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틴 피스토리우스.메건 로이드 데이비스 지음, 이유진 옮김 / 푸른숲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어렸을 적 다녔던 피아노 학원 선생님께선 다리가 많이 불편하셨다. 소아마비라고 했다. 평소엔 휠체어를 타고 계셨고 간혹 목발을 짚고 잠깐씩 걸어다니셨던 기억도 난다. 다른 어떤 선생님보다 그 선생님이 많이 기억나는 건 내가 처음 만난 몸이 불편하신 분이었고, 그럼에도 전혀 꿀림 없이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던 분이셨기 때문이다.

 

식물인간이라니, 나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간혹 도움을 주는 TV 프로그램 등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지만 그럴 때에도 동정만 할 뿐, 그저 남의 이야기인 것이다. 나라면, 아니면 내 가족 중 한 사람의 이야기라면... 어떻게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는 12살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결국 식물인간의 상태에 빠진 한 소년이 시간이 흘러 점차 회복되고 결국 자신의 삶을 되찾게 되는 여정을 담은 이야기이다. 마틴 피스토리우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태어나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 갑자기 식물인간이 된 실화의 주인공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마틴은 식물인간이 된 지 4년 후 의식을 회복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마틴의 변화를 알아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의 곁에서 항상 그가 회복되기만을 바랐던 부모조차도. 그렇게 그는 13년이라는 세상을 몸에 갇혀 지낸다.

 

정신은 멀쩡한데 움직일 수 없다면, 그 사람은 얼마나 피폐해져 갈까. 몸이 저려 돌아눕는 것조차, 기본적인 생활인 먹는 것, 씻는 것, 싸는 것까지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야 한다면, 아무도 자신이 보고 듣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해 자신을 장식품이나 쓰레기 쯤으로 생각하고 자신 앞에서 못할 말, 말도 안되는 행동을 한다면 말이다. 도대체 그 인고의 세월을 어떻게 견뎌야 할까.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알고 있었다. 나에게도 감정이 있었다. 나는 그저 유령 소년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바라봐주지 않았다."...217p

 

매일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어쩌면 마틴도 죽지 못해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마틴은 살아남았고 사려 깊은 버사의 도움으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그의 의식이 깨어있다는 사실을 버사가 밝혀낸 것이다. 그 후 마틴의 삶은 그야말로 승승장구였다. 가족과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회복하고 의사소통이 가능해지고,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이 늘어나고 일자리에 결혼까지 하게 된다.

 

이렇게 극적인 변화는 13년, 마틴이 깨어있었으나 움직이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했던 그 기간 동안 쌓아온 내공이 아니었나 싶다. 괴롭고 힘들고 죽고 싶은 절망 속에서 상상의 세계 속으로 도망쳐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자신에 대해 탐구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생각을 읽고 표현하고 싶었던 만큼 그만이 알 수 있는 여러가지 것들이 있었고, 그만이 가질 수 있는 인내심, 세심함, 지구력이 있었다. 때문에 후에 그가 어느 정도 한 사람으로서 독립할 수 있도록 도와준 지지 기반이 된 것이다.

 

그야말로 인간승리라고 말하고 싶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는 배움을 얻는다. 될 때까지 노력하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다. 자신의 장애에 묶여있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 그의 이야기가 진한 감동을 주는 이유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