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과학책 - 지구 생활자들의 엉뚱한 질문에 대한 과학적 답변
랜들 먼로 지음, 이지연 옮김, 이명현 감수 / 시공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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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책이 하도 안 읽혀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잡게 된 책. 이런 책을 읽으면서 희희낙낙 하는걸 보면 영낙없이 이과 체질인 것도 같고. 그렇다고 이걸 완전히 이해하는 것도 아닌걸 보면 이과 체질이 아닌 것도 같고...아직까지도 이러는걸 보면 내가 고등학교 시절 이과로 갈 것이냐 문과로 갈 것이냐로 줄기차게 고민한 것도 이해가 간다. 해서 문과 체질인지 이과 체질인지 아리송한 사람이 읽는다고 해도 무난한 무려 과학책이 되겠습니다. 물론 위험한...이라는 단서가 붙었지만서도. 사실 그 "위험한"이라는 단어가 무시하면 안 되는 것이더군요. 특이해 보이려고, 내지는 재밌어 보일려고 그냥 붙인 제목인줄 알았는데, 책을 읽어보니 알겠더군요. 굉장히 많이 생각해서 지은 제목이라는 것을. 이보다 더 적당한 단어는 없다고 말입니다. 맞습니다 . 이 책, 아주아주아주 위험한 과학책 되시겠습니다. 처음엔 저도 이게 어떻게 위험한 책이 된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갔어요. 책 설명서에는 이 책이 단지 지구 생활자들의 엉뚱한 질문에 저자가 과학적으로 답을 해준 것일 뿐이라고 했거든요. 질문에 답을 한 것일뿐인데, 그게 위험해봤자 얼마나 위험하겠냐고 저는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만, 알고보니 제가 몰랐던 것이더라구요. 질문에 답하는 것만으로도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요. 세계는 넓고 엉뚱한 상상력을 가진 이들은 많다보니, 그들이 쏟아내는 질문들이 만만한게 아니더라구요. 그들에게 없는 것은 어쩌면 이런 질문에 성실하게 답할 괴짜 과학자가 아니었을까요? 해서 그들은 열심히 질문을 던집니다. 맛보기로 몇 개만 보여 드릴까요? 과연 어느 정도의 질문들일지? 


지구가 자전을 멈추면 어떻게 되나요? 진짜 광속구를 던지면 무슨 일이 벌어지나요? 미국에서 해마다 완전히 불타 없어지는 가옥은 몇 채쯤 되나요? 그 숫자를 크게(적어도 15%이상)늘릴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뭘까요?원소 벽돌로 주기율표를 만들면? 70억명이 다 함께 점프를 한다면?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사라진다면 마지막 인간광원은 언제쯤 꺼질까요? 하늘로 계속 올라간다면 언제쯤 어떻게 죽게 될까요? 얼어죽나요? 질식사일까요? 우리집 프린터가 돈을 찍어낼 수 있다면 세상에 큰 영향이 있을까요? 천둥번개가 칠때 수영장에 있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가요? 어린왕자에 나오는 소행성은 가능한가요? 사람이 얼마나 빨리 뛰어야 치즈를 자를때 쓰는 철사에 몸이 두동강 날 수 있을까요? 인체에 DNA가 사라지면 어떻게 되나요? 해일이 밀려올때 육지에 있는 수영장속으로 잠수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영화 <300>처럼 화살을 쏴서 하늘을 가릴 수 있나요? 지구의 평균 반지름이 매초 1센티미터씩 커진다면 사람들이 체중이 늘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태양이 갑자기 꺼진다면? 모든 응시생이 시험을 찍는다면 만점자는 몇 명이나 나올 수 있나요? 중성자별 밀도의 총을 발사한다면?...


대체로 이런 질문들이여요. 저자가 종종 어맛~~~! 이라면서 경찰서에 "저기요~~!" 전화를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였어요. 이 책의 장점이라면 어떤 희한한 질문이라도 저자가 충실하게 대답하려 노력을 한다는 것이여요. 그 대답을 듣다보면 전혀 알지 못했던 희한한 과학 상식을 알게 된다는 건 덤이고 말이죠. 과학을 배우면서도 과연 이게 뭐에 쓸모가 있을까 내내 회의에 잠기셨던 분들이 있으셨다면 반가워하시길요. 그 과학 상식이 이렇게 알뜰하게 쓰이기도 한답니다. 극한까지 가는 질문을 상식적으로 대답해주는 저자의 유머각각이 참 마음에 들었네요. 위험한 상상과 폭발을 좋아하는 사람 치고는 건전한 상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어찌나 매력적이던지요. 이해하기 쉽도록 귀여운 만화까지 곁들여서 반전매력이 차고 넘치는 분이었어요. 하지만 만약 2권이 나온다면 과연 나는 그 책을 사볼것인가? 에 대해서는 의문이네요. 하도 읽을 것이 없어서 주리를 틀고 있다면 또 모르지만, 위험한 이야기를 너무많이 읽었더니 좀 질리는 기분이 들어서요. 제가 다른건 몰라도 파괴본능 이런건 없는 편인가봐요. 하여간 세상은 넓고, 위험한 것들은 쎄고 쎘다는 것을 알게 해준 이 책. 심심풀이용으로 과학책 한권 읽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아,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알았네요. 이 지구 문명이 언젠가는 멸망할 것이라는 것을요. 과연 그때가 되면 인간들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우리는 다른 행성을 찾아 새로운 문명을 창조할 수 있을까요? 그것이 저의기 궁금하네요. 아마 그건 우리들중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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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니 모레티의 신작. 전작인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에서의 '감독님, 도대체 이 영화 찍으실때 무슨 생각을 하신 거여요? 이거 실수 맞는 거죠? ' 까지의 뜨악함은 아니래도 그 작품이 어쩌다 만들어진 불량품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걸 깨닫게 해준 작품. 다른 감독이 이런 영화를 찍었다면 뭐, 그러려니 하겠지만 난니 모레티가 이런 작품을 찍었다면 내리막길을 의심해봐도 좋을만한 상황이니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역량이 늘어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상상력이 고갈되는 사람도 있는데, 아쉽게도 난니 모레티는 후자의 경우에 속하는가 보았다. 나 자신을 포함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니 넘 서글퍼말자 싶지만서도, 사실 그것이 별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 이런 것이 우등생을 향한 기대의 압박감과 비슷한 것이겠지. 과거에 잘 했으니 앞으로도 잘 할 것이라고 추호도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하는 것 말이다. 그런 사람들을 자의식 만땅으로 의식하면서도, 갑자기 어떻게 영화를 만들고 사람들을 공감하게 하는지 그 감각을 잃어버린다면 어떤 현상이 발생하게 될까? 아마도 이런 영화가 나오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게 하던 작품이었다.


난니 모레티는 자신 주변의 이야기로 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이가 들면서 이번에 그가 택한 소재는 부모의 죽음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는 문제. 아마도 그가 어머니의 죽음을 겪으면서 그의 머리속을 헤집던 질문들을 이 영화속에 풀어놓은 것이 아닐까 싶던데, (엄마의) 죽음앞에서 (그녀가)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며 살았던 것이 다 무슨 소용이냐고, 영화속에서 묻는 여주인공의 질문이 난니 모레티가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아닐까 싶었다. 그 질문에 어느때와 마찬가지로 본인만의 답을 내놓고 있는 것이 특징. 가족이 아니라면 그렇게 강렬하게 느껴질 리 없는--남이라면 그녀가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것을 알리도 없고, 죽음 뒤에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끔찍할리 없으니--죽음이 가져다 주는 허무함을 설득력있게 그려내려 하고 있었지 싶다. 그리고 거기에 어떤 위로를 건네 주려 한 것도. 딱 거기까지가 이 영화의 장점.


단점이라면 우선 배우 선정을 잘못한 듯 싶다. 특히나 난니 모레티의 여성 버전이 확실해 보이는 여류 감독을 맡은 여배우는 미스 캐스팅이다. 차라리 난니 모레티가 주연을 맡았다면 훨씬 더 현실감이 있었지 않았을까 싶게, 여류 감독을 맡은 배우의 감독 연기는 어딘가 어설프다. 주변 사람들의 평을 종합한 그녀의 인상과도 어울리지 않고 말이다. 영화는 내내 조금은 둔중하다 싶게 흘러가는데, 그게 어느정도는 여배우의 연기력과도 연관이 있지 싶다. 물론 연출력이 딱 그만큼이여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서도. 그나마 영화 후반 영화의 죽어가는 분위기를 감지한 존 터투로가 영화의 긴장감을 살리려 뒤늦게 원맨쇼를 벌이기는 하는데, 어떻게 배우 하나가 영화를 살릴 수 있겠느냐 이거지. 결국 영화는 전반적으로 게으르고 성의없으며 진부하게 흘러간다. 난니 모레티 다른건 몰라도 정신 분석의가 어울린다고 생각될 정도로 인간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 하나는 인정하고 있었는데, 이 영화속에서는 그런 예리함이 실종되어 버리고 없었다. 왜일까? 치열함을 추구하기엔 너무 피곤해 지신 것일까. 거기에 특유의 유머감각도 어디다 팔아먹으셨는지..간간히 웃기기는 하는데, 영화를 살리기에는 역부족. 하긴 몇 번 웃게 해주었다고 좋은 영화라고 할 리도 없지만서도, 다만 웃는 얼굴에 침을 뱉지 못한다는 정도의 뉘앙스에 불과한 것이겠지. 결론적으로 말해 그의 최악의 영화는 아닐지라도 그의 감각이 예전만 못하다는걸 증명하고 있던 영화라고 보면 되지 싶다. 아~~어쩌다 그는 이런 지경에 처하게 된 것인지 한숨이 나온다.


재밌는 것은 그런  자신의 곤경을 감독이 실은 알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는 것이었다. 주인공이 감독이고 그리고 이 작품의 배경에서 영화 하나를 찍고 있는 탓에 여주인공은 내내 영화를 어떻게 찍을 것인가를 고민한다. 지금까지 나온 영화들이 그 밥에 그 나물이라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호소한다든지, 자신의 삶이 거시적으로 보면 같은 관계의 반복일 뿐이라는 자괴감에 시달린다든지, 착하긴 한데 재미가 없는 사람들이 늘어놓는 지루한 이야기에 대한 조소를 귀담아 듣는 것을 보면 난니 모레티는 그의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문제는 그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본인이 아직까지는 알지 못하는 것일뿐. 그런데 과연 앞으로도 그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라는 것이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든 의문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 결국 너무 너무 착한 사람들은 훌륭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일까 싶은.  이렇게 지루한 이야기에 천작하게 되고, 자신의 이야기가 지루한 줄도 모르고 늘어놓고 있는 것을 보면서 말이다. 그렇게 보자면 난니 모레티의 선함은 그의 창작에 방해가 되는 요소가 되는 것일까. 더이상 뻗어나갈 곳을 찾지 못해 제자리를 빙빙 도는 듯한 그 , 그가 과거의 예리함과 통찰력과 감각을 되찾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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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8-17 00:18   댓글달기 | URL
음,영화좋아하시는 분, 반가워서^^ 즐겁게 잘 감상하고 갑니다.아..저도 그런 생각 가끔 해요..너무 착하면 진짜
얘기는 쓸수없는 것이 아닌가..하는..^^ 너무 몰입이 되버리던가..그러잖아요..그쵸?이번건 장르가 다르니 오히려 색다른 맛이 있어요!잔잔하니..좋은 영화 고맙습니다..
비도오고,,음! 감기조심하시길,,^^(요즘 복숭아가 너무 좋습니다, 철 지나기 전에 꼭 한번 챙겨드셔보시길..)

이네사 2015-08-17 10:36   URL
이상하네요. 제가 리뷰에 잔잔한 영화라고 쓴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다들 잔잔한 영화라고 읽으시네요.
어떻게 아셨지? 분위기상 그래 보이는 건가요?
하여간 잔잔한 영화는 맞습니다. 좀 느려서, 둔중하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보면서 화가 나더라구요.
이 감독님이 원래 빠르신 분은 아니셨는데, 나이가 드시더니만 아주 느려지신 듯...
이 감독님 따라서 저도 나이를 먹긴 했는데, 어째 속도감에 있어서는 나이를 안 먹었는가봐요.
느린게 적응이 안 되더라구요. 느려도 재밌게 느린게 있는데 이 영화는 그도 아니라서 그랬는가봐요.
하여간 영화 좋아하신다니, 반갑습니다. 좋은 리뷰 기대하고 있을께요.^^
 

큰 조카가 어릴때--아기때?--함께 보면서 낄낄대던 < 못 말리는 양, 숀>이 영화로 돌아왔다. 한동안 재방송도 안 해주고 해서 서운하던 참이었는데, 영화로 한다니 얼마나 반갑던지... TV에서 마음껏 못 본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갈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상영까지 한참을 기다렸다. 올해를 시작하면서 기대작이라고 손꼽았던 작품들 중 하나였던 못 말리는 양 숀의 영화판 <숀더 쉽> 양의 해에 딱 맞춰 돌아온 숀은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나?





영화의 시작은 반복되어지는 일상이 따분해진 숀의 각성으로 시작한다. 평화롭긴 하지만 어제와 다를바 없는 오늘이 너무도 지겨워진 숀은 하루 정도의 일탈이라면 해봐도 좋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숀이 누군가? 양의 무리 중에서 유일하게도 "못 말리는" 이라는 형용사가 붙여진 양이 아니겠는가. 그에게 그런 별명이 생긴 것이 어쩌다 우연히 붙여진 것은 아닐 터...지나가는 버스에 영감을 받은 숀은 하루만의 휴가를 자신들의 무리에게 선사하기로 한다. 하지만 거기엔 두 가지의 장애물이 있었으니 바로 그들을 돌보는 목장 주인 아빠와 양치기 개 비처. 어찌어지 비처를 따돌린 숀 일행은 아빠를 잠재워 트래일러에 잠시 가둬 두기로 한다.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숀의 계획은 착오없이 착착 맞아 떨어져 두 장애물을 없앤 숀 일행은 아빠의 집에서 희희낙낙 자신이 원하던 휴가를 만끽하게 된다. 그저 그렇게 하루만 보낸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았던 그때, 잠자고 있는 아빠를 태운 트래일러의 고인돌이 빠지면서 아빠가 정처없이 시내로 질주하는 사고가 생기고 만다. 이를 목격한 충성스런 개 비쳐는 숀 일행에 원망의 눈길을 날리며 트래일러를 따라 달리고, 숀 일행은 급작스런 사태에 당황하고 만다. 아빠가 잘못 되면 어쩌나 죄책감에 시달리던 숀은 큰 맘을 먹고 그를 찾아 시내로 나가기로 하는데, 과연 숀은 아빠와 비처를 찾아 농장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한편 영문도 모른 채 차 사고를 당한 아빠는 머리를 다쳐 자신이 누군지 어디에서 왔는지 기억을 하지 못하는데...




<<숀더쉽> 영화를 기다리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윌래스와 그로밋이 처음의 신선함을 뒤로하고 점점 진부한 이야기를 쏟아내는 것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지켜본 나로써는, 좋아하는 캐릭터인 숀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또다시 진부함의 극치이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서 말이다. 다행히도 대단히 신선합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최악이었다라던지 못말리는 양을 좋아하는 팬으로써 실망이었다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무엇보다 그간 못 말리는 양 숀에서 그닥 존재감이 없었던 목장 주인 아빠가 어느정도 비중있는 조연으로 나와준 것이 맘에 들었다. 그냥 목장 주인이 아니라, 숀과 그 일행을 사랑하는 목장 주인으로써 그들이 실종된 아빠 찾아 삼만리에 나선다는 설정이라서 더 뭉클했다. 맨처음 영화를 시작하면서 숀과 비쳐의 어릴 적을 보여주면서 얼마나 아빠가 그들을 사랑했는지 보여주는데, 여태 TV에서는 보지 못했던 장면이기도 했지만 그들의 사이가 너무도 좋아보여서도 반가웠다. 아빠와 숀과의 역사를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다고나 할까? 아빠가 숀과 비쳐를 예뻐하는 장면을 통해 그들이 왜 나중에 그렇게 아빠를 찾아 다니는지 이해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영리한 전개였지 싶다. 참, '영리한' 이라는 단어가 나와서 말인데,영리한 이라는 형용사가 숀 이외에는 해당되지 않는, 어리버리한 등장인물들의 향연이라는 점도 아이들과 함께 마음껏 웃고 즐길 수 있는 이유였지 않았는가 한다. 다들 어찌나 멍청하고 단순한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귀여운거야 말할 것도 없고. 그렇다보니 마지막 감동은 덤이라면 덤이다. 단조로운 일상이 싫다 싫어 하면서 하루만이라도 일탈을 허락하소서 했던 숀 일행이 그 단조로운 일상으로만 복귀하게 해다오 하면서 난리법석 부르스를 추는 황당 소동 일지.흥미로운 것은 숀의 입장에 몰입해서 보다보니, 처음 단조로운 일상이야말로 끔찍해 보이더니만, 나중에는 그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소동끝에 자연스레 체득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내 말하지만, 양들의 시선이라고 해서 무시하면 안 된다니까?. 하여간 결론은 재밌습니다. 아이들과 가볍게 볼만한 것을 찾으시는 분들이라면 솔깃하셔도 좋을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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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살 소녀 라일리의 감정을 조정하는 다섯가지 감정, 기쁨, 슬픔, 까칠, 버럭, 소심등은 그간 자신들이 맡은바 소임을 충실히 해온 결과 라일리의 핵심 기억에 좋은 것들로만 가득차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문제는 더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하던 평온한 라일리의 생활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 평생을 살아온 미네소타를 벗어나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온 라일리는 정든 고향과 친구,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던 하키를 버리고 떠나와야 했다는 것에 적잖이 충격을 받는다. 거기에 물설고 낯설은 샌프란시스코란 곳은 어쩜 그리도 맘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는지...다섯 감정들 중 그간 라일리의 두뇌 속에서 대장 역활을 해왔던 기쁨은 라일리의 감정에 슬픔이 번져드는 것에 기겁을 한다. 감정통제부의 조정간에 슬쩍슬쩍 손을 대는 슬픔으로 말미암아 라일리의 감정은 널뛰기를 하고, 이에 위기를 느낀 기쁨은 슬픔에게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짱 박혀 있으라고 명령을 내린다. 고분고분 순종적이기만 할 것 같은 슬픔은 기쁨의 말을 곧잘 알아듣는 것 같으면서도 어느새 은근슬쩍 앞으로 나와 조정간에 손을 댄다. 슬픔의 행동에 속이 터진 기쁨은 조정간에서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떼어 놓으려 애를 쓰지만, 슬픔의 뚝심도 만만찮아서 결국 둘의 다툼은 핵심 기억들과 더불어 둘이 통제센터를 튕겨져 나가게 되는 사건을 만들고 만다. 


자, 이제 사춘기의 문전, 11살이라는 마의 나이에다 이사라는 엄청난 사건만으로도 부족하다는 듯, 기쁨과 슬픔마저 통제부를 벗어나게 되었다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처한 라일리의 뇌는 과연 앞으로 어떻게 될까? 라일리의 행복만이 중요하다고 , 라일리는 행복해야해! 라면서 모든 희생을 마다치 않는 기쁨은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갖은 애를 다쓰지만, 통제부로 돌아가는 길은 멀고 험하기만 하다. 더군다나 너무도 슬퍼서 한발자욱도 움직일 수 없다는 슬픔을 데리고 다녀야 하는 상황에서랴, 기쁨의 마음은 조급과 안달과 불안으로 치닫는다. 한편 통제부에 남은 세가지 감정, 까칠 버럭 소심은 기쁨과 슬픔 없이 라일리의 감정을 조정해야 하는 상황에 되었다는 것에 당황한다. 두 감정이 없음에도 그런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세 감정의 마음과는 달리, 라일리가 달라졌다는 것을 눈치챈 부모는 왜 그녀의 행동이 달라졌는지 몰라 답답하기만 한데...


기대를 잔뜩하고 봤는데도 기대치를 훌쩍 넘기다 못해 상상 이상의 완벽함을 보여줘서 픽사에 새삼 존경하는 마음까지 들게 하던 영화였다. 픽사의 상상력이 빅뱅 수준으로 폭발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내고, 그걸 이렇게 깔끔한 이야기로 탈바꿈해서 우리에게 들려주게 되었을지 놀랍기만 하더라. 참신함 , 독창성, 이야기의 군더더기없는 전개에 더불어 감동적인 결론까지...내 인생에 더이상 새로운 것을 만나게 되기란 어려울 것이라고 오래전부터 생각 해왔었는데,--더이상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을 만나기란 쉽지 않을 거라고-- 그 추측을 간단하게 제압해버린 엄청난 작품이 되겠다. 내가 얼마나 우물안 개구리인지 증명하면서 나를 놀리는 듯 했는데, 그것도 별거 아니라는 듯 가비얍게 말이다. 반가웠다. 세상이 넓다고는 하지만, 상상력과 창의성과 배려과 이해가 넘치는 사람이 이렇게 넘쳐날 줄 내 어찌 알았으리요. 아마도 하필 그런 사람들이 픽사에 우연히 몰려 있던 통에 이런 수작 애니가 탄생을 하게 된 모양인데, 영화 한 편을 보면서도 그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이렇게 멋진 작품을 우리에게 선사해 준 것에 대해서 말이다. 물론 이 영화가 상업 영화긴 하지만서도, 상업 영화 이상의 그 어떤 메시지와 감동을 전달해주고 있어서, 냉소적인 나조차 가슴이 찡했다. 돈을 벌기 위해 만든 영화가 아니라, 그리고 그걸 위해 인간에게 아부하는 영화가 아니라, 진실을 이야기 하면서도 공감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 자신감에 박수를 칠 수밖엔 없었다. 거기에 감성만이 아닌 이성에도 호소하는 영화였다는 점 역시 만족스러움을 더해주었다. 황당무개한 것 같지만 꼼꼼히 들여다보면 다 이치에 맞는다. 너무도 이치에 맞아서 무릎을 탁 치게 만들 정도라니까? 다섯 감정이 뇌를 지배하고 있다는 황당한 이야기가 어찌나 설득력있던지, 내가 왜 그걸 진작에 한번도 생각해내지 못했지? 이런 간단한 것을? 이라고 생각되어질 정도였다.


하여간 이 영화의 장점을 꼽으라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이 세상의 모든 찬사를 갖다 붙인다해도 이 영화에겐 진부하겠다 싶더라. 두려웠다. 근사한 말로 이 영화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좀 기다려보면 좋은 것이 생각날까 일주일을 기다렸지만, 결국 내 능력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니 턱없이 부족할 것이 분명한 서투른 찬사를 나는 생략하기로 하겠다. 그것이 이 영화에 대한 예의일 것 같다. 다만 내가 진심으로 말하고 싶은 한가지는, 픽사에게 고맙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이해의 눈으로 보게 해준 것에 대해서, 그리고 그간 내가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감정을 생각나게 해준 것에 대해서 말이다. 그렇게 행복하고 기쁨에 차 있던 아이들은 다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내내 궁금해하던 나는 이제 조카들을 키우면서 그들 역시 그런 어른이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불안할때가 많았다. 그런 시기가 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을 어디서도 찾지 못할 것 같더니만, 어럅쇼. 누군가 이미 나와 같은 고민을 했고, 거기에 그럴싸한 대답까지 내놓은 것에 감격하고 말았다. 이런 깨달음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자신이 가진 의문에 고민하고 자문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픽사 관계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들이 내어놓은 이 뻔하지 않는 진심에 감사할 뿐이다. 이것이 내가 이 영화에게 바칠 수 있는 최대한의 찬사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이 영화는 리뷰 쓰기가 쉽지 않겠는데 했다. 그리고 그런 부족한 글솜씨가 한편으로는 아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압도당한 나머지) 나를 입다물게 하는 것을 만난다는 것이 그리 흔한 경험은 아니여서 말이다. 하니 아이를 키우시는 부모들에게 꼭 보시라고 추천한다. 아이가 없으신 분들이라도 마음 속에 어린 시절의 아이를 갖고 있으신 분들은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란 명목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물론 아이가 봐도 좋다. 그들 역시 이 영화를 좋아하고 감동하고 울먹이겠지만서도, 그들이 느끼는 이해는 어른이 되어서 어쩜 더 크게 와 닿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를 아직 못보신 분들이 부러울 뿐이다. 그들에겐 이 영화로 인해 받게 될 감동과 신선한 충격이 남아 있을테니 말이다. 하니 챙겨가지 못하신 분들은 어서 어서 챙겨 가시길. 이 정도로 말을 했는데도 챙겨가지 못한다면 그건 당신 손해다.


추신 1--영화를 보면서 기쁨의 목소리 연기가 에이미 폴러라서 더 좋았다. 워낙 그녀의 팬이여서도 그랬고, 그녀의 호들갑스러우면서도 남을 진정으로 생각해주는 목소리 톤이 기쁨에 그보다 더 잘 어울리긴 힘들겠다 싶어서도 그랬다. 그리고 슬픔 역도 어찌나 싱크로율이 똑같은지 누굴까 궁금했었는데, 알고보니 미드 <오피스>의 필리스 스미스라고 한다. 어째 목소리가 친숙하다 했더니만, 역시나 아는 목소리여서 그랬는가 보다.


추신2--영화를 보면서 주저없이 별 다섯개를 준 영화는 <시민 케인> 이후로 처음이다. 과연 올해 이보다 더 완벽하고 좋은 영화가 나올지 의문이다. 그런데 아카데미 상에서 작품상에 애니를 줄 수도 있나요? 갑자기 그게 궁금하네...애니상을 받을 것이라는 것에는 틀림없어 보이는데 말이다. 내년도 아카데미 상의 향방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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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영원한 고전이라고 불려도 무방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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