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식스 카운티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제프 르미어 글 그림, 박중서 옮김 / 미메시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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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작이라는 말에, 깊은 울림을 준다는 말에 기대 잔뜩하고 보게 된 책이 되겠다. 물론 그 외엔 아무런 정보없이 읽어 내려 갔기 때문에 맨처음부터 살짝 당황하긴 했다. 내가 예상했던 그런 그림이 아니었고,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흑백으로 된 거칠은 만화체, 익숙해지기가 쉽지는 않다. 하나 아무리 그림이 별로라고 해도 내용만 좋다면야 나는 상관없는 사람. 내용이 좋기를 기대하며 읽어내려갔다. 처음엔 두께에 좀 압박감을 느꼈는데, 만화다 보니 금세 술렁술렁 읽힌다. 에식스 카운티, 라는 제목에 그게 무슨 뜻일까? sf물인걸까? 라고 추측했으나 알고보니 그것과는 몇 광년만큼이나 동떨어진, 에식스 카운티라는 캐나다의 아주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알고보니 표지에 뿌리 깊은 나무와 까마귀가 나오는 것이 아무 의미없이 그려 놓은 것이 아니더라. 한 가족의 수십년에 걸친 가계도를 설명한 책이라고 봐도 되니 말이다. 책은 세 개의 작품을 묶어 한 권으로 내놓은 것으로, 전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알고보면 이들이 다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 마을에 살아가는 세 명의 사람, 엄마를 잃은 소년, 동생의 아내와의 하룻밤으로 평생을 외롭게 살아온 한 노인, 그리고 마음이 착해 어려운 사람들을 못 보고 지나치는 시골 간호사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그들이 결국 어떻게 연관이 되어 지는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저자가 캐나다의 대표작가라고 하던데, 다른건 몰라도 캐나다가 고독이나 외로움을 양성하기엔 굉장히 알맞은 곳인가보다 추측하게 하기에 무리가 없을만치 황량하다. 캐나다 작가들의 만화를 몇 권 읽어보았는데, 그들 모두에서 같은 정서가 읽혀지는걸 감안하면 캐나다가 원래 그런 곳이던지 , 아니면 나라적인 특성이 그런 감성들을 북돋아 키워내던지 둘 중 하나인 듯하다. 하여간 이런 쓸쓸한 정서를 끝까지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내겐 좀 별로였는데, 왜냐면 인생이란게 아무리 못 산다고 해도 그보단 풍성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여간 지나치게 쓸쓸하고 허무한 정서. 왜 꼭 그렇게밖엔 살 수 없는 것일까 궁금하게 만드는 장치다. 뭐, 한 가족의 이야기라는 걸 생각하면 이 사람들은 원래 그런 사람들일수도--다시 말해 작가가 그런 사람인 것일 수도--. 하여간 대중속에서의 고독을 제대로 씹어 주시는 몇 몇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몇 개의 비극이 나오고, 비장한 장면 몇 가지가 나오며, 어쩔 수 없는 인생의 비극때문에 인생이 달라져 버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그렇게 쓸데없이 비장한 와중에서도, 몇 개의 울컥하는 장면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이 책의 최대 장점. 예상치 못한 장면에서 세 번 울컥했는데, 잔잔한 와중에 예상치 못하게 받은 일격이었기에 더욱더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그런 작법이 이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인 듯...이 책이 왜 수작이라는 건데 라면서 읽는 내내 투덜댔었는데, 그 장면들을 생각하면 수긍이 되기도 한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들라면, 엄마를 잃어 외롭고 슬픈 아이를 개울가에서 놀아주던 한 남자와의 에피소드 부분을 꼽고 싶다. 그 장면 하나만으로 이 책의 모든 단점들을 용서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던데, 이 책을 통틀어 제일 반짝반짝 빛 나던 장면이 아니었는가 한다. 그 장면을 보면서 뭔가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다 읽고나니 아하~~하고 이해가 간다. 아이들을 키우시는 분들이라면 그 장면을 보면서 뭔가를 느끼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실 듯. 인생이 아무리 고달프고 외롭고 고통스럽고 자신의 뜻대로 풀려나가지 않아 괴롭다고 해도, 마음속 깊은 곳 인간성만은 여전히 그대로인 착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을 향한 작가의 찬가이자 응원가가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 이 작가, 그의 다른 작품을 찾아서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지만, 다른건 몰라도 연민과 공감을 자아내는 빛나는 장면을 흔연치 않게 잡아내는 재능만큼은 인정하고 싶다. 뭐, 딱히 재밌게 봤다고 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리뷰를 쓰다보니 이 책속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나중에는 어떻게 됐을까 궁금해지긴 한다. 작가가 그들의 다음 이야기를 그려준다면 아마도 흥미를 가지고 지켜보게는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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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큰 휠 독자들이 추천함
카타리나 비발드 지음, 최민우 옮김 / 시공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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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에 사는 젊은 여성 사라는 내성적인 성격탓에 평생 책만 파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처자다. 직업마저도 서점 직원인 사라는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미국 생소한 마을에 친구 하나를 사귀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에이미, 미국의 작은 마을 브로큰 휠에 살고 있는 그녀는 남편과 사별한 뒤 홀로 사는 노부인으로, 책이라는 공통 관심사로 묶여있던 둘은 대륙을 오가는 편지속에 우정을 가꾸어 나가게 된다. 그렇게 몇년간 편지로만 이어질 것 같던 우정은 사라가 실직을 하게 되면서 작은 변화를 겪게 된다. 자신을 보러 오라는 에이미의 청을 사라가 받아 들인 것이다. 평소의 사라같았다면 어림도 없었을 여행을 이판사판인 심정으로 결정하게 된 그녀는 어렵사리 도착한 마을에서 기대하던 에이미를 볼 수 없자 실망한다. 기다리다 못해 직접 에이미를 찾아 나선 사라는 그녀가 며칠 전에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친구를 장례식장 속의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었던 사라의 심정을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것이지만, 더욱 더 딱한 것은 사라가 에이미와 푹 놀 생각으로 2달간의 여정을 짜놓았었다는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고민하는 사라에게 브로큰 휠 마을 사람들은 에이미가 죽기전 그녀를 잘 돌봐줄 것은 특별히 부탁했다면서 계획대로 머물어 줄 것은 요청한다. 이에 이보다 더 나쁜 일이 생기기야 하겠어 라는 심정으로 사라는 에이미의 마을에 눌러 살게 되는데....과연 그녀의 인생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서점 직원이었다는 저자가 아마도 자신의 아바타일 듯한 사라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깜찍하게 그려낸 로맨스 소설물이다. 서점 직원답게 다양한 책들에 대한 공감가는 견해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 대체로 내가 아는 책들이었고, 그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것들이 많아서 그런가 공감을 하면서 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좋은 책은 스웨덴 사람이나 한국 사람이나 미국 사람이나 똑같은 감성으로 받아들여지고 읽혀진다는 것을 알게 되니 무척 기분이 좋더라. 세계가 좁아보이는 듯한 기분이랄까. 음악이 그렇듯, 책 역시 인간을 한마음으로 묶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나로써는 잘 알길이 없지만서도, 하여간 인종과 국적이 다른 사람이 책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하고, 느낌을 공유한다는 것이 꽤나 근사했다. 로맨스 소설이라서, 사라가 사랑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전개 되기는 하지만서도, 책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그보단 책에 관한 이런 저런 일화들이 더 흥미진진했었지 않았는가 한다. 하니 책을 좋아하시는 여성분들은 기뻐하시길....어쩌면 당신에게 딱 맞춤인 듯한 책이 바로 여기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이 데뷔작으로는 공전의 히트를 쳤다고 하던데, 놀랍지도 않다. 책에 죽고 책에 사는 여자가 주인공이라니...다른건 몰라도 작가가 책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라는 점에 관한한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었던게 아닐까 한다. 그래서 내 말하건데, 시장 조사라는게 그렇게 중요한 겁니다, 여러분. 책벌레 여성의, 책 벌레 여성에 의한, 책 벌레 여성을 위한 책이니. 그간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에 목말라 하셨던 많은 책벌레 여성분들은 주목하시길...

물론 사라의 돌발적인 여행을 시작으로 마을 사람들 모두가 변화를--그것도 긍정적인 쪽으로-- 겪게 된다는 것이 조금은 억지스러웠지만서도, 로맨스 소설에서 무엇을 바라겠는가. 이 정도면 양호하다. 거기에 해피엔딩이라는 점도 만족스럽다. 의외에 의외를 연결시켜가면서 전개해가는 방식도 재치있고 말이다. 브로큰 휠 사람들의 이야기가 때론 짠하고, 때론 박장대소할만큼 웃기며, 때론 숙연하고, 그런 가운데서도 대체로 사랑스럽다보니, 뭐, 책 한 권에서 기대해볼만한 만족치는 차고 넘쳤지 않는가 한다. 극중의 사라가 브리짓 존스를 무척이나 좋아하던데, 굳이 비교하자면 스웨덴판 브릿짓 존슨으로 생각해도 무방하지 싶다. 스웨덴 판 로맨스 소설은 어떻게 전개될까 궁금하신 분들은, 그리고 책벌레 여성분들은 한번 보시길. 내용이 맘에 안 든다고 해도 좋은 책들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기 때문에, 그간 자신이 읽었던 책들에 대한 아련한 회상을 해볼 기회를 갖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 책을 싫어하기는 힘들거라 본다. 혹시나 안 읽은 책들이라면?  새로운 책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된다는 점에서도 이보다 좋을 순 없지 않겠는가. 하니 솔깃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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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 된 강물처럼
윌리엄 켄트 크루거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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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중년이 된 프랭크 드럼이 자신의 가족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린 40여년전의 여름을 회상한다. 1960년대 미국 미네소타주 브레멘이란 마을에서 13살의 프랭크는 동네 목사를 하고 있는 아버지와 변호사 아내를 꿈꾸었으나 목사 아내로 정착해버린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지 못하고 있는 어머니, 그들의 첫 아이로 구개순열을 가지고 태어났으나 누구보다 아름답고 재능 넘치던 누나 에어리얼, 내성적인 탓에 말을 심하게 더듬는, 그 덕에 동네에서 저능아로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동생 제이크와 함께 사춘기라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힘겹게 지나가고 있었다. 완벽한 가족의 모습이라고는 할 순 없어도 그럭저럭 제기능을 하고 있던 이 가족은 그 해 여름, 줄줄이 마을을 강타한 죽음들이 가져다 준 충격에 휘청거리게 된다. 그 죽음들 속에 그들이 그렇게나 사랑하던 에어리얼이 끼여있었다보니, 그들이 그런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그녀가 사고사가 아닌 살해된 것이라는걸 알게 된 마을은 누가 범인일까로 술렁이기 시작하고,  범인을 잡겠다는 열망을 곳곳에서 파열음과 갈등을 가져오게 된다. 과연 누가 이 사랑스럽고 전도유망한 소녀를 잔인하게 죽인 것일까. 고통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에게 의지하는 목사 남편이 미운 프랭크의 엄마는 별거를 선언하고, 슬픔속에서도 이성을 잃지 않으려는 아버지는 하나님의 뜻이 과연 무엇일까 자문하게 되는데...1960년대 미국 중서부의 시대적 분위기를 배경으로, 한 소년이 누나의 죽음이라는 커다란 시련속에서 어떻게 성장해 나가는가를 그려내고 있던 소설이다. 보통 추리 소설이라고 하면 누가 범인인가에 촛점이 맞춰지기 마련인데, 이 소설에서는 범인을 찾는것 보단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가져다 준 파장이 어떻게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성장시키는가에 주안점을 두고 있었다. 잔잔한 호수에 돌맹이를 던져 넣으면 파장이 번져가듯, 프랭크의 가족들이 내내 봉합해두고 있었던 갈등을 누나의 죽음을 계기로 표면화시키는 과정들의 설득력 있었다. 마치 영화를 보는 듯, 영상미와 개성이 출중하다는 점도 장점. 영화로 만든다고 해도 놀라운 일은 아닐 듯. 다만 조금은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는 점과 착하게 결말을 내리려 한 것이 다소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는 점은 아쉬웠다. 그럼에도 잘 쓴 책이라는 점에서만큼은 이의가 없으니 궁금하신 분은 한번 들여다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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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해드립니다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로런스 블록 지음, 이수현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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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부살인에도 스타일이 있을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작가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평범한 청부살인업자는 가라~~는 모토를 착실하게 구현하고 있던 단편모음집이다. 직업이 직업이다보니 생명 경시가 기본으로 깔려 있다는 점만 뺀다면 도무지 흠잡을 데는 수작이다. 군더더기 없고, 장면 전환의 재치는 혀를 내두르는데다, 상상하고 맛보고 감정이입하고 공감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작가의 필력은 독보적이다. 전문 살인청부업자는 과연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내진 살게 될까 라는 의문이 혹시나 있으셨던 분은 기뻐하시길. 당신의 궁금증이 말끔하게 해결될테니 말이다. 살인청부업자에 하나도 관심이 없었다고 하시는 분들도 걱정 마시길...이 책을 집어 드는 순간 관심이 저절로 생겨날테니 말이다. 살인청부업자라는 특정 직업군에 속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애로와 애환을 어찌나 설득력있게 그려내는지, 작가가 한때 살인청부업자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의심이 될 정도다. 아니면 적어도 지인중에 이런 직업군이 있었다던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단지 상상력만으로 꼼꼼하고 스타일리쉬하게 그려내던데, 이런 상상력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지,목격하게 될때마다 감탄스럽다. 하는 일만 특이할뿐, 보통의 중년 직장인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는 청부업자 켈러. 매너리즘에 허덕이고, 다른 삶을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몽상하며, 다른 삶의 가능성을 엿보며 살지면 결국엔 제자리로 돌아오는 전문 직업인의 애환을 제대로 그려내고 있었는데, 그런 반전이 이 책의 묘미다.  건조하지만 인간적인 균형만은 잃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무릇 외과의나 죽음의 사자를 연상하게 하던데, 이렇게 나름 철학적이고 낭만적인 청부업자의 모습을 개성있게 구현해 냈다는 점에서 작가에게 만점을 주고 싶다. 메스나 낫대신 각종 살인도구를 머리속에 담고 다니면서 의뢰받은 일들을 묵묵하게 해치워나가는, 그런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전혀 상관하고 싶어하지 않던 각종 인간사에 얽혀가는 모습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하니 뭔가 쌈빡한 읽을 거리가 없나 두리번 거리시는 분들은 주목하시길.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눈이 알아서 글자를 읽어가는 신선한 경험을 하게 되실 것이니 말이다. 여기에 묶인 10편의 단편들이 다 좋지만, 맨처음 실린 단편인 <솔저라고 부르면 대답함>이나 < 켈러의 심리치료> 그리고 <현장의 켈러>는 어떻게 전개되는지 궁금해 읽지 않고는 못배길 정도로 독창적이다. 그래, 단편은 바로 이렇게 써야지, 라면서 읽는 내내 감탄했다.  어떻게 나의 집중력을 단 한번도 흐트러트리지 않으면서 읽게 만드는지,  읽는 중에도 읽고 난 후에도 못내 궁금했다. 뭐, 분석을 해보면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지만서도, 간단히 말해 그만큼 매력적이란 뜻이겠지. 하니, 단편의 묘미를 알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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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하게 나를 사랑한 남자
에릭 포토리노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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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에게 책을 빌리려는데 그녀가 나를 슬쩍 한번 쳐다본다. 제목때문인가? 라는 생각이 들면서 하긴 나도 처음 제목을 들었을땐 그랬지 싶어 웃었다. 이 책 야한 책 아니라구요, 라면서 변명을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궁금하면 직접 찾아 보던가, 그렇게 몸짓으로 말해주곤, 나는 생각했다. 사실을 알게 되면 이보다 더 아름다운 사랑은 없다는걸 바로 알아차릴텐데 하고. 그 은밀하게 나를 사랑한 남자가 작가의 의부란 것을 말이다. 요즘 같이 의붓자식을 학대한다는 뉴스가 연일 신문에 tv에 정신 사납게 장식하는 시대에, 신선했다. 누군가 자신의 의부를 애틋하게 회상한다는 자체만으로도 말이다. 대놓고 사랑한다는 말을 할 줄 몰라서 한번도 입밖에 낮간지러운 말을 내뱉어 본 적은 없었지만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한 한 사람. 자신의 자식도 아닌 아이가 작가로 성장할때까지 든든하게 지켜준 의부를 작가는 아련하게 회상한다. 대놓고 말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감동적인, 하지만 인간적으로 이해 가능한 사랑이란 생각에 뭉클할 수밖엔 없었다. 봐, 알겠지? 이 책 전혀 야하지 않다니까.

 

아버지란 말을 불러 본 적이 없는 아홉살짜리 아이에게 이제부터 나를 아빠라고 불러 주겠니? 라고 물어봐주던 엄마의 애인은 그에게 성과 함께 아빠라는 호칭 역시 허락해 준다. 그렇게 아버지가 없던 아이는 아버지가 생겼고, 동생들이 선물처럼 생겨났으며 비로서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안정적으로 성장해나가게 된다. 만약 아버지가 없었다면 그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어른이 된 다음 작가가 생각해보면 그 마법같은 일이 생기도록 한 의붓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남다를 수밖엔 없었을 것이다. 피를 나눈 자식은 아니지만 친자식 못지 않게 자신을 사랑한 아버지를 , 그 불가능한 일을 해낸 한 남자를 작가는 그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후, 애통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면서 이 글을 써내려 나간다.  아이에게는 행복한 가족을 만들어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 사람이었건만, 그의 말로는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다. 어머니와 이혼 후 파산을 겪게 된 아버지는, 더이상 추하게 살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려 버린뒤 총으로 자살을 했으니 말이다. 그런 그를 안타깝게 생각하면서도 그가 내린 결정을 담담하게 받아 들이려 노력하는 자식으로써의 애닮음이 애잔하더라. 비록 아버지와 하나도 닮지 않았다는 것이 세월이 흘러가면서 더 뚜렷해 졌으나, 한가족이 된 뒤 행동들이 닮아 가는것 하나 하나에 흐믓함을 감출 길이 없던 아들은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난 뒤 이해한다. 부모자식 관계라는건 단지 피라는 유전자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가족이란 그들이 가족이란 관계에 들인 사랑과 노력, 이해가 바로 관계의 핵심임을 작가는 아버지 미셀을 통해 이해하게 된 것이다.

 

다만 문제는 작가가 아버지가 그렇게 괜찮은 사람이였다고 애잔하게 회상은 해대면서도, 왜 그의 경제적인 사정이 형편없어진 것을 알면서도 도와주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자신을 잘 해준 것을 그렇게 고마워 하면서도, 정작 아버지가 늙어서 어려움에 처하자 도움을 주기를 주저하고 머뭇거리던 작가, 그랬던 그가 아버지가 자살을 하자마자 자책을 해가면서 이런 책을 써 낸다는 것이 조금은 말이 안 되지 않는가. 그렇게 사랑하는 아버지였다면 왜 미리 도움을 주지 못했을까,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는 분명 곤경에 처한  사람에게 등을 돌리는 사람은 아니여 보였는데 말이다. 그런 성품이 어린 시절의 그를 감동시켰었던 것이고. 그런데 그게 일방통행이라는 점이 참 안타깝단 것이지. 그렇다보니, 이 책이 아버지에 대한 감상적인 사부곡에 지나지 않는건 아닌가 라는 의심을 버릴 수가 없었다. 진짜로 아버지를 사랑하고 그의 사랑이 사무치게 고마웠다면 그가 말년을 잘 살도록 보살피는 정도는 아니라도 작은 도움 정도는 줄 수 있어야 옳았던게 아닐까. 그게 바로 가족이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알기론 작가란 작자들은 낭만적인 게으름뱅이 들이라서, 현실을 해결하려 행동하기 보다는 --그러니까, 아버지의 문제를 같이 고민하고 해결해 보려 노력하기 보다는---그저 일이 터지고 나서 눈물을 흘려 대는게 다이니 말이다. 말하자면 작가의 사랑이란 그 사람이 죽은 뒤에나 실천이 가능하다는 의미. 그런 면에서 작가의 비통함이 어딘지 가식같이 느껴지는건 어쩔 수 없었다. 작가들의 사랑은 얼마나 애잔하고 낭만적이며 아름다운지...하지만 작가들이 사랑을 아름답게 그릴 수 있는건, 그들이 현실에서 실제로 몸 부딪치면서 살아가는 실천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그저 멀리서 바라보면서 내가 이랬어야 했는데 저랬어야 했는데 라고 후회만 하는 사람들이기에, 그들을 사랑한 사람들에겐 정작 남는게 아무것도 없는게 아닐까 라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그런걸 보면 아마도 현실속에서 그런 사랑을 실제로 실천한 의붓아버지 미첼 같은 사람들은 평생 책을 쓸 일은 없을 것이다. 남에게 내 사랑을 내보이기 위해 쓴 이런 책 말이다. 정작 책을 쓰는건 사랑에 관한한 하나도 희생하는 법이 없는, 이기주의자 같은 아들이라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그게 바로 인생살이의 불공평한 점이겠지. 다만 책을 읽고 나서 하루가 지나고 보니 약간은 이해가 되는 점이 있긴 하다. 사랑이란게 원래 내리 사랑이라서, 우리는 윗세대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고 자라지만, 그 사랑을 그들에게 돌려 줄 수는 없다는 것 말이다. 왜냐면 우리 역시 우리의 사랑을 아랫세대에게 퍼부어 줄 것이므로 말이다. 그것 역시 세상 사는 이치가 아닐까 싶어, 작가의 심정을 이해해 주기로 했다. 프랑스 작가 답게 문장이 횡설수설한다. 이상하게도 프랑스 작가들은 이렇게 쓰는 것이 잘 쓰는 것인줄 아는 모양. 내가 보기엔 허세 가득한, 없는 것을 있어 보이게 하려 애를 쓴다는 인상이 들던데, 뻥튀기 처럼 말이다. 뭐...프랑스 작가들이 대체로 그런 글쓰기를 하는걸 보면 그 나라의 트레이드마크인것 같기도 하고 .  하여간 있었던 일만 솔직하게 군더더기 없이 서술해 나갔었더라면 더 감동 깊었을 듯한 작품. 자신의 아들도 아니지만 어디서건 흐믓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을 작가의 아버지의 눈길에 타인인 나마저도 고마운 마음 감출 길 없긴 했다. 그런 어른다운 어른들이 박수받고 존중받는 세상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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