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오지 않는 아이 라임 청소년 문학 31
세이노 아쓰코 지음, 김윤수 옮김 / 라임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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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직접적이다. <학교에 오지 않는 아이>라니, 왠지 내용도 손에 잡힐 듯하다. 어떤 문제가 생긴 아이가 등교 거부를 할 테고 그 아이가 다시 등교하게 하기 위해 많은 이들의 노력이 보여지는 소설...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 책, 등교 거부 아이 입장에서도 아니고, 그 주변 인물의 서술도 아니다. 그냥 같은 반 아이, 별로 친하지도 않았고 딱히 그 아이를 잘 기억하지도 않는 아이의 시각으로 보여준다.

 

나, 후미카는 글을 잘 쓰는 편이다. 그런데 왠지 그 글에는 진심이 담기지 않은 것 같다. 거짓말로는 남들이 원하는 글, 점수를 잘 받을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지만 그런 글을 쓰다 보면 '이건 내 진심이 아닌데...'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학교에 오지 않는 아이, 오바야시를 위해 편지를 쓰게 되면서 후미카는 자신의 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별로 관심이 없던 아이에게 편지를 쓰려면 과연 어떤 내용의 글을 써야 하는 걸까. 보고 싶다고? 힘 내서 어서 나오라고? 그런 내용은 별로 관심이 없던 아이에 대한 나의 진심일까? 그리고 그런 내용의 편지를 읽은들 그 아이는 그  편지를 진심이라고 생각해 줄까? 아닐 것이다. 모두 형식상 이 편지를 썼고 그러니 나도 그 편지에 응해줄 진심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학교에 오지 않는 아이>는 바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몇 번이나 종이에 글을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무슨 말을 써도 거짓말 같았다. 감상문이라면 거짓으로 술술 잘도 쓸 수 있는데, 마음이 제대로 담긴 편지를 쓰는 것은 정말이지 어려웠다."...40p

 

책을 읽어나가며 몇 번이나 이 책에 공감했던 건 바로 이 글쓰기에 진심이 담겼는가...하는 문제 때문이었다. 글을 쓸 때 가능하면 거짓이 아닌 글을 쓰려고 노력하지만 어쩔 수 없이 많은 글을 쓰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럴 거라고 생각하며 쓰는 글도 있지 않나...하는 후회와 반성이 들 때가 있다. 감상문이라면 후미카의 이야기처럼 어느 정도 가능하다. 하지만 상대가 확실히 정해져 있고 특히나 "학교에 오지 않는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라면... 그건 정말 나쁜 짓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후미카는 고민한다. 적어도 상대방에게 떳떳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뻔한, 그럴 듯한 내용의 편지가 아니라 자신의 진심만 담은 편지를 쓰기 위해. 그렇게 적어 보낸 편지는...

 

"언젠가 제대로 된 편지르 쓸게."..40p

 

그리고 이 짧은 쪽지에 오바야시는 반응한다. 아마도 후미카의 고민이 오바야시에게 와닿은 것은 아닐까.

 

소설 속에는 오바야시가 도대체 왜 등교 거부를 하게 되었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설명해 주지 않는다. 결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누구와도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았던 오바야시가 관심을 보인 것은 "진심"이었다는 점이다.

 

매일같이 만나는 사람과도 우리는 상투적인 말을 내뱉는다. 잘 지내는지(궁금하지도 않으면서), 다음에 밥 한 번 먹자든가(그러고 싶지도 않으면서)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정말로 소통하고 싶은 사람에게 우리는 그렇게 상투적인 말을 하지는 않는다. 내 진심이 가 닿기를 바라며 말을 고르고 고를테지.

 

참 예쁜 책이다. 소통에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해 가볍지 않게, 진중하게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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