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74남북 공동성명을 계기로 남북화해 무드가 조성될 무렵,  삼류 배우 지망생 김성근은 모종의 오디션에 합격해 김일성을 연기하게 된다. 무엇을 위한 오디션이었는가 하면,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될 것에 대비해 대통령과 사전 모의 회담을 가져 보자는 중앙정보부의 기획에 의한 것. 보통 오디션에 합격하면 뛸듯이 기뻐하는 것이 보통이겠으나, 성근은 자신 앞에 떨어진 미션과 분위기에 주눅이 든다. 그럼에도 혼신의 연기를 한번 펼쳐 보자 하고 결심을 하는 그를 도와주는 두 사람이 있었으니,  연기를 지도하는 대학교 교수와 김일성 주체 사상을 전파한다는 이유로 중정에 끌려온 대학생이다. 중정의 명령 하에 팀을 이룬 셋은 완벽한 시나리오와 흠잡을데 없는 연기를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에 노력을 하게 된다. 김일성과 비슷한 체격을 만들어 내기 위해 몸무게를 늘리는 것도 포함해서...결국 메소드에 메자도 모르던 성근은 김일성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 걷고, 손을 흔들고, 악수를 하게 되기에 이른다. 철저하게 준비한 김일성을 자랑스럽게 연기할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성근은 유신으로 말미암은 정권의 돌변으로 프로젝트가 무산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에 난생처음 연기다운 연기를 해보고 싶어했던 성근은 정신줄을 놓아버리게 되고...그로부터 20년이 지난 난 뒤 성근의 아들 태식은 자신이 김정일인줄 아는 아버지 때문에 돌아버릴 지경이다.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에게서 멀어지고픈 태식이나, 빚때문에 결국 아버지를 찾아가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고 만다. 과연 이 꼬여도 한참을 꼬여버린 두 부자의 재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아버지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한 태식은 이제 자신이 아버지를 버릴 거라고 다짐하지만, 것마저도 쉽지 않아 보이는데...

도무지 이 영화는 어디에 넣어야 하는 것인지 아리송한 작품이었다. 코미디라고 하기엔 몇몇 끔찍한 장면들이 눈에 거슬리고, 진지한 사회 드라마를 표방한건가 싶으면 웃기려고 작정한--하지만 웃음은 거의 나지 않는--장면들이 눈에 밟히고, 그렇다면 블랙 코미디? 라고 보기엔 풍자라고 할만한게 없고, 부자간의 감동 스토리를 보여 주려 한건가? 라는 것이 가장 그럴듯한데, 이것마저 사실 강하게 와닿지는 않았다. 왜 아버지의 정을 그리면서 아버지를 이렇게 학대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으면서, 거기에 정권의 잘못된 강압에 의해 정신이 나가버린, 한마디로 미친 사람을 보면서 웃으라고 강요하는 듯한 이 영화가 보는 내내 불편했다. 한없이 갑갑하고 답답한 설정에 간간히 웃음을 유발할만한 상황을 던져 넣으므로써, 조금이나마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 한 것 같은데, 이것이 결국은 이도 저도 아닌 것이 되버렸다고나 할까. 거기에 정신줄 나가버린 사람을 20년이나 돌봐야 했을 처절한 가족들의 심정에 나는 가슴이 서늘하더구만, 감독은 그게 굉장히 신선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것 같아 어이가 없더라. 도무지 얼마나 악취미면 미친 사람을 보면서 웃으라는 것인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어디 그것뿐인가. 미쳐 버릴 정도로 연기에 몰두했으니 예술이라고 해줘야 한단다.  뭐 ,이런...예술은 뭔 개뿔, 인간이 그렇게 하찮다는 것이냐 싶어 욕이 나오는걸 간신히 참았다.

그렇게 내내 감독의 이 놀랍도록 끔찍한 전제를 불편한 심정으로 봐줘야 한다는 것을 눈감아 준다면, 영화는 지루하지도 그렇다고 엄청나게 재밌지도 않게 흘러간다. 연출은 잘 했다는 뜻일게다. 이야기 전개는 비교적 무리없이 흘러가니까. 하지만 이 영화의 백미는 단연컨데 설경구다. 설경구와 다른 배우들이 살린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이기에 이런 시나리오임에도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걸 좋아했는가라면 그건 아니지만서도...오히려 보면서 얼마나 설경구가 가엾던지 말이다. 왜 그에겐 이런 배역밖엔 들어오지 않는 것인지, 시대의 아픈 아버지 상은 다 그가 연기를 해야 하는 것인지, 싶어 안스럽기 짝이 없었다. 왜냐면 혼신을 다해 연기하는 것이 역력한데, 그 역이 그다지 매력있는 배역이 아니라서 말이다. 어떤 인상이었는가 하면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것을 지켜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당사자가 그걸 죽도록 열심히 붓고 있는걸 보면 보는 사람 입장에선 미안해 진다는 것이지. 이 영화속에선 가장 매력적이고 그나마 인간적이라고 생각되는 배역이 사채꾼업자랑 밉살맞은 연기학과 교수였으니 말 다한거 아니겠는가. 주연보다 조역들이 매력있으면 도무지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답이 없어 보인다.

결국은 성근이 미친 것도 다 아들을 위해서였다는 말을 하려는 것 같던데, 그건 나를 설득하기엔 많이 부족했다. 해서 마지막 태식이 오열하는 장면도 난 심드렁했다. 감동은 커녕 머리속에선 이 감독은 미친사람에 대한 연구를 좀 더 해야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 결론적으로, 장르를 확실하게 정했으면 오히려 보기가 낫지 않았으려나 싶다. 호불호가 나뉘기는 했겠지만 적어도 이도저도 아닌 것을 보는 것 같지는 않았을테니 말이다. 욕심이 지나쳐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 것을 보는 듯한 느낌이던데, 물론 설경구가 얼마나 연기를 잘 하는 배우인가라는것 하나만큼은 이 영화를 통해서 증명되었지만서도 말이다. 바라건데, 다음에는 그에게 가만 서 있어도 매력이 넘치는 그런 배역이 들어와주길...왠지 설경구란 배우를 혹사한 기분이라서 영 기분이 안 좋더라. 그처럼 연기를 진정성 있게 하시는 분에게 다음번엔 조금은 더 배역 운이 좋기를 바라는게 과한건 아니겠지. 이상 설경구가 살리려 애썼으나 심폐소생엔 실패한 듯 보이는 <나의 독재자>에 대한 리뷰였다.

 





 
 
 
네버 고 백 잭 리처 시리즈
리 차일드 지음, 정경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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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난 뒤 표지 맨 뒤를 들쳐 봤더니, 잭 리처의 책이 그간 7권이나 나왔더라. 생각보다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숫자인데, 흥미로운 것은 분명 다 읽었을텐데, 몇 권은 줄거리를 읽어봐도 도무지 어떤 내용이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더라는 것. 그간 잭이 거쳐간 여인과 사건과 도시가 하도 많다 보니 결론적으로 잭 리처외엔 남는게 없는가 보다. 하여간 기억 나지 않는 몇 권을 다시 읽어야 하는 고민을 잠시 하는 사이, 더 흥미로운 사실 하나가 더 추가 되었는데, 이 책이 시작하게 된 계기가 바로 <61시간>이라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나 분명 그 책 읽었는데, 수잔 터너는 기억에 없다. 혹시나 해서 검색을 해봤더니 리뷰도 썼더라. 물론 내가 쓴 것임에도 다른 사람이 쓴 것처럼 읽었지만서도, 요즘은 정말로 리뷰를 쓰는 가장 큰 이유가 그 책을 읽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뇌리에서 휘발되는 책이 너무도 많아서. 그나마 리뷰를 쓰면 적어도 내가 읽긴 했네 싶지만서도,  리뷰라도 안 남긴 책들은 아무 생각이 안 난다. 심지어는 이런 일도 있었다. <나를 찾아줘>의 길리언 플린이 새삼 궁금해 그녀의 책을 빌려 왔는데, 문장은 새로운데 결말이 어떻게 될 지 알겠더란 것이다. 나 점쟁이 된 거야? 아니면 책을 너무 많이 읽었더니 작가의 머리속이 들여다 보이는 거야? 내가 추리 소설의 트릭을 풀었다고? 라면서 잠시 흥분을 했었는데, 알고보니 오래전에 읽은 책이었다. 어떻게 읽은 책을 다시 읽으면서도 기시감이 없을 수가 있는가에 생각이 미치자 기분이 급반전되었다는 이야기. 아~~~옛날이여~~다.


혹시나 나의 리뷰를 많이 읽으신 분들은 짐작이 가실지 모르는데, 내가 책 내용은 쓰지 않고 이렇게 딴 소리만 하는 이유를 말이다. 맞다. 책에 대해 딱히 할 말이 없어서 글자수를 늘리고 있는 중이다. 물론 100자 평을 해도 되긴 하는데, 왠지 그건 반칙처럼 느껴져서 말이지. 해서 아무리 맘에 안 드는 책이라도 100자평만은 피해자가는 취지에서, 열심히 수다를 떨고 있는 중이다. 뭐, 그렇다고 이 책이 맘에 안 들었다는 것은 아니고, 그저 리 차이드의 책들 중에선 그다지 설득력이 없었다고 말하는 편이 옳겠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 황당한 일들이 실제로 벌어진다고? 정말로? 라는 생각이 몽실몽실 떠올라서 사라지지 않았다. 뭐, <61시간>에서 전화상으로 호감을 느낀 자신의 후배를 찾아 110 특수부대를 찾아 왔다는 것은 이해가 간다. 잭 리처 다운 발상이니까 .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무리한 전개에 짜증이 나더라. 무고한 사람에게 폭행 치사에 친부 확인 소송까지 걸면서 그를 올가미에 얽어 놓으려는 세력이 있다는 것부터, 그것이 그렇게 간단하게 먹힌다는 설정까지 말이다. 아무리 잭 리처라지만 도무지 이 사람은 얼마나 사건 사고를 몰고 다니는 양반이냐? 짜증이 났다. 그리고 그 짜증이 끝까지 쭉 연결된다는 것이 이 책의 단점이다.


물론 잭 리처가 그런 몰지각한 분들(?)을 본인만의 능력으로 처단해가는 과정들을 보는건 여전히 통쾌했다. 그런데 이젠 서서히 그가 만나는 사건들이 상당히 억지스럽기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지. 잭 리처만을 위한 사건 사고를 일부러 크게 만들어 낸다는 인상인데, 이러면 아무리 잭 리처의 팬이라도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 아마도 리 차일드의 고민은 잭이 악당을 어떻게 무찌르느냐가 아니라, 잭이 상대하는 악당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요즘은 악당들의 면면이 공감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아무리 잭 리처라지만, 신빙성이 있었음 한다는 거지.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질지도 몰라라는 신빙성. 조금이라도...내가 바라는 것은 어마어마하게 정교한 시나리오가 아니니 말이다. 어쨌거나 리 차일드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본다. 몇 번 실망했다고 해서 그에 대한 애정을 버릴 내가 아니라서 말이다. 잭 리처는 이미 성공한 프랜차이즈 아니겠는가. 그저 다음에는 이보단 무리스럽지 않은 전개이길 바랄 뿐이다.


<추신> 그런데 이 리뷰를 쓰는 동안 수잔 터너가 희미하게나마 기억이 났다. 61시간에서 잭을 열심히 도와준 후배였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잭이 이 책에서 그렇게 열심히 수잔을 도우려 했던 것도 이해가 간다. 물론 어떻게 그가 가는 곳엔 늘 이런 사건들이? 내진 그가 만나려 가기만 하면 감옥에? 라는 억지스러운 전개만은 아무리 해도 설득이 안 되지만서도. 



 
 
 
냉혹한 이야기 가마슈 경감 시리즈
루이즈 페니 지음, 김보은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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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원서를 읽고 나서 번역한 책을 읽게 된다고 해도 흥미가 반감되지는 않는 편이다. 아마도 그건 내가 그렇게 기억력이 뛰어나지 않아서 얼마전에 읽은 책의 세세한 점을 다 기억하진 못해서 일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재밌는 책을 읽는다는건 어떤 언어로 읽는다고 해도 새로운 맛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여간 아무리 원서로 읽은 책이라도 역서가 나왔다고 하면 반색을 하면서 읽는 편인데...


이상하게도, 이 책만큼은 읽기전부터 약간 부담스러웠다. 다른건 몰라도 꼭 읽어볼 것이라는 점은 틀림없었는데, 왠지 지난한 여정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싶었던 것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사실 이상한 것도 아니다. 원서를 읽었을 당시, 난 이 책을 그다지 썩 좋아하지 않았다. 다만, 이 책의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는 <Bury Your Dead>를 읽고나서 생각이 바뀐 것일 뿐이다.  이 책과 연작이라고 해도 좋을정도로 연결이 되어 있는 두 작품속에서, 이 책의 진가는 Bury Your Dead의 밑밥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부터 두드러진다. 루이즈 페니의 다른 책들은 순서없이 그냥 낱권으로 읽어도 상관없지만서도, Bury Your Dead만큼은 이 책을 먼저 읽지 않으면 이해가 안 된다. 이 책의 가장 충격적인 부분이라 할만한, 그 외에는 다른 범인이 있을 수 없다고 수긍을 하게 되면서도, 어딘지 미심쩍은 인상을 지울길이 없었던 진범이 누구냐에 대한 답을 Bury Your Dead에서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해서 결론은 이 책은 루이즈 페니의 팬이라면 반드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내용도 물론 나쁘지 않다. 어쩜 썩 좋아지지 않더라는 말은 엄살이 불과할지 모른다. 여전히 그녀의 통찰력은 빛이 나는데다, 스리 파인즈 주민들의 매력은 생명력을 얻은 듯 훨훨 날고,  성장을 하는데다, 새로운 등장인물들의 개성 역시 무시못할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으며, 결정적으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을 우리는 진짜로 알고 있는 것인가라는 물음을 하게 되는 소설이었으니 말이다. 가마슈 경감의 카리스마와 따스한 성품이 굳이 보태지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매력적인 추리 소설이건만, 거기에 그가 중심에 떡하니 버티고 있다보니 아무래도 결론은 이만한 추리 소설을 보기는 힘들다는 말이 나오게 된다. 내가 좋아하건 말건 간에 스리 파인즈의 살인사건은 굳건히 벌어지고 해결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여간 주절주절 말이 길어졌는데, 이 책을 유난히 지루하게 오래 읽은 것은 사실이나, 아마도 그건 내가 이 책의 줄거리를 이미 알고 있어서 일 것이다. 숲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이라 조금 다크한 면이 있었다는 점도 신나게 읽어 제끼지 못한 이유가 될 것이고. 지나치게 이야기를 꼬면서 독자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는 인상 역시 호감을 살리 만무하다. 그래서, 리뷰에 줄거리는 쓰지 않고 이런 넋두리만 냅다 쓰고 있는 이유는... 혹시나 나 같은 사람이 있을까봐 싶어서다. 나같은 이유로 중간에 포기하는 독자가 있을까봐서 말이다. 하지만 말하건데, 루이즈 페니의 독자라면, 그래서 다음에 나올 책을 읽으실 의지가 있으신 분이라면, 꿋꿋하게 읽어 내시라고 권하고 싶다. 어떻게 난 루이즈 페니의 책을 언급할때마다 보상이란 말을 운운하게 되는가 본데, 이 책을 읽은 보상은 다음 편에서 기대해도 좋으니 말이다. 좀 오래 기다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추리 소설 독자라면, 그 정도는 양해해 주시지 않을런지...



 
 
 





                                                                                     ★☆☆☆☆

제목만으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던 작품이지만, 오래도록 볼까 말까를 망서리면서 간만 보고 말던 영화를 드디어 보게 됐다. 2001년에 나왔다고 하니, 거반 13년 동안이나 망서리다 보게 된 영화지 싶다. 내용은 빚에 몰려 인생이 파탄나기 일보직전인 12명의 사람들이 한 해의 마지막 날에 모여 자살 관광 여행을 떠나는데, 마지막에 그 사연을 전혀 모르는 아가씨가 버스에 올라타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다룬 이야기. 그렇게 오랫동안 망설이다 이제서야 보게 된 이유는 그동안 일본 드라마와 영화를 꽤나 많이 본 탓에, 일본 문화와 배우들에게 낯이 익었다고나 할까? 맨처음 일본 영화를 봤을때는( 제목을 말해보자면 <안경>) 어디서 아마추어 배우들을 참 잘 썼네, 일반인이 연기를 하는데도 어쩜 저리도 연기를 잘 한다냐? 물론 약간은 어색한 점이 있긴 하지만서도, 것도 귀엽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거기 나오는 배우들이 대부분 일본에서는 알아주는 연기자들인 것이렸다. 얼마나 무안하던지 말이야. 난 정말로 일부러 섬 사람들을 캐스팅해서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한 모양인데 했더니만, 알고보니 그게 일본풍의 연기 방식었던 모양이더라. 하여간 그런 저런 시행착오들을 몇 년 거치다 보니, 이젠 일본 배우들에게도 낯이 익어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게 되면 이 배우 저 배우를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런 이유로 제목이 다소 자극적이라 기억하고 있던 일본 영화를 다시 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여기엔 내가 아는 어떤 배우가 나오려나 싶은 호기심과 어떤 재미가 숨어 있을까 궁금했던 것이다. 거기에 자살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사람들을 모아서 어떤 이야기가 뻗어나갈 수 있겠는가, 그게 가장 궁금했다. 그래서 보게 된 결과는...

첫번째로는, 그간 왠만한 배우들은 다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은 대부분이 낯설었다. 여기 나오는 배우들은 이 한편만 찍고 마신 건지, 아니면 10여년의 세월동안 10여명의 배우들이 다 은퇴를 하신건지 모르겠으나, 하여간 아는 배우들이 별로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단 실망이었다. 두번째로는 내 생각이 맞았더라. 정말로 자살을 단호하게 결정한 사람들을 모아 놓아보니 더이상 뻗어나갈 이야기가 없다는 것 말이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그들이 조금이라도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게끔 자살과는 전혀 상관없는 아가씨가 등장하긴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영향을 미칠 수가 없었다. 왜냐면 자살을 해야 하는 사람들의 상황이 너무도 절망적이었기 다른 수를 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다수의 힘에 밀려 사는 것이 좋은 것이다를 줄곧 외치던 아가씨의 목소리는 바람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그렇담 이제 남은 것은 자살을 결심한 사람들 11명과 그들때문에 죽어야 하는 운명에 처한 한 처자의 죽음뿐인데...이건 살해가 아닌가. 자살까지는 그럭저럭 봐준다고 해도, 살해는 아니다. 그건 타인의 생명권을 짓밟는 일이니 말이다. 그런 거북한 상황에 처해지다보니, 빠져 나갈 구멍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 시점에서 감독이 이걸 어떻게 설득해 나가시려나 저의기 걱정이 되더니만, 알고보니 내가 걱정할 것이 아니더라. 결말에 대해 감독은 그닥 진지하게 고민한 것 같아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그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나아간 것 뿐...해서 이야기 자체로서도 그다지 좋은 점수를 얻을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세번째로는, 이 작품 정말로 지루하다. 처음엔 그래도 괜찮은 작품인가 보네 하면서 별 셋 정도를 헤아리고 있었는데, 보면 볼수록 별점이 깍여져 내려간다. 13년간의 기다림이 아니었다면, 그래서 반드시! 결말을 알아야 한다는 의지가 없었더라면 나 이 영화 끝까지 보지 못했다. 심각할 정도로 재미없어서. DVD표지를 보니, 부산 영화제에서 평론가 상인가 뭔가를 받았다고 하던데, 실소하고 말았다. 줄 영화가 그렇게도 없었단 말인가 싶고, 다시 말하자면 부산 영화제가 그 당시론 그렇게 절박했었는가 싶어서 말이다. 지금은 그나마 명망있는 영화제로 거듭나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더이상은 이런 영화에 상을 줘야 할 필요가 없을테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해서 결론은 이 영화 재미 없어요. 삶이나 죽음에 대해 별다르게 알려 주는 것도 없답니다. 그저 조금은 고약한 취향의 시나리오 작가가 기발한 생각 하나를 가지로 이야기를 꾸며낸 모양인데, 안타깝게도 남은 것은 고약하단 인상 뿐이네요. 더 좋은 영화를 발견하기를 기다려 봐야 겠다.




 
 
 
내 인생의 원투 펀치 라임 청소년 문학 3
에린 제이드 랭 지음, 전지숙 옮김 / 라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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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신중에 신중을 기해 골라온 책들이 몇 장 읽어 보기도 전에 매력 없음으로 탈락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 하는 수없이 될대로 되라라는 심정으로 신중을 기하지 않고 골라온 책이 되겠다. 그러니까, 평소의 나라면 별로 건드릴 일이 없는 청소년 문학이다. 이때의 청소년 문학이란, 작가가 청소년이란 뜻은 아니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작품이라는 것. 그러니까 내 주장에 의하면 오래전에 나는 졸업했어야 되는 그런 장르 되시겠다. 오죽 읽어볼만한 책이 없으면 이라고 나를 가엾어 하면서 읽기 시작한 이 책은 그런데 의외로 괜찮았다. 역시나 때론 그냥 저질러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모양이다. 아니면 그저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것이거나, 막다른 골목에 몰려 다른 수가 없는 사람들 특유의 낙천성이 한 몫 한 것일지도...하여간 의외로 괜찮았다고 기분 좋게 리뷰를 시작한 < 내 인생의 원투 펀치> 원제는 Dead Ends 되겠다.


줄거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몰린 한 소년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의 이름은 데인으로 그가 그런 처지에 몰린 이유는 시도때도 없이 휘두른 그의 주먹때문이다. 물론 그의 견해에 의하면 다 이유가 있어서 휘두른 것이지만,  어른들이라는게 가해자는 동일한데 피해자만 늘어나는 상황이 되면 일단 가해자를 의심하고 보는게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결국 교장 선생님의 레이다에 걸린 그는 앞으로 두번만 더 걸리면 전학 조치를 당하는 것으로 결정이 내려지고 만다. 사실 그간의 전력을 감안했을때 두 번의 여지를 준 것도 교장이 굉장한 특혜를 베풀어준 것이었는데,  그건 그가 성적면에서는 우수한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제발 조용히 학창 생활을 끝내 달라고 어른들이 빌고 있는 마당에 그 앞에 조금은 다른 녀석이 나타난다. 그의 이름은 빌리로, 그는 한눈에 보기에도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다. 데인의 옆 집에 이사온 빌리는 그의 옆에 있으면 아무도 터치 않는다는 사실을 곧바로 간파하고는 데인을 졸졸 따라다니게 된다. 여자와 장애인은 손대지 않는다는 신념만은 확실히 지키고 있던 데인은 귀찮게 따라다니는 빌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진다. 그런데 그 둘이 같이 다니는 것을 본 선생님들은 데인이 좋은 일을 한다면서 빌리를 잘 건사하면 그동안 그가 벌인 일들을 눈감아 주겠다고 한다. 뜻밖의 제안에 어리둥절해진 데인은 어쩌면 빌리가 그의 구원의 동아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과연 이 어울리지 않는 전교짱과 다운 증후군 소년의 우정은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전교짱이라고는 하지만 폭력적이라는 성향보단 세상의 부조리에 유난히 적응을 못하는 다혈질 소년에 가깝던 데인이 다운 증후군 친구를 사귀게 되면서 좀 더 성숙한 소년으로 거듭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던 소설이다. 아이들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그려낸 점이 읽기 편안했다. 그들이 이런 저런 사고를 치면서도, 늘 주변에 대해 생각하고 이해해 나가려 하는 점들이 공감이 갔다고나 할까. 무엇보다 아빠가 부재한, 개성 넘치는 모자 가정의 아들들인 데인과 빌리가 서로의 아빠를 찾아주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는 설정이 재밌었다. 그런 공통점이 한눈에 보기에도 현격한 차이가 있던 둘을 묶어주던 접착제가 되었는데, 각자 아빠로 인한 사연들을 결국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점들도 좋았지 싶다. 청소년 소설답게 조금은 현실과 거리가 있는게 아닐까 싶었지만서도--솔직히 이런 학교 짱과 이렇게 영리한 다운 증후군 아이의 조합을 현실에서 기대하긴 어려울 듯 하다.--그런걸 알면서도 그럼에도 계속 읽어 나가게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이야기가 흔연스럽게 흘러 갔다는 뜻이겠지. 그러니까 이야기로써는 전개가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었다는 것이다. 청소년 소설치고는 모나지 않게 잘만든 작품으로, 이런 내용을 가지고 영화로 만들어도 괜찮을 듯 싶었다. 아마 영화로 나온다면 나는 보러갈 생각이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