴 성향이 40대 즈음엔 강렬한 삶의 의지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좋았다. 그녀의 책을 보면서 늘 그녀가 불행해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었는데 말이다. 그녀가 삶의 방향을 선회해서 어느때보다 살고 싶어했다는 것은 어찌보면 아이러니이지만 내게는 위로가 됐다. 왜냐면 나는 그녀가 이놈의 세상, 더이상 살고 싶지 않았는데 잘 됐다 라면서 죽어갔음 어쩌나 걱정했었으니 말이다. 난 그녀가 그런 식으로 삶을 마감하지 않았음 했다. 누구보다 아름답고 영리하며,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해야 하는 여자였고, 이미 넘치도록 시행착오와 고통을 겪어낸 사람이었기에 나는 그녀가 어느 시점에서는 평화를 찾았기를 바랐었다. 그런 내 생각은 아마도 그녀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염원이었는가 보다. 그녀의 장례식엔 비가 오는 날임에도 사람들이 넘쳐 났었다고 하니 말이다. 만약 그녀가 그걸 봤더라면 수줍어 하는 성격에 그다지 달가워 하진 않았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자랑스러워 하진 않았을지. 자신이 그렇게나 사랑받는다는 것에 대해 말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알게 되었는데 냅은 죽기 전에 사랑하던 연인과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루실은 그에게 맡겨지고. 그녀의 강렬했던 삶을 생각하면 죽음의 잔인함만 뺀다면 완벽한 결말이다. 그래서 난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도 이만하면 나쁜 죽음은 아니라고 말이다. 안도했다. 그녀를 좋아하는 독자로써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가지 명백한 것은 우리는 그녀를 영원히 그리워 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녀가 살아 남아서 계속 글을 썼더라면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해주었을지 나는 궁금해 할 것이다. 그녀에겐 남들이 갖지 못한 특별한 재능이 있었으니까. 게일이 그녀와 더이상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것에 절망하는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나침반을 잃어버린 그런 허전한 심정이 아닐런지...우리 모든 여성들에게 나침반이 되주었던 냅. 그녀가 평안하게 영면하시길. 그리고 이젠 아마 루실도 죽었지 않을까 싶은데, 이봐~ 루실! 천국에서 냅을 만났거든 그녀를 잘 보살펴 주렴. 그녀 덕분에 우리의 삶이 조금은 충만했었다는걸 우리가 잊지 않고 있다고도 전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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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wbee 2013-07-28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캐롤라인 냅을 사랑하는 독자로서 책을 찾아보다가 발견했었죠~
생각만큼 그녀의 책이 팔리지 않았던데, 이렇게 만나니 반갑네요.

이네사 2013-07-29 12:15   좋아요 0 | URL
아, 그래요? 하긴 좋은 책이라고 해서 잘 팔리는건 아니니까 말이죠.
아마 안 읽은 사람이 많아서 그럴 거여요. 한번 일어보면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텐데 말이죠.
리뷰가 길어졌죠?원래 이렇게 길게는 안 쓰는데, 더군다나 주절주절 감상적인 톤으로 말이죠.
그런데 냅이니까, 냅이라서 이렇게 되더라구요. 그 특출난 재능이 아깝기도 하고.
50대, 60대의 냅은 어땠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말이죠. 아마 그녀를 아시는 분들은 다들 그런 마음이셨을 싶네요.
하여간 냅을 사랑하신다니, 저도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