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의 규칙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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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TV에서 먼저 만났다.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이름이 주는 유명세와 함께 패널들이 모여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추리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무척 흥미로웠다, 고 생각했다. 사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몇 편 읽지도 않고 이미 질린 상태였는데 표지부터 시선을 끌었고 그 내용 또한 독특했다. 마치 작가로서의 모든 고민과 추리소설계에 대한 비판, 그리고 독자들에 대한 비판이 이 한 권에 모두 담긴 듯.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 후의 이야기를 제외하고 이 소설에서 보여지는 이야기는 모두 열두 가지. 작가는 이 열두 가지의 이야기를 통해 추리 소설이 어떤 식으로 씌어지고 어떤 구성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트릭과 어떤 해결점을 찾게 되는지를 낱낱이 드러내 보여준다. 따라서 형식은 추리소설의 그것을 띄고 있으나 읽고있으면 전혀 그런 느낌을 갖지 못한다. 제목 그대로 이 소설은 어디까지나 "명탐정이 만들어지는 규칙"에 대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 속의 주요 등장인물인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오가와라 반조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역할을 맡고 있다. 또 한 사람 이 소설의 주인공격인 명탐정 덴카이치 다이고로이다. 이 소설은 명탐정 덴카이치 다이고로 시리즈인 것으로 되어있고 두 사람이 다양한 사건들을 맡으며 해결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추리 소설의 모든 것을 알려주는 식이다. 그런데 이 두 사람... 소설과 현실을 오고간다. 여기서 현실이란, 이야기의 바깥쪽, 즉 독자나 작가가 있는 곳이다. 직접 소통을 하지는 못한다고 해도 두 사람이 소설 밖으로 나와 이 이야기들을 직접 비판하고 고민하며 걱정하고 있기까지 하다. 어쩌면 이 두 사람은 추리 작가로서의 현실적인 고민을 분출할 수 있는 배수구이며, 구태의연한 추리 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불만을 대신 표출해줄 수 있는 대상은 아닐까.

"이런 탐정 소설에서 우리 조연들이 가장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은 절대로 명탐정보다 먼저 범인을 알아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54p
"이봐, 이 소설이 아무리 형편없기로서니 작가, 혹은 독자가 범인이었습니다, 따위의 결론이 나오는 건 아니겠지."
"말도 안 돼요. 하지만 요즘 독자들은 그런 결론까지 예상하고 있을걸요."...59p

독자들은 점점 진화하고 작가는 완벽한 트릭 속에 독자들을 깜짝 놀래켜줄 만한 구성을 짜느라 머리가 아프다. 따라서 작가도 함께 진화해야 한다. 하지만 반대로 작가가 힘들게 짜 놓은 실마리를 따라 전혀 추리를 하려고도 하지 않는 독자들 또한 존재한다. 마지막까지 명탐정이 나타나 모든 해결을 보여주어야만 받아먹는 독자들. <<명탐정의 규칙>>은 그런 독자들에게도 일침을 놓는다. 

너무나 당연하다는듯이 경감은 명탐정에게 결말을 맡기고 무언가 모순을 발견하면서도 절대 입 밖으로 내어 말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명탐정 시리즈의 규칙"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매 에피소드를 통해 웃음이 나는 것은 아마도 이런 아이러니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유머 뒤에 숨겨진 것들을 찾아내면 조금 더 열심히 추리소설을 읽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나 또한 받아먹는 독자였으니..).

"여기서 나는 방아쇠를 당겨야만 하는 것일까.
그래야만 이야기가 완성되는 것일까.
그리하여 본격 추리 소설은 구원을 받을 것인가.
어떨까.
과연 어떻게 되는 것일까."...356p

이 마지막 문장은 작가가 자신에게,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일 것이다. 추리 소설의 정해진 규칙에 따라야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새롭게 모색하고 함께 진화해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하고. 조금 더 그의 작품들을 읽고 싶어졌다. 그의 실험들이 이후 어떻게 나타났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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