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을 위하여/ 미나토 가나에/ ★★★★☆


미나토 가나에의 책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던 작품. 원래 미나토 가나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볼 생각이 없던 책이었는데, 우연히 일드 <N을 위하여> 1회를 보고는 하도 재밌어서 보게 되었다. 신선하고 충격적이라고 할 만한 1회였는데, 과연 일본 드라마 관계자들이 워낙에 연출력이 좋아서 이렇게 좋은 작품이 나온것인지, 아니면 원작 자체가 그렇게 좋았던 것인지 저의기 궁금해서 말이다. 아, 물론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 기다리고 있자니 좀이 쑤셔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서도...


내용은 초호화 고층 아파트에서 부부가 살해된 채 발견된다. 우연히 현장에 있었던 네 사람을 취조하던 경찰은 그 중 한 명이 자백을 하자 살인죄로 그를 기소한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뒤, 우연히 그 장소에 모인 것이었다고 말하던 네 사람은 각자의 기억대로 당시를 회상하는데...


네 사람, 살인 사건, 10년뒤의 회상, 그 네 사람에 얽힌 사연, 과연 진실은? 이라는 것만으로도 호기심이 생기게 하던 작품이다. 과연 드러난 진실과 그들이 감추고 있는 진실 사이에 어떤 괴리가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 괴리는 어쩌다 생긴 것인지 궁금해서 끝까지 안 볼 수가 없었다. 설정이나 풀어가는 전개등에서 뜻밖인데 싶을 정도로 탄탄하다는 점이 장점. 특히나 그 네 사람중 유일한 여주인공인 스기시타 노조미의 인생 역정은 그야말로 한 편의 드라마라고 해도 좋을만 했다. 데릴 사위로 들어온 아버지가 17년간의 헌신적인 생활을 뒤로하고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한번 살고 있다는 이유로 가족들을 다 내 쫓았다는 이야기. 도무지 어디서고 난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데도, 그게  묘하게 신빙성과 호소력이 있어서 말이다. 홀딱 넘어가고 말았다. 단점이라면, 그외 다른 주인공들에 대한 묘사 부분에서 공감하기 힘들었다는 점과 현재와 과거를 회상하는 씬이 늘어나면서 같은 문장들이 자꾸 반복된다는 점이었다. 미나토 가나에라는 작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가 대체로 극도로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등장시킴으로써 리얼리티를 해친다는 생각 때문이었는데--그러니까 한마디로 지나치게 극단적이라서 공감하기 힘들었다는 뜻--이 작품속에서도 결국엔 그런 사람들이 등장한다는 점이 별로였다. 그런 사람들을 빼고 보통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면 오히려 더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마도 이상 정신 상태를 가진 사람들을 등장시켜야 하는 것이 작가 특유의 전개 방식인가 보다. 그녀가 그런 사람들이 있어야 글이 써진다고 한다면, 독자로썬 적응하는 수밖엔...그게 싫음 읽지 않음 되니 말이다.  아직 드라마가 1회밖엔 방영되지 않아서 확신은 못하겠으나, 아마도 작품성 면에서는 드라마가 좀 더 낫지 않겠는가 한다. 다른건 몰라도 일본 드라마 제작진들, 별거 아닌 원작들을 가지고도 뚝딱뚝딱 근사한 드라마를 잘도 만든다니까. 그것 하나만은 인정해 줘야 할 듯...


                 우편 주문 신부/ 마크 칼레 스니코/★★★☆☆



일단 이 책은 19금이다. 뭐, 내 기준에만 그런가는 모르겠지만, 도서관에서 빌려 왔는데, 아무나 빌려 갈 수 있는 서가에 꽂혀 있던 만화책에 이런 내용이 숨겨져 있어서 살짝 놀랐다. 뭐, 이런 정도는 요즘 청소년들이 봐도 아무 지장이 없으려나? 하긴 이런 내용에 관심을 가질 만한 나이가 아니긴 하겠다 싶지만서도...


우편 주문 신부...제목만으로 반발심이 들만한 작품인데, 보게 된 이유는 표지에 보이는 한복때문이었다. 아무리 봐도 한복 같아서, 설마 한복? 이라고 들여다 봤더니 진짜 한복이다. 한복에 담배라...거기에 우편 주문 신부라. 뭐, 이 정도면 이 작품에 대해선 설명은 거반 다 한듯 하다. 캐나다의 39살 숫총각 몬티는 우편 주문으로 한국인 경을 신부감으로 데리고 온다. 작은 동양인 여인을 기대했던 몬티는 키가 큰 경을 보고는 실망하지만,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에 그는 실망감을 내려 놓는다. 경 역시 한국이 싫어 모든 것을 잊는다는 심정으로 캐나다에 왔지만, 다 큰 애처럼 만화책 가게를 운영하면서 장난감을 집안 가득 모으고 살아가는 몬티가 맘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막다른 골목에 선 두 사람에게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은 이미 자명한 일. 한편으로는 실망감을 감추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도 앞으로는 행복했음 좋겠네 라는 희망으로 둘은 결혼 생활을 시작하지만... 순종적이고, 근면하고, 가정적이고, 고분고분한 동양인에 대한 환상이 있는 몬티가 과연 산전수전 다 겪은 현대적인 여성 경과 잘 지낼 수 있을까? 덜 자란 애들처럼 환상에 절어사는 몬티에게 경은 과연 사랑을 느낄수 있을까? 둘의 파국이 예정된 것이라면, 남은 것은 이제 언제 그것이 터지는가 하는 것일 것이다. 탈출구를 찾던 경은 우연히 만난 사진 작가 이브를 만나게 되고, 그녀의 누드 모델 제안에 응하면서 예술이라는 일탈로 나가가게 된다. 그런 경을 바라보는 몬티의 눈에는 불안감과 질투가 가득한데, 과연 이 커플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그들이 과연 부부로써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팔려온 신부, 라는 말이 맞겠지? 팔려온 신부가 타국에서 이렇게 살아가겠구나 라는걸 뜨악하고 끔찍한 심정으로 보게 된 책이다. 현실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읽기가 더욱 더 끔찍하던, 물론 여기엔 살인이나 그런게 없지만서도, 이런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것 자체가 이미 끔찍한 일이라서 말이다. 작가가 어디서 어떤 경로로 경이라는 이 책의 주인공을 만났는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분명히 모델이 될만한 사람을 알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생각될 정도로 리얼리티 있어서 말이다. 과연 행복이란 무엇일까? 이렇게도 행복은 잡기 힘든 것일까? 아니, 어쩌면 그저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자신을 내버린다는 것의 결과가 좋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 자체가 순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작품성 면에서는 거짓이 섞이지 않는 수작이나, 솔직히 이런 책을 읽고 싶은가는 의문이다. 내용을 알았더라면 아마 읽지 않았을지도...오해는 마시길. 주인공이 한국인이여서 그런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그저 인간으로써, 읽기 힘들었다는 것일뿐.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줄까? /박현희/★★★☆☆



고등학교 선생님인 저자가 사회학인 자신의 전공을 바탕으로 전래 동화의 다시 읽기 내진 재해석을 시도하고 있던 책. 기대하고 봤는데, 기대만큼 좋았다. 물론 이 작가의 견해에 다 동의한 것은 아니었지만서도, 그럼에도 동의를 넘어 한 수 배웠다고 할 만한 곳도 군데 군데 있었다. 한국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떡이고 존경스러워 보긴 또 오랜만 인데, ( 오해는 마실 것이, 이럴때의 오랜만은 일주나 이주 정도의 기간이다. 이는 지루한 것을 못 참는 나의 성향상, 독서 주기가 시간 주기보다 짧기 때문이다.). 다만 알아두셔야 할 것이 이때 재해석의 상대가 주로 학생들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학생들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한 창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심 된다. 그걸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전래 동화를 사용한 것이고 말이다.


이 책을 보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아이들의 거짓말을 이해하라는 부분이었다. 비교적 자신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어른들에 비해 모든 것을 통제 받아야 하는 아이들 입장에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거나 하기 위해 거짓말을 할 수 밖엔 없는 것이라고 하던데, 일리 있지 했다. 하니, 거짓말 했다고 그들을 추궁하고 다그치기 보단 이해하는 관점에서 그들을 바라보라고 하시는데, 전적으로 공감이다. 오히려 내가 왜 그걸 진작에 생각하지 못했는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우리가 어렸을 적에 어른이 되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내 맘대로 , 그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살고 싶다는 이유 때문이었는데 말이다. 어른이 되고 보니 편리하게도 그건 까맣게 잊어 버리고, 너희들은 뭐가 불만이냐, 불평할게 뭐가 있냐면서 고개를 저었더랬으니... 그런걸 보면 기억력이란 참 편리한 것이고, 우린 우리들의 기억력을 너무도 과신하는 경향이 있는가 보다. 하여간 아이들의 거짓말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맘에 든다. 지금 내게 필요한 정보라서 더 그렇게 느꼈는가는 모르겠으나...그 외 외로움 때문에 백설공주가 자꾸 문을 열어준다는 해석이나, 싫어하는 것들을 굳이 좋아하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부분도 맘에 든다. 이 모든것을 합해서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작가가 참 마음이 따스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적인 해석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생각하는 파워를 가지신 분이었는데, 그걸 자신을 위한 것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닌 학생들을 보다 더 잘 이해하기 위한 힘으로 사용하시는걸 보면서 말이다. 이런 선생님이 아직 존재한다는 자체가 아직은 우리 학교에 희망이 있다는 것 아닐런지...그리고 그 선생님의 눈에 아이들의 희망이 보인다고 하시니, 난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싶다.


고등학생들이 보면 더 좋을 것 같던 책으로, 더 확대해 보자면 학생을 자식으로 둔 학부형들이 읽으셔도 좋지 않을까 한다. 아이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관찰한 선생님의 눈으로 본 이야기니,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조금은 귀 기울여 들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듯...



 
 
 
몸을 긋는 소녀 - 샤프 오브젝트
길리언 플린 지음, 문은실 옮김 / 푸른숲 / 2014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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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찾아줘>의 작가 길리언 플린의 데뷔작. 제목에 식겁해서 볼 생각을 못하고 있었는데 길리언 플린의 작품이라는 말에 용기를 내서 들여다 보게 됐다.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겨낸 경우가 되겠다. 내용을 보자면, 시카고 작은 신문사 기자인 카밀은 미주리 주 윈드 갭으로 출장을 다녀 오라는 사장의 지시에 질겁한다. 그녀의 고향인 그곳에 기자라면 좋아할만한 연쇄 소녀 살인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워낙 구석에 박혀 있는 시골이라 아직은 다른 신문사의 레이다에 걸리지 않았다면서 특종을 잡아 오라고 등떠미는 사장, 까밀은 식은땀이 나고 말문이 막히면서도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자신이 왜 그러는지 자신도 효율적으로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겉보기엔 아름답고 지적이며 쉽게 행복을 거머쥘 수 있는 듯한 외모의 카밀에겐 남에게 숨기고픈 비밀이 있으니 그녀가 자신의 몸에 자해를 하는 커터라는 사실이다. 여름에도 긴 팔에 긴 바지를 입어야 할 정도로 남아 있는 구석이 없는 그녀의 몸이 한계를 넘어선지는 이제 오래, 다행히도 몇년 전 중독 센타에 들어가 회복 과정을 거친 그녀는 이제 자신이 그 유혹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고향에 가라는 지시를 받기 전까지...1년에 걸친 공백을 두고 9살과 10살 소녀가 이가 뽑힌채 살해되는 엽기적인 살인 사건이 벌어진 윈드 갭, 그곳의 가장 유력한 가문의 외동딸인 카밀의 엄마는 그녀를 냉랭하게 맞아 들이고, 카밀의 이부 동생은 되바라진 모습과 행동으로 그녀를 경악하게 만든다. 도시에서 특별히 초빙된 형사는 1년간 이 마을에 머물렀지만 아무것도 알아낸 것이 없다면서, 살인자가 누군지 마을 사람들은 알고 있지만 다들 입을 딱 다물고 있다고 불평을 한다. 이부 동생의 도발을 흥미롭게 하지만 지친 마음으로 바라보던 카밀은 서서히 엄마가 그간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과연 이 부유한 가족에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살인 사건을 취재하러 갔던 카밀은 뜻하지 않게 자신의 어린 시절과 조우하게 되면서, 그간 잠재워 왔던 커터의 유혹이 되살아 남을 느끼게 되는데...


다른건 몰라도 길리언 플린, 이 작가는 못된 여자들의 심리는 확실하게 잘 꿰고 있지 싶다. 추리소설이건 스릴러 소설이건 간에 주로 피해자로 등장하기 마련인 여성들이 그녀의 작품들 속에선 주도적이고 능동적이며 거칠 것 없는 싸이코패스로 출연하는데, 오싹하기 그지 없었다. 길리언 플린 자신이 여자라서 그런가, 남자 작가들이 상상해내지 못하는 극악의 부분까지 신빙성 있게 파고 들어가는 품새가 보통이 아니다. 스티븐 킹의 <캐리>급이라고 해야 하나? 그나마 캐리는 정신이라고 나갔지. 길리언 플린의 주인공들은 다들 겉보기에 너무도 멀쩡한 사람들이라 설득력과 공포심이 배가되는 듯하다. 여성 범죄자들의 급을 높여줬다고나 할까. 이런 통찰력에 상상력은 어디서 온 것이냐 싶어 존경심이 일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길리언 플린처럼 아름답고 이지적인 모습의 백인 여자가 어쩜 이리도 범죄자의 심리에 정통할까 싶어 의문도 생기더라. 이 작가도 작품속의 카밀처럼 카터인 것은 아닐까. 내진 <나를 찾아줘>의 에밀리처럼 싸이코패스인건 아닐까 싶은...그만큼 리얼리티가 넘친다는 것이겠지만서도, 솔직히 범죄자들의 심리를 꿰고 있다는게 좋은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물론 작가로써는 그만이겠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인간으로써는? 글쎄...하여간 데뷔작이라고 하기엔 탄탄한 심리 묘사와 끝까지 놓치지 않는 긴장감이 혀를 내두른다. 반전에 반전을 선사하는 흥미로운 전개 방식도...병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상식이 살아있는 작은 마을 윈드 갭을 무대로 한편의 드라마를 잘 그려냈지 싶다. 이 작품 역시 <나를 찾아줘>처럼 판권이 팔렸다고 하던데, 당연하지 했다. 그냥 이대로 드라마를 찍는다고 해도 괜찮다고 할만큼 완벽했으니 말이다. 완성도 높은 스릴러 소설을 보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추천. 하지만 아마도 이 작품은 여성들이 보기에 더 재밌게 보지 않을까 싶다. 남성들보단 여성들이 더 몰입해서 볼만한 이야기란 생각에서 말이다. <나를 찾아줘>에서는 어쩌다 글을 잘 쓰게 된 작가인줄 알았는데, 이 작품을 보니 그게 아니라 원래 글을 잘 쓰는 작가였구나 싶다. 주목해봐야 할 작가로써, 앞으로 그녀가 또 어떤 싸이코패스를 들고 나올지 기대된다.



 
 
 

       뉴스의 시대 /알랭 드 보통/ ★★☆☆☆



 프롤로그를 읽는데, 벌써 이 책을 다 읽은 것 같은 느낌이 솔솔~~~ 설마 그러기야 하겠어 라고 나를 다독이긴 했지만 알고보니 진짜로 거의 그런 셈이었다. 알랭 드 보통에 대해선 이젠 식상하다는 말을 달고 살면서도 혹시나 하여 들여다 보긴 했는데, 이 책 역시 그다지 좋은 반응을 얻진 못했다. 하루종일 시시각각으로 전해지는 뉴스가 사실은 우리 삶에 그다지 필요한건 아니라는 것, 우린 (쓸데 없는, 내진 상관없는 )뉴스를 (과도하게) 소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을 좀 늘여서 한 모양인데, 뭐, 짧게 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책 한 권 분량으로 길게 늘릴 수 있다는 건 아무나 하는게 아니니까, 그것만은 인정. 하지만 특별하게 음미하고픈 신선한 문장은 만날 수 없었다는 점은 실망이었다. 어찌보면 그런 톡쏘는 듯한 냉소적이고 통찰력있는 문장들이 본인의 트레이드 마크인데...이젠 왠만한 소재는 다 건드려서, 더이상 흥미로운 이야기꺼리가 나올만한 소재를 찾긴 힘든가보다 싶으면서도, 과연 다음에 또 책을 내신다고 하면 들여다 볼지는 의문이다. 어쩜 내가 찾으려 하는건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그의 찬란한 시절의 그림자가 아닐런지, 그리고 어찌 보면 당신의 책 역시 우리가 소비하는 뉴스와 독자 입장에선 별반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그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닥터 슬립/ 스티븐 킹/★★★☆☆


초반 읽는데 글이 하도 상스러워서 때려 치려고 했다. 아무리 스티븐 킹이라지만, 끝까지 읽어야 할지 믿음이 없어서...언젠가 스티븐의 열렬한 팬을 자처하는 이웃이 종종 그의 책을 읽다보면 저속한 말들이 나와서 당황한다고, 꼭 그런 말을 써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하던데,  나 역시도 그의 견해에 동의한다. 품격을 따지자는게 아니라, 때론 읽기 곤혹스러워서 그렇다. 팬심에 열심히 읽어주고는 싶으나, 망막에 저속한 말과 표현이 걸리는게 그다지 유쾌할 일일리는 없으니까. 아마도 스티븐 킹은 표현의 적확함이 상황을 설명하는데는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하는 듯하지만서도. 하긴 악령이니 좀비니 하는걸 묘사해야 하는 작가가 고상한 말에만 갇혀 있는 다는 것도 문제긴 하겠다 싶다.


하여간 오랫동안 기다려온--내진 절대 나올 것이라 기대하고 않고 있던--<샤이닝>의 후속작이다. 전편이 워낙 출중한 작품이라서 과연 그보다 나은 책이 나올 수 있을까 싶었는데, 역시나 전편의 카리스마를 넘어서는 작품은 아니었다. 뭐, 그렇다고 실망했다고 보긴 어려운 것이, 과연 지금 그가 전작을 뛰어넘는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겠는가 라는 점에서 회의적이긴 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샤이닝>을 그가 과거에 썼다는 자체만으로도 그는 더이상 자신의 재능을 증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해서 기대를 내려놓고, 과연 그가 자신의 대표작의 후속작을 얼마나 신명나게 써 내려갔을까 라는 것에 주목하면서 보게 된 책이라고 보심 되겠다. 그가 걸작을 써야 겠다는 사명감이 아닌, 가족같이 느껴지는 샤이닝의 생존자 대니가 과거의 트라우마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그리고 그의 샤이닝 능력은 어떻게 되었을지 하는 궁금증을  풀어주셨음 하는 바람을 가졌었던 것이다. 다행히도 작가 역시 그런 마음으로 책을 쓰신 것 같더라. 그리하여 이 작품에선 우리의 꼬마 히어로인 대니가 오버룩 호텔에서의 악몽을 이겨내고 어른으로써의 삶을 시작하는걸 보게 된다. 극복이라고 하긴 그런게, 그 역시도 과거의 악령에 사로잡혀서 그다지 썩 잘 살고 있었던건 아니었으니 말이다. 알콜 중독에 빠져서 섬세하고 친절한 마음마저 잃어버린 어른이 되었던 그는 마침내 자신이 서 있어야 하는 곳에 자리를 잡아 안정을 찾게 된다. 죽어가는 자의 손을 잡아주는 닥터 슬립이 된 그는 자신과 샤이닝이 통하는 한소녀의 메시지를 받고 당황한다. 자신보다 파워가 강한 그녀와의 소통을 통해 그는 그녀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의미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더라...라는걸 생각하게 하던 작품. 처음 읽기를 주저하긴 했지만서도 그래도 다 읽은 보람은 있었지 싶다 .왜냐면 내가 궁금해하고 있던 것들을 풀어주셔서 말이다.  대니가 올곧은 품성으로 성장했고,  남들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사실은 가장 외롭고 두려운 자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쓰고 있다는 점도 맘에 들었다. 무엇보다 외톨이로 쓸쓸하게 떠돌던 그에게 가족이 생겨서 좋더라. 뭐랄까. 오버룩 생긴 일 때문에 한없이 미안해졌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졌다고나 할까? 하여간 대니의 어른이 된 시절을 보게 해주어서 감사하게 생각되던 책.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가치가 있었던 것이 아닐런지...


     심야 식당/ 아베 야로/ ★★★☆☆



보통 심야 식당을 보고서는 리뷰를 적지 않지만서도, 아니 안 적는게 아니라 적으려 애를 쓰는 사이 잊어 버리는 것이지만서도, 하여간 이 책만은 꼭 리뷰를 남기고 싶어 한 자 적는다.


11권이나 봤으면 식상해질만도 한데, 물론 간간히 아~~~이젠 좀 식상한데 라고 말한 권도 있긴 했지만서도, 그럼에도 이 책은 다시금 심야 식당에 대한 아스라한 애정을 다시금 느끼게 해줬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는 곳, 밤 12시에 문을 연다고 하는, 별로 돈 벌고 싶은 생각은 없는 듯한 식당 주인이 오너인 곳에서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밤마다 모여든다. 천일 야화가 부럽지 않은 이야기들을 전해주는 곳에서, 이젠 단골 손님들마저 쥔장처럼 낯이 익어 간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 시리즈가 계속된다면 아마도 단골들의 자손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날이 오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얼마나 흥미로우려나, 하~~그들의 엄마 아빠는 그런 저런 사연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면서 즐거워 하겠지.  그나저나 11권이나 찍으셨는데도, 단골들이 뱉어내는 이야기가 여전히 새롭다는건 참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맛있는 음식을 간만에 먹어도 여전히 맛있는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나? 11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등장해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 주고 퇴장한다. 연상녀 연하남의 사랑, 짠돌이 사장의 마지막 로맨스, 레즈비언 커플이 초미역무침을 먹게 된 사연, 닭다리와 닭튤립으로 인해 처음으로 이부 남매란걸 알게 된 두 남녀,  두번씩이나 배신한 남자 친구에게 얼굴에 두부를 메다 꽂아준 여인네 하며, 맹인 검객의 사랑법이나 마마보이가 엄마의 게살 튀김의 향수에서 벗어나게 된 사연등 흥미롭고 감동적인 사연들이 많았다. 사람 냄새 나는 사연들에 ,이 만화책을 읽다 보면 저절로 이런 식당이 주변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보게 된다. 왠지 그곳에 가면 편안하면서도 새로운 기운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아마도 일본에 간다면 어딘가에 있을 듯한 심야 식당을 찾게 될지도...이번 시즌에 일본 드라마 심야 식당 시즌 3가 순조로운 스타트를 했다고 하던데,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드라마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들어있을지, 그들은 또 나를 얼마나 침 흘리게 할지 말이다.


              아이가 태어난 뒤 모든게 달라졌다/앰버 더 시크/★★☆☆☆


제목 그대로 아이가 태어난 뒤 자신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그림으로 간략하게 그리고 열심히 설명하고 있던 작품. 다른 육아서적에 비하면 적어도 나쁜 정보가 없긴 하다. 그냥 아이가 생긴 뒤로 얼마나 본인의 삶이 달라졌는지 푸념겸 한탄겸, 하지만 자랑겸, 놀라움 겸해서 쓰게 된 육아 일지 비스르름한 거라고 보심 된다. 블러그에 형편없지만 그런대로 포인트는 제대로 짚고 있는 그림과 더불어 일지를 썼더니만 단박에 스타가 되서 이 책까지 내어놓은 것이라고 한다. 장점이라면 일단 웃긴다. 공감이 가는 대목도 많다. 육아를 적어도 눈살이 찌프려질 정도로 과장을 하진 않았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편하게 낄낄대면서 볼 수 있는 육아일지 정도라고 생각하심 되겠다. 가장 좋은 점은 왜 우리가 그렇게 힘들다고 불평을 해대면서도 아이를 키우는가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를 흘리고 있다는 것때문...그건 바로 아이들이 사랑스럽기 때문이라는 것!!! 그런 점을 충분히 공감하고 공유하기 때문에 우린 오늘도 불평하고 내일 죽을 것 같이 엄살을 떨어대면서도, 여전히 아이들에게 안절부절 못하면서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있는게 아닐런지...이 세상에서 가장 귀엽고 사랑스러운 우리 모두들의 아가들에게 ...우리의 기쁨조는 너희들이라는걸 언제나 잊지 말도록...





 
 
 




1972년, 74남북 공동성명을 계기로 남북화해 무드가 조성될 무렵,  삼류 배우 지망생 김성근은 모종의 오디션에 합격해 김일성을 연기하게 된다. 무엇을 위한 오디션이었는가 하면,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될 것에 대비해 대통령과 사전 모의 회담을 가져 보자는 중앙정보부의 기획에 의한 것. 보통 오디션에 합격하면 뛸듯이 기뻐하는 것이 보통이겠으나, 성근은 자신 앞에 떨어진 미션과 분위기에 주눅이 든다. 그럼에도 혼신의 연기를 한번 펼쳐 보자 하고 결심을 하는 그를 도와주는 두 사람이 있었으니,  연기를 지도하는 대학교 교수와 김일성 주체 사상을 전파한다는 이유로 중정에 끌려온 대학생이다. 중정의 명령 하에 팀을 이룬 셋은 완벽한 시나리오와 흠잡을데 없는 연기를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에 노력을 하게 된다. 김일성과 비슷한 체격을 만들어 내기 위해 몸무게를 늘리는 것도 포함해서...결국 메소드에 메자도 모르던 성근은 김일성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 걷고, 손을 흔들고, 악수를 하게 되기에 이른다. 철저하게 준비한 김일성을 자랑스럽게 연기할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성근은 유신으로 말미암은 정권의 돌변으로 프로젝트가 무산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에 난생처음 연기다운 연기를 해보고 싶어했던 성근은 정신줄을 놓아버리게 되고...그로부터 20년이 지난 난 뒤 성근의 아들 태식은 자신이 김정일인줄 아는 아버지 때문에 돌아버릴 지경이다.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에게서 멀어지고픈 태식이나, 빚때문에 결국 아버지를 찾아가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고 만다. 과연 이 꼬여도 한참을 꼬여버린 두 부자의 재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아버지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한 태식은 이제 자신이 아버지를 버릴 거라고 다짐하지만, 것마저도 쉽지 않아 보이는데...

도무지 이 영화는 어디에 넣어야 하는 것인지 아리송한 작품이었다. 코미디라고 하기엔 몇몇 끔찍한 장면들이 눈에 거슬리고, 진지한 사회 드라마를 표방한건가 싶으면 웃기려고 작정한--하지만 웃음은 거의 나지 않는--장면들이 눈에 밟히고, 그렇다면 블랙 코미디? 라고 보기엔 풍자라고 할만한게 없고, 부자간의 감동 스토리를 보여 주려 한건가? 라는 것이 가장 그럴듯한데, 이것마저 사실 강하게 와닿지는 않았다. 왜 아버지의 정을 그리면서 아버지를 이렇게 학대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으면서, 거기에 정권의 잘못된 강압에 의해 정신이 나가버린, 한마디로 미친 사람을 보면서 웃으라고 강요하는 듯한 이 영화가 보는 내내 불편했다. 한없이 갑갑하고 답답한 설정에 간간히 웃음을 유발할만한 상황을 던져 넣으므로써, 조금이나마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 한 것 같은데, 이것이 결국은 이도 저도 아닌 것이 되버렸다고나 할까. 거기에 정신줄 나가버린 사람을 20년이나 돌봐야 했을 처절한 가족들의 심정에 나는 가슴이 서늘하더구만, 감독은 그게 굉장히 신선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것 같아 어이가 없더라. 도무지 얼마나 악취미면 미친 사람을 보면서 웃으라는 것인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어디 그것뿐인가. 미쳐 버릴 정도로 연기에 몰두했으니 예술이라고 해줘야 한단다.  뭐 ,이런...예술은 뭔 개뿔, 인간이 그렇게 하찮다는 것이냐 싶어 욕이 나오는걸 간신히 참았다.

그렇게 내내 감독의 이 놀랍도록 끔찍한 전제를 불편한 심정으로 봐줘야 한다는 것을 눈감아 준다면, 영화는 지루하지도 그렇다고 엄청나게 재밌지도 않게 흘러간다. 연출은 잘 했다는 뜻일게다. 이야기 전개는 비교적 무리없이 흘러가니까. 하지만 이 영화의 백미는 단연컨데 설경구다. 설경구와 다른 배우들이 살린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이기에 이런 시나리오임에도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걸 좋아했는가라면 그건 아니지만서도...오히려 보면서 얼마나 설경구가 가엾던지 말이다. 왜 그에겐 이런 배역밖엔 들어오지 않는 것인지, 시대의 아픈 아버지 상은 다 그가 연기를 해야 하는 것인지, 싶어 안스럽기 짝이 없었다. 왜냐면 혼신을 다해 연기하는 것이 역력한데, 그 역이 그다지 매력있는 배역이 아니라서 말이다. 어떤 인상이었는가 하면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것을 지켜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당사자가 그걸 죽도록 열심히 붓고 있는걸 보면 보는 사람 입장에선 미안해 진다는 것이지. 이 영화속에선 가장 매력적이고 그나마 인간적이라고 생각되는 배역이 사채꾼업자랑 밉살맞은 연기학과 교수였으니 말 다한거 아니겠는가. 주연보다 조역들이 매력있으면 도무지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답이 없어 보인다.

결국은 성근이 미친 것도 다 아들을 위해서였다는 말을 하려는 것 같던데, 그건 나를 설득하기엔 많이 부족했다. 해서 마지막 태식이 오열하는 장면도 난 심드렁했다. 감동은 커녕 머리속에선 이 감독은 미친사람에 대한 연구를 좀 더 해야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 결론적으로, 장르를 확실하게 정했으면 오히려 보기가 낫지 않았으려나 싶다. 호불호가 나뉘기는 했겠지만 적어도 이도저도 아닌 것을 보는 것 같지는 않았을테니 말이다. 욕심이 지나쳐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 것을 보는 듯한 느낌이던데, 물론 설경구가 얼마나 연기를 잘 하는 배우인가라는것 하나만큼은 이 영화를 통해서 증명되었지만서도 말이다. 바라건데, 다음에는 그에게 가만 서 있어도 매력이 넘치는 그런 배역이 들어와주길...왠지 설경구란 배우를 혹사한 기분이라서 영 기분이 안 좋더라. 그처럼 연기를 진정성 있게 하시는 분에게 다음번엔 조금은 더 배역 운이 좋기를 바라는게 과한건 아니겠지. 이상 설경구가 살리려 애썼으나 심폐소생엔 실패한 듯 보이는 <나의 독재자>에 대한 리뷰였다.

 





 
 
 
네버 고 백 잭 리처 시리즈
리 차일드 지음, 정경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4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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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난 뒤 표지 맨 뒤를 들쳐 봤더니, 잭 리처의 책이 그간 7권이나 나왔더라. 생각보다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숫자인데, 흥미로운 것은 분명 다 읽었을텐데, 몇 권은 줄거리를 읽어봐도 도무지 어떤 내용이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더라는 것. 그간 잭이 거쳐간 여인과 사건과 도시가 하도 많다 보니 결론적으로 잭 리처외엔 남는게 없는가 보다. 하여간 기억 나지 않는 몇 권을 다시 읽어야 하는 고민을 잠시 하는 사이, 더 흥미로운 사실 하나가 더 추가 되었는데, 이 책이 시작하게 된 계기가 바로 <61시간>이라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나 분명 그 책 읽었는데, 수잔 터너는 기억에 없다. 혹시나 해서 검색을 해봤더니 리뷰도 썼더라. 물론 내가 쓴 것임에도 다른 사람이 쓴 것처럼 읽었지만서도, 요즘은 정말로 리뷰를 쓰는 가장 큰 이유가 그 책을 읽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뇌리에서 휘발되는 책이 너무도 많아서. 그나마 리뷰를 쓰면 적어도 내가 읽긴 했네 싶지만서도,  리뷰라도 안 남긴 책들은 아무 생각이 안 난다. 심지어는 이런 일도 있었다. <나를 찾아줘>의 길리언 플린이 새삼 궁금해 그녀의 책을 빌려 왔는데, 문장은 새로운데 결말이 어떻게 될 지 알겠더란 것이다. 나 점쟁이 된 거야? 아니면 책을 너무 많이 읽었더니 작가의 머리속이 들여다 보이는 거야? 내가 추리 소설의 트릭을 풀었다고? 라면서 잠시 흥분을 했었는데, 알고보니 오래전에 읽은 책이었다. 어떻게 읽은 책을 다시 읽으면서도 기시감이 없을 수가 있는가에 생각이 미치자 기분이 급반전되었다는 이야기. 아~~~옛날이여~~다.


혹시나 나의 리뷰를 많이 읽으신 분들은 짐작이 가실지 모르는데, 내가 책 내용은 쓰지 않고 이렇게 딴 소리만 하는 이유를 말이다. 맞다. 책에 대해 딱히 할 말이 없어서 글자수를 늘리고 있는 중이다. 물론 100자 평을 해도 되긴 하는데, 왠지 그건 반칙처럼 느껴져서 말이지. 해서 아무리 맘에 안 드는 책이라도 100자평만은 피해자가는 취지에서, 열심히 수다를 떨고 있는 중이다. 뭐, 그렇다고 이 책이 맘에 안 들었다는 것은 아니고, 그저 리 차이드의 책들 중에선 그다지 설득력이 없었다고 말하는 편이 옳겠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 황당한 일들이 실제로 벌어진다고? 정말로? 라는 생각이 몽실몽실 떠올라서 사라지지 않았다. 뭐, <61시간>에서 전화상으로 호감을 느낀 자신의 후배를 찾아 110 특수부대를 찾아 왔다는 것은 이해가 간다. 잭 리처 다운 발상이니까 .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무리한 전개에 짜증이 나더라. 무고한 사람에게 폭행 치사에 친부 확인 소송까지 걸면서 그를 올가미에 얽어 놓으려는 세력이 있다는 것부터, 그것이 그렇게 간단하게 먹힌다는 설정까지 말이다. 아무리 잭 리처라지만 도무지 이 사람은 얼마나 사건 사고를 몰고 다니는 양반이냐? 짜증이 났다. 그리고 그 짜증이 끝까지 쭉 연결된다는 것이 이 책의 단점이다.


물론 잭 리처가 그런 몰지각한 분들(?)을 본인만의 능력으로 처단해가는 과정들을 보는건 여전히 통쾌했다. 그런데 이젠 서서히 그가 만나는 사건들이 상당히 억지스럽기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지. 잭 리처만을 위한 사건 사고를 일부러 크게 만들어 낸다는 인상인데, 이러면 아무리 잭 리처의 팬이라도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 아마도 리 차일드의 고민은 잭이 악당을 어떻게 무찌르느냐가 아니라, 잭이 상대하는 악당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요즘은 악당들의 면면이 공감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아무리 잭 리처라지만, 신빙성이 있었음 한다는 거지.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질지도 몰라라는 신빙성. 조금이라도...내가 바라는 것은 어마어마하게 정교한 시나리오가 아니니 말이다. 어쨌거나 리 차일드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본다. 몇 번 실망했다고 해서 그에 대한 애정을 버릴 내가 아니라서 말이다. 잭 리처는 이미 성공한 프랜차이즈 아니겠는가. 그저 다음에는 이보단 무리스럽지 않은 전개이길 바랄 뿐이다.


<추신> 그런데 이 리뷰를 쓰는 동안 수잔 터너가 희미하게나마 기억이 났다. 61시간에서 잭을 열심히 도와준 후배였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잭이 이 책에서 그렇게 열심히 수잔을 도우려 했던 것도 이해가 간다. 물론 어떻게 그가 가는 곳엔 늘 이런 사건들이? 내진 그가 만나려 가기만 하면 감옥에? 라는 억지스러운 전개만은 아무리 해도 설득이 안 되지만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