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나도 봤다, 곡성! 을 외치고 싶어서 보게된 작품. 원래 공포 영화는 취향이 아니라 잘 안 보는데, 왠지 이 영화는 그걸 넘어서 봐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생겨서 말이다. 말하자면 뭣이 중한디? 라는 말의 의미 정도는 알아듣고 싶었다는 뜻. 줄거리는 이미 여기저기서 흘러 나왔기 때문에 구구절절 나열할 필요는 없겠다 싶고, 해서 대략적으로 느낀 점만 풀어 놓는다면...


1. 첫 도입부부터 성경 구절을 인용되는데, 그 구절을 아무 생각없이 따라읽다가 예수가 좀비들의 조상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실소하고 말았다. 우리가 좀비들을 무서워 하면서도 그렇게 매혹적으로 느끼는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듯. 예수에게 매혹을 느끼는 이유도 어느정도는 그가 죽었는데 살아돌아왔다고 주장하는 것에서 시작하니 말이다. 어쨌거나 그저 연쇄 살인범에 대한 이야기일거라 막연하게 생각하고 봤다가, 성경을 정반대로 비틀어놓은 내용이라는것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2. 예수가 우리 앞에 나타났을때 아무도 그를 믿지 않았다. 걍 믿으라고 해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는 증거를 내놓아야 했었는데, 그중 최고봉이 바로 마지막 기적, 즉 죽은 자에서 돌아온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예수가 다른 수많은 사기꾼들과 다른 진정한 예언자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명백한 증거였나니, 그의 평범하지 않은 언행과 기행에 마음을 빼앗기긴 했으나 진짜 이 사람이 그 사람인지 믿음이 가지 않았던 사람들 모두를 한방에 무릎 끓게 만든 사건이지 않았는가 한다. 그렇게 증거가 없다면  우리는 예수가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믿지 않는다. 그것이 인간이다. 그렇다면 만약 악마가 등장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존재를 믿을 것인가. 그것이 현실적인 존재라고 받아들일 것인가? 라는 물음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한 질문이었다.


3. 영화속 결론을 말해 보자면, 감독은 악마가 그 자신을 증명할 증거를 아무리 우리 눈앞에 들이민다고 해도 우리가 믿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듯하다. 왜냐면 악이나 선이 우리의 인식을 벗어날만큼 거대할 시 ,우리는 그것의 의미를 축소하거나 회피하거나 얘써 별 것 아니었다고 생각해 버리는 경향이 있어서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보좌신부와 외지인인 일본인과의 마지막 조우는 의미심장하다. 그간 본 것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일본인이 평범한 사람일거라 생각하는 보좌 신부와 그런 그를 못내 가소롭다는 듯 처다보는 일본인의 표정이라니...사이코패스가 양심을 인지하지 못하는 양심맹이라고 한다면, 어쩌면 우리 일반 사람들은 악을 인지하지 못하는 악맹들이 아닐까,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악의 모든 것을 보여줘도, 그것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뭔가 사연이 있을 거라고, 평범치 않은 악에 대해 평범한 일상성을 부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소심한 마음과 초파리같은 초치기 기억력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무리들에게 너희는 제대로 보라, 이것이 바로 악이다. 너희가 눈을 돌리고 부인한다고 해서 악은 사라지거나 물러서지 않는다고,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착해야 한다는 모토아래 위기시에도 안이하게 생각하고 판단한다면 어떻게 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던데, 너무 불안감에 절어서 생활하는 것도 문제긴 하지만서도, 불안과 공포심을 느끼고 행동에 나서야 할때 조차 그걸 억누른다면 어떤 파국이 도래하는지 잘보여주고 있었지 않는가 한다. 우리는 닭이 세번 울렸을때의 베드로처럼, 예수를 부인한 것 만큼이나 악마를 부인할 것이다. 그것이 어쩜 우리 인간의 본성일지도....


4. 이 작품에 대해 이런 저런 말들이 많았는데, 난 그냥 볼만했다. 이걸 보고도 밤에 잘 잔것을 보면 공포 영화에 대한 민감도가 생각만큼 높지 않았는가보다. 그렇다고 다른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가하면, 또 그건 아니고. 초반 도입부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폼새가 예사롭지 않았다는 점만은 나도 인정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이 영화를 봤다고 해도 도입부부터 흥미를 느꼈을 것이다. 다만 등장인물들의 행동들이 왜? 라는 의문 부호를 달기에 충분하게끔 석연찮게 행동하는 경우가 많아서 흐름이 끊기는 느낌이었다. 그것이 다 복선이었고, 알게 모르게 연결이 된것이다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서도. 그것을 찾아내기 위해 다시 한번 보겠는가 라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라서. 그냥 흐름이 끊기더라, 라는 정도로 기억하려 한다. 악은 악이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아무 죄 없는 자도 그들의 먹이가 될 수 있다. 왜냐면 그들은 그저 심심풀이로 낚시를 하고 있는 것이므로. 하니 그 미끼에 우연히 걸려 들은  우리 가여운 중생들은 너무 억울해 말거라, 라는 말을 하려던 것이라면 제대로 알아들은 듯하다. 그것이 아니라고 해도 뭐. 상관은 없고. 잘 만든 작품인가요라고 묻는다면 글쎄...라는 의문 부호가 따른다. 이런 내용으로 이야기를 하나 완성했다는 것만큼은 대단하다 싶긴 하지만 완벽하게 나를 설득하기엔 뭔가 부족했다. 마지막 부분들이 특히나 석연찮다. 과연 천우희는 악마들을 막을 진정한 계략이 있었던 것일까. 모든 정황을 의심의 길로 들게 만들고서는, 딸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인 아버지를 향해 나를 믿어라, 흔들리지 마라라고 말한들, 과연 그 말을 믿을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 천우희 자신은 도움을 주려 왔다고 했지만 결과론적으로는 의심에 불을 활활 지펴서 악을 향해 달려 가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믿음이 가지 않는다. 그녀는 과연 선인일까? 아니면 아담과 이브의 신화에 나오는 뱀같은 존재인것일까.  과연 우리는 무엇을 믿을 수 있고, 무엇은 믿을 수 없는 것일까. 참으로 골치아픈 명제다. 다만 그저 거대한 악을 마주했을때 그것을 악이라고 알아볼 수 있는 통찰력만은 내게 주어지기를, 하고 영화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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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어록 2016-07-04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믿음이 소중한 것처럼 대사는 나오지만 제가 보기엔 관객이 그런식으로 현혹하게 만든 영화같아요....독버섯에 의한 환영과 살인이라고 영화중간중간 나옴에도 신이나 어떤 대단한 존재를 바라는 노예습성을 가진 인간들을 비꼰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네사 2016-07-05 11:28   좋아요 0 | URL
아, 그렇게 보셨군요. 이 영화를 보는 시선이 다 다르다고 하던데, 그 말이 맞나 보네요.
전 그런쪽으로는 생각해보지 않았었거든요. 각자의 시선에 따라 다른 해석이 나온다니...
과연 이 영화가 잘 만든 작품이긴 한가 보네요.^^

임제어록 2016-07-05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해석의 여지를 여러가지로 준 작품이죠. 보통 좋은 소설이나 영화는 관객이 자기가 보고싶어하는 방향으로 잘 유도하지만 약간의 의아심이나 찜찜함 불쾌함 놀라움을 남길때 좋은 작품이라고 하지요..

제가 그렇게 해석 한 근거는
1. 신문기사나, 딸이 병원에 있을때 가끔 나오는 독버섯이야기
2. 목사(신부)님이 주인공한테 ˝눈으로 봤냐?˝말하는 것
3. 주인공 딸이 나아졌다가 할머니가 약을 다시 먹이면서(독버섯이 들어간 것이 아닐까??) 환영을 본것
4. 일본인이 낭떠리지에서 마을 아저씨들을 피해 숨을때 눈빛은 겁에 질린 보통사람.
그리고 일본인 방에 있는 사진을 경찰관 한명이 보고 놀라는데 일본인은 평범한 사진을 보는 듯한 눈빛
=> 즉 환영의 독버섯을 먹은 사람들한테만 의심을 정당화하는 환영만 보임.
4. 결정적인 것은 좀비가 나타났는데 마을 사람들이 단 한명도 ˝너...누구누구 아니냐?˝ 묻지 않습니다.
마을사람이 좀비가 되어있는데 이름을 안부른다는 것은 그 일본인 잡으러 간 동네사람들이 환영에 걸린것.

추가로: 주인공 친구가 정육점하는데, 화면 곳곳에 돼지 축사가 보여요..즉 독버섯 먹은 돼지로 통해서 일부는 감염되지 않았을까???

우리가 어떤 사실을 보더라도 실제로는 자기가 보고싶은 환영을 정당화하는 것 뿐이라는 `유식불교`책에 있는 경구가 생각나게 하는 영화인것 같습니다.

이네사 2016-07-05 12:26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에식스 카운티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제프 르미어 글 그림, 박중서 옮김 / 미메시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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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작이라는 말에, 깊은 울림을 준다는 말에 기대 잔뜩하고 보게 된 책이 되겠다. 물론 그 외엔 아무런 정보없이 읽어 내려 갔기 때문에 맨처음부터 살짝 당황하긴 했다. 내가 예상했던 그런 그림이 아니었고,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흑백으로 된 거칠은 만화체, 익숙해지기가 쉽지는 않다. 하나 아무리 그림이 별로라고 해도 내용만 좋다면야 나는 상관없는 사람. 내용이 좋기를 기대하며 읽어내려갔다. 처음엔 두께에 좀 압박감을 느꼈는데, 만화다 보니 금세 술렁술렁 읽힌다. 에식스 카운티, 라는 제목에 그게 무슨 뜻일까? sf물인걸까? 라고 추측했으나 알고보니 그것과는 몇 광년만큼이나 동떨어진, 에식스 카운티라는 캐나다의 아주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알고보니 표지에 뿌리 깊은 나무와 까마귀가 나오는 것이 아무 의미없이 그려 놓은 것이 아니더라. 한 가족의 수십년에 걸친 가계도를 설명한 책이라고 봐도 되니 말이다. 책은 세 개의 작품을 묶어 한 권으로 내놓은 것으로, 전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알고보면 이들이 다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 마을에 살아가는 세 명의 사람, 엄마를 잃은 소년, 동생의 아내와의 하룻밤으로 평생을 외롭게 살아온 한 노인, 그리고 마음이 착해 어려운 사람들을 못 보고 지나치는 시골 간호사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그들이 결국 어떻게 연관이 되어 지는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저자가 캐나다의 대표작가라고 하던데, 다른건 몰라도 캐나다가 고독이나 외로움을 양성하기엔 굉장히 알맞은 곳인가보다 추측하게 하기에 무리가 없을만치 황량하다. 캐나다 작가들의 만화를 몇 권 읽어보았는데, 그들 모두에서 같은 정서가 읽혀지는걸 감안하면 캐나다가 원래 그런 곳이던지 , 아니면 나라적인 특성이 그런 감성들을 북돋아 키워내던지 둘 중 하나인 듯하다. 하여간 이런 쓸쓸한 정서를 끝까지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내겐 좀 별로였는데, 왜냐면 인생이란게 아무리 못 산다고 해도 그보단 풍성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여간 지나치게 쓸쓸하고 허무한 정서. 왜 꼭 그렇게밖엔 살 수 없는 것일까 궁금하게 만드는 장치다. 뭐, 한 가족의 이야기라는 걸 생각하면 이 사람들은 원래 그런 사람들일수도--다시 말해 작가가 그런 사람인 것일 수도--. 하여간 대중속에서의 고독을 제대로 씹어 주시는 몇 몇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몇 개의 비극이 나오고, 비장한 장면 몇 가지가 나오며, 어쩔 수 없는 인생의 비극때문에 인생이 달라져 버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그렇게 쓸데없이 비장한 와중에서도, 몇 개의 울컥하는 장면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이 책의 최대 장점. 예상치 못한 장면에서 세 번 울컥했는데, 잔잔한 와중에 예상치 못하게 받은 일격이었기에 더욱더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그런 작법이 이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인 듯...이 책이 왜 수작이라는 건데 라면서 읽는 내내 투덜댔었는데, 그 장면들을 생각하면 수긍이 되기도 한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들라면, 엄마를 잃어 외롭고 슬픈 아이를 개울가에서 놀아주던 한 남자와의 에피소드 부분을 꼽고 싶다. 그 장면 하나만으로 이 책의 모든 단점들을 용서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던데, 이 책을 통틀어 제일 반짝반짝 빛 나던 장면이 아니었는가 한다. 그 장면을 보면서 뭔가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다 읽고나니 아하~~하고 이해가 간다. 아이들을 키우시는 분들이라면 그 장면을 보면서 뭔가를 느끼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실 듯. 인생이 아무리 고달프고 외롭고 고통스럽고 자신의 뜻대로 풀려나가지 않아 괴롭다고 해도, 마음속 깊은 곳 인간성만은 여전히 그대로인 착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을 향한 작가의 찬가이자 응원가가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 이 작가, 그의 다른 작품을 찾아서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지만, 다른건 몰라도 연민과 공감을 자아내는 빛나는 장면을 흔연치 않게 잡아내는 재능만큼은 인정하고 싶다. 뭐, 딱히 재밌게 봤다고 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리뷰를 쓰다보니 이 책속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나중에는 어떻게 됐을까 궁금해지긴 한다. 작가가 그들의 다음 이야기를 그려준다면 아마도 흥미를 가지고 지켜보게는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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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큰 휠 독자들이 추천함
카타리나 비발드 지음, 최민우 옮김 / 시공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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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에 사는 젊은 여성 사라는 내성적인 성격탓에 평생 책만 파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처자다. 직업마저도 서점 직원인 사라는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미국 생소한 마을에 친구 하나를 사귀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에이미, 미국의 작은 마을 브로큰 휠에 살고 있는 그녀는 남편과 사별한 뒤 홀로 사는 노부인으로, 책이라는 공통 관심사로 묶여있던 둘은 대륙을 오가는 편지속에 우정을 가꾸어 나가게 된다. 그렇게 몇년간 편지로만 이어질 것 같던 우정은 사라가 실직을 하게 되면서 작은 변화를 겪게 된다. 자신을 보러 오라는 에이미의 청을 사라가 받아 들인 것이다. 평소의 사라같았다면 어림도 없었을 여행을 이판사판인 심정으로 결정하게 된 그녀는 어렵사리 도착한 마을에서 기대하던 에이미를 볼 수 없자 실망한다. 기다리다 못해 직접 에이미를 찾아 나선 사라는 그녀가 며칠 전에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친구를 장례식장 속의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었던 사라의 심정을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것이지만, 더욱 더 딱한 것은 사라가 에이미와 푹 놀 생각으로 2달간의 여정을 짜놓았었다는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고민하는 사라에게 브로큰 휠 마을 사람들은 에이미가 죽기전 그녀를 잘 돌봐줄 것은 특별히 부탁했다면서 계획대로 머물어 줄 것은 요청한다. 이에 이보다 더 나쁜 일이 생기기야 하겠어 라는 심정으로 사라는 에이미의 마을에 눌러 살게 되는데....과연 그녀의 인생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서점 직원이었다는 저자가 아마도 자신의 아바타일 듯한 사라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깜찍하게 그려낸 로맨스 소설물이다. 서점 직원답게 다양한 책들에 대한 공감가는 견해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 대체로 내가 아는 책들이었고, 그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것들이 많아서 그런가 공감을 하면서 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좋은 책은 스웨덴 사람이나 한국 사람이나 미국 사람이나 똑같은 감성으로 받아들여지고 읽혀진다는 것을 알게 되니 무척 기분이 좋더라. 세계가 좁아보이는 듯한 기분이랄까. 음악이 그렇듯, 책 역시 인간을 한마음으로 묶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나로써는 잘 알길이 없지만서도, 하여간 인종과 국적이 다른 사람이 책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하고, 느낌을 공유한다는 것이 꽤나 근사했다. 로맨스 소설이라서, 사라가 사랑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전개 되기는 하지만서도, 책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그보단 책에 관한 이런 저런 일화들이 더 흥미진진했었지 않았는가 한다. 하니 책을 좋아하시는 여성분들은 기뻐하시길....어쩌면 당신에게 딱 맞춤인 듯한 책이 바로 여기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이 데뷔작으로는 공전의 히트를 쳤다고 하던데, 놀랍지도 않다. 책에 죽고 책에 사는 여자가 주인공이라니...다른건 몰라도 작가가 책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라는 점에 관한한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었던게 아닐까 한다. 그래서 내 말하건데, 시장 조사라는게 그렇게 중요한 겁니다, 여러분. 책벌레 여성의, 책 벌레 여성에 의한, 책 벌레 여성을 위한 책이니. 그간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에 목말라 하셨던 많은 책벌레 여성분들은 주목하시길...

물론 사라의 돌발적인 여행을 시작으로 마을 사람들 모두가 변화를--그것도 긍정적인 쪽으로-- 겪게 된다는 것이 조금은 억지스러웠지만서도, 로맨스 소설에서 무엇을 바라겠는가. 이 정도면 양호하다. 거기에 해피엔딩이라는 점도 만족스럽다. 의외에 의외를 연결시켜가면서 전개해가는 방식도 재치있고 말이다. 브로큰 휠 사람들의 이야기가 때론 짠하고, 때론 박장대소할만큼 웃기며, 때론 숙연하고, 그런 가운데서도 대체로 사랑스럽다보니, 뭐, 책 한 권에서 기대해볼만한 만족치는 차고 넘쳤지 않는가 한다. 극중의 사라가 브리짓 존스를 무척이나 좋아하던데, 굳이 비교하자면 스웨덴판 브릿짓 존슨으로 생각해도 무방하지 싶다. 스웨덴 판 로맨스 소설은 어떻게 전개될까 궁금하신 분들은, 그리고 책벌레 여성분들은 한번 보시길. 내용이 맘에 안 든다고 해도 좋은 책들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기 때문에, 그간 자신이 읽었던 책들에 대한 아련한 회상을 해볼 기회를 갖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 책을 싫어하기는 힘들거라 본다. 혹시나 안 읽은 책들이라면?  새로운 책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된다는 점에서도 이보다 좋을 순 없지 않겠는가. 하니 솔깃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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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 된 강물처럼
윌리엄 켄트 크루거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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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중년이 된 프랭크 드럼이 자신의 가족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린 40여년전의 여름을 회상한다. 1960년대 미국 미네소타주 브레멘이란 마을에서 13살의 프랭크는 동네 목사를 하고 있는 아버지와 변호사 아내를 꿈꾸었으나 목사 아내로 정착해버린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지 못하고 있는 어머니, 그들의 첫 아이로 구개순열을 가지고 태어났으나 누구보다 아름답고 재능 넘치던 누나 에어리얼, 내성적인 탓에 말을 심하게 더듬는, 그 덕에 동네에서 저능아로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동생 제이크와 함께 사춘기라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힘겹게 지나가고 있었다. 완벽한 가족의 모습이라고는 할 순 없어도 그럭저럭 제기능을 하고 있던 이 가족은 그 해 여름, 줄줄이 마을을 강타한 죽음들이 가져다 준 충격에 휘청거리게 된다. 그 죽음들 속에 그들이 그렇게나 사랑하던 에어리얼이 끼여있었다보니, 그들이 그런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그녀가 사고사가 아닌 살해된 것이라는걸 알게 된 마을은 누가 범인일까로 술렁이기 시작하고,  범인을 잡겠다는 열망을 곳곳에서 파열음과 갈등을 가져오게 된다. 과연 누가 이 사랑스럽고 전도유망한 소녀를 잔인하게 죽인 것일까. 고통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에게 의지하는 목사 남편이 미운 프랭크의 엄마는 별거를 선언하고, 슬픔속에서도 이성을 잃지 않으려는 아버지는 하나님의 뜻이 과연 무엇일까 자문하게 되는데...1960년대 미국 중서부의 시대적 분위기를 배경으로, 한 소년이 누나의 죽음이라는 커다란 시련속에서 어떻게 성장해 나가는가를 그려내고 있던 소설이다. 보통 추리 소설이라고 하면 누가 범인인가에 촛점이 맞춰지기 마련인데, 이 소설에서는 범인을 찾는것 보단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가져다 준 파장이 어떻게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성장시키는가에 주안점을 두고 있었다. 잔잔한 호수에 돌맹이를 던져 넣으면 파장이 번져가듯, 프랭크의 가족들이 내내 봉합해두고 있었던 갈등을 누나의 죽음을 계기로 표면화시키는 과정들의 설득력 있었다. 마치 영화를 보는 듯, 영상미와 개성이 출중하다는 점도 장점. 영화로 만든다고 해도 놀라운 일은 아닐 듯. 다만 조금은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는 점과 착하게 결말을 내리려 한 것이 다소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는 점은 아쉬웠다. 그럼에도 잘 쓴 책이라는 점에서만큼은 이의가 없으니 궁금하신 분은 한번 들여다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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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해드립니다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로런스 블록 지음, 이수현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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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부살인에도 스타일이 있을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작가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평범한 청부살인업자는 가라~~는 모토를 착실하게 구현하고 있던 단편모음집이다. 직업이 직업이다보니 생명 경시가 기본으로 깔려 있다는 점만 뺀다면 도무지 흠잡을 데는 수작이다. 군더더기 없고, 장면 전환의 재치는 혀를 내두르는데다, 상상하고 맛보고 감정이입하고 공감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작가의 필력은 독보적이다. 전문 살인청부업자는 과연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내진 살게 될까 라는 의문이 혹시나 있으셨던 분은 기뻐하시길. 당신의 궁금증이 말끔하게 해결될테니 말이다. 살인청부업자에 하나도 관심이 없었다고 하시는 분들도 걱정 마시길...이 책을 집어 드는 순간 관심이 저절로 생겨날테니 말이다. 살인청부업자라는 특정 직업군에 속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애로와 애환을 어찌나 설득력있게 그려내는지, 작가가 한때 살인청부업자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의심이 될 정도다. 아니면 적어도 지인중에 이런 직업군이 있었다던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단지 상상력만으로 꼼꼼하고 스타일리쉬하게 그려내던데, 이런 상상력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지,목격하게 될때마다 감탄스럽다. 하는 일만 특이할뿐, 보통의 중년 직장인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는 청부업자 켈러. 매너리즘에 허덕이고, 다른 삶을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몽상하며, 다른 삶의 가능성을 엿보며 살지면 결국엔 제자리로 돌아오는 전문 직업인의 애환을 제대로 그려내고 있었는데, 그런 반전이 이 책의 묘미다.  건조하지만 인간적인 균형만은 잃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무릇 외과의나 죽음의 사자를 연상하게 하던데, 이렇게 나름 철학적이고 낭만적인 청부업자의 모습을 개성있게 구현해 냈다는 점에서 작가에게 만점을 주고 싶다. 메스나 낫대신 각종 살인도구를 머리속에 담고 다니면서 의뢰받은 일들을 묵묵하게 해치워나가는, 그런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전혀 상관하고 싶어하지 않던 각종 인간사에 얽혀가는 모습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하니 뭔가 쌈빡한 읽을 거리가 없나 두리번 거리시는 분들은 주목하시길.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눈이 알아서 글자를 읽어가는 신선한 경험을 하게 되실 것이니 말이다. 여기에 묶인 10편의 단편들이 다 좋지만, 맨처음 실린 단편인 <솔저라고 부르면 대답함>이나 < 켈러의 심리치료> 그리고 <현장의 켈러>는 어떻게 전개되는지 궁금해 읽지 않고는 못배길 정도로 독창적이다. 그래, 단편은 바로 이렇게 써야지, 라면서 읽는 내내 감탄했다.  어떻게 나의 집중력을 단 한번도 흐트러트리지 않으면서 읽게 만드는지,  읽는 중에도 읽고 난 후에도 못내 궁금했다. 뭐, 분석을 해보면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지만서도, 간단히 말해 그만큼 매력적이란 뜻이겠지. 하니, 단편의 묘미를 알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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