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타 소녀와 좀비 소년 라임 청소년 문학 18
김영리 지음 / 라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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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드라마 한 편을 보는 듯 읽었다. 표지의 예쁜 일러스트와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제목도 좋았지만 처음부터 얻어터지는 태범의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냥 맞는 것이 아니다. 태범은 돈을 받고 10분 동안 상대방의 화풀이 대상이 되어 준다. 그렇다고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을 내어준 것도 아니다. 가진 돈이 3500원이든 2만원이 넘든 상대방이 자신이 가진 것을 올인하면 자신도 모두 내어줄 수 있단다. 도대체 태범은 왜 이렇게 사는 걸까.

 

책은 태범과 수리의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된다. 1인칭 시점으로 이들의 생각을 고스란히 들여다볼 수 있다. 사실 이들의 생각도 중요하지만 처음엔 이들의 관계나 이들에게 과연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가 너무 궁금해서 페이지를 빠르게 넘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2년 7개월 전의 이야기를 알고 나면, 대략 난감하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있을 수가 있을까. 또 그 이후에 생긴 일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놀라움의 연속이다.

 

수리는 친구들과 놀고 혼자 돌아오는 길에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 사고로 가해자는 교도소에서 1년을, 수리는 괜찮았던 것 같은 1년을 보낸 후 이들의 운명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수리는 한쪽 다리를 잃고 절망에 빠진다. 가해자인 태범의 아버지는 자신감을 잃고 술에 빠져 지내다 가정 폭력 속에 갇혀버린다. 그리고 그 날, 수리가 아빠에게 자신의 절망을 토로하던 날, 태범이네에서는 엄마가 아빠에게 맞다 도망치고 태범의 아빠는 함께 죽자며 가스를 틀어 가족 자살을 시도하지만 그 순간 수리의 아빠가 들이닥치고 실랑이를 하던 중 태범의 아빠가 칼을 맞는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태범의 아빠와 동생이 목숨을 잃는다.

 

너무나 큰 충격으로 태범의 엄마는 기억을 잃는다. 태범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

 

"나는 그날 죽었다. 바로 이 집에서. 나는 이미 엄마의 기억 속에서 죽었는데도 죽지 않고 걸어다니는 좀비였다. 영화에서는 좀비의 눈을 클로즈업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얼마나 역겹고 더러운지 보여줄 뿐. 좀비의 눈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들이 얼마나 자신을 가두고 있는 몸에서 탈출하고 싶어 하는지, 세상 밖으로 나오고 싶어 하는지 알게 될 테니까."...121p

 

수리와 태범은 각자의 상황 속에 갇혀 있다. 자신들이 어찌할 수 없어 스스로를 탓하고 자신의 몸을 망가뜨린다. 하지만 이 둘이 만나면서 서로가 공감할 수밖에 없는 상처를 공유하며 조금씩 치유해 나아간다. 멈춰서지 않고 나아가는 것. 이들은 아직 젊기 때문에 상처를 딛고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물감을 아무렇게나 짜서 만든 데칼코마니이자 서로의 어두운 그림자다. 하지만 그런 그림자라도 옆에 있기에 조금은 견딜 만해지는 거였다. 그걸 굳이 말로 꺼낸 적은 없지만 수리도 알고 나도 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찾아와 누구에게도 하지 못하는 속 이야기를 다 토해 놓는 것이다. "...178p

 

책의 후반부로 가면서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고 그 진실 속에 이들은 또 한 번 아파한다. 뒤늦게 어린 둘째를 낳은 나 또한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이 두 가족의 비극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원인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현재의 삶과 미래이다. 너무나 큰 좌절과 아픔을 겪었지만, 이들은 이제 살아야겠다고, 앞으로 나아가야겠다고 결심한다.

 

나는 어떻게 앞으로 나아왔을까. 하루하루를 버티면서, 그렇게 살았다. 내겐 이들처럼 외면의 큰 사건은 없었지만 나 또한 많은 소용돌이를 지나왔다. 그때마다 반은 모른 척, 반은 견디면서, 그렇게 살았다. 지금 되돌아보면 그 또한 추억이다. 내 아이들은 자신의 아픔, 상처를 바로 바라보고 견디어주었으면 싶다. 그것은 더 큰 자양분이 되어 힘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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